문학과사회 114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5월 27일 | ISBN 9771227285006

사양 신국판 152x225mm · 50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이 사건은 1993년에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993년 1월이었다. 이 시체가 발견된 이후부터, 살해된 여자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에 다른 여자들이 죽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가장 먼저 죽은 여자의 이름은 에스페란사 고메스 살다냐였고, 열세 살이었다. 그 소녀가 최초로 살해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1993년에 살해된 첫번째 여자였기에 편의상 그녀가 죽은 여자들의 목록에서 맨 앞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2년에 살해된 다른 여자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시체가 결코 발견되지 않은 다른 소녀나 여자들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채 사막의 무덤에 묻혔거나 한 줌 재가 되어 한밤중에, 그러니까 재를 뿌리는 사람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칠흑 같은 밤에 뿌려졌을 것이다.1)

 

로베르토 볼라뇨는 『2666』의 4부를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진 연쇄적인 여성살해사건femicide에 온전히 할애한다. 국역본을 기준으로 5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4부는 많은 부분 소설보다는 법의학 보고서에 가까운데, 볼라뇨는 백 구가 넘는 시체들 하나하나를 잔혹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며 각각의 시체들이 발견되고 수사가 진행되고 끝내 미제로 처리되는 과정을 반복 기술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을 구성하며 그 배면에 존재하는 것은 범죄를 해결하기보다는 축소하기에 급급한 경찰과 끔찍할 정도로 무관심한 시민들의 태도다.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가운데 반복되는 여성 살해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려 백 명이 넘는 여성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는 실제로 1993년부터 2005년까지 350건(실종자를 포함하면 8백 건) 이상의 여성 살해가 발생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에두아르도 라고의 지적처럼 “(희생자들의 시신에 대한) 그 잔혹한 묘사들 가운데 어떤 것도 작가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2)

 

지난 5월 17일 서초구 한 노래방 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이십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삼십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두고 볼라뇨의 소설을 떠올렸다면 다소 과민한 반응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벌어진 (일부) 매체들의 보도와 (일부) 남성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가 볼라뇨가 그려낸 지옥 같은 여성혐오 misogyny의 세계와 생각만큼 멀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범인 스스로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명백한 여성혐오 살해를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하며 ‘여자가 그 시간에 술이나 먹고 다니는 게 문제’라고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시키지 마라’거나 ‘피해자를 이용해 남성혐오를 퍼뜨리는 정치적 행위를 중단하라’는 등의 반응들은 분명 문제적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전형적인 여성혐오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불쾌할 수 있다고 해도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것과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노출된 채 ‘잠재적 희생자’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성혐오’란 언어도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남성이 98퍼센트로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이 84퍼센트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3), 유엔마약범죄사무소 UNODC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202개국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살해되는 7개국에 포함된다4). 안타깝지만 우리는 여성들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운이 좋으면 그냥 나오지만 운이 나쁘면 몰래카메라에 찍히고 더 운이 나쁘면 죽는5)” 사회를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그곳에 들러 피해자를 애도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포스트잇에 남겼다.6) 『문학과사회』는 그 목소리들을 지지한다.

 

 

2016년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출간 백 주년이 되는 해다. 필자 중 한 분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야 백 년?”이라고 해야 할지 “벌써 백 년?”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책이다. 백이라는 숫자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겸사겸사 청년 루카치와 그의 이론을 새삼 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세 번 읽기」에서 서영채는 개인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한때 금서였던 『소설의 이론』이 그의 세대와 한국 사회에 끼친 ‘마법적인 위약 효과’에 대해 쓴다. 「마르크스주의와 형식」에서 김형중은 ‘청년’ 루카치를 단순히 지양하는 (루카치 자신을 포함한) 전통에 반대하며 제임슨과 모레티를 따라 그를 다른 측면에서 지양한다. 황호덕은 「루카치 은하와 반도의 천공天空, ‘문학과 사회’ 상동성론의 성좌들」에서 루카치의 이론이 서구와 일본, 한국 지성계에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루카치가 우리에게 남긴 지적 유산을 탐구한다. 강동호는 『소설의 이론』을 이론서가 아닌 일종의 ‘작품’으로 접근하는 프랑코 모레티의 짧은 글(「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대하여」)을 번역하고 해제를 달았다. 루카치의 기념비적인 저작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 다섯 분 필자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름 그대로 쟁점이 될 만한 주제를 다루는 <쟁점>란에는 곽영빈의 「주석과 비평, 혹은 두 개의 폐허 사이에서」가 실린다. 곽영빈은 정지돈의 소설(과 그가 표방하는 후장사실주의analrealism)을 “작품과 비평의 구분, 혹은 경계의 소거”라는 측면에서 접근, 이를 “‘기대지평Erwartungshorizont’의 축소, 혹은 증발에 대처하는(혹은 버티는)” 나름의 방법으로 파악하며 그(들)의 작품을 한국 문학이 처한 일종의 불가능성 속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후장사실주의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하나의 참조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동향>란을 위해서는 장은정, 이소연이 각각 원고를 보내주었다. 장은정의 「끝과 실패」는 2010년대 시의 성취를 설명하는 ‘타자 윤리’와 ‘주체의 최소화’라는 진단이 지닌 한계를 백은선의 시를 통해 돌파하려는 시도다. 장은정은 시의 ‘할 수 없음’을 시의 ‘할 수 있음’과 대립시키는 최근의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를 가두고 있는 윤리를 재고한다. 이소연의 「더블클릭을 향한 열정」은 한국 문학(그리고 사회)에 드리워진 ‘애도 불능 증후군’ ‘트라우마적 리얼리즘’을 넘어 애도의 시간을 새롭게 발명하는 소설들을 다룬다. 이소연은 최근 발표된 이장욱, 김애란, 윤성희, 손보미, 정지돈의 단편들에서 애도의 열정을 읽으며 “기존 체제에 틈을 벌리고 그 안에 독자적인 지위를 지닌 시공간을 발명하는” 소설의 힘을 이야기한다. 두 편 모두 세간의 오해와 달리 한국 문학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글이다.

김주연 평론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사람 없는 놀이터에 사람들을!」은 최근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알파고’를 참조해 인공지능의 시대에 문학이 여전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글이다. 도래할 문학에 대한 사유는 홍정선과 나눈 대담 「디지털 문명과 영성에 대하여, 그 예감의 비평」으로 이어지는데, 그뿐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인의 역사와 한국 문학의 역사가 빼곡히 담겨 있어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다. 오생근은 「사드, 보들레르, 푸코」를 통해 푸코에게서 사드와 보들레르가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분석하는 한편, 푸코 문학비평의 특징과 그의 문학적 인식의 전개를 탐구한다. 푸코의 철학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참조항들로 풍성할 뿐만 아니라, 문학을 비롯하여 예술 전반에 대한 흥미로운 사유들이 담겨 있다. 이번 <기고>란에 각별한 눈길을 청하는 이유다.

뭐라 해도 이 계절의 값진 결실을 한 데 모은 <창작>란을 읽는 즐거움이 단연 앞선다. 김언희, 김기택, 박정대, 신해욱, 신용목, 송승환, 김소형, 황인찬, 임솔아의 시와 김중혁과 박솔뫼의 소설을 읽는 기쁨은 크다. 멋진 작품으로 지면을 빛내준 아홉 분 시인과 두 분 소설가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얼굴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쁜 소식이다. 시 부문의 강혜빈(「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4편), 소설 부문의 허희정(「페이퍼 컷」), 평론 부문의 김영임(「시인과 재규어」)이 그 주인공들이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서 시와 소설, 평론 세 부문의 당선자가 모두 나온 것은 무려 13년 만의 일이라 당선자를 소개하는 편집동인들의 마음도 더욱 각별하다. 세 분 당선자에게는 다시 한 번 축하를, 더불어 심사를 함께한 최하연과 이제니(시 부문), 백민석과 한유주(소설 부문) 네 분의 시인과 작가들께는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쁜 소식은 예고했던 혁신호가 가을호로 미뤄졌다는 소식이다. 궁금증을 안고 기다렸던 독자 여러분과 어떻게 만들지 팔짱을 끼고 기다렸을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지난 반년 동안 동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잡지에서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그러다 최근에야 ‘잡지’도 ‘진정한’도 ‘혁신’도 모르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 결론이 바로 가을호가 될 것이다._문학과사회

 

1) 로베르토 볼라뇨, 『2666』 4,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2013, p. 656.
2) 에두아르도 라고, 「악의 갈증」,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신미경 옮김, 열린책들, 2014, p. 137.
3) 「강남역 여성 살인에 대한 여성혐오적 시선을 혐오한다」, 『경향신문2』0 16. 5. 20.
4) 「극단 치닫는 女 혐오… “무섭지만 굴하지 않겠다”」, 『한국일보2』0 16. 5. 20.
5) 「“언제 어디서나 목숨 걱정해야”…여성들 섬뜩한 일상」, 『한국일보2』 016. 5. 21.
6) 시민들이 남긴 1,003개 포스트잇의 내용은 경향신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사건이 발생
하기 전에 발표된 박솔뫼의 단편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Axt』 4호, 2016년 1/2월) 역
시 그러한 목소리의 하나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여름호를 엮으며

기획
루카치 재장전: 『소설의 이론』 백 주년에 부쳐
프랑코 모레티_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대하여
서영채_루카치 『소설의 이론』 세 번 읽기
김형중_마르크스주의와 형식
황호덕_루카치 은하와 반도의 천공天空, ‘문학과 사회’ 상동성론의 성좌들

쟁점
곽영빈_주석과 비평, 혹은 두 개의 폐허 사이에서-후장사실주의와 비평의 내파

김주연 등단 50주년
김주연_사람 없는 놀이터에 사람들을!
[대담] 김주연 & 홍정선_디지털 문명과 영성에 대하여, 그 예감의 비평

기고
오생근_사드, 보들레르, 푸코

동향
장은정_끝과 실패
이소연_더블클릭을 향한 열정-문학은 어떻게 애도의 시간을 발명하는가


김언희_격覡에게|Happy Sad|홍도
김기택_야생|콧구멍의 고독|환갑 되기
박정대_아무르|실험음악|의기양양(계속 걷기 위한 삼중주)
신해욱_실비아|채색삽화|엿
신용목_우리|고맙습니다|꿈
송승환_B101|B102|B103
김소형_그 사랑|세번째 정원|라가 아줌마
황인찬_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이것이 나의 최선, 그것이 나의 최악|피카레스크
임솔아_별로|입을 닦으면|기숙사

소설
김중혁_스마일
박솔뫼_우리의 사람들

제1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발표

시 강혜빈_「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외 4편
소설 허희정_「페이퍼 컷」
평론 김영임_「시인과 재규어」

색인 『문학과사회』 104~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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