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한석정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3월 25일 | ISBN 9788932028521

사양 변형판 152x223 · 518쪽 | 가격 28,000원

책소개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

뚫고 메우고 파헤치는 속도전의 건설 시대, 60년대 한국.

맨주먹으로 황무지를 일군 개척과 실험의 공간, 만주.

만주는 한국 근대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

30년대 만주와 60년대 한국을 넘나들며

한국 재건 체제의 형성과 그 역사적 뿌리를 고찰하다

 

196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부상하게 한 급속한 산업화, 건설과 정보 강국을 견인한 속도 추구, 나아가 개발 체제에 대한 향수가 일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오늘날의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빨리빨리’ 문화도 건설과 동원, 경쟁 등 60년대의 압축성장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제시하는 책 『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만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석정 교수(동아대학교 사회학과)가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한국의 ‘재건 체제’ 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 작업의 기강과 동원 등 권위주의 체제의 요소와 불도저식 건설을 한국에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만주국은 남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둔했던 관동군이 1931년 상부의 명령 없이 군벌 장쉐량 체제에 전쟁을 도발하고 이듬해 세운 나라다. 만주국 체제는 건설 분야뿐 아니라 생산, 안보, 위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적 정책 수행의 총체였다. 핵심은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결정해 밀어붙이는 속도다.

조선 농민들의 엑소더스, 경계의 확장, 광활한 대륙을 달리는 만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오족협화, 고난과 개척, 폭력과 근대, 이류들의 약진, 국제적 계보의 영화·음악 등이 만주를 설명하는 장면들이다. 1930~40년대 만주는 이러한 것들의 일종의 콜라주로, 그리고 1960년대 한국은 그 시대와의 중첩적 국면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식민주의와 근대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만주’를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새롭고 흥미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첨예한 주제인 식민주의와 대면해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오늘과도 관련성이 깊은 만주에 대한 기억은 장기간 억제되어왔다. 오로지 ‘항일 내셔널리즘’만이 살아남은 채, 친일과 저항의 넓은 스펙트럼 한가운데 있던 다양한 삶의 양태들과 기억들은 편리하게 망각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만주국 관료, 문인, 만철 기술자 등 만주에서 활동했고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해방 후 한국에서 활동한 여러 만주 출신들이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만주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연구 대상 혹은 관심 대상에서 잊히고 말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계에서도 박정희 시대를 거의 전적인 비판 대상으로 삼으면서 저자들의 이념적 정향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한석정 교수는 지적한다. 그러한 이분법적 서사는 한 시대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몰고 가 실재했던 양면성과 복잡성을 지워버릴 수 있다. 저자는 당대의 개발 체제와 식민주의의 관계를 논구하고 식민 시대의 경험, 제국 내부의 분절성, 한국의 냉전과 파시즘의 특성과 공과 등을 객관적으로 따져본다. 저자는 만주와 한국 사회, 또 일제하 식민 시대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이러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소환해내기 위한 말 걸기를 시도한다.

일본 식민주의는 약 1천만 명의 이동을 초래한 대소용돌이의 역사다. “모든 문화의 기원은 제국주의”라는 지적처럼 일본 식민주의는 근대적 아이디어와 제도를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이것은 위생행정을 포함해 건축과 영화, 노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게 일본은 모방과 경쟁의 대상이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틀과 환경을 규정한 것은 미국이지만, 그 내부 동력은 만주국식 에토스였다. 두 요소는 안팎으로 서로 중첩되며 여러 면에서 접합됐다.

 

 

60년대 재건 체제는 만주국 체제의 재림인가?

역사는 모방과 반복, 차용, 번안, 상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국토개발, 반공대회, 대량 전단 살포, 표어 제작, 주민 점호 등 1960~70년대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행사들은 만주국 시대에 행해진 것들이었다. 저자는 조선에서 해방 전후사로, 30년대 만주에서 60년대 남한으로 연대기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다니며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만주는 한국 재건 체제의 형성에 얼마나 깊숙하게 영향을 주었을까? 박정희를 비롯한 이선근, 정일권, 유석창, 신기석, 김성태, 이인기 등 만주 출신들은 5․16 이후 군부에 합류해 교육, 이념 등 다방면에서 한국 재건 체제의 기틀을 닦았다. 1968년의 ‘국민교육헌장’은 만주 출신들이 기초 작업에 참가해 반공주의, 국가주의를 담은 것이고,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라는 재건국민운동의 구호 역시 만주국 모델을 차용한 것이다. 특히 재건국민운동은 만주국 협화회를 복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부에서 추진한 “올해는 일하는 해” “전진의 해” “건설의 해” 등의 국가 목표나 선전 방식, 가장 중요하게는 계획경제, 특히 경제개발 5개년계획 역시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다.

한국 군정의 개발 추진과 속도, 직선적 건설의 이면에는 만주국에서 온 ‘하이 모던’ 정신이 있었다. 뭐든 신속하게 뚫고 파헤치고 메우고 덮어버리며 남성성을 과시한 것은 만주국 체제의 에토스였다.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건설 등은 마치 만주국 대도시와 공단 건설이 그랬듯 신속하게 추진됐다. 한국의 도로, 도시, 댐, 공단을 망라하는 ‘종합’ 국토개발과 ‘다목적’ 수자원 관리 계획에 영향을 미친 것 역시 만주국의 ‘총합 개발’이다. 이러한 국토 확장과 건설, 식량 증산의 경험은 후일 두바이 등지로 진출한 한국 건설 경쟁력의 뿌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스피드에 대한 강박은 자연 경관의 복개, 전통적 건물과 시가지의 파괴, 졸속 부실공사, 민주주의의 희생 등을 대가로 치르게 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 시대 최초이자 최대의 도시 봉기인 광주 대단지 사건이 일어났고 와우아파트 참사 등을 예고하기도 했다.

 

 

방대한 1차 자료 활용, 기존과 차별화된 중심 서사 축,

만주한국의 중요한 장면들을 파노라마로 제시하다

 

이 연구를 위해 저자는 1930~40년대 『만주국정부공보』 등 정부 간행물, 『셩징셔바오』 『매일신보』 『후산닛포』 등 만주․조선․일본의 신문, 1960년대 한국의 『정부 관보』 등 간행물과 신문, 5·16 직후 행정을 맡았던 관료들과 만주에서 귀환한 자들의 인터뷰, 한국·중국·일본 및 영어권의 2차 자료를 방대하게 활용했다. 단순 연대기적 서술에서 벗어나, 국가 형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러 사건, 패턴과 우연, 시차, 다양한 문화 장르를 넘나든다. 그리고 경직된 인과성을 내려놓은 채 1930~40년대 만주와 1960년대 한국을 파노라마로 전개한다. 저자는 탈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분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만주만큼 절묘한 연구 대상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1장은 1930년대 부산에서 시작해, 만주행 엑소더스의 출발지인 영남 지역을 거쳐 만주 펑톈 등지로 갔다가 해방 후 귀환하는 기행 형식을 통해 재건 체제 형성의 역사를 추적한다.

2장에서는 만주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부산을 중심으로 식민주의가 초래한 ‘확산’에 접근한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와 귀환, 조선과 만주의 관계, 조선인의 지위 등을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에 이르는 개척의 흐름을 추적한다. 3장은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에서 만주국이 차지하는 위치, 만주국을 소환한 배경인 냉전과 한일 수교 등을 짚어보고 한국 발전국가의 역사적 맥락을 논의한다. 4장은 부정적 시각 일변도의 파시즘을 분해하고 파시즘과 근대의 관계를 살핀 후 생산과 안보에 주력한 한국판 국방국가의 형성을 살펴본다.

5장은 온 국토를 뚫고 메우는 직선적 건설, 속도에 매몰된 건설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6장은 신체를 통한 재건 체제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신체가 어떻게 제국, 민족, 냉전 경쟁에 헌신하게 되고 재건 체제를 형성했는지 논한다. 7장은 노래, 춤, 영화 등 예술 세계에서의 남북 대결, 만주국에서 비롯된 예술 세계를 추적한다. 8장은 결론으로서 재건 체제 형성을 되짚어보고, 만주 모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생각해본다.

 

 

책 속으로

 

역사적으로 만주의 특이성은 융합이다. 이곳은 청 제국을 건설한 만주족 이외에 다우르족, 오로첸족, 골디족, 허저족 등 여러 민족이 섞여 살던 곳이다. 이런 전통은 만주국 시대에도 이어졌다. 만주국 통치자들이 고안한 국가 이념인 ‘오족협화’는 이런 역사적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만주의 문화 세계에는 일본, 러시아, 조선, 서양의 요소들이 뒤섞여 있었다. 조선과 일본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여행하거나 정착한 경험을 통해 만주를 형상화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광수 등 조선 선각자들의 행선지가 도쿄였다면, 1930년대 지식인들의 행선지는 만주였다. (1장 「만주 모던으로의 길」, 63쪽)

 

조선총독부는 1937년 봄에 강원도 일대의 이재민들도 본격적으로 만주로 이주시켰다. 이들을 수송하느라 객차가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1차로 함경남도와 강원 등지의 2,700여 호가 만주 젠다호(간도) 성의 안투, 옌지(연길), 왕칭 현 등의 집단부락으로 “일만 군경비대의 엄중 호위 아래” 수송됐다. 경북의 1차 농업 이민으로 책정된 호수는 430호였는데 도내 희망자가 격증하여 100호를 더 할당할 것이라 했다. 이때 이주 허가를 받지 않은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들고 대구역으로 몰려가 혼잡을 빚기도 했다. (2장 「만주와 조선」, 101쪽)

 

일본 제국주의는 주변부를 대단한 힘으로 흡인해 내부의 지리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일종의 국제화 시대를 열었다. 압축적 수탈이라는 후발 제국의 특성을 반영하듯, 제국 팽창의 촉수로서 철도, 통신, 비행기는 과거의 폐쇄적인 지역들을 굉장한 속도로 열어젖혔다. 이 흡인력은 조선 내 도시들의 전통적 위계도 흔들었다. 예컨대 부산은 만주국 건국과 더불어 일본과 대륙을 잇는 ‘동아의 관문’으로 뛰어올라 조선조 500년의 수도이자 총독부 소재지인 경성을 제치고 바로 만주와 연결됐다. [……] 이것은 조선조 500년과 해방 후 60년간 한양, 서울이 지닌 수도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약화시켰다. (2장 「만주와 조선」, 149쪽)

 

한국에서 일정한 숫자의 깡패와 양아치는 ‘사회악 정리’라는 명분으로 거리에서 솎아져 산으로 숨거나 강제 수용소로 갈 운명이었다. 이들이 실제로 깡패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권력이 이들을 깡패라고 이름 붙여, 소탕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신문은 지면을 온통 깡패 소탕으로 도배질했다. 이렇게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이나, 마을에서 가장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과 검경의 합동단속에 걸려 정식 재판 절차도 없이 사라졌다. 대다수가 강제 노동과 고문에 시달렸고 일부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 깡패들은 한국 군부에, 말하자면 작은 폭력은 더 큰 폭력에 맥을 추지 못했다. 김두한 등 전설적인 주먹도 예외는 아니었다. (3장 「건국과 재건」, 197~98쪽)

 

군정 지도자들의 재건은 만주국식 강제 노동, 갱생, 농촌 개척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목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운동을 통해 반공과 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 국가의 달성에 있었다. 재건의 구체적인 목표는 세계 최극빈 상태였던 경제 문제의 시급한 해결, 자력갱생형 인간 생산, 그리고 이를 위한 국가 조직의 강력한 재편이었다. 이것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라는 5·16 공약과 ‘국가재건, 인간 개조’를 외친 5·16 장학회의 취지문에 반영됐다. 간명히 말해 재건은 냉전 체제하 경쟁을 위한 국가 형성, 즉 생산과 국방을 도모한 한국판 국방국가의 형성이었다. (「3장 건국과 재건」, 224쪽)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일면 국방, 일면 건설” “싸우며 건설하자”를 새로운 구호로 내걸었다. “조국 근대화”와 “일하는 해” 등이 경제개발을 위한 개발도상국적 구호라면, “싸우며 건설하자”는 냉전의 특수성이 반영된 구호였다. 당시 남한은 군사적·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 공세(1968년 1월 특수부대의 청와대 침투 등), 다수의 미군 철수(주둔하던 2개 사단 중 1개 사단 2만 2천 명 철수),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와 미국의 유화적 해결 방식, KAL기 납북 등 총체적인 안보 위기에 휩싸였다. 이 불안 혹은 “건설과 싸움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담겨 있었다. (4장 「“싸우면서 건설하자”: 한국판 국방국가」, 279쪽)

 

만주국 스타일은 “중단 없는 건설”을 외친 1960년대 한국 건설의 기조가 됐다. 속도와 효율 앞에 전찻길 등 옛 생활양식들이 사라져갔다. 군 출신인 김현옥 서울시장은 산동네에 있던 판잣집을 모두 헐어 2천 동, 10만 호의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고, 도시계획에 걸리적거리던 덕수궁 담장도 안으로 밀어버렸다. 김현옥은 부산시장 시절 단호한 부두 부지 정리와 매립 추진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장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여 추진한 불도저식 건설은 급속 성과주의로 이어졌다. 이런 태도는 필연적으로 와우아파트 사고 등 부실 공사나 환경 문제들을 초래했다. (5장 「건설 시대」, 302쪽)

 

일본 본토와 달리 위생 사업은 전적으로 경찰이 맡았다. 거의 모든 위생 사무를 경무총감부 위생과가 맡는, 이른바 ‘식민지 위생 경찰’ 제도가 갖추어졌다. 이렇게 제도를 구비하게 된 계기는 1919~20년 동아시아를 휩쓴 콜레라였다. 조선에서도 2만 5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전염병으로 위생 경찰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호구 조사, 검역, 의료 기관 보급, 상하수도 개선, 전염병원과 격리 병사 설치, 오물 소제, 교통 차단, 환자 격리, 시체 화장, 암매장 수색 등의 일을 수행했다. 정근식이 일렀듯, 병을 검사한다는 명분으로 한 호구 조사나 교통 차단은 주민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6장 「신체의 각성」, 348쪽)

 

만주 웨스턴은 만주의 시간대와 민족의 단층들을 무시하고 조선인 항일 투사와 일본군(관동군) 양자의 대결 구도를 잡았다. 북한의 장백산 항일 담론을 의식하여 사회주의자들의 항일운동을 삭제하고, 무대도 추상적인 만주로 만들었다. 즉 무장 투쟁이 거의 소멸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항일 투사들을 등장시켜 활약을 벌이게 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일본군을 패배시키는 남성 영웅으로 그려진다. 만주 웨스턴은 별별 재만 조선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는 초월의 대변이었다. 그 결과, 만주는 할리우드 첩보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결코 패배하지 않는 항일 영웅과 협객들이 나타나는 환상의 땅이 됐다. (7장 「재건의 노래」, 433~34쪽)

목차

1장 만주 모던으로의 길
근면 체제에 대하여 | 동아시아의 확산 | 근대란 무엇인가 | 전통과 모방 | 하이 모던 | 식민주의와 모던 | 식민주의와 토착화 | 만주 모던

2장 만주와 조선
주변부의 등장 | “조반을 부산에서, 석반을 안둥에서” | 만주와 전시하 지역사회 | 식민 시대 부산의 문화적 맥락 | 만주행 엑소더스 | 만주국의 경계 | 만주의 인구 구성과 조선인의 사회적 지위 | 만주국 후반기의 조선인 화이트칼라 | 만주 노래 혹은 토착화의 실험 | 만주 문학의 스펙트럼 | 개척과 생존 | 귀환과 기억

3장 건국과 재건
만주국 만들기 |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 | 만주와 남성성 | 국가와 폭력 | 냉전과 만주국의 영향 | 한일회담과 만주 인맥 | 건국과 재건 | 재건의 스펙트럼

4장 “싸우면서 건설하자”: 한국판 국방국가
파시즘과 근대화 | 카키복 제복을 입은 파시스트 청년들 | 재건국민운동 | 청년단 운동의 한계와 명암 | 개발 욕구 | 계획경제 | 식량 증산의 꿈 | 재건을 위한 “피눈물” | 노동영웅 | 한국식 민족주의 | 한국판 국방국가

5장 건설 시대
‘국토개발’의 계보 | 울산 콤비나트 | 뚫기 | 메우기 | 파헤치기 | 스피드 | 한국형 하이 모던

6장 신체의 각성
동아시아 위생 정책의 계보 | 식민지 위생 |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 제국과 신체 | 민족의 신체 | 냉전과 스포츠 | 스포츠 강국의 길 | 복싱과 세계체제

7장 재건의 노래
무용과 재건 | 노래와 재건 | 남과 북의 대결 | 저질과 퇴폐 | 영화와 재건 | 만주 웨스턴의 남성상 | 만주 웨스턴의 융합성

8장 맺으며: 식민과 변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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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한석정 지음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브라이트 재단 지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어바인 대학교 강의교수, 교토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日文硏)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ARI)의 외국인 연구원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화려한 군주』 『주권과 순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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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9 =

  1. 문학과지성사
    2016.05.19 오전 10:40

    『만주 모던』초판의 오자 정정합니다. 152쪽 14번째줄 “대구대학교 사범대”를 “대구 사범”으로, 332쪽 각주 113번 “대구대학교 사범대”를 “대구 사범”으로 정정합니다. 2쇄부터는 수정 사항을 반영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