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7회

나희덕 /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수상자: 나희덕

작품: 사라진 손바닥

수상 소감:

종소리가 맑지 않은 것은 _나희덕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막 세우려는데 수상을 알리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 도로 위에 부서지는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 땡볕 속을 달리고 있었는데, 잠깐 동안의 휴식이 서늘했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야 하는 노릇에 대해 적지 않은 피로와 공포를 느끼고 있던 터였습니다. 니체가 현대인을 세 개의 M―Moment(순간), Meinungen(여론), Mode(유행)―에 혹사당하고 있는 노예에 비유했듯이, 오늘의 작가들이 처한 창작 조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마치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는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운전자 자신이 아니라 앞차와 뒷차의 속도인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게 쫓기며 살아온 시간들이 언제부턴가 굉음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집 원고를 넘긴 후로 거의 일 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한 것도 그 굉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쓴 시가 세상에 소음을 보태는 일 외에 다른 소용이 있는 것일까 싶었지요. 그런 저에게 수상 소식은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저 햇빛 속으로 나가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오래전 화엄사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범종 근처로 모여들었습니다. 범종 곁에는 젊은 승려가 종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긴장이 되는지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종소리가 그리 맑지도 깊지도 않았습니다.
종을 치는 승려의 젊은 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해서일까.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너무 많고 가까워서일까. 종의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간 것일까. 햇빛이 너무 밝아서일까. 종소리와 종소리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일까. 그도 아니면 종소리를 듣는 내 귀가 지나치게 박한 것일까. 종소리와 종소리 사이에 서서 그 이유를 이리저리 헤아려보았습니다.
제대로 맑지도 탁하지도 못한 저의 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들을 가져다 대봅니다. 세 개의 M, 또는 수많은 눈에 노출된 저의 시 쓰기 역시 그 젊은 승려의 곤혹스러움과 닮아 있는 듯합니다. 내 안으로 더 간곡하게 마음을 모으지 못한다면, 종소리와 종소리 사이의 허공을 좀더 깊이 파지 않는다면, 저 익명의 시선들 앞에서 종소리는 힘없이 흩어지고 말 거라는 두려움도 따라옵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지불하고도 남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산문학상을 이어오신 선배 작가들을 떠올리면서, 그 끝자리에 제 이름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과분한 영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황혼기에 더 빛나는 시를 썼던 이산 선생님을 떠올리며 시인이란 삶을 통해 거듭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걸 되새겨봅니다. 그분들이 지켜오신 문학적 위엄과 이산문학상의 정신을 흐리지 않도록 마음의 종줄을 더 단단히 잡겠습니다.

작가 소개:

시인 나희덕은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와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산문집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산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