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양장)

이청준 전집 26

이청준 지음 | 김선두 그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11월 6일 | ISBN 9788932021461

사양 변형판 138x212 · 30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역사의 어둠이 지운 개인 삶의 가위눌림,

기억과 체험이 덧씌운 부끄러운 죄의식과 무력감을 넘어

다시 견딜 만한 생으로 일궈나가는 자기 생령의 씻김질

 

<이청준 전집> 26권 『흰옷』(문학과지성사, 2015)은 1993년 『문예중앙』 겨울호에 최초로 발표되고 이듬해 단행본(열림원)으로 출간된 이청준의 열두번째 장편소설이다. 그의 여느 작품들처럼 『흰옷』 역시 인물과 주요 사건의 공간적 배경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데, 정서적인 면에서는 <남도 사람> 연작과, 주제의 방향에서는 중편 「가해자의 얼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씻김굿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장편 『춤추는 사제』와 연결되고 그 외에도 노래와 풍금, 여선생과 같은 주요 소재와 인물 요소가 단편 「여선생」 「돌아온 풍금소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되거나 고스란히 들어 있어 작품간 서로 영향을 끼친 과정을 따라 읽는 재미가 작지 않다.

특히 이 소설의 제목인 ‘흰옷’은 제례에 어울리는 옷을 가리키며 작품 속에 제관인 황동우의 옷과 굿판에 해당하는 버꾸농악놀이를 연희하는 아이들의 옷이 모두 흰색이다. 백제문화제를 제례로 치르는 『춤추는 사제』, ‘역사 씻기기’라는 씻김굿이 벌어지는 『신화를 삼킨 섬』에도 등장하는 흰색은 바로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나 신관, 혹은 무녀가 입는 의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6.25전쟁을 직접 겪은 아버지(세대)와 역사 풍문의 형식으로 전란을 접할 수밖에 없는 아들(세대) 간의 대립과 불화 관계가 장편 『흰옷』의 말미에 펼쳐지는 한 판의 굿, 위령제가 핵심 소재면서 동시에 주제인 것이다. 작가 이청준은 이 위령제를 『신화를 삼킨 섬』의 씻김굿과 더불어 “다 같이 생자와 사자 간뿐만 아니라, 생자와 생자들 간의 현세적 삶의 화해와 구원을 지향한 민족 공동의 신앙 양식”으로 승화시키는 데 이른다.

 

“그 숙명처럼 어쩔 수 없는 제 삶의 아픔 끌어안기와 그 아픔 함께 아파하기, 혹은 대신 아파해주―졸작『흰옷』은 그런 데서 숙성된 우리 정서의 미덕과 민족 화합의 문제를 함께 유념하면서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방법적 측면에선 「서편제」의 정서에 많이 의지해 있지만, 주제의 방향은 1991년에 씌어진 중편 「가해자의 얼굴」의 그것을 이어 풀어나가려는 쪽일 것이다. 「가해자의 얼굴」은 우리 민조의 분단과 좌우대립 이념갈등 등의 문제들을 극복, 해소해나갈 정신적인 자세로서, 자기회복과 보상욕구로 인한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자세보다는 자기참회와 용서, 화해를 구하는 마음가짐으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넘어설 수 있는 가해자의 자세를 지녀봄 직하지 않으냐는 소견이었던바, 이번 『흰옷』에서는 그 가해자의 자리에서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행해나가야 할 것이가를 풀어보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청준, 작가의 말 「아픔 속에 숙성된 우리 정서의 미덕」(1993. 10)에서

 

내 몫의 인생, 개인의 삶이라는 역사

『흰옷』에서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황종선의 개인적 기억은 그의 개인사일 뿐 아니라, 황씨 집안의 현재를 있게 한 기원이자 한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개인사가 당연히 가족사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은,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는 언제나 서로 맞물린 것이라는 사실과,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기록이 어긋나 보일 때에도 실은 상호보완적이리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아버지 종선 씨의 무형의 기억이 아들 동우의 정돈된 언어의 도움으로 형태를 갖추어가면서, 개인의 스토리는 공적 히스토리를 복구하는 데 기여한다.

 

“전 그분들의 순수한 열정, 어떤 부정한 세력이나 힘의 간섭에도 흔들림이 없이 내 나라 내 민족의 미래를 제 힘으로 일으켜 세워나가려 한 그 꿋꿋하고 고결한 주체적 의지와 헌신적 실천력, 그런 것들 때문에 그분들과 함께한 아버지의 그 시절이 진정 값지고 자랑스러워 보인 겁니다. 그 시절엔 참으로 그런 뜨거운 열정과 헌신적인 실천력의 고양이 필요했고, 그것만이 이 민족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힘 있게 담보해나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 그런 뜻에서, 그토록 힘들고 고귀한 삶의 자세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좌익이든 무엇이든 어떤 유력한 사상적 지표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저는 비록 그분들이 그 좌익사상을 신봉하고 의지했다 하더라도 어느 면 그것이 불가피하고 무방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pp. 67~68, {2. 바람의 신화})

 

해한의 서사씻김질

과거 한국인의 삶을 상처 입힌 좌우 이념의 대립은, 이청준의 소설에서 이념 너머의 “순수한 열정” 혹은 ‘예술’이라는 가치를 통해 극복된다. 사상, 이념, 체제, 전망 등 공적 정치성에 입각한 기존의 관점들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예술, 정열, 젊음, 희망 등 개인적 결심에 의한 태도로 대체 가능하다. 이청준의 <남도 사람> 연작을 통해 우리는 이미, 작품에 등장하는 ‘남도 소리’가 마음속에 한을 쌓고 맺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맺힌 한을 풀어 넘어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노래도 소리와 마찬가지이다. 노래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죽지 않는 기억처럼 삶을 더 단단히 묶을 때, 노래는 사슬이 된다. 그래서 꿈이 노래를 잃어버리면 사슬이 되고, 혁명이 사랑을 잃으면 폭력이 되고 마는 게 개인의 삶이고 역사의 단면이라고 이청준은 거듭 말한다.

 

“이곳은 한때 그 방진모 선생님이나 이열 교장, 전정옥 선생님 같은 분들이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젊고 뜨거운 열정을 바쳤던 곳이 아닙니까. 억누르는 자와 억눌리는 자,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가 없이 만민이 함께 잘살고 값진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주적 민족국가, 지금까진 이토록 무심히 버려져 삭막해 보이기만 하지만, 이곳은 바로 그런 독립국가 건설의 신성한 꿈과 숨결이 밴 이 땅의 사람들의 소중한 성지가 아니겠습니까. [……] 비록 그분들의 꿈은 당시의 제국주의 외세와 반민족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아직까지 그 열매를 거두지는 못했지만요. [……] 그렇다고 그 분들의 주체적 민족주의, 그 자주적 사회주의의 숭고한 이념은 오늘에 와서까지도 조금도 빛을 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땅이 더욱 자랑스럽고 그분들의 이름이 자랑스럽습니다.“(pp. 153~54)

 

작품 속으로

“망자들은 망자의 길을 가게 하고, 생자들은 제 생자다운 세월을 살게 하고…… 그리고 저 아침 풀잎 같은 고운 아이들에겐 저들에게 더 잘 맞는 저들의 노래 속에 소복보다 더 고운 옷을 입고 고운 춤을 추게 하고, 그래서 이쪽이고 저쪽이고 이제는 이 산하가 온토의 저들의 행복스런 춤판이 되게 하고…… 저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소망이요, 꿈이니께. 저들이 이젠 이 땅의 내일의 모습이니께…… 그러니 참으로 고맙고 부끄럽구나. 그동안도 저들은 저렇듯 ㅊ힘차고 곱게 자라주고 있었으니. 우리의 꿈은 옛날에 실패했으되, 그 꿈이 저들에게서 저렇듯 다시 스스로 내일의 문을 얼어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져가고 있으니……” (p.273)

 

해설

『흰옷』은 지난 한 시기를 역사적 사건들의 시간으로서보다 인간(개인)적 의미의 시간으로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통해 시간 혹은 역사의 가치를 더욱 긍정하려는 서사다. 결국 인간에게 시간이란 “이 땅에 발을 딛고 땀 흘리며 살아 낸 세월”에 다름 아닌 것, “내 몫의 인생살이, 누추한 대로 그간 내 땀과 소망을 묻어온 세월의 소중한 흔적”으로서 가치 있다는 것이다. ―백지은, 정형화된 ()스토리다른 역사성을 위하여중에서

목차

차례
1. 잃어버린 서장 7
2. 바람의 신화 45
3. 젊은 교장과 여선생과 풍금 98
4. 꿈꾸는 벽화 140
5. 노래의 사슬 183
6. 버꾸농악으로 씻기다 223

해설 정형화된 (히)스토리―다른 역사성을 위하여 / 백지은 278
자료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 이윤옥 298

작가 소개

이청준 지음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이제 우리들의 잔을』 『흰옷』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신화의 시대』 등이,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가면의 꿈』 『자서전들 쓰십시다』 『살아 있는 늪』 『비화밀교』 『키 작은 자유인』 『서편제』 『꽃 지고 강물 흘러』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이 있다. 한양대와 순천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한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7월, 지병으로 타계하여 고향 장흥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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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그림

1958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제7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단에 데뷔하였고, 제12회 석남미술상과 제3회 부일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1992년 금호미술관 첫 개인전 이후 1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자문 및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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