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12월 2일 | ISBN 9788932028057

사양 변형판 140x210 · 631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바느질을 하는 여자와

그 속에 투영된 소설 짓는 여자김숨

 

절대고독 속에서 숨 막힐 듯 써 내려간 책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숨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2013년 대산문학상에 이어, 2015년 이상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 김숨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가 출간되었다. 3센티미터의 누비 바늘로 0.3밀리미터의 바늘땀을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끊임없이 놓는 수덕과 그녀의 딸들이 ‘우물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새겨 2천 2백 매의 장편소설로 완성했다. “누비는 똑같은 바늘땀들의 반복을 통해 아름다움에 도달하지. 자기 수양과 인내, 극기에 가까운 절제를 통해 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게 우리 전통 누비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침선법이지”라고 되뇌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리한 인생에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이 소설 안에 펼쳐져 있다. 바느질하는 여자와 소설 쓰는 여자 김숨. ‘명장’을 증명하지 못할지라도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자신만의 형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홈질의 무한반복인 누빔질은 글쓰기를 빼닮았다. 한 땀이 한 자, 백 땀이 백 자. 그러니 서쪽 방에 고립되어 손가락이 뒤틀리고 심신이 삭도록 바느질한 사람은 수덕이 아니라 김숨이고, 절대고독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도록 조밀한 언어로 장편을 써낸 사람은 김숨이 아니라 수덕인지도 모르겠다. 바느질하는 수덕을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어 한 딸들의 마음을 알겠다. 이토록 지독한 글을 쓴 김숨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도 어렵지만 중독되지 않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 안의 모든 무늬와 기척들이 침엽수림처럼 세밀한데, 어느덧 우뚝하고 울창하다. 김숨은 바늘의 문장으로 산맥을 창조했다._권여선(소설가)

숨은 명장의 삶 - 이토록 대단한 삶은 무엇으로 증명되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예술이라면 금택은 어머니가 하는 누비 바느질 역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술이라는 말을 입속에서 중얼거리는 순간 갈비뼈들이 갈라지고 벌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격하게 떨렸다.”

 

‘바느질하는 여자’로 살기 위해 결혼도 명예도, 또 다른 삶도 포기한 여자들이 여기 있다. 그녀들이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바느질을 제외한 모든 것일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모습, 그것을 통해 궁극에 달하는 모습, 주인공 수덕은 수십 년간 옷을 짓지만 어떠한 과정도 허투루 건너뛰지 않으며 더 속도를 내지도 더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정도程度에 이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만의 형식으로 ‘아름다움’을 일군 한 삶의 탐구이며, 이것 자체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을 넘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낸 아주 평범한, 어떤 방식으로 증명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는 감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웰빙, 힐링을 외쳐대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것에 몸을 바치게 되어 있으며 그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껍고 긴 소설을 다 읽어낸 사람이라면 1970년대 이후 현대사를 관통하는 어느 시점을 살아낸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어느덧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사람만이 자신의 삶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의 희미한 한 자락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숨의 소설 ― 작법 그리고 기도

 

“옛 사람들은 옷을 지을 때 한 땀 한 땀마다 입을 사람의 복을 기원했다지. 건강과 장수를 빌면서 정성을 다했다지.”

“복이란 게 돌고 도는 거야. 돌고 돌아 자손에게라도 되돌아가는 게 복이야.”

 

누비 바느질만으로 자신의 긴 인생을 살아내고 두 딸을 먹이고 입힌 수덕은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몸이 굳고 눈이 멀고 정신이 혼돈하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기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바느질하는 여자가 한 땀 한 땀에 복을 빌어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그 여자에게 옷을 지어 입으면 무병장수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도 만지기 싫어하는 시신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주고 싸매며 저승 가는 길에 복을 불어 넣는 일을 하는 염장이의 딸이 아버지의 덕을 이어받아 복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덕을 빌고 복을 비는 일은 신적인 일이면서 인간만의 고귀한 능력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도로 태어났을 한 ‘사람’은 어떤 근원이, 어떤 기도가 더해졌을지 몰라 더 깊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작가는 옷을 지어 입으러 우물집에 들락거리는 손님들의 다양한 삶을 소설로 지어내며, 똑같이 몸과 손이 곯는 고통스럽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길고 아름다운 소설을 짓는 일, 이러한 시간의 견딤과 그 속에 깃든 ‘기도의 마음’ 모두가 김숨 작가의 작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날씨 속에 이 길고 아름다운 소설을 선물처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본문 중에서

한 흰색이어도 멥쌀 같은 흰색이 있고, 갓 지은 백미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금택은 알았다. 배꽃 같은 흰색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이, 두부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멥쌀 같은 흰색에는 옅은 밤빛이, 갓 지은 흰색에는 초겨울 새벽녘의 푸른빛이, 배꽃 같은 흰색에는 노란빛이 미미하게 감도는 연둣빛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에는 탁하고 흐린 분홍빛이, 두부 같은 흰색에는 살굿빛에 가까운 노란빛이 감돌았다.  p. 11

 

어머니는 금택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침묵에 잠겼다.
어머니를 닮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어머니를 완벽하게 닮는 것이 금택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어머니를 그토록 닮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이 어째서 어머니를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어머니의 여러 모습 중 금택이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은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누비대 앞에 앉아 누빌 선을 따라 바늘 땀을 떠 넣는 어머니의 모습을 금택은 가장 닮고 싶었다. p. 62

 

금택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늘을 심장에라도 찔러 넣고 싶었다. 그래야만 바늘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서 놓여날 것 같았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금택은 바늘을 잃어버린 것 같아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바늘 때문에 금택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
바늘을 손에 꼭 잡고 있는 동안에도 금택은 바늘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서쪽 방에서처럼 바늘이 어느 순간 손에서 날아날 것 같았다. 심지어 금택은 이미 바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한 착각은 불현듯 엄습했고, 금택은 그때마다 손에 바늘을 들고 있으면서 바늘을 찾았다. p. 71

 

주야장천 땀구멍 같은 바늘땀만 반복해서 떠 넣는 것 같지만, 한 벌의 누비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쳤다. 대구까지 나가 옷감을 떼어오고, 그 옷감에 감이나 쪽이나 오배자 같은 물을 들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올을 튕겨 누빌 선을 표시하고, 치수를 재 도안을 뜨고, 마름질을 하고, 실에 초를 입히고, 앞뒤를 맞춘 천과 천 사이에 목화솜이나 누에고치나 종이 같은 충전재를 넣고…… 누비질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는 듬성듬성 바늘땀을 떠 충전재가 안에서 뭉치거나 밀리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어머니는 그것을 시침질이라고 했는데, 옷이 완성되면 전부 풀어버렸다. p. 140
“죽은 사람 옷을 왜 만들어?”
화순이 물었다.
“입히려고.”
“죽은 사람한테 옷은 왜 입혀? 죽으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깨끗하게 입혀서 보내려고……”
마을 뒷산에 널린 무덤들이 떠올라 금택은 말끝을 흐렸다.
[……]

그러니까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 옷도, 산 사람 옷도, 죽은 사람 옷도 만들 줄 알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더구나 바늘 하나로 그 모든 옷을 만들었다. 바늘이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기이하고 오묘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금택은 소름이 끼쳤다.
pp. 151~152
“우리 할머니 밑으로 친손녀, 외손녀 다 합쳐 손녀가 아홉이나 되었지. 아홉 중 셋째인 내가 유일하게 할머니 바느질 솜씨를 물려받았다고들 했지. 우리 할머니가 홑청을 꿰맨 이불은 매듭 하나 없었단다. 매듭을 일일이 풀어서는 연결을 했지. 매듭짓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셨어. 오이씨만 한 매듭을 풀어서 새 실하고 연결하는 걸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저절로 나왔단다. 고생을 하도 해서 생강 같아진 손이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지. 마술이 뭐 별거겠니? 그런 게 진짜 마술이지. 생각을 해보렴. 오이씨가 얼마나 작니? 그 작은 매듭을 손가락으로 풀어 헤친다고 생각해봐…… 재주도 보통 재주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p. 183
어머니의 중요한 단골이 된 옥 사모님이 다녀간 날, 금택은 어머니의 눈속눈금자가 성미와 평상시 습관, 버릇, 기질, 자세 역시 재고 가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미에도, 습관과 버릇과 기질과 자세에도 치수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눈속눈금자로만 잴 수 있는 치수가. p. 217

 

유행하는 옷이라는 것만으로 그녀는 원피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행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는데, 그 이유가 화순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다.
경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금택은 원피스를 꺼내 살펴보았다. 옷감을 살피던 그녀는 자신도 의식 못하는 새 바늘땀을 살피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옆에 앉은 동료가 물었다.
“바느질이 허술한 것 같아.”
“평생 입을 것도 아닌데 뭘.”
동료가 웃었지만 금택은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녀는 원피스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휘발유 냄새가 나.”
“새 옷 냄새야.”
동료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짓는 누비옷들에서는 말린 고사리나 취나물 냄새가 났다.
p. 322

 

“……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가마솥에 데운 물로 손을 깨끗이 씻으셨지. 한 번 씻고 마는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씻으셨으니까. 염을 하는 동안 당신의 손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죽음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손이 닳도록 씻으셨어. 아무도 안 만지려는 시신을 만지는 손이었지만, 우리 아버지 손보다 우아하고 정결한 손을 여태 못 봤어.”
[……]
“맞다. 염장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일 같지만, 그것보다 확실하게 덕을 쌓는 일도 없다. 죽은 사람이 제 몸을 씻겨주니 고마워 저승 가는 길에 덕을 빌어줄 테고, 자손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죽은 제 부모의 몸을 씻기니 고마워 덕을 빌어줄 것 아닌가. 십시일반이라고, 집집마다 쌀 한 줌씩만 모아도 금방 한 가마니가 되지 않나? 평생을 염장이로 살았다고 하니, 염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염 한 번 할 때마다 죽은 사람하고 그 자손들이 염장이 아비를 위해 빌어주었을 복이 모이고 모여 고스란히 정인한복 여자에게 갔을 테니 그 복이 얼마나 크겠나?”
“조상은 죽어 흙으로 없어져도, 조상이 살아생전에 쌓은 덕은 안 없어진다. 자손들 중 하나는 반드시 그 덕을 보게 되어 있다.”
pp. 331~33

 

어머니는 여전히 0.3에서 0.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바늘땀을 반복해서 떠 넣어 옷을 지었다. 바늘땀의 길이와 간격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20년을 넘게 누비옷을 지었지만, 누비저고리를 한 벌 짓는 데 드는 시간은 거의 동일했다. 바늘땀을 떠 넣는 데 드는 시간은, 그리고 한 벌의 누비옷을 짓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축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짓는 누비옷은 정해져 있었고, 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장 최근에 지은 누비저고리는 10년 전, 20년 전 지은 누비저고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두 달에 한 번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나가 옷감을 떼왔고,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손수 염색을 했다. 염색을 할 때는 우물물을 쓰는 원칙을 고수했다.  p. 340

 

오전 내내 누비대 앞에 꿈쩍 않고 앉아 바늘땀을 뜨고 난 어머니의 눈은 멀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바늘땀을 뜨고 나면 어머니의 눈은 어둠과 빛을 구분하지 못할 할 만큼 멀어 있었다. 멀어버린 눈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다시 바늘땀을 떴다. 금택은 문득 어머니의 멀어버린 눈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p. 420

 

그녀의 바늘에 대한 집착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고 금택은 놀랐다.
어머니는 바느질하는 여자로 살기 위해 자신이 포기해야 했던 것
들에 대해 딸들에게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금택은 어머니가 바늘을 통해 얻은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어머니는 바늘을 통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었다. 쌀을, 소금을, 깨를, 밀가루를, 석유를…… 그것은 부령할매도, 한복 거리의 바느질하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바늘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재숙이 바늘로 얻으려 하는 것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pp. 423~424

목차

바느질하는 여자

작가 소개

김숨 지음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나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장편소설로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있다. 2015년 현재 ‘작업’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허균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7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