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김도연 지음
발행일: 2010-08-09
사양: 145*210, 212쪽
ISBN: 978-89-320-2067-9
정가: 9,000원
    2010년 제4분기 우수문학도서

열다섯 살의 죄와 벌, 그리고…

삼십 년 뒤에 쓰는 목․련․꽃․반․성․문

 

“오백 매짜리 반성문? …중학생한테?”

■ 책 소개

 

한번쯤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살았던 과거가 있지 않은가? 김도연 작가의 장편 성장소설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반성문을 빙자한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을 빙자한 반성문이다. 그의 넉살 좋은 입심은 어느 순간 삼십 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독자들을 죄의식 속에서 방황하는 열다섯 살 소년의 심정으로 만들었다가, 또 어느 순간 사제 간의 애틋한 정으로 아련히 젖어들게 만든다. 인상 깊은 제목의 이 책은 투병 중인 선생님과의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삼십 년 만에 쓰는 ‘500매짜리 반성문’ 이야기이다. 소설가가 된 화자는 30년 전인 중학교 2학년 시절,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표절을 했던 벌로 반성문 500매를 써서 제출하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생(生)이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에게 연재하듯 써 보내는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과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현재의 이야기가 이 소설을 구성하는 두 축을 이룬다.
묵직한 제목에 비하면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경쾌하고 빠르게 읽힌다. 그렇지만 그 여운은 깊고 길다. “내가 훔쳐온 건 원고지로 한두 장 분량”에 불과하다는 변명과 “예술이 커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사이에서 방황하던 열다섯 살 소년에서 “지병 같은 ‘불안’을” 달고 사는 소설가로 성장하기까지, 그리고 “글을 쓰는 한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조건의 최전선에서 싸울 것”이라 다짐하는 현재까지……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이 가 다다른 성찰은 김도연 작가의 문학관이자 인생관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의 말미에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까지 반성문을 챙기”시는 선생님의 현재 모습과 “글과 교직을 원활하게 맞바꾸는 조건으로 지장까지 찍는 수모를 당하고 […] 소설을 팔아먹”었던 엄혹한 시절의 선생님의 과거 모습을 목도할라치면 “그 울분” 때문에라도 자세를 바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려나 독서를 하는 내내 삼십 년 전의 추억들은 목련꽃 그늘처럼 아스라하고, 삼십 년을 뛰어넘는 사제 간의 정은 봄비처럼 애틋하게 스민다.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김도연 작가가 쓴 첫번째 성장소설이며,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청소년으로부터 일반 성인 독자들까지 경쾌하고도 여운 깊게 읽힐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아주 독특한 형식의 성장소설을 완성한 셈이다. 그의 500매짜리 고해성사(실제 소설 원고는 539매이다)는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하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인터넷에서 글이나 영상들을 퍼 나르는 작금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터다.
김도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실 나의 첫 교내 백일장 응모 작품도 어느 학생잡지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절반쯤 훔쳐온 것이었다”면서, 그 사건으로 인해 “그 후로…… 오래……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나는 괴로웠다”고 고백한다. “내 마음을 내가 오래 공들여 가꾸지 않고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그때껏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내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않고 목청 높여 울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버릇이 됐다는 것이다.”
눈 많은 대관령에 기거하며 인근의 조그마한 도서관에 출근하듯 나가서 소설을 쓰는 김도연 작가의 문장은 일찍이 산문집 한 권(『눈 이야기』)에도 오롯이 엮였듯 밤새 소리도 없이 두텁게 쌓이는 눈(雪)을 많이 닮았다. 하여 순순하면서도 우직한 그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눈 쌓인 겨울나무가 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툭 부러지듯 심금을 울리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표절을 했던 죄의식 때문에 어린 시절을 잊고 지내던 한 소설가가 옛 스승을 만나 ‘장편 반성문’을 쓴다는 독특한 발상은 물론이고,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유년의 오래된 기억이라든지 시골 소년으로서의 열등의식, 그리고 미술반 여학생과의 아련한 추억들…… 더구나 이 모든 반성문을 ‘나’와 ‘아내’가 마치 아나운서처럼 해설자처럼 치고받는 익살과 마주할라치면 누구라도 아련하게 사무치는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득한 미래를 관조하며 그 기다림의 통과의례를 묵묵히 겪어내는 고3 정미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 「진부의 송어낚시」 또한 일독을 권하는 수작이다. 이 작품은 웹진 ‘문장’이 운영하는 청소년 사이트 ‘글틴(http://teen.munjang.or.kr/)’에 발표(2010년 2월)되었던 작품으로, 여전히 흐리기만 한 얼음구멍 속의 물을 들여다보며 송어가 낚이기를 기다리듯, 암울해 보이는 미래를 겪어낼 수 있는 용기를 그 안에서 찾는다는 한 상징을 잘 보여준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송어를 향해 “고마워” “그냥 고마워!”라고 독백하는 정미의 마음은 독자들에게도 또렷하게 전해질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 작품 줄거리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소설가인 나는 간암으로 투병 중인 선생님을 삼십 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왜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느냐는 꾸중을 듣는다. 언뜻 떠오르지 않는 기억 속을 헤매던 나는 선생님과의 연이은 만남을 통해 삼십 년 전, 중학교 이학년이던 시절과 마주친다.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아니 어쩌면 잊고 싶었던 바로 그 시절의 중심에는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학생잡지에 실렸던 누군가의 글을 조금 훔쳐 썼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표절을 한 벌로 반성문 500매를 써서 제출하겠다고 선생님과 약속을 했던 것이다. 소설가가 되어 살고 있는 현재와 중학교 이학년이던 삼십 년 전을 오가며,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에게 연재하듯 써 보내는 500매짜리 반성문. 그 반성문을 통해 나는 대관령 시골을 벗어나 도회지로 전학 가고 싶었던 소년의 마음과 웅변의 시대를 지나치며 방황했던 기억, 여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표절과 반성문’이라는 ‘죄와 벌’로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학생잡지에 실린 그 글을 모두 오려내고 싶었던 죄의식을 지나 마침내는 절에까지 들어가 반성문을 쓰기 위해 고뇌하던 열다섯 살의 기억들을…… 그리고 500매의 반성문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내가 발표해왔던 소설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선생님이 결국 생의 끈을 놓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통해 1980년대 엄혹했던 시절에 선생님이 겪었던 ‘부끄러운 죄의식’을 목도한다.

진부의 송어낚시
나, 열여덟 살 고3 정미는 수능 시험을 보다 말고 수험장을 뛰쳐나와 지금은 진부의 송어축제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그리고 송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얼음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사연들을 보고 들으며 자신이 진정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응시하는 중이다. 마치 송어낚시꾼들처럼. 그러나 송어는 좀체 잡히지 않고…… 선생님은 내게 문예창작학과를 소개해준다. 얼음구멍 속의 물은 여전히 흐리고 송어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속을 들여다보며 “고마워” “그냥 고마워!”라고 말한다.

 

 

■ 작품 속으로

반성문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백일장에서 내가 남의 글 일부를 훔쳐와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적이 없는 척, 어린 시절의 일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여겨온 뻔뻔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변명으로 일관된 자위를 거듭하는 동안 나는 서서히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선홍의 꽃들은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25쪽)

“꿈을 꾸면 그 글의 원작자가 찾아와 내게 해명을 요구했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온갖 이유를 다 끌어와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어.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어. 어느 날은 학교까지 찾아왔어. 전체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나를 가리키더니 자기 글을 훔친 도둑이라고 몰아붙였어. 운동장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손가락질로 나를 가리키며 야유를 보냈어.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었어. 결국엔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려워졌으니까. 꿈에서 깨어나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 길을 걷다가 누가 등이라도 툭 치면 깜짝 놀라곤 했으니까.” (29쪽)

“자, 삼십 분 남았으니 이제 슬슬 정리해라.”
삼십 분? 선생님, 잡념 속에서 부리나케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아직 제목밖에 써놓지 않았으니까요. 바로 그때, 언젠가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이 선명하게 떠올랐지요.
눈보라 치는 시골 정류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얼굴이 눈처럼 흰 소녀. 그리고 저만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마을의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노인의 장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당연히 나의 이야기라고 믿어버리고 말았지요. 이윽고 소녀는 버스를 타고 떠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진 한 장. 소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들어 있는. 그 사진을 간직하는 나.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 분명 지난겨울 내가 겪은 이야기라고 확신하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펜을 잡은 오른손은 그동안 제목만 써놓은 채 비어 있던 원고지 위를 택시처럼 질주했습니다. 두어 번 정도 잠시 숨 돌리는 시간만 제외하고서. 심지어 글을 모두 쓴 뒤에는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을 도둑질했다는 기억조차도 깡그리 잊어버렸다면 믿으시겠는지요. 다시 읽어보아도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글을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저는 유유히 강당을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헤실헤실 웃으며.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거라고 자부하며 교정의 시멘트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지요. (98쪽)

선생님, 아무리 주변의 죄와 벌을 떠올리고 헤아려봐도 반성문 500매보다 가혹한 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저도 매를 맞거나 정학을 당하는 게 속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요. 하루에 열 장씩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써도 50일이나 걸리는 반성문. 50일 동안 남의 글을 훔친 사실을 떠올려야 된다는 것.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선 안 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 500매를 채우려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 전체를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지 오기 때문에 저는 한숨 박사가 되었지요. 반성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에 한숨 외에는 달리 대답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한숨을 쉬며 수학 문제를 풀고 다른 학생들이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 한숨을 쉬며 박수를 쳤지요. 선생님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고 돌아서면서 한숨을 쉬었지요. 운동장에서 굴러가는 공을 쫓아 달려가다가 돌연 멈춰서 휴우 숨을 토했답니다. 이십 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교문 앞에서 한숨을 쉬고 들어섰지요. 수업이 모두 끝나고 먼지 날리는 교실을 빗자루로 쓸다가, 수건을 들고 이층 창틀에 매달려 입김을 호호 불다가 바람이 빠지는 자루처럼 주저앉곤 했답니다. (124~25쪽)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국어 선생님 결정이 옳은 것 같아. 시험 때 커닝하는 것과 글을 커닝하는 건 나도 다르다고 생각해. 글은…… 예술이잖아.”
예술? 저는 그 애의 입에서 나온 ‘예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함박눈은 다시 침묵을 요구했지요. 정류장 밖의 미루나무는 점점 지워지고 있으니 그 뒤편의 논과 밭, 집, 개울, 산 들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예술이 커닝이어서는 안 된다! 알 듯 모를 듯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예술이란 낱말 하나가 세상을 덮는 눈발 속에서 오롯이 떠오르는 토요일 오후의 정류장이었지요. (158~59쪽)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저의 글이 어딘가에서 무엇인가에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선생님 말씀처럼 그 모든 것이 전적으로 그동안 쓰지 않고 버틴 반성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필시 가장 핵심적인 곳에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할 것입니다. 백일장에서 다른 이의 글을 훔쳐온 사실과 부닥뜨리지 않으려고 그동안 피해 돌아다닌 게 사실이니까요. 그뿐입니까. 살아오면서, 글을 쓰면서, 어떤 벽과 마주칠 때마다 그 벽을 뚫고 나갈 각오를 하는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다리를 찾는 게 버릇이 되었지요. 스스로 애써서 한 낱말, 한 문장, 한 이야기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차선책에 눈독을 들이다가 결국 손을 잡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지금 여기까지 간신히, 겨우, 구사일생 도착한 겁니다. 운이 좋아도 엄청 좋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저와 함께 동행을 하겠습니까. 언제 마음을 바꿔 먹고 떠나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것 때문에 늘 불안해하면서도 저의 게으름은, 나약한 마음은, 그 벽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걸 피해왔던 겁니다. 그때, 중환자실의 침상에서 참다못한 선생님께서 결국 저를 부르신 거지요. 마지막 회초리를 든 채. (173~74쪽)

 

■ 작가의 말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실 나의 첫 교내 백일장 응모 작품도 어느 학생잡지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절반쯤 훔쳐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 상을 계기로 장차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내심 꿈꾸었는데, 한편으론 도둑질이 발각될까 봐 되게 불안했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이 되자 그 글은 교지에까지 덜컥 실렸다. 전교생들이 한 권씩 가져가는 교지에. 그렇다고 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칼을 들고 교지에 실린 글을 몰래 잘라낼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 많은 전교생의 집을 일일이 방문한단 말인가. 결국 나는 내가 가져온 교지의 그 부분만 잘라냈다. 일단 내 눈이라도 가려야만 했기에.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의 글 도둑질은 발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래……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나는 괴로웠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사실 살아오면서 나는 그 일을 잊으려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아무 일 아니라고, 애써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지만, 그때도 나는 뭐가 잘못된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남의 글을 훔친 사실이 들통이 나고 안 나고, 반성문을 쓰거나 벌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내가 도둑질한 글은 반성문의 울타리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을 내가 오래 공들여 가꾸지 않고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그때껏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내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않고 목청 높여 울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버릇이 됐다는 것이다.

무서웠다.

이 소설은 그러했던 내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쓴 목련꽃 반성문이다.

그리고 「진부의 송어낚시」가 있다. 나처럼 비겁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에 낚싯대를 들고 얼음구멍 앞으로 담담히 걸어간, 내 조카처럼 어여쁜 정미의 송어낚시 이야기다. 비록 그 겨울 내내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손이 시리고 발가락이 곱아오는 가운데도 송어의 마음을 얻으려는 정미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들의 송어낚시는 오래 계속될 것이다!

 

2010년 여름
대관령에서
김도연

김도연

소설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강원일보와 경인일보 신춘문예, 그리고 2000년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산문집 『눈 이야기』 등이 있으며, 제3회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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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2010년 제4분기 우수문학도서, 문학과지성사 도서 5종 선정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선정하는 <2010년 제4분기 우수문학도서>에 문학과지성사 도서가 선정되었습니다. 시 2종, 소설 1종, 아동청소년 2종, 총 5종이며 각 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에 없는 집』 [선정평] 곽효환 시인의 두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은 길 위의 시편들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열하기행’ 연작이 그렇거니와 고원 도시, 라이프치히의 교회, 하디사의 작은 마을, 황토고원 등등 그의 [...] 자세히 보기 » _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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