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숨

배명훈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11월 27일 | ISBN 9788932028071

사양 변형판 128x188 · 427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 정착지에서 생긴

우주 시민들의 사소하지만 위대한 휴머니즘적 연대

 

2015년 초겨울,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는 소설가 배명훈이 열번째 책 『첫숨』을 펴냈다. 그간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냉철한 세계 분석을 바탕으로 구축된 그의 소설 세계에는 항상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본말적인 신뢰가 묻어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 배명훈 소설의 엄청난 흡입력은 사건의 팽팽한 긴장감만큼이나 작가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위트에 있다. 이 모든 장점이 응축된, 그리고 그가 오래 물어온 질문들이 집약된 세계가 도착했다. 2015년 6월부터 11월 초까지 총 43회에 걸쳐 문지블로그에 연재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장편소설 『첫숨』이다. 달과 화성에서의 삶이 가능해지고, 많은 스페이스콜로니들이 우주에 떠 있는 시기, 인구 6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우주 정착지 ‘첫숨’에서 비밀 무기 추격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던 고래가 튀어오르듯, 이야기를 관통해 다가오는 우주 시민 공동체의 생명중심주의를 통해 우리는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낯선 연대감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스페이스콜로니, ‘첫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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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숨은 원통 모양으로 생긴 콜로니였다. 원통 양쪽 끝에는 원형으로 생긴 평면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한쪽은 맞숨에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고 다른 한쪽은 우주를 향하고 있었다. [……] 첫숨은 인구 6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통 모양의 도시 구역 두 개로 이루어진 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정착지였다. 왜 원통 모양의 실린더가 두 개나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첫숨 거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대목이었다. 인구가 적어도 50만 명은 넘어야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의 디저트 가게가 공적 자금 유입 없이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도, 분위기 있는 술집도, 고급 식당도, 생활수준을 좌우하는 많은 요소들이 그 수십만이라는 숫자를 필요로 했다._본문에서

 

표지에 그려진 도형은 원통형 공간 ‘첫숨’과 ‘맞숨’이 얹힌 스페이스콜로니를 2차원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다. 작가는 이 스페이스콜로니를 구상하면서 1970년대 제라드 오닐Gerard K. O’Neill이 The High Frontier: Human Colonies in Space에서 묘사했던 우주정착지를 참고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며, “오닐이 예견했으나 인류가 가지 않은 길에 2015년의 삶을 가져가보는 것. 오닐의 콜로니를 차용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똑같은 크기와 형태를 가진 두 개의 원통들은 2분에 한 번씩 자전함으로써 벽면의 중력을 지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며, 항상 태양을 향하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쇄

우리는 자전축에서 수직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앞쪽을 봐도 뒤쪽을 봐도 지평선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거대한 오르막길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것은 진짜 오르막이 아니었다. 길은 그대로 위쪽을 향해 뻗어가다가 급기야 90도 경사를 넘어선 후에도 계속해서 뒤를 향해 같은 추세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앞뒤로 뻗어나간 두 개의 언덕은 머리 바로 위에서 서로 만났다. 위아래로 완전한 아치형 곡면을 이루면서. 우리는 원통 안쪽 면에 세워진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원통은 2분에 한 번 자전을 했다. 보통 사람은 거의 느끼지도 못하지만 도시의 크기를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그때 만들어진 원심력이 원통 안쪽 면에 놓여 있는 모든 물체를 원통 바깥쪽으로 날려 보낸다. 물론 실제로는 원통 벽면에 가로막혀 바깥에 있는 공간으로 튀어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벽면을 밀어내는 힘으로, 행성 표면에 붙어서 사는 사람들이 중력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그 도시의 인공중력이었다. 대략 지구 중력가속도의 93퍼센트에 해당하는 우주정착지 ‘첫숨’의 인공중력. 인공중력의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정확히 말하면 회전축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작아지다가 회전축에 이르면 0이 된다. 회전축과의 거리가 3분의 1로 줄어들면 중력의 크기도 3분의 1로 줄어들어 화성 중력이 되는 식이다. 물론 회전축에서 지면까지 거리의 6분의 1일에 해당하는 고도에서는 인공중력의 크기가 달 표면만큼 작아질 것이다. 3구역 공연장에서 느낀 낮은 중력은 그런 원리로 만들어진 셈이었다._본문에서

 

 

첫숨은 인용문에서처럼 회전축과의 거리에 따라 중력이 달라지는 공간이다. 즉, 고층 건물의 경우 층수에 따라 중력이 달라지며, 이 원리에 따라 장소의 용도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저중력 공간은 산업시설이나 실험실로 사용되지만, 일부는 화성이나 달 출신 사람들의 거주 구역으로도 사용된다. 첫숨에서는 이 물리적인 중력 차이가 계층별 문화‧관습‧정서 등의 차이로 드러나는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특히 ‘걸음걸이’ 습관으로 구체화된다.

 

첫숨의 아비투스Habitus, 그리고 건설자 화성인들의 역사

명품이나 예술품은 돈을 주고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지만 취향과 안목은 오랜 습득 과정이 요구된다. 역설적으로 자식을 상류계층으로 진입시키려면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을 가까이 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을 고급스러운 사치재가 되었으며 문화는 신분상승의 디딤돌이다. 그것은 상류와 하류계층의 생활양식을 차별화하여 경제적 자본으로 무장한 졸부들이 웬만해서는 건너뛸 수 없는 구별 짓기를 만들어 낸다._원용찬·베블런, 『유한계급론』, 살림, 2007, p. 107.

첫숨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화성인들의 문화권력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1/3 중력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걸음걸이는 화성계 사람들을 다른 행성 출신들과 구분 짓고, 그들의 문화를 모방하기 힘든 것으로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권력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숨’의 역사와 화성인들의 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숨은 화성인들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주정착지로서 지구 자본, 그중에서도 지구 궤도를 도는 소규모 스페이스콜로니 연합과 오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단지 화성 출신들이 좀스러워서나 특권 계층 유지에 남다른 욕심이 있어서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화성 탐사 및 개척을 위해 보내진 사람들이 지구가 경제적 대공황을 겪던 때에 지원이 끊겨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민간 자본 중 한 곳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겨우 자립할 수 있게 되었던 역사적 맥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성인들의 리더로서 큰 자본력과 첫숨 건설의 공로를 인정받는 가문, 반씨 집안과 ‘송영’ 여사는 첫숨의 핵심 세력이자 첫숨에서 화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과 위치를 대표한다. 특히 송영 여사는 도시 첫숨의 정치‧경제‧외교‧문화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는 동시에, 화성인 집단을 폐쇄적인 상류계급으로 유지하면서도 유연함과 관대함이 공존하게끔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지구 출신 내부고발자, 달에서 온 무용수, 그리고 은인가 장녀

이 소설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 지구에서 내부조사관으로 활동하다가 거대한 비자금을 폭로했으나 배후에 존재했던 거대 세력의 모함에 의해 쫓겨나듯 첫숨으로 망명한 최신학과, 달에서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달 기지 철수 계획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묵희다. 최신학은 비리 폭로로 되려 곤경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곱씹으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지만, 어느 날 아랫집에 사는 한묵희의 한마디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편 한묵희는 달에서 추던 춤을 계속하기 위해 첫숨으로 온 무용수인데, 첫숨의 맞은편에 위치한 원통 맞숨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있는 무기를 확인하기 위해 공연장에 무언가를 설치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한다. 이들에게 이런 정보를 제공하고 탐색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행성간중재원의 변호사 나모린 또한 사건을 진전시키는 주요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국제감각을 가진 변호사인 동시에 과거 어려움을 겪던 화성에 마지막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온 민간 자본의 중심 나모윤의 손녀다.

 

틀린 세계가 더 아름답고 옳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의 영역이 세계의 제일 바깥쪽까지 직접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가능해질까? [……]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치밀한 조사를 하는 것 못지않게, 주관적으로 파악한 세계의 규칙들을 자기모순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잘 다듬어서 제시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의 비슷하게 생긴 세계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하나하나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_배명훈, 「세계분석을 기다리며」, 『문학과사회』 2014년 봄호, pp. 456~57

 

어쩌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인물들의 이름이 한국식이라는 점에 의문을 가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창작된 SF소설이나 만화에서도 다국적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UFO가 착륙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지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사건으로 진행되지만, 한국의 서교동에 UFO가 도착했다고 했을 때는 FBI나 CIA에게 문제가 인계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리얼한 현실’이 꼭 SF소설에 투철하게 요구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배명훈이 제시한 세계의 완결성과 일관성이 더 주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좀더 넓은 범위의 ‘지구인적 공동체’로서 사건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태도로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면 어떨까. 배명훈 장편소설 『첫숨』은 스페이스콜로니를 배경으로 한 ‘우주 시민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가본 적 없는, 그러나 꿈꿔왔던 과거의 미래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확장된 형태의 휴머니즘적인 연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 “세계를 세상으로 바꾸는” 배명훈 소설의 힘이라고 할 만하겠다.

 

■ 책 속으로

사람은 그냥 문이었으면 좋겠다. 별로 넓지도 않은 아파트 복도에 다닥다닥 마주 보고 선 현관문 같은 존재. 아니면 창문이어도 좋다. 아파트 6층 건물 두 면을 가득 메운 똑같이 생긴 수십 개의 창문들. 이 문들은 보통 닫혀 있다. 창문에는 늘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쳐 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닫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은 문이 아니라 집이다. 삶의 공간은 네모난 이차원 통로가 아닌 삼차원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들어차 있기 마련이다. 택시 기사가 몰고 다니는 택시는 그의 삶이 아니라 표면에 떠올라 있는 부표에 불과하다. 카페 점원이 입고 있는 유니폼도 그의 삶이 아니라 그가 내걸고 있는 문이다. 그들이 하루 종일 언제까지고 택시 기사나 점원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뭐하러 그 짓을 한담.
도시는 도시다. 딱 12분밖에 안 걸리는 아침 출근길에도 수십 명을 만날 수 있는 게 도시다. 버스라도 탔다가는 수백 명을 만나는 것쯤 일도 아니다. 회사 정문에서 사무실까지 가는 길에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존재의 현관문을 열어놓고 걷던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냥 문이다. 자기 집 현관문을 닫는 순간 존재의 현관문도 같이 닫힌다. 그렇게 굳어버린 표정은 어디서 전화라도 걸려오지 않는 한 풀어지지 않는다.
그 문을 다 열어보라고? 뭐하러 그런 짓을, 그렇게도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_「1. 층간 비행」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좋을 것 없습니다. 계획대로 봉쇄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머, 계획이라는 게 있었군요. 시간에 맞춰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건 알고 있나요?”
“결의안을 전달해드렸습니다만.”
“물론 받았어요. 그것도 해설판으로. 무기 그림만 잔뜩 나와 있어서 이웃집 막내한테 줘버렸지 뭐예요. 애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던데요. 나는 그런 거 몰라요. 아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지금 궤도에서 그 장난감들을 지구에서 화성까지 보내려면 지구 시간으로 반년은 걸리지 않겠어요? 화성 집행부가 멍청하기는 해도 화성 근처에 있는 70개 도시에 구닥다리 무기를 날려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보다는 짧을 텐데요.”
“지금 전면전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지구와 화성 사이에?”
“그럴 리가 있나요? 지구궤도연합이 지구 본토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성은 우리 말을 듣기도 하죠, 아마?”
“그래도 첫숨 정착지 하나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대응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럼 그러자고 하세요. 저는 티타임에 늦어서 이만.”
그리고 그 협박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한 달은커녕 채 3일도 되기 전에 화성 궤도에 배치된 무기들이 정말로 지구 측 정착지를 향해 재배치됐고 그중 하나는 실제로 미사일을 발사하기까지 했다. 동맹 사령부의 명령으로 5분 만에 자폭 처리되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화성인들의 협박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렇게 봉쇄는 실패로 돌아갔다. 봉쇄를 계획했던 궤도연합 정치인들도 다음 선거에서 실각하고 말았다.
송영의 오찬은 그런 자리였다. 더할 나위 없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자리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소소하고 좀스러운 곳이기도 했다._「7. 어머」

“유행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코드북이 있는데요, 고등학생들 경우처럼 실제로 그런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요. 상류층 사이에서는 그냥 입소문으로 도는 이야기라 어렵지 않게 다들 접하게 되는데 거기에 속한 적 없는 사람들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유행 지난 뭔가가 돼 있는 그런 것들이 있답니다. 그것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굉장히 많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소지만 그 코드북을 잃어버린 사람이 상류사회 한가운데 서 있으면 어쩐지 자기가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럼요. 무용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에 얼마나 민감한데요.”
“저도 저 건물 들락거리면서 얼마 전에야 눈치챈 건데, 그런 상류층 화성 예법 중에 제일 기본적인 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말투?”
“걸음걸이입니다.”
“그래요? 걸음걸이가요?”
“며칠 전에 3구역 공연장 앞에서 제가 6분의 1 중력에 적응 못 한 거 기억나십니까? 제가 그때 딴생각하다가 깜빡하고 지구 중력에서처럼 걷는 바람에 위쪽으로 통 튀어 오른 일. 그때 저를 알아보셨죠?”
“눈에 띄었으니까요.”
“맞습니다. 다들 제 쪽을 쳐다봤죠. 순간적으로. 그런 겁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화성 출신들에게는 3분의 1 네이티브의 걸음걸이라는 게 있다고 하거든요. 일단은 튀어 오르지 않아야 되고, 속도 조절 못 해서 달려 나가는 건 당연히 안 되고, 그보다 진짜 어려운 건 언제 날아다녀도 되고 언제 날아다니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얌전히만 걷는 거면 할 수 있겠는데 그러면 또 활달해 보이지 않는다고 낙인찍히거든요. 소심해 보인다고. 결국 계속 움직이라는 건데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말라는 겁니다.”
“알아요, 그거. 맞아요, 지구 출신들이 잘 틀려요. 사실 여기서 공연하는 달 공연팀들이 그거 때문에 서커스 같아 보이는 거예요. 너무 과장되게 6분의 1을 표현하니까. 그런 거구나.”
“사실은 중력이 다른 건데, 마치 공기가 다른 것처럼 행동하라는 거지요. 물리적인 제약 이상의 문화적인 관습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 일을 공모한 사람들이 묵희 씨를 고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제 짐작이 되십니까?_「16. 드레스코드」

 

■ 작가의 말

 

제라드 오닐Gerard K. O’Neill의 The High Frontier: Human Colonies in Space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 중 우주정착지의 구조에 관한 많은 부분이 그의 구상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비슷한 부분도 있고 영 다른 곳도 있지만, 1970년 전후에 걸쳐 논문과 책으로 나오기 시작한 그의 구상을 참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백 투더 퓨처」가 다룬 미래를 실제로 살아볼 수 있게 된 해가 바로 올해 2015년이듯, 오닐이 구상한 미래 또한 연도상으로는 이미 살짝 과거가 된 시기쯤이다. 우리는 그렇게 꽤 먼 미래에 살고 있다.

『문학과사회』 2014년 봄호에 기고한 「세계분석을 기다리며」라는 글에서 작품에 담긴 틀린 미래, 세계에 관한 틀린 해석 같은 것들이 어떻게 객관화될 수 있는지를 다룬 적이 있는데, 오닐의 구상 또한 그런 객관화된 틀린 미래의 한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닐이 예견했으나 인류가 가지 않은 길에 2015년의 삶을 가져가보는 것. 오닐의 콜로니를 차용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기를 바란다.

[……]

아울러 미리 밝혀두자면, 이 소설의 뼈대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졌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에 실린 단편 「예술과 중력가속도」에 나오는 달 출신 무용수가, 2012년 12월 이음에서 출간된 단편선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 수록한 「타이베이 디스크」에 등장하는 스페이스콜로니를 만나는 순간 이 소설의 기본 구조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 구도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 안에만 든다면, 다른 유사한 작품이 발견되더라도 창작물로서 이 소설이 갖는 독자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각각의 단편에는 개인적인 경험, 단편선 기획 당시 주어진 두 개의 도시라는 공통 과제 등의 창작 배경이 있으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목차

첫숨
작가의 말

작가 소개

배명훈

2005년 「Smart D」로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작소설 『타워』,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 『총통각하』, 중편소설 『청혼』 『가마틀 스타일』, 장편소설 『신의 궤도』1, 2, 『은닉』 『맛집 폭격』, 동화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등이 있다. 2010년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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