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2회 - 1990

이청준 / 소설 / 자유의 문

최승호 / 시 / 세속도시의 즐거움

신경림 / 시 / 길

선정 개요

제2회 이산문학상 수상작이 결정되었다. 시 부분은 이색적으로 두 권이 공동 수상케 되어 신경림씨의 『길』과 최승호씨의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리고 소설 부문은 이청준씨의 『자유의 문』으로, 지난 1년 동안의 발표작 중에서 여섯 분의 본심위원과 예심위원의 성실한 선고로 이루어진 이 결과는 90년대 들어서는 오늘의 우리의 인식론적 세 흐름을 보여주는 주목할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학적 성취들이다

이청준

수상자: 이청준

장르: 소설

작품: 자유의 문

수상 소감:

좋게 말해 이제는 그 엄숙하고 과중한 문학적 책무에서 벗어져 내 나름대로의 정직한 말과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될 듯싶다.

이런 내 처지에 이번의 수상 결정 소식은 나를 몹시 어색하고 당황스럽게 할 뿐 아니라, 이 글을 쓰는 데에는 더욱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다름아니라 이번 결정은 소설에 대한 내 앞서와 같은 생각들, 그리고 나의 앞으로의 삶과 문학 전반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각오를 다그치는 뼈아픈 충고로 받아들여지는 때문이다.

하여 나는 다시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아직도 용기가 남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로 하여 누군가의 발길에 나의 삶 자체가 걷어차일 수도 있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유와 사랑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고 있는 문학이 배타적인 싸움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그 값을 더욱 빛낼 수 있는 길을 없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숨은 값을 찾아 밝히고 그 빛을 더해나가는 데에만도 그 한 생애가 너무도 짧았던 나의 고우(故友) 김현이 낭비 없는 문학의 방법은 어떤가. 나의 소설에서 새로 보여질 정의나 사랑은 내가 과연 진심으로 신봉하고 자신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일 것인가. 이 시대에 대해 데데한 증거나 남기기 위한 자기 속임수의 명분 놀음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 소설이 이제는 개개인의 삶이나 창조적인 개성의 고양과 확대에서보다 만인의 만인을 위한 전면적 진실의 우렁찬 합창 속에 더욱 큰 값을 발휘하게 된 시대의 도도한 흐름 속에 아직도 작은 것이 늘 소중스러워 보이기만 한 내가 어찌 감히 그 압도적인 소설의 요구를 감당해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어느 것 하나 해답이 그리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러나 나는 아마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엔 내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괴로운 대로 그럭저럭 내 식의 글쓰기를 계속해나가게 될 것이다.
그 괴로움이 나를 아예 실어증으로 질식을 시켜버리기 전에는 말이다.

작가 소개: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이제 우리들의 잔을』 『흰옷』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신화의 시대』 등이,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가면의 꿈』 『자서전들 쓰십시다』 『살아 있는 늪』 『비화밀교』 『키 작은 자유인』 『서편제』 『꽃 지고 강물 흘러』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이 있다. 한양대와 순천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한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7월, 지병으로 타계하여 고향 장흥에 안장되었다.

최승호

수상자: 최승호

장르: 시

작품: 세속도시의 즐거움

수상 소감:

장마는 해마다 있는 일이나 우울과 근심은 날마나 있는 일이다.
유난히 무덥고 긴 장마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 『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낸 이후 한동안 시를 멀리하고 있던 터에 접한, 생각지 못했던 소식이어서, 내심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긴장이 되기도 하였다.

낮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영원하지도 않은 시를 쓰느라 늦은 밤까지 눈을 껌벅거리다 보면, 결국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오고,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이번의 상을 앞으로도 시의 정진을 위해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시의 죽비 같은 것으로 여길 생각이다.

다만 수상 소식을 적으면서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여윈 말의 털이 길어지듯이 내 번뇌가 날로 무성해지고 있고 그것을 시에 담고는 있지만, 세상이 탁악 시대로 휩쓸려가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무력감과 안타까움 속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까닭이다.

작가 소개:

1954년 춘천에서 출생, 춘천교육대를 졸업하고 사북 등 강원도의 벽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7년 「비발디」로 『현대시학』지의 추천을 받고 시단에 데뷔한 그는 1982년 「대설주의보」 등으로 제6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첫 시집 『대설주의보』를 간행했다. 주요 시집으로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신경림

수상자: 신경림

장르: 시

작품: 길

수상 소감:

제 시는 그들에게서 삶의 진실을 배웁니다. 제 시는 그들에게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봅니다. 또 제 시는 그들에게서 들풀과도 같은 싱싱한 힘을 얻습니다. 저는 제 시 역시 그들 속에 들어가 뒤엉켜 살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시에 의해서 그들의 감춰져 있던 삶의 가치가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또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 그들을 졸로 부리고 도구로 사용하는 잘난 사람들로부터 이니셔티브를 되찾는 데 제 시가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 시가 그들을 이끌 힘이 있다고 저는 감히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도한다는 건방진 생각 따위는 애당초부터 제게는 없었고, 또 그것이 제 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도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제 시는 그들을 만나고 찾아가 그들 속에 뒤섞여 살면서 기쁨과 슬픔과 아픔을 함께할 때 제 시도 기쁨과 힘이 넘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를 쓰는 일이 제게는 언젠가부터 기쁨이 된 것입니다.

시를 쓰는 기쁨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시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시를 가지고 사람을 찾아가기만 할 뿐 아니라, 제 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시가 하는 일이 사람을 갈라놓고 자르고 헤어지게 하기보다, 제 시가 얼마나 이 일을 해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시가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같은 엄청난 모순과 갈등이 소용돌이치는 사회에 있어 오히려 시는 반드시 창이 되고 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때 무기의 개념을 저는 창이나 칼이라는 물질적 개념에 한정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창이 되고 칼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물질적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개념의 창이고 칼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시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지 않습니다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아우르게 하는 일도 작으나마 무기로서의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입니다.

작가 소개: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옴.
1973년 첫시집 『농무』를 간행한 이후 『새재』(1979), 『달 넘세』(1985), 『가난한 사랑노래』(1988), 『길』(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등과 장시집 『남한강』(1987)을 간행함.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4년 제8회 단재문학상 수상.
그외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이해』(1981, 공저),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민요기행』 1·2(1985, 89),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음.
엮은 책으로는 『한국 전래 동요집』 1·2(창작과비평사 1981) 『한국 현대 시선』 1·2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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