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천천히

박솔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5월 11일 | ISBN 9788932028644

사양 46판 128x188mm · 255쪽 | 가격 12,000원

수상/추천: 문지문학상, 김승옥 문학상

책소개

이 바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의 오래된 숙제라면

나는 이 바다의 이름을 무어라 붙여야 할까

 

나의 말이 너에게 닿기를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에게 손을 뻗으며

많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하는 작가 박솔뫼가 네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를 펴냈다. 다섯 권의 책을 내는 동안 박솔뫼는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에 네 번 선정되었으며 문지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소설에서도 박솔뫼 특유의 ‘쉼 없이 흘러가다가 익숙해질 무렵 덜컥 변하는 리듬 같은 문체’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공간”(금정연)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머리부터 천천히』 속에서 발밑을 디딘 공간이 어디인지 모르고 “흘러가버리는 사람들”, 세계를 헤매는 점 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지도 위에 그리는 선이 영영 겹쳐지지 않는다 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이야기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거한다. 사실 박솔뫼의 소설과 ‘세대’나 ‘시대’ 같은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시제가 증발한 시공간과, 어디에서든 하루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표지판(묘비명)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저마다의 역사인 ‘기억’으로 시간과 공간을 증언하는 사람과 사물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주 당연하고 평평하게 바로 그렇게” 전하는 문장들의 “어디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의 선명함”이 박솔뫼의 이야기를 ‘오늘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현대문학이란, 재현이라는 배우를 위해 문학적 평면의 무대를 제공하던 언어가 스스로 배우가 되는 순간에 성립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대신 문학은 그만의 물리학을, 즉 텍스트의 물리학을 지니게 되었다. 박솔뫼는 문학적 텍스트의 물리학에 걸맞은 사교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것을 텍스트 소셜리즘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사교주의’, 이는 이름들 간의 무한한 사교의 양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모색하는 문학적 실천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_유운성(영화평론가)

 

 

지도 위를 걷는 사람들

 

『머리부터 천천히』에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헤매는 ‘어떤 세계’가 있다. 세계와 어떤 세계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우경은, 혼수상태에 빠져 ‘어떤 부산’을 맴도는 옛 애인 병준을 계기로 ‘부산’을 걷게 된다.

소설은 총 여덟 부분으로 나뉜다. 01의 화자는 ‘나’이고, 02부터 04는 각각 번갈아 우경과 병준의 이야기다. 05, 06은 병준, 07은 우경, 08은 다시 병준이 화자인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나’의 이야기가 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하는 아버지”는 정신이 들 때마다 “속리산에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내게 그걸 꼭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소설이지만 자신도 모를 수 있”는,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다. ‘나’는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병준’은 큰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중환자실 뒤쪽 벽에 붙어 있는 큰 세계지도 위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씌어져 있다. 온 세계에 점점이 찍힌 이름은 환자들이 어떤 도시에 머물거나 헤매고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병준의 이름은 몇 개의 점이 되어 ‘부산’과 ‘오키나와’ 두 곳을 맴돈다. “시제가 지워진 시간”(금정연)이자 시간이 뒤섞인 공간일 ‘그곳’은 거의 늘 여름이며, 카프카가 “혼자 흑백 화면 속에 종이처럼 앉아 흑맥주를 마시고 있는” ‘더블린’이라는 술집이 있고, 중앙동 노천카페에서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함께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공간이다. 대체로 “8,90년대의 모든 번화가”를 형상화한 듯하며, “여러 번 접어 만든 동서남북 같은 형태”로, “이 세계인 듯하지만 곧 다른 면을 보여주”곤 한다. “아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아서 이곳이 어디일까 이곳의 이름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야만 했”던, “발을 디디면 금세 다른쪽 면으로 바뀌어버리는” 그곳은 원래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길을 걷다 보면 도달할 수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뒤로 ‘여름의 부산’과 멀어져 오래 걷던 병준은 한 주유소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도미’와 ‘전구’ ‘물고기’와 단발머리 ‘여자애’를 순차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도착한 ‘어떤 국제’는 남자와 여자, 전구라는 사물과 물고기라는 이종의 생물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의 국제시장과 오키나와의 국제거리와 그리고 모든 국제들, […] 전혀 다른 곳 같지 않을 것 같은 모든 국제들의 길과 역 상점과 풍경, 바람과 그런 것들. 실제로는 다들 제각기 다른 표정이겠지만” 병준은 ”어떤 국제라는 곳을 마치 종로를 혜화동을 산책하듯이” 활보한다.

한편, 5년 전 병준과 헤어진 옛 애인 ‘우경’이 병준의 보호자로 중환자실을 드나들고 있다. 병준이 가족과 오래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자신과도 몇 년 전 완전히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어째서 자신이 병준의 보호자가 되었는지는 우경도 모른다. “아무런 성격도 능력도 추악함도 치졸함도 보이지 않”고, “기계를 통해 숨만 겨우 쉬고 있는” 병준을 “이전처럼 커다란 감정은 없지만 아주 아무런 마음도 없다고 할 수 없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심정으로 매일 면회하러 오던 우경은, 주말에 시간을 내 병준의 이름이 적힌 지도 위 장소들 중 부산의 작은 동네부터 찾아가보기로 한다. “병준은 우경을 걸어가게 하고 있었다. 좀더 먼 곳으로. 그 먼 곳은 전적으로 거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이어지는 길들을 걸었다. 보이는 모든 골목에 들어갔다. 우경은 스스로가 정말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걷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서로를 증언하는 존재들의 이야기

 

지금의 자신도 지금의 자신이 손잡고 있는 많은 것들도 그랬다. 매일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고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거기서 또 연결된 각종 연락 수단들은 의외로 마음먹으면 간단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텅 빈 계정들이 누추하게 남아 있겠지. 아니면 그것조차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p. 80)

 

겨울이 딱 하루 있는 그 세계, ‘여름의 부산’에서 누군가가 말했듯 춥다는 것의 의미가 입을 열지 않고 “비밀과 함께 죽어가는 것”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행동은 죽어가는 존재가 춥지 않도록 돕는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자의 그림은 훌륭하지만 이덕자는 조용하고 깨끗하지만 누구도 이덕자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덕자는 죽고 이덕자는 너무 조용했으니까.” 그렇다.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있었던 누군가나 무언가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질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아주 쓸쓸한 기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병준과 우경은 헤매고 머물다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듣는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 잊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란 이 소설에서 ‘벌판에 “이름”을 붙이고 “표지판”을 세워놓는 일’이 된다. “우리는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게 될까.”

『머리부터 천천히』에서는 또한,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들 역시 그곳을 거쳐가는 사람들과 함께 사건을 경험하고 시간과 기억을 나눠 가지며 살아간다. “침대가 된 이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내 위에서 죽어버렸다”고 괴로워하는 중환자실의 침대와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의 악몽을 함께 꾸는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가 거기 눕고 앉았던 사람들에 공감하고, 대도시 구도심 오래된 국숫집 화장실에 달려 있던 전구가 어떤 끔찍한 사건을 기록하듯이, 공간과 사물이 시간과 사건을 기억하고 증언한다.

 

우리가 무엇이건 간에 양동이든 변기를 닦는 솔이건 나와 창처럼 유리이든 산산이 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게 겨울의 밤보다 길고 긴 아무도 없는 시간들이 처참하게 지나고 있었다. 나는 창문이 천장과 흰 벽 정사각형의 흰 타일이 박혀 있는 벽이 그 벽과 벽 안의 시멘트가 변기가 변기 옆 솔과 붉은색 양동이가 후들후들 떨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한 몸 같았다. 내가 달려 있는 화장실 천장은 화장실의 일부이고 화장실은 식당의 일부이며 식당의 옆집은 화장품 회사 사무실과 가발 회사 사무실이 들어와 있는 건물이고 식당 위에는 변호사 사무실이 그 위에는 식당만큼이나 오래된 치과가 있었는데 식당의 화장실의 전구인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화장품 회사 사무실도 가발 회사 사무실도 변호사 사무실이나 오래된 치과도 모든 벽과 천장과 바닥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 청소를 하고 음식을 나르던 남자애는 그 후로 볼 수 없었고 나는 그애가 아무도 오지 않고 벽과 천장과 전구가 후들후들 떨던 그때 죽었다는 것을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천장도 벽도 바닥과 수도꼭지도 식당의 그릇과 의자도 그 위의 변호사 사무실과 변호사 사무실의 고동색 소파도 재떨이도 알고 있었다 모두. 모두가 알고 있었다. (pp. 150~51)

 

단정(端正)하지 않아, 쉽게 단정(斷定) 짓지 않을 수 있는 문장들

 

자신의 기분을 위험한 곳에 내던지고 내던진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진 채 내던지고 내던져진 결과를 본다. 눈을 떼지 않고 그대로 본다. 정작 그 길은 별거 없겠지, 하지만 하고 나서 별거 없다고 말하면 뭐가 별게 아니야 확실히 선택을 하는 것에는 무언가 약간의 것이라도 있기는 하지 하고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우스움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p. 88)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 […] 이 말이 정말로 나에게 하는 말인가, 이것은 어떤 말인가, 이런 하나 마나 한 말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예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머리와 마음속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 모든 말들에 훨씬 조심스레 더듬거리며 다가가게 되었다. […] 동료와 친구라는 말, 공간과 기억, 시간과 역사, 죽음을 지고 가는 사람들과 많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보게 되었다. […] 길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이렇게 확실히 눈에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길 위에 서 있고 여전히 이름들을 불러보고 있으며 계속해서 가고 있다. (박솔뫼, 「9월 도쿄에서」, 『말과활』 2016년 1-2월호)

 

박솔뫼는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게 싫고 그럴 때면 ‘약간 넘어져야지’ 생각”(「연합뉴스」)하게 된다는 “곡예에 반대하는 곡예사”(금정연)다. 이번 소설에서도 “문어체와 구어체가 패턴 없이 뒤섞인 서술 스타일”(손정수)과, “비문에 근접한 문장, 불완전한 문장도 있고 ‘나’의 생각, 추측, 소망, 그리고 가상적 대화 상대자의 목소리가 하나의 문맥에 무차별적으로 섞여 있기도 하며 화자의 ‘전의식’에서 솟아나는 상념들이 두서없이 전사되어 있기도 한 문장”(김홍중)들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돈된 문장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우리 머릿속에 있다.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단언할 때 생각의 과정을 덜어내 정리된 문장을 내어놓지만, 박솔뫼는 말에 좀더 “조심스레 더듬거리며” 접근한다. “선택을 하게 하는 것 선택을 하는 자신을 보는 것”을 드러내며 머릿속 생각들을 다듬고 덜어내지 않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마치 여우가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고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앞선 생각을 덥석 물고 이상하다고 뱉고 다시 물고를 반복하는 것처럼(「우리의 사람들」) 생각의 과정들, 머뭇거림을 문장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면서.

소설을 읽는 것을 소설가가 꾸려놓은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박솔뫼의 소설은 자유여행에 가까울 것이다. 빡빡하게 짜인 숨 가쁜 일정에 맞추어 놓쳐선 안 될 포인트를 반드시 짚고 움직이기보다는, 여유 있게 일정을 잡고 오래 머물러야 하는, “적당한 시간에 잠이 들어 어느 시간엔가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골목을 산책하다 길도 잃어봐야 하는 여행 말이다. 그리고 이곳의 경치를 그저 지켜보기보다, 풍덩 빠져 흐름을 따라가볼 필요도 있겠다. 박솔뫼의 바다에 몸을 맡기며, 중간중간 마음이 맞는 문장에 닻을 내려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 속으로

 

“커피 맛있어요.”

역시나 아무 말이 없고 괜한 말들 그저 그런 말들 하나 마나 한 말들 입에 발린 말들 시시한 말들을 안 할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글쎄. 커피가 맛이 있었다는 말이 그 정도로 괜한 말은 아니지만 우경은 정말로 맛이 있었으나 그저 괜한 말로 들리게 말을 했으니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겠지 우경에게는 긴장감이라는 것이 섬세함이라는 것이 좀 부족했고 그런 것에 훈련이 덜 된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병준과 그런 식으로 함께 살았던 것일까. 어쨌거나 우경은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 마나 한 말들과 낭비되는 말들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 되지 않는 말 이상한 주제와 결말 없는 말과 어젯밤 꿈 이야기 같은 것을 마구 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말이다. 입을 다물고 싶지만 입을 다물 수 없다면 아무 말이나 해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 우경은 생각했다. 어딘가에 윤기를 내기 위해 하는 말들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나 자신, 나의 마음과 기분 그런 것인가. 아니 아니 우경은 스스로의 기분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기분을 위험한 곳에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었고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이상한 말 그 자체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말을 마구 함으로써 이상한 말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저 그런 말 하나 마나 한 말 당신에게 사회적인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하는 말 모든 제스처와 같은 말로부터 말이다.

(pp. 87~88)

 

우경은 마치 백지에 선을 긋고 또 긋고 부산의 어떤 골목들을 헤매고 또 헤매면 어딘가에서 병준의 선과 만날 것이라고 어떤 부산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병준, 우리는 이 부산에서 나와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가야 해. 너는 지금 부산을 헤매고 있는 거야 내가 너를 찾으려 세계의 많은 부산을 헤맸는데 너는 어느 부산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점점 어떤 부산이 남아 있나 얼마의 힘이 내게 남아 있나 걱정이 되었는데 바로 이 부산에서 너는 서 있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나는. 그것은 병준을 구하는 것인가 구하는 것이라면 하는 것인가. 우경은 다시 몇 번을 곱씹었던 질문을 던진다 병준을 구하고 싶은가, 병준을 살리고 싶은지, 병준이 살았으면 하는지 그것은 또한 아주 간절한 바람인지 하는 것들. 그제야 우경은 병준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바라는 자신이 느껴졌는데 그렇다면 병준이 사는 곳이 어디일지 어딘가의 부산에서 병준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좋은지, 병준이 중환자실을 나와 서서히 건강이 나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인지 며칠 병원에 가지 않아 자신이 어떤 판단 기준이나 균형 감각 같은 것이 사라진 것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우경은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둘 중 무엇에 가까운가. 아니 어느 하나가 없는 또 다른 하나는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pp. 173~74)

 

 

작가의 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중에 특히 좋아하는 것은 『워터멜론 슈가에서』이다.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한국어판 마지막은 이렇다.

 

이 소설은 캘리포니아, 볼리나스의 한 집에서 1964년 5월 13일에 시작되어, 1964년 7월 19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비버 스트리트 123번지의 집 앞방에서 완성되었다.

이 소설은 돈 앨런, 조앤 카이거, 그리고 마이클 맥클루어를 위한 것이다.

 

왜인지 이 부분을 좋아하는데 아마 큰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많은 장면을 보여주고 열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 생각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그 소설은 나를 위한 것 같다.

 

2016년 5월

박솔뫼

목차

01
02
03
04
05
06
07
08

해설 텍스트 소셜리즘, 모든 이름들을 위한 바다 – 유운성

작가의 말

작가 소개

박솔뫼

1985년 전라남도 광주 출생.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을』과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가 있다.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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