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6회 - 1994

최인훈 / 화두(2권)

선정 개요

본사가 운영하고 있는 이산문학상의 여섯 번째 수상자로 『화두』의 최인훈씨가 결정되었다. 20년 동안의 침묵 끝에 지난 봄에 두 권으로 상자한 이 작품은 여러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의 고통스런 현대사를 더불어 살면서 이제-이곳의 문제적 정황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집요하게 수행해온 작가의 성실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폭넓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 기록을 통해, 『광장』의 이 작가는 우리의 이념적, 현실적 고민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 시대의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지식인으로서의 관찰과 사유의 방식을 제시하고 작가로서의 상상력의 근원과 글쓰기의 태도를 드러내는 뛰어난 문학적 의미를 성취하면서 소설이라는 더없이 열려 있는 장르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역작을 일구어놓은 것이다.

최인훈

수상자: 최인훈

작품: 화두(2권)

수상 소감:

올해 8월이면 우리 민족이 반세기에 걸친 일본군 점령에서 벗어난 지 만 49년이 된다.
그리고 이 시간은 우리 민족의 국토가 분단된 시간이기도 하다.
20세기는 이제 5년을 남겨놓고 저물어가려고 한다.
우리 민족이 분단된 원인을 제공한 세계적 정지 세력의 자체 붕괴가 있은 지도 이제 3년째 되어간다.
우리 국토의 북쪽에 실재하는 정치 체제를 그 출발에서부터 지배한 한 인물이 얼마 전 사망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 태양계의 가장 큰 혹성인 목성에 혜성의 파편들이 충돌하는 우주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가 생활하는 시대의 ‘거대 지표’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보통 생활자의 직접적인 생활 감각이나 지배 범위에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보통 생활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거대장에서의 거대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보통 생활자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해버릴 수 없는 세계-그것이 20세기다. 적어도 나의 감각으로는 그렇다.

인류 역사상 이런 ‘지표’들은 모두 영웅이나 천재들이 주로 관심 가질 사항이었다. 그들이 예언하고, 선택하고, 지도해야 할 사항들이었다. 영웅과 천재들의 달력과 비망록 속에서 가장 절실한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는 이런 사항들이 보통 사람들의 일기장과 아침에 받아보는 일간 신문의 생생한 사건들이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는 위치가 ‘거대’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책임이 덜 하거나, 영향받는 바 덜하다고 하기 힘든 시간-그것이 20세기다. 적어도 나의 감각으로는 그렇다.

20세기의 초입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기에 대해서 특별한 인상을 가지고 언급하면서 그들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지구가 비로소 공간적으로 단일한 지리적 환경이 되고, ‘현재’가 지구 위에 사는 인류 모두에게 동질적인 것이 되었다는 강렬한 느낌을 가졌다고 그들은 인식하였다. ‘그들’이란, 정치가, 군인, 과학자, 예술가, 실업가들을 말하는 것인데, 20세기에는 통신 수단의 대약진으로 이런 시대적 분위기가 보통 대중인 농민, 노동자, 학생들에게도 곧바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20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을 만큼, 인류로서의 자신들의 역량에 큰 자부심과 낙관론을 가지고 생활을 바라보게 되었다. 20세기에 일어난 대변혁들은 대부분 이 낙관론의 마그마가 도처에서 분출한 대폭발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은 인류사적으로 유례없는 이 낙관론과 자각의 시대에 정치적 ‘집단’으로서는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불리한 운명의 사슬에 묶이면서 20세기에 진입하였다. 외국 군대가 이 세기의 전반부 50년에 걸쳐 우리 국토를 점령하고, 20세기의 희망과 기회를 우리 민족의 땀과 피를 거름삼아 그들의 번영과 모험을 위한 자원으로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인류사적인 대역량과 가능성과, 민족사적인 대불행의 복합적인 지배-이것이 아마 20세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을 규제한 모순인 듯싶다.

20세기에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걸음걸이는 실제 그러했던 것보다 좀더 합리적이고 좀 덜 낭비적인 모양새로, 말하자면 직선에 가까운 방식으로 움직이리라는 예감을 가졌던 듯싶다. 그러나 회고하는 이 시점에서 보면 실제로는 그것은 직선이기보다 나선형에 가까운 듯하고 그것도 가끔 뒤로 돌아가기도 하는 역나선형에다, 상하좌우로 일탈도 하는-후진과 일탈을 동반한 나선 운동이었던 듯싶다. 이 나선 운동의 어느 지점과 방향에 자신의 행동이 위치하고 있는가는 이 세기의 첫 무렵에 사람들이 생각한 만큼 판단이 쉽지 않다.

이것은 대단히 착란적인 상황이다. 낙관과 비관이 2분적으로 나누어졌더라면 얼마나 편리했겠는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은 생활자에게 환상과 절망을 동시에 주었다. 어느 쪽을 강조해도 그것은 바른 인식이 아니었고, 바르지 못한 인식에서는 예상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20세기를 이제 몇 해 남겨놓지 않는 이 시점에서도 20세기의 두 얼굴은 마치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의 얼굴처럼, 천사의 얼굴처럼 우리를 착란과 희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듯싶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대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살다 보니 나에게 가장 손에 익은 방법은 ‘문학’이라는 돛대에 자기 몸을 묶는 일이 이 소용돌이를 벗어나는-적어도 직시하는-길이었다.
‘화두’는 그러한 항해자의 기록이다.

작가 소개: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다.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집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주요 작품으로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제1회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회색인』이 영어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현재 서울예대 명예교수로 있다.

이산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