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 최성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2월 25일 | ISBN 978893202842

사양 변형판 125x200 · 20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끝과 시작의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전언 충분하다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시단(詩壇)의 모차르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시선집 『끝과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폴란드의 국민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충분하다』는 쉼보르스카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 『충분하다』 전체를 묶은 책이다. 2009년 『여기』를 출간한 뒤 86세 고령의 시인은 다음 시집 제목은 “충분하다”로 정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시간을 허락지 않았고, 이 시집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뒤 유고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충분하다”라는 미완성의 문장은 시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였으리라.

 

 

그해 겨울, 별이 지다

 

“나는 참으로 길고, 행복하고, 흥미로운 생(生)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달리 인복(人福)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운명에 감사하며,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화해를 청합니다.”

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12년 2월 1일, 쉼보르스카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4월 30일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출간되었다. 폴란드 언론들은 이 시집에 관한 서평을 게재하면서 ‘유고 시집’이 아니라 ‘신간 시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열두 권의 시집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독자들과 만나왔던 쉼보르스카 시인이, 이제 정말 마지막 시집을 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폴란드인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것이다.

쉼보르스카는 보통 스무 편 정도의 시를 묶어 정규 시집을 출간하곤 했는데, 숨을 거두기 전까지 완성한 시는 총 열세 편에 불과했고, 나머지 여섯 편의 시는 시작은 했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여섯 편의 미완성 작품들은 동료 시인이자 편집자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의 편집 후기와 함께 책의 말미에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쉼보르스카의 육필 원고를 촬영한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 시인이 삭제 또는 첨삭하거나 수정한 대목들, 혹은 몇 가지 버전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대목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시인 고유의 필체는 물론이고, 시어나 구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나라한 흔적을 통해 창작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어 쉼보르스카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귀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존재의 본질과 참된 가치를 포착하는 심안(心眼)을 가진 시인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詩語)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그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아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이것이야말로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할 일이 많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는지요.

_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중에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에서 쉼보르스카의 시를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칭송했다. 쉼보르스카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쉼보르스카 시의 구심점은 바로 존재의 본질과 참된 가치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심안(心眼)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근본적으로 ‘시선의 힘’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것, 사물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것, 그것이 쉼보르스카가 꿈꾸는 시인의 진정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세상 문물에 대해 호기심을 잃지 않겠다는 시인의 신념은 기존의 관습이나 편견을 깨끗이 비워낸 상태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직시하게 만들고, 상식이나 관습의 명목으로 지나쳐버렸던 생(生)의 수많은 이면들에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

쉼보르스카는 이미 등단 초기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평생 일관되게 외길을 걸어온 시인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고 고정관념을 과감히 벗어 던진 채, 투철한 성찰의 과정을 거쳐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던 시인의 고유한 개성은 이 시집에서도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비범한 삶의 지혜

 

쉼보르스카의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단면들을, 세상에 깃들어 있는 환희를, 그리고 늘 감탄스럽고 미소 지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상의 다양한 체험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_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폴란드 대통령)

 

쉼보르스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건져 올리는 비범한 삶의 지혜이다. 이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독창적인 관찰 방법과 오랜 철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그리고 오랜 숙고와 관찰을 통해 얻은 실존적 자각을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시어, 절제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풀어낸다. 쉽고 단순한 시어로 정곡을 찌르는 언어 감각, 풍자와 아이러니가 결합된 특유의 해학적인 유머는 이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
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
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어.
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블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

_ 「여기」 부분

 

서점에서는 프루스트의 작품에
더 이상 리모컨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더 이상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축구 경기나
볼보 자동차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는 퀴즈 게임을 보기 위해.
우리는 훨씬 오래 산다,
하지만 덜 명확한 상태로
그리고 더 짧은 문장들 속에서.

_ 「책을 읽지 않음」 부분

 

또한 쉼보르스카는 예전부터 사물에 대한 획일적 인식과 인간 중심적인 편견을 거부하고, 만물과 현상에 대해 철저하게 다원주의적 상대론을 견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 책 『충분하다』에서도 특유의 생태학적 상상력, 포괄적이고 화합적인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바람에 실려 온 먼지 조각은 그들 앞에선
깊은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별똥별,
손가락의 지문은 광활한 미로,
그곳에서 그들은 모인다,
자신들만의 무언(無言)의 퍼레이드와
눈먼 일리아드, 그리고 우파니샤드를 위해.

-「마이크로코스모스」 부분

 

또한 시인 자신의 미적 취향과 예술적 기호를 드러내는 시(時)도 주목할 만하다. 폴란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율리우시 스워바츠키에게 바치는 헌시라고 할 수 있는 「우편마차 안에서」나 미국의 흑인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를 소재로 쓴 「엘라는 천국에」, 베르메르의 대표작 “우유 따르는 하녀”를 모티프로 한 「베르메르」에는 어떤 전통적인 사조나 미학이론에 얽매이지 않는, 시인의 자유분방한 우주적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다. 기존의 사고 틀에 얽매여 제한하지 않는 쉼보르스카의 시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베르메르」 전문

 

독자와 지인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텍스트

 

쉼보르스카의 작품 속에는 위대한 문학, 위대한 예술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뭐라 이름 짓기 힘든 ‘위안’의 정서가 녹아들어 있다. _ 아담 자가예프스키(시인)

 

쉼보르스카는 죽음을 삶과의 단절로 보지 않고,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죽음의 의미를 부단히 성찰한 시인이었다. 초기작에서부터 존재의 유한성을 겸허히 받아들였던 시인은, 결국 유작이 된 말년의 작품에서도 생성과 소멸이라는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인 구분을 과감히 거부한 채, 어쩌면 곧 자신의 차례로 다가올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담담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
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그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을 뿐.
단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할 뿐이다,
그것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란 걸,
과정의 일부이고, 자연스런 귀결이란 걸.
조만간 누구에게나 닥치게 될 낮이나 저녁,
밤 또는 새벽의 일과라는 걸.

_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부분

 

죽음이란 사실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고, 예측 불가능한 섭리임을 쉼보르스카는 일깨워준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시의 초점이 망자(亡者)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상실감을 경험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그녀 자신을 포함하여, 피할 수 없는 이별로 상처 입은 독자들이 맛보게 될 슬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쓴 ‘위로의 텍스트’로 읽히기도 한다.

유고 시집 『충분하다』에서, 시인이 말년에 쓴 시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1993년에 발표한 시집 『끝과 시작』 이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 강점기’ 등 인간을 향해 휘두르는 체제의 폭력과 관련된 테마가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다. 쉼보르스카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 보편적인 공감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내는 특유의 재능으로, 이번에도 「거울」 「사슬」「얼마 전부터 내가 주시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하여」에서 정치적 ‧ 사회적 문제에 다시 눈길을 던진다.

쉼보르스카는 스스로도 마지막을 예감했을 시집 『충분하다』에서 죽음을 관조하듯 성찰하면서 생사(生死)의 번뇌를 이겨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아직 현실에서 끝나지 않은 문제와 사명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인으로서 외길 인생을 걸은 쉼보르스카는 자신의 삶을 시로서 마무리했다. 폴란드어판 유고 시집의 편집인은 이 책을 다음의 미완성 시로 마무리한다. 이 시가 시인의 가장 사적인 고백처럼 느껴졌기에 마지막에 배치한다는 설명과 함께.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공산주의에 대한 내 믿음은
이미 흔들렸다
나는 내게 허락된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서방에서 한 시인이 왔다
내게서 경탄을 불러일으켰던 시인이
나는 거대한 희망을 품은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요란한 박수를 받으며 그가 연단에 섰다
그것은 생각하는 인간이 쓴 시였다
아무런 구속도, 제한도 받지 않은

-미완성 원고 부분

 

 

본문 속으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
암살을 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죽일 것인지,
어떡하든 많이 죽이기 위해, 몇 명이나 죽일 것인지.
하지만 그 밖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우고,
기도를 하고, 발을 씻고, 새에게 먹이를 주고,
겨드랑이를 벅벅 긁으며 전화 통화를 한다,

-「암살자들」 부분

 

고백하건대―어떤 단어들은
나를 곤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감정”이라 명명된 다양한 상태들은
아직도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영혼”이라는, 괴상한 단어도 마찬가지.
현재까지 나는 이 어휘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일종의 안개와 같은 것,
유한한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 신체기관보다는 지속력이 좀더 강하다고 추정됨.
하지만 가장 골치 아픈 단어는 “나는 ~이다”라는 동사.
일상적인 기능에 사용되는 것 같지만, 결코 집합적이지 않음,
선사시대의 현재시제이면서,
그 형태는 진행형,
비록 오래전에 완료되었음을 다들 알고 있지만.

_ 「어느 판독기의 고백」 부분

 

무더운 여름날, 개집, 그리고 사슬에 묶인 개 한 마리.
불과 몇 발자국 건너,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가 놓여 있다.
하지만 사슬이 너무 짧아 도저히 닿질 못한다.
이 그림에 한 가지 항목을 덧붙여보자:
훨씬 더 길지만,
육안으로는 보기 힘든 우리의 사슬,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를 지나칠 수 있다.

_ 「사슬」 전문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는다.
사망한 양배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사체(死體).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訃告).
가장 고결한 사람들조차
죽임을 당한 뭔가를 섭취하고, 소화해야 한다,
그들의 인정 많은 심장이
박동하는 걸 멈추지 않도록.

_ 「강요」 부분

 

목차

여기
충분하다
마지막 시들 _ 육필 원고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본(寫本)들

편집 후기를 대신하여
옮긴이 해설 _ “이미 충분합니다”-시인이 건네는 따뜻한 작별 인사
작가 연보

작가 소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 쿠르니크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인 1931년 폴란드 옛 수도인 크라쿠프로 이주하여 2012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다.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폴란드어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중퇴했다. 1945년 『폴란드일보』에 시 「단어를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뒤,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부터 『여기』(2009)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본질과 숙명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동원한 완성도 높은 시로 ‘시단(詩壇)의 모차르트’라 불리며, 총 28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 괴테 문학상, 독일 헤르더 문학상, 폴란드 펜클럽 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타계 직후인 2012년 4월에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출간되었다.

최성은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폴란드어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폴란드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2012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십자기사 훈장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 『끝과 시작』 『코스모스』 『쿠오 바디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등이 있으며, 『비단 안개―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 『흡혈귀―김영하 단편선』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독자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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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7 =

  1. lee kim
    2016.04.07 오전 12:42

    다른 이유는 없다.
    폄하하려 함도 아니다.
    다만 심보르스카의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좀 씁쓸해서
    또 한 줄 적는다.
    좀 더 나은 시 번역을 위해 좀 더 견딜만한 세상을 위해…

    아래는 「어느 판독기의 고백」 이라는 시의 일부를 발췌하여 역자가 책 소개 란에 올린 것이다.

    고백하건대―어떤 단어들은
    나를 곤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감정”이라 명명된 다양한 상태들은
    아직도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영혼”이라는, 괴상한 단어도 마찬가지.
    현재까지 나는 이 어휘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일종의 안개와 같은 것,
    유한한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 신체기관보다는 지속력이 좀더 강하다고 추정됨.
    하지만 가장 골치 아픈 단어는 “나는 ~이다”라는 동사.
    일상적인 기능에 사용되는 것 같지만, 결코 집합적이지 않음,
    선사시대의 현재시제이면서,
    그 형태는 진행형,
    비록 오래전에 완료되었음을 다들 알고 있지만.

    _ 「어느 판독기의 고백」 부분

    고백하건대―어떤 단어들은
    나를 곤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감정”이라 명명된 다양한 상태들은
    아직도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Przyznaję — pewne słowa
    sprawiają mi trudność.
    Na przykład stanów zwanych „uczuciami”
    nie potrafię jak dotąd wytłumaczyć ściśle.

    Przyznaję는 ‘인정하다’지 ‘고백하다’가 아니다.
    ‘다양한’, ‘그 의미’등의 단어는 원문엔 없다. 이전 독자 리뷰(끝과 시작, 난 너무 가까이 있다)에서도 밝혔듯이 원문에 없는 시어의 임의적 보충이 지나치다. 원문의 본 뜻을 해치고 응축과 간결함을 생명으로 하는 시의 기본구조를 설명조로 만들기 쉽다.

    “영혼”이라는, 괴상한 단어도 마찬가지.
    현재까지 나는 이 어휘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일종의 안개와 같은 것,
    유한한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 신체기관보다는 지속력이 좀더 강하다고 추정됨.
    Podobnie z „duszą”, wyrazem dziwacznym.
    Ustaliłem na razie, że to rodzaj mgły,
    rzekomo od śmiertelnych organizmów trwalszy.

    ‘이 어휘를 다음과 같이’ 역시 원문에는 없는 문장이다. Ustaliłem는 ’정의 내리고 있다’ 라기 보다는 ‘확정하다’, ‘규정하다’에 가깝다. 폴란드어에 ‘정의하다’라는 동사는 definiować이다.
    na razie(for the momente , for now 당장은, 우선은, 일단, 당분간, 일시적으로)의미로 ‘현재까지’ 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Rzekomo(allegedly)’이른바, 소위, 세칭’ 등의 뜻으로 ‘추정됨’이 아니다.
    Śmiertelnych(mortal)는 ‘죽음의, 죽을 운명의, 치명적인, 빈사의’ 등의 의미로 ‘유한한’ 과 비교할 수는 있어도 역시 원문을 살리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결국 ‘유한한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도 역시 원문엔 없는 역자의 극도로 자의적인 번역이다.
    Organizmów은 ‘생명체, 유기체’ 등의 의미로 어떤 system과 관련된 말이다. ‘신체기관’ 또는 ‘ 장기’ 는 폴란드어로 organ 이지 organizm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면 동물이든 영혼을 가질 수 있고 또 이러한 상황에서 영혼은 살아있는 것들 보다는 좀 더 지속(영속)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에서 영혼과 생명체를 대비시켜 놓은 것에 가깝다.

    하지만 가장 골치 아픈 단어는 “나는 ~이다”라는 동사.
    일상적인 기능에 사용되는 것 같지만, 결코 집합적이지 않음,
    선사시대의 현재시제이면서,
    그 형태는 진행형,
    비록 오래전에 완료되었음을 다들 알고 있지만.
    Jednak największy kłopot mam ze słowem „jestem”.
    Wygląda to na czynność pospolitą,
    uprawianą powszechnie, ale nie zbiorowo,
    w praczasie teraźniejszym,
    w trybie niedokonanym,
    choć, jak wiadomo, dawno dokonanym.

    ‘동사’는 원문에 나오지 않는다.
    „jestem”은 I am의 의미로 “나는 ~이다” 는 이 활용형의 계사(copula)적 기능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jestem은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존재사의 의미도 동시에 가진다.
    ‘일상적인 기능에’ czynność(action)는 ‘기능’이 아니라 ‘활동’, ‘행위’, ‘행동’, ‘일’ 등의 의미이다.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기능’으로 번역해야 했는지 참으로 의아할 뿐이다.
    na czynność pospolitą 은 다음 시행 uprawianą (practise) powszechnie (generally)와 연결해 ‘널리 또는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일상적인 (평범한) 활동, (또는 행동)’ 의 의미이다. Wygląda는 ‘…처럼 보이다’의 뜻이지 ‘같다’ 가 아니다. 따라서 ‘일상적인 기능에 사용되는 것 같지만’ 원문의 본 뜻을 완전히 벗어난 오역이다.
    ’결코’라는 단어도 원문에는 없다. Zbiorowo는 ‘집합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것(jestem)과 대비한다는 의도에서 ‘집단적(여럿이, 함께)’이 문맥상 더 적합하게 보인다.
    w praczasie teraźniejszym를czas(시간, 시제) teraźniejszy(현제)에 유추해 문법적 시제의 문제로 취급하는데praczas는czas와는 달리 문법적 시제의 의미가 없다. (물론teraźniejszym, niedokonanym와 dokonanym 단어들이 폴란드어에서 문법적 시제와 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학적 용어로 자주 쓰이기에 시인이 이를 염두 해둔 시적 장치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praczas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가장 오래된 시대, 태고, 원초 시대 등을 의미하는데, w praczasie teraźniejszym ‘선사시대의 현재시제이면서’에서는 teraźniejszym 이 수식어 이기 때문에 문법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번역이 되어버렸다. ‘현재의 또는 현재적 태고에’로 번역해야 하고 -억지로 말을 만들자면 ‘현재의 태고시제’ 정도가 될 수 있으나 인정받지못한 의역일 뿐- w 는 처소격 전치사로 ‘이면서’가 아니다.
    다음에 나오는niedokonanym와 dokonanym도 미완료, 완료를 지시하는 문법적 상의 의미와 함께 미완성과 완성의 대비로 이해해야한다.
    Tryb은 modus즉 방법, 양식, 서법 등을 나타내는 말로 ‘형태’와는 다르며 또 만일 완료, 미완료의 문법적 대비를 시인이 원했다면 tryb 대신에 aspekt라는 문법 용어나 (w czasie niedokonanym)를 사용했을 것이다.
    Niedokonany는 ‘미완성, 미완료’이지 ‘진행형’이 아니다.
    국어에는 jak wiadomo에 해당하는, as everyone knows보다 나은, 말들이 (주지하다시피, 알다시피, 알려진 바와 같이…), 있으며 또한 삽입구이기 때문에 ‘비록’과 연결되는 단어는 ‘알고 있지만’ 아니라 ‘비록, 알려진 바와 같이, 오래전에 완료(완성)되었지만’ 이 되어야 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 연은 많은 부분에서 이 시의 영역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능’이나 ‘시제’, ‘선사시대’, ‘진행형’ 등의 단어들을 사용한 부분과 ‘비록 오래전에 완료되었음을 다들 알고 있지만’의 ‘비록…지만’과 연결되는 술어등에서 특히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But the word “am” gives me the most trouble.
    It appears to be an ordinary function,
    conducted daily, but not collectively,
    in the present prehistoric tense,
    specifically, in the continuous,
    although as we know discontinued long ago.
    – Translated by Clare Cavanagh-

    문장의 끝 맸음이 술어형식의 종결어미가 아닌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즉 시어를 풀어 쓰지 않았기에 매우 읽기 거북하고 기이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사전에 실린 기술 용어의 설명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원문과 번역문의 편차가 심해 정말 같은 작품을 읽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악보에 ‘도’ 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도’ 를 연주해야지 ‘레’를 연주해서는 안된다. 일단 기본에 충실하고 연주에 어떤 뉘앙스를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그 뒤에 일이다. 의역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해야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 제대로 해야 된다는 말이다.

    1. 문학과지성사
      2016.04.07 오전 10:12

      이 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자 선생님과 함께 논의하여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의 귀한 의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