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김원일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2월 12일 | ISBN 9788932028408

사양 변형판 138x211 · 27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김원일,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집

그의 문학 인생을 바친 평생의 주제

 

분단 문학의 대표 작가 김원일의 소설집 『비단길』이 출간됐다. 작가는 1966년 「1961․알제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이 책은 김원일의 여덟번째 소설집이다. 책은 단편소설 「어둠의 혼」 「미망」, 장편소설 『마당깊은 집』 『불의 제전』 『아들의 아버지』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과 맥을 함께하는 소설들로 채워졌다.

김원일의 소설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 그 뼈대 주위를 채우는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삽화를 그리듯 한 장 한 장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잊히고 사라졌지만, 김원일은 그 시간에 머물며 기꺼이 그때 그 사람들의 증인을 자처한다. ‘6.25전쟁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졌다’는 간단한 사실 주변에 놓인 많은 사람들, 그래서 비슷하면서 각각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풀어온 것이다. 특히 이번에 수록된 소설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미 성인이 된 그가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려 나서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소설을 통해 그는 자신의 평생 주제였던 ‘아버지’를 좀더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담아낸다. 작가는 특히 ‘아버지의 부재’라는 거대한 세계를 직접 대면하는 소설을 책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가 50년 동안 일궈놓은 문학 인생이 한 단락 매듭지어지는 듯한 겸허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

 

 

갑자기 비어버린 아버지의 자리

그 자리를 맴도는 어머니, 그리고 맏아들

 

앞서 말했듯 김원일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크나큰 공통점 중 하나는 ‘아버지의 부재’다. 실제 작가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인민군이 철수할 때 월북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에 겪은 역사적 비극과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김원일은 더욱 강하게 서로에게 엮이어버린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를 소설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작가는 꼼꼼하게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생애를 대신해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어머니, 할머니 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작가 스스로 “아버지는 늘 부재했기에 집안의 생활은 어머니 중심으로 꾸려나갔고, 저는 모계사회의 장자로 아버지 대역을 맡으며 성장했습니다”라고 고백할 만큼 그의 실제 삶과 소설은 ‘어머니’라는 존재의 강력한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부재하는 아버지는 비현실이며, 곁에 있는 어머니는 현실”(김현 문학평론가)이라는 말처럼 부재하는 아버지를 하나의 꼭짓점으로 두고, 현실의 ‘어머니’와 ‘나’ 자신까지 이 세 꼭짓점 간의 질긴 관계를 탐구하는 태도는 이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밑그림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1950년 갑자기 가족을 떠난 아버지와 그 상황에 갑작스레 버려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6.25전쟁)에 비슷한 상황(남편․아버지의 부재)에 놓인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지만 한편 서로 간에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난민」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 남편의 행방불명이라는 사건은 남겨진 칠곡댁의 관찰로 서술되는데, 칠곡댁은 마치 「기다린 세월」과 「비단길」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수십 년 전과 비교된다.

특히 ‘모계사회의 장자’라는 김원일의 지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어머니-할머니의 (감히 지독하다고 할 만한) 관계에 끼인 작가의 이야기는 그의 지난 단편소설 「미망」에 이어 이번 소설집에 실린 「기다린 세월」 「울산댁」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울산댁」에서 아들과 딸을 진영에 보내고 따로 대구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어머니가 가끔씩 “당신의 한까지 실어” 아들에게 매질하는 모습은 「기다린 세월」에서 할머니를 두렵게 했던 어머니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두 편의 작품은 김원일 스스로의 자전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기에 많은 지점이 맞닿아 있다. “문제적 아버지 때문에 고난과 궁핍과 단련으로 거친 세상 살아가기와 자식 기르기를 힘들여 감당해야 했던”(김병익 문학평론가) 어머니들의 한과 설움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대리자이자 장자를 자처하는 김원일의 손을 거쳐 선명한 이미지로 재현된다.

 

 

한과 고통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건네는 위로

깨져버린 비단길, 그 길을 기꺼이 함께 건너는 아들

 

김원일이 소설을 통해 꾸준히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말해왔다면, 소설 「비단길」은 ‘자리로 돌아온 아버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1950년 9월 인민군이 예천 지방에서 퇴각할 무렵 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그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표제작 「비단길」은 시작한다.

 

“북한에 살아 계신 아버지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북한에서 그이가 통지를 해왔다고?” (「비단길」, pp. 108~09)

 

「비단길」의 어머니는 열여섯 살에 결혼해 꼭 4년을 함께 살고 헤어졌지만, 60년간 부부의 연을 간직해온 인물이다. 남편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을 때면 “잘못한 것만 자꾸 생각나”고, “개장국을 한 그릇 장복 못 시킨 게 두고두고 후회”될 뿐이며, 같이 햇밤을 구워 먹던 어느 겨울밤을 떠올리는 한결같은 “옥마음”을 지닌 자다. 한 대담에서 작가는 “현대사의 그늘에서 희생만 강요당해온 아녀자들의 삶, 그네들의 한에 점철된 삶을 그리는 일은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옆에서 겪은 자로서 꼭 진실의 증언자가 되고 싶”었다며 “때로는 그네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밝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비단길」의 이산가족 상봉은 마치 작가가 건네는 “부드러운 위로”(김병익)처럼 보인다. 긴 세월 여성으로서 가족과 사회의 모든 짐을 짊어진 채 고개 숙이고 있어야 했던 어머니 세대의 공통된 설움과 한을 어루만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 가운데 아버지 없음을 끌어 안고 살던 아들 영환은 어머니와는 다른 느낌을 풀어놓는다. 어릴 적에 헤어져 “사진으로만 남은 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을 익히는 것으로 영상으로나마 아버지를 보듬고 살아온” 그는 아버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본래 그랬듯)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생경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만 보는 어머니 “모습에 부아”를 끓이는 대목이나 “어머니 눈에서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을 지켜보는 광경 등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아들’의 태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아들 영환이 자신과 어머니를 떠난 아버지를 ‘이해한다, 하지 않는다’ 둘 중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은 것은 실제 이 소설이 돌아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어머니를 따라가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60년 동안 남편을 기다려왔고, 아주 짧은 만남 이후 다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어머니를 말이다. 그렇기에 아들인 영환과 이를 풀어가는 김원일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계속 현재 진행 중인 사건임에 다름없다. 거친 돌밭을 걸어온 어머니 세대에게 잠시나마 비단길을 깔아주었지만 그 스스로는 아버지가 없는 상태 바로 그 부재의 현실을 지속하며, 남북 분단의 현실과 개인사에서 비롯한 이야기의 뿌리를 놓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어머니와 함께 남으로 돌아올 뿐이다.

 

 

6.25전쟁이라는 생체험으로 획득한 독보적 감각

 

1942년생인 작가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어릴 적에 전쟁을 경험한 당사자다. 성인이 되어 6.25전쟁을 경험한 그의 윗세대 작가들과는 시선의 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가 그려내는 전쟁의 이미지들은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너한테 어떻게 설명할까……, 전사한 군인으 군번하고……, 너무 젊어서 죽어 아직도 저승에 못 들고 떠도는 영혼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나는 그 전우으 군번과 영혼을 문경에 사시는 부모님에게 전해줄 겸 잠시 휴가를 나왔어.”

“영혼을 지고 왔다고요? 참말로 잘 모르겠네요.”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 당시, 나는 형이 전우의 유골 상자를 백에 지고 온 걸 이해하지 못했다. 죽은 군인의 유골 상자와 군번을 인편을 통해 고향의 부모에게 보낸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형과 함께 간 길」, p. 34)

 

특히 동세대인인 김병익의 실제 경험담을 풀어낸 「형과 함께 간 길」은 김원일의 이 같은 시선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형이 휴가를 얻어 고향 집에 와서 벌어지는 이 짧은 이야기는 성인으로서 전쟁을 겪고 있는 형과 그런 형과 사회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관찰하는 동생에 관한 소설이다. 동생의 눈에는 고향 땅을 감격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형이 이상해 보일 뿐이고, 그가 메고 온 군용 백에 자신에게 줄 선물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언제쯤 꺼내 줄지만을 염두할 뿐 전쟁 자체가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다. 형이 전우의 전사 소식을 전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동생은 “참말로 잘 모르겠네요”라며 형의 마음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지점은 김병익이 김원일의 문체를 두고 “아무런 가식 없이 무뚝뚝하고 무심하게 늘어놓는 회포 같은 일상의 담화” 같다고 지적한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가 될 것이다. 충격적인 역사를 함께 경험했지만 관찰자적인 입장(그러나 지금의 이삼십대처럼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에서 그려진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되풀이되는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서술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김원일의 소설은 한번에 모든 설움이 쏟아지는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마음속에 품은 깊은 한을 쉽게 내보이지 않다가 「비단길」에 이르러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달라는 날카로운 비명, 그 단 한 번의 울부짖음으로 이 책은 우리를 ‘분단’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이미 지나간 역사처럼 보이지만, 아직 생생하게 뛰고 있는 아픔은 김원일의 소설을 읽어가는 이들을 6.25의 비극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본문 중에서

 

“내 다시 꼭 오께. 두 애 데리고 같이 나설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당신을 믿소.” 선잠 깬 그때, 그러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날짜라도 물어두었어야 하는데 그걸 놓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난민」, pp. 62~63)

 

어머니의 숱 적은 뒷머리채에 꽂힌 옥비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니 아부지가 읍내 장에서 사다 준 옥비녀가 있는데 내가 와 머리채를 신식으로 싹뚝 자르고 남들처럼 지지고 볶아야 하노.” 내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어머니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골동품이 된 값진 그 옥비녀야말로 지아비를 떠나보내고 아들 하나 키우며 60년을 수절해온 어머니 정절의 표징이기도 했다. 내 코끝이 시큰해졌다. (「비단길」, p. 128)

 

“살아만 있다면야…… 여태 거기서 혼자 살았다면 더 좋겠지만 남자란 여자와 다르잖느냐. 여편네가 있어야 밥해주고 빨래 빨아주지러. 궁상떨며 홀아비로 평생을 어째 살아. 새장가를 갔든 말든, 난 그냥 살아 있다는 소식만이라도 듣고 싶다” 하고 오랫동안 숨겨왔던 말을 했다. (「비단길」, p. 145)

 

“그런데 말이다, 그날 밤 내가 정말 실크로든가 하는 그 꿈을 꾸었어.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사막인데 그 가운데로 주황색 비단이 지평선 끝까지 쭉 깔려 있었어. 물동이 같은 거를 인 새댁인 내가 맨발로 그 비단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게 아니겠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떴다.

“성님, 그래서 어째 됐어요, 맨발로 비단 깔린 길을 걷고 걸어 끝장에는 꿈에서라도 옵빠를 만났십니껴?” 고모님이 물었다.

“비단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다 그만 꿈에서 깨어났어예. 그이를 만내지도 못했고. 참 이상한 꿈도 다 꿨다며 거실로 나와 보니 밖이 훤하게 밝아오는 새벽이었어예.” (「비단길」, pp. 146~47)

 

술에 취한 내가, 아버지는 자기 스스로 북한으로 넘어갔지 철사에 묶여 북으로 끌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북이 얼마만큼 살기가 좋기에 이남에 살고 있는 처자식은 물론이고 홀어미마저 버려둔 채 그쪽으로 올라갔겠냐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혈육을 갈라놓는 것보다 더 좋은 그 무엇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믿지 않으셨다. (「기다린 세월」, p. 194)

 

“낙동강이 굽이쳐서 흐르는 내 고향 물금은 서리 내릴 철만 되면 철새 중에서도 몸집이 큰 고니(백조)가 무리를 지어 내려와서 월동을 하지. 말 못 하는 새 떼들도 저 추운 북지에서 낙동강 찾아 그렇게 내려오는데, 사람이 제 어미를 찾아 왜 못 내려오노.”

“새를 어디 사람과 견줄 수 있어요. 새와 사람은 다르잖아요.” 궁색한 변명을 주절거리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답답해서 한마디를 보태었다. “새는 날개가 있으니 하늘을 가로질러 마음대로 날아 다니지만, 사람은 어디 그래요. 철조망 쳐서 휴전선으로 막아놓고 양쪽 군대가 총을 겨누고 지키니 어디 마음대로 왕래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다린 세월」, p. 194)

 

■ 작가의 말

 

1966년 단편소설 「1961・알제리」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올해로 50년째를 맞았다. 중·단편소설집 『어둠의 혼』(1973)을 처음 출간한 후 『오마니별』(2008)에 이어, 여덟번째로 『비단길』을 낸다. 여기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대부분 내가 겪은 세월에서 얻은 소재다. 소설은 체험에 상상력을 보태어 쓴다지만, 근래에 와서는 상상력 대신 내가 겪었던 지난날을 떠올리기가 수월해졌다. 나이가 들었음인데, 어느덧 병고에 시달리는 칠십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몇 편의 글을 더 보태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여기에 이르기까지가 다행스럽다.

 

2016년 2월

김원일

목차

작가의 말

형과 함께 간 길
난민
일등병 시절
비단길
기다린 세월
울산댁
아버지의 나라

해설 ‘비단길’을 향해 꿈꾸는 아린 소망_ 김병익

작가 소개

김원일 지음

작가 김원일은 1942년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서 출생, 대구에서 성장했고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소설을 발표하여, 장편소설 『노을』 (1978), 『바람과 강』(1986), 『겨울 골짜기』(1986), 『마당깊은 집』(1988), 『늘푸른소나무』(1993), 『아우라지로 가는 길』(1996), 『사랑아, 길을 묻지 않는다』(1998) 외 『김원일 중 단편 전집』(전5권)이 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우경문학예술상 외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 국립 순천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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