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13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2월 24일 | ISBN

사양 신국판 152x225mm | 가격 15,000원

책소개

봄호를 엮으며

『문학과지성』의 창간호 서문에서 1세대 동인들은 한국 사회의 시대적 병폐와 억압의 구조로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을 지목한 바 있다. 패배주의가 한국 사회의 후진성에서 기인한 허무주의적 자기의식을 가리킨다면, 샤머니즘은 이러한 패배주의적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성찰을 가로막는 당대의 모든 반지성적 이념 구조를 의미할 것이다. 『문학과지성』을 비롯하여 그 후신인 『문학과사회』의 동인들이 걸어온 40여 년은 이처럼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을 기원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중적 억압 구조와의 싸움으로 요약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 ‘문학’의 이름이 분명하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의 자율성’이라는 실천적 이념이 지닌 힘, 그리고 그에 근거한 반성적 성찰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문학과지성』 창간호가 나온 지 45년의 세월이 지났고, 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 태어난 지 4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 문학은 여전히 새로운 형태의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이 야기하는 이중적 억압에 직면해 있다. 작년 여름의 추문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듯, 새로운 형태의 이중성은 한국 문학의 내부까지 스며들어 문학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대항하는 마지막 저항적 근거지라는 자족적 환상마저도 폐기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문학을 향한 광범위한 불신은 문학에 대한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좁은 의미의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신념이 어느새 맹목적 신앙으로 물신화되어 한국 문학장에 도사리고 있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가로막는 새로운 형태의 샤머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마지막 믿음마저도 시장과 제도의 정당성을 위한 알리바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사회』의 동인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그 이전부터 꾸준하게 제기하며, 『문학과사회』가 100호 기념호를 준비하던 시점부터 문단에 만연한 상업주의와 비평의 위기 현상이 불러올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시도해오고 있다. 비록 파격적인 변화를 선보였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2014년 봄호를 기점으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을 탐색하는 일환으로, 출판사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기 쉬운 서평란을 논쟁과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꼭지들로 대체하는 한편, 인문-지성 분야를 강조하면서 잡지의 혁신을 위한 내부의 역량을 다지는 시간을 모색해왔던 것이다.

『문학과사회』의 편집을 담당하는 새로운 동인 세대를 출범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러한 모색의 시간을 좀더 능동적인 방식으로 가시화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문학과지성의 동인들은 40여 년 동안 다음 세대에게 잡지의 편집권을 인계하는 방식으로 자율적인 형태의 세대교체를 이루어왔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잡지 편집 주체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제 설정의 의의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문학과지성만의 독특한 정치적 실험과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잡지의 새 편집동인들(강동호·금정연·김신식·이경진·조연정·조효원)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비평의 강화 및 비평의 공공성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예지와 비평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불신이 확산되고, 심지어 비평 및 문예지 무용론까지 언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평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비평을 배제하고 포기하는 방식으로 문학과 문예지를 대중화시킴으로써 한국 문학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타개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지 않는다. 흔히 비판되고 있는 왜곡된 형태의 비평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비평은 기존의 관행적이고 타성에 젖은 형식과 내용의 글쓰기, 좁은 의미의 한국 문학만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에 대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 문학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문화와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평적 상상력을 실천함으로써 동세대와 더욱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문학과 비평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한 실천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비평과 지성의 강화는 다른 한편으로 창작과 비평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 문학을 향한 패배주의적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대 문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신뢰보다는, 비판적 대화를 통한 창작과 비평 사이 선순환 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문학과사회』는 문학적 실험에 대해 용기와 의지를 잃지 않는 작가들의 든든한 대화 상대가 되기 위해, 더욱 부지런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문학 현장을 부지런히 돌아보며 그들의 생산적 발판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새 편집동인들은 여름호를 기점으로 잡지를 새롭게 개편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좀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할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문예지의 관례화된 형식에서 탈피하고 한국 문학과 현실에 대한 창발적인 의제들을 생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러한 혁신의 방향성은 문학과지성 동인들이 오랫동안 근거해온 문학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진정한 문학주의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감히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전부에 대해 긴장을 놓지 않는 비판적 사유로서 갱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학’ 및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물신화된 믿음까지도 포함된다. 편집동인들은 문학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한국 문학이 갇혀 있는 국지적인 장르와 협소한 문학주의에 머물지도 않을 것이며, 문학주의의 외연을 창조적으로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실험을 통해 한국 문학의 변화에 동참하고자 한다. 문학과지성의 ‘문학주의’는 이러한 전방위적 갱신의 의지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현실주의적 균형감을 잃지 않되 그와 같은 균형 감각이 자칫 외면할 수 있는 문학적 이상주의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문학과지성 바깥의 의견에 더욱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문제의식을 개진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더욱 논쟁적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과지성이 문학적 소통과 비판적 성찰이 오가는 지적 연대의 장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해 12월 창사 40주년을 맞은 문학과지성사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한국 지성계의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여러 기획들은 계간지 『문학과지성』과 『문학과사회』의 비평적 담론을 비롯하여 문학과지성사가 출판해왔던 여러 책들을 통해 실천되어왔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고 수사적으로 치장하는 일에 안주할 수는 없다. 이에 『문학과사회』는 한국 지성계에 만연해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문학과지성사가 걸어온 40여 년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특집을 마련하고자 했다.

우선 <특집> ‘문지와 모더니즘’에서는 문학과지성사가 걸어온 역사적 경로를 모더니티 혹은 모더니즘의 문제와 관련하여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글들을 실었다. 황종연의 「팝 모더니즘 시대의 비평」은 ‘팝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문학과지성의 비평에 대한 메타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글이다. 흔히 문학적 엘리트주의로 비판받곤 하는 문지 비평 그룹의 다른 면모를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를 통해 점검하면서, 황종연은 문지가 실천하고 있는 모더니즘적 태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성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민주적 모더니즘’이라는 흥미로운 테제는 문학과지성이 향후 비평적으로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당대적 의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천정환의 「한국 자유주의/모더니즘 문예사의 재인식을 위하여」는 제목이 직접적으로 말해주듯이 ‘문지’/‘창비’의 대립 구도 속에서 이해되던 좁은 의미의 모더니즘사를 넘어, 좀더 큰 틀하에서 한국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는 글이다. 그의 말처럼 모더니즘이 단순히 ‘양식’의 하나로 이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자유주의’라는 좁은 이데올로기에 귀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의 모더니즘에 대한 역사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역사화 작업 속에서, 그의 말처럼 모더니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특집> ‘문지를 통과하는 작가의 시선’에서는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에세이를 부탁하되, 문지를 대표하는 책이나 담론이 오늘날의 창작자와 독자 들에게 문학에 어떤 유의미한 창조적 거점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고자 했다. 사실상 문지에 대한 총체적 독후감이자, 일종의 창작론이라는 어려운 형식의 글을 부탁한 모양이 되어서 필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탁의 의도를 헤아리기라도 한 듯 필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흥미로운 창작론들을 보내주었다. 쉽지 않은 주제의 원고를 감당해준 김혜순, 진은영 시인과 백민석, 정지돈 소설가에게 각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성>에서는 작년에 타계한 역사학자 겸 지성사가인 피터 게이와 문학이론가이자 철학자인 르네 지라르의 삶과 사유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조효원의 「계시에서 계몽으로―피터 게이의 역사 쓰기」는 피터 게이의 학문적 작업이 지닌 의미를 그의 삶과 관련하여 박진감 넘치게 조명하고 있으며, 김진식의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욕망, 모방, 경쟁 그리고 자아」는 지라르의 모방이론이 지닌 확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그의 학문적 세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아울러 지라르 생전에 했던 인터뷰 「기독교는 인문학인가―르네 지라르와의 대담」 역시 지라르의 사유가 지닌 매력을 잘 드러내주는 글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바란다.

<기고>에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성찰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최장집의 글을 싣는다. 최장집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을 ‘국민투표식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 독자들은 오랫동안 대의민주제하에서의 정당민주주의의 중요성에 천착했던 최장집 사상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동향>에는 조재룡과 김주선의 글을 싣는다. 조재룡의 「유有에서 유有를 산출하는 이 치열한 무력無力」은 황인찬 시에 대한 특유의 꼼꼼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김주선의 「타자는 괴물이다」는 타자성의 윤리를 깊이 있게 논하는 방식으로 최근의 소설들을 차분하게 읽고 있다.

<창작>란 역시 풍성하다. 정현종, 남진우, 나희덕, 이수명, 문태준, 이민하, 신동옥, 황병승, 임승유, 임지은의 신작 시와 배수아, 이신조, 박형서, 김애란, 한유주의 개성 넘치는 소설을 한데서 읽는 뿌듯한 즐거움이 준비돼 있다. 아울러 제6 단편 「창백한 말」이 선정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린다. 상세한 심사경위와 심사평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끝으로 그간 『문학과사회』 편집을 맡아온 김형중, 강계숙, 이수형 씨가 이번 봄호를 끝으로 편집동인에서 물러나게 되었음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린다. 문예지를 꾸려나가는 것이 점차 힘겨워지던 시절, 이들은 『문학과사회』의 편집을 책임지며 문지의 고유한 문학적 이념과 전통을 지키고,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들의 노고에 대해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새 편집동인들은 비평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와 작가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김형중, 강계숙, 이수형 씨가 보여준 각별한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_문학과사회

목차

봄호를 엮으며

문학과사회 113호
2016년 봄

<특집>
문지와 모더니즘
황종연_팝 모더니즘 시대의 비평
천정환_한국 자유주의/모더니즘 문예사의 재인식을 위하여

문지를 통과하는 작가의 시선
김혜순_산 자의 신화
백민석_순수라는 이데올로기
진은영_알토 가수처럼
정지돈_일기

지성
조효원_계시에서 계몽으로—피터 게이의 역사 쓰기
기독교는 인문학인가—르네 지라르와의 대담
김진식_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욕망, 모방, 경쟁 그리고 자아

기고
최장집_한국 정치의 문제, ‘국민투표식 민주주의’를 논하다

동향
조재룡_유有에서 유有를 산출하는 이 치열한 무력無力
김주선_타자는 괴물이다


정현종_미켈란젤로|몽로주점|무를 불태워
남진우_킹 퀸 그리고 잭|컬렉터|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목마름
나희덕_미래의 구름|늑대들|종이감옥
이수명_물류창고|투숙|신분당선
문태준_알람시계|알람시계 2|호수
이민하 _가위|벽에 갇힌 사람들|개구開口맨
신동옥_퇴고|어제의 시|드러눕는 밤
황병승_밤과 낮|회전목마|국가의 탄생
임승유_주인|차례|남의 집 정원
임지은_밴딩 엄마|도서관 사용법|빈티지인 이유

소설
배수아_도둑 자매
이신조_1105호
박형서_거기 있나요
김애란_건너편
한유주_식물의 이름

제6회 문지문학상 발표_정지돈, 「창백한 말」
제12회 마해송문학상 발표_신운선, 「해피 버스데이 투 미」

색인 『문학과사회』 103 ~112호
정기 구독 안내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8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