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시적 현실에 공감하는 대화적 비평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강계숙의 첫 문학평론집 『미언』(문학과지성사, 2009)이 출간됐다. 2002년 창비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단에 나온 저자는 지난 7년 동안 동시대, 동세대의 문학과 긴밀히 호흡하며 읽고 써온 평문들 가운데서, 특히 2000년대 이후 출현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과 그들의 내면 풍경에 주목한 글들을 추려 이 책에 묶고 있다. 표제이자 각 장의 말머리에 해당하는 ‘미언’의 각기 다른 호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문학적 인식론과 비평의 책무를 밝히는 한편, 2000년대 이후 뚜렷한 시적, 언어적 개성으로 한국문학을 일신해가는 젊은 시인들의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갈구하는 전혀 ‘다른 서정’의 차원과 새로운 의식, 윤리, 감각의 전이 혹은 확장에 아낌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언’(迷言/未言/美言/微言/謎言)으로 시도되는
비평과 텍스트의 대화, 그리고 미래의 그림
저자는 서문을 통해,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시인들, 흔히 신인류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언어에 몹시 당황하고 두려웠으며, 독자와 평자보다 앞서 나가 있는 그들의 시적 표정과 몸짓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바깥’과 자기 시대의 무의식, 이념, 정신 등을 ‘오로지’ 작품을 매개로 성찰하고 공감을 표하는 비평적 시선과 태도가 스스로에게 절실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른바 “미래로부터 현재를 응시”하는 갈급한 독서와 글쓰기 는 주목받는 30대 신예비평가로 동시대 문학에 집중하는 강계숙의 비평의 요체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미완성’ ‘미정형’으로도 읽히는데, 이 책의 제목으로 저자가 주저 없이 ‘미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헤매는 만큼 그들의 말을 더듬는 나도 헤맸고, 그들이 미완(未完)인 만큼 나의 언어도 미숙했다. 그들이 빠진 미궁에서 나 또한 어지러웠으며, 그들의 걸음이 힘찬 만큼 나의 글쓰기도 수줍지 않길 바랐다. 창피함과 두려움과 무력함을 오가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흥미로움 속에서 나는 그들을 읽었고 궁금해했다. [……] 비평집의 제목을『미언』으로 붙인 것은 이 때문이다. 수수께끼에 가까운 말(謎言), 나를 미혹게 하고 매혹시키기도 한 말(迷言), 미래의 어느 때엔가 완성될 말(未言), 그렇기에 작고도 아름다운 말(微言/美言), 그리고 그 모든 말과 함께 숨 쉰 나의 말…… 비평의 대상이었던 텍스트와 그 텍스트로부터 길어 올린 나의 언어가 지닌 특성을 두루 통칭할 단어로 ‘미언’만큼 적당한 것은 없는 듯싶다.” (p.11)
서정의 변신―‘다른 생을 윤리’하는 시와 시인들,
미학적 전복, 인식의 전복, 진정한 혁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새로운 형식은 더 이상 예술적이지 않은 옛 형식을
해체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형식은 그것이 문학 형식 안에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어떤 경험의 내용을
앞서 형성해줌으로써 사물의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H.R. 야우스,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문학과지성사, 1983), p.213
1장과 5장은 비평가로서 자신의 문학적 인식, 비평적 입론에 대한 글을 묶고 있다. 시(예술)의 현실은 사실로서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언어화되는 ‘사건’을 다루는 것, 즉 ‘사건화’ 과정 자체를 의미하며, 따라서 언어화 과정과 언어화된 ‘사건’ 사이의 미적 정합성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바로 보고자 함이 비평의 자리라고 밝히고 있다: “문학적 인식과 상상력이 비판적 성찰의 한 형태로서 여전히 유의미한 사회적 작업의 하나라면, 탈-유토피아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문학 세대들은 어떤 ‘다른’ 전망과 견해와 이념을 궁구하고 있는지, 그것의 새로운 정치성은 무엇이며 어떠한 스타일을 그것을 구체화하는지를 탐색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평가로서의 책무이자 자기 세대의 문학적 족적을 확인하고 공감하고 증언함으로써 그에 동참하고자 하는 비평 의식의 최소한의 자기 실천이다. 그러므로 나의 문학 세대를 향해 던지는 모든 질문은 곧 나 자신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화두이기도 하다.”(p.384)
2, 3, 4장은 그러한 우리 시의 현주소를 개별 텍스트를 통해 세세히 밝히는 작품과 작가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제 갓 한두 권의 시집을 상자한 젊은 시인들(김행숙, 김경주, 김민정, 최하연, 이승원, 이현승, 박진성, 김중일, 이장욱, 하재연 등)을 대상으로, 주체 분열을 자기 반영하는 실험적 언어, 이질적 감각의 운동 혹은 그 발견, 기존의 시학을 해체하는 새로운 형태와 스타일, 관습적 상징체계 너머로 질주하는 미적 전위의 역할, 실재로의 과감한 도약, ‘다른’ 서정(시)의 생성 등으로 가득한 그들의 내적 풍경을 읽어내고 있다. 동시에, 그들이 펼쳐 보이는 다채로운 시적 모험이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삶의 경험과 아직 채 인식되지 못한 그것의 의미를 동시대의 문학적 최전선에서 가장 현재적이고 당대적인 의의를 가지고 ‘앞서’ 직관한 결과물”이라고 명명하는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의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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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글을 묶고 보니, 여러 글에서 ‘윤리’라는 화두가 눈에 띈다. 글을 쓸 당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자문(自問)이 다시금 중요하게 대두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무)의식이 나에게도, 젊은 시인들에게도 깊이 침윤되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이 글 속에서 대화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공감의 비평을 수행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에 자주 입론화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텍스트 읽기가 비평가의 고민이 자의적으로 투사된 형태가 아닌지 의구심을 낳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상투적인 반영론적 잣대를 작품에 들이대지는 않았으며 주제론적 접근보다는 새로운 윤리학의 대두가 스타일의 창출과 어떻게 내적으로 연관되는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한편으로 ‘윤리’ 문제를 의식적으로 언급한 까닭은, 비평 또한 미래의 독자에게 시대의식의 한 소산으로, 유의미한 계보학적 자료로 텍스트화된다고 할 때, 새로운 시의 출현이 당대의 정신과 어떻게 상호 연동하는지를 해명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내 글이 남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언에 부쳐」에서
[목차]
미언에 부쳐
迷言
쿨의 시학
서정의 변신―최근 시의 내면 풍경
‘다른 생을 윤리하는’ 시와 시인들
인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비평의 선제(先制)에서 공감의 비평으로
未言
냉염(冷焰/冷念)의 시인 MC S1, 회색의 도시를 ‘Diss’하다 ― 이승원의 시
무궁(無宮/無窮)의 꿈, 카산드라 콘체르토 ― 최하연의 시
‘병시(病詩)’의 시학 ― 박진성의 시
늑대는……, 사라진다 ― 이현승의 시
두 겹의 저녁 시간 ― 김중일의 시
프랑켄슈타인-어(語)의 발생학 ― 김경주의 시
美言
형안(炯眼)의 귀―정현종론
환(幻)의 순간, 초월의 문턱―최정례론
기억의 힘―박형준론
감각의 아나키즘―김행숙론
微言
불타는 얼음의 언어 ― 김영래의 『하늘이 담긴 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검은 나나 ―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는 듣는다, 바다의 숨소리를 ― 이세기의 『먹염바다』
매향리에 가보지 못한 뒤 ― 최영철의 『그림자 호수』
‘악한’ 눈의 거세 ― 배용제의 『이 달콤한 감각』
謎言
그대 아직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웹진
선정의 말_강계숙 「그럼 무얼 부르지」는 ‘광주’라는 기표의 상징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상투성’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민중항쟁의 거대 서사이기 때문에, 비극으로 점철된 사건이기 때문에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광주’는 엄숙하고 처절하게 밤낮을 새워 이야기하든 아니면 거꾸로 무언의 장막을 [...] 자세히 보기 » _ 2011.12.02
진실은 불편한 법이다. 그것은 행복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아니다. 김이설의 소설에서 맞닥뜨리는 불편함은 행복의 반대편을 직시하도록 우리를 돌려세우는 진실의 효과를 여지없이 입증한다. 가령 이런 형태로. 단란한 가정,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부모 자식,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어려울 때 힘이 되는 형제자매, 행복하고 즐거운 나의 집 등등, 우리가 ‘가족’의 개념으로 믿고 있는 [...] 자세히 보기 » _ 2011.09.01
감춰진 가족 서사를 통해 은밀한 욕망의 축도(縮圖)를 때론 우스꽝스럽게, 때론 섬뜩할 만치 무섭게 해부하는 김태용 소설의 특장은「머리없이 허리없이」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말의 상징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는 효과를 전쟁 현장 그 자체로 구현함으로써 ‘서사 없는 전쟁서사’를 의도했던 전작과 달리,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아버지를 만나고자 고국을 찾은 입양아 ‘스미스―영복’의 가족 서사와 [...] 자세히 보기 » _ 2011.06.02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는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논리”, 즉 사람은 누구나 여자 아니면 남자라는 구분이 결코 참 명제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성적 소수자로 불릴 유진에게, 그러나 이 ‘소수자’라는 명칭은 다수의 정상을 가정하고 그에 포함되지 않는 자를 분리하는 표지라는 점에서, 성적 구별 짓기로서의 또 다른 폭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은 폭력의 외적 [...] 자세히 보기 » _ 2011.04.01
[주간문학리뷰] 한없이 낮고, 비루하고, 어처구니없는ㅡ김엄지,「삼뻑의 즐거움」
「삼뻑의 즐거움」(『문학들』, 2010 겨울호)의 주인공 ‘영철’은 여느 날처럼 하우스에서 두 번이나 ‘뻑’을 싸고 돈을 날린 채 집에 돌아와 왜 너구리를 끓였느냐며 아들 ‘팔광’을 닦달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싸는 일뿐만은 아니지만, 유독 싸는 것에 있어서 약하다고, 영철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 싸지만 않았어도……!” 귀찮게 아들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 후회한다. [...] 자세히 보기 » _ 2011.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