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7회 - 1995

오규원 /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선정 개요

금년도의 제7회 이산문학상 수상자로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의 시인 오규원씨가 선정되었음을 반가운 마음으로 알린다. 지난 7월 중순, 영문학자 이상옥, 평론가 김치수, 김인환 등 본심위원들이 이러한 합의 결과는 우리 시단의 중견이면서 새로운 실험적 수법을 통해 타락한 시장 자본주의와 기능적인 현대 문명의 양상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오규원씨가 이제 그 시선을 돌려, 자연과 사물에 대한 현상학적 응시를 가함으로써 얻어낸 존재에 대한 선적(禪的) 투시를 정교하게 언어화한 그의 시적 작업을 높이 평가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심사위원들의 노고와 함께, 뒤늦게, 그러나 정당한 시각으로 이 상을 받게 된 오규원씨에게 축하를 보낸다.서, “한자 한자 생각하고 또한 주저하면서 쓰는 피흘림 속으로 몸을 던지려 한다”는 작가의 수상 소감에 박수를 보낸다.

오규원

수상자: 오규원

작품: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수상 소감:

『시경(詩經)』에는 소공 희석(召公 姬奭)을 칭송하는 「감당(甘棠)」, 그러니까 우리말로 옮기자면 「팥배나무」라는 시가 있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그 전문을 다음과 같이 옮겨놓고 있었다.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소백께서 쉬시던 곳이니
(폐불감당 물전물벌 소백소발[蔽 甘棠 勿塞勿伐 召伯所 ])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 전부터 한 그루 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한 인간이 그 밑에서 자주 ‘존재’를 부풀리며 머물던 나무라고 한다면, 그가 소공(召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특히 그가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 우거진 나무의 가지와 잎은 모두 그 존재의 언어이었을 게 아니겠는가?

이산(怡山)의 산야(山野)에도 그가 그 밑에서 머물던 나무가 보인다. 그 나무는 새가 “굴리는 방울 소리에/ 잎사귀가 둥글다가/ 그만 길쭉해지는” 그런 잎을 가진 존재이다. 잎의 몸이 둥글다가 그만 길쭉해지는 것을 보면, 그 나무는 ‘방울 소리’를 알고, 또 ‘방울 소리’를 들을 줄 안다! 그리고 더욱, 그 나무는 “사람이 묻히는” 산 “그 곁에서” 자란다! 작품집을 보면 그 나무는 그가 「풀잎에 앉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나무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사실 그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런 나무가 있다는 사실, 그런 나무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나는 그러한 눈으로, 그 이름 모르는 이산(怡山)의 나무 곁에서 한동안 거닐며 머문다. 벌써 2주째 계속되는 7월의 장마비가 뜸해진 그 사이에서.

작가 소개:

본명은 규옥(圭沃). 1941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1981)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1995)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두두』(2008, 유고시집)과 『오규원 시 전집』(전2권, 2002) 등이 있다. 그리고 시선집 『한 잎의 여자』(1998), 시론집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날이미지와 시』(2005) 등과 시 창작이론집 『현대시작법』(1990)이 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7년 2월 2일에 작고했다.

이산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