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6회 - 2004

김영하 / 오빠가 돌아왔다

선정 개요

예심 위원들은 이산문학상 심사 요강에 따라 2002년 6월 이후부터 2004년 5월 말까지 출간된 소설들을 검토한 결과, 그 가운데 19권의 장편소설 및 중단편 소설집들을 예심 통과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작년에 시 부문에서 수상자를 뽑았기 때문에 올해에는 소설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지난 2년 동안 발간된 창작집들을 예심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예심 결과는 6월 29일 오후 12시에 열린 본심 회의의 첫 모임에서 본심 위원들에게 보고되었습니다.

본심 위원들은 19권의 예심 통과작들 가운데서 1차 심사 대상작으로 7권을 가려낸 다음 개별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개별 심사 기간을 거쳐, 7월 16일 오후 12시에 열린 결심 회의에서 본심 위원들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습니다.

심사평

「현실과 병치시킨 ‘허방’의 영역」_이청준
김영하의 소설은 상식적 현실 규범 영역에서는 이해하거나 설명하기가 좀 힘들어 보인다. 그것은 비루한 상투성과 윤리 의식에 가려진 삶의 맹랑한 허방들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가출한 이십대 아들이 십대의 동거녀를 데리고 들어오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비를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패 굴복시키고, 때로는 가족 나들이란 명색의 억지 춘향식 주말 외식 행사까지 치르는 따위의 ‘오빠가 돌아왔다,’ 볼썽사납게 우람한 나체를 드러낸 채 수영 욕장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자 조연의 ‘너를 사랑하고도,’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의 이충무공 동상을 ‘친일 조각물’이라 외쳐대며 일제 말기 금괴와 함께 침몰한 ‘보물선’ 인양 사업에 매달리는 한 젊은이의 백일몽들은 일상적 상식과 가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숨겨진 삶의 허방의 모습이다.

김영하의 소설이 큰 마음 부담 없이, 그러면서도 매우 유쾌하게 읽히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싶다. 그것은 정색을 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 삶의 무거운 가치 영역이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는 하되 잠시 가볍게 웃고 구경하다 피해 지나가면 그만일 듯싶은, 그래서 윤리적 자기 검열의 책임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탈상식, 탈윤리의 비일상적 경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그 특유의 무애(無碍)한 눈길(반어법적 문학 수사!)과 상상력으로 일견 지나친 허풍이나 비틀기로 보일 만큼 현실적 주류 질서 경계 바깥의, 혹은 그것에 가려 숨겨진 우리 삶의 허방의 영역을 천연덕스럽게 병렬(竝列) 혹은 병치(竝置)시켜놓는 식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의식 공간에서 우리 각자의 삶의 허방과 이 사회의 병적 징후들을 허심탄회하게 목도하게 만든다.

나는 감히 이를 우리 소설의 한 재활의 숨결로 읽고 싶다. 사실주의 전통에 충실하려 애써온 우리 소설은 지금까지 늘 유용한 현실 윤리의 틀 안에서 그 현실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고 짐져 나가려다 종당엔 기진맥진 감당 불급 상태에 빠져든 마당에, 짐짓 삐뚜름하게 비켜선 김영하 상상력의 반규범적 병치의 세계는 무엇보다 우리 정신의 자유와 권리를 부질없이 간섭함이 없을 뿐 아니라, 그로 하여 믿어 의심치 않아온 우리 세상살이의 참모습을 보다 명징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육신을 떠난 혼령이 허공에서 남루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듯이.

수상을 계기로 그의 소설 여행길이 더욱 넓고 자유롭고 힘 있게 열려나가기를 빈다. _소설가

「개성과 설득력을 겸비한 작가, 김영하」_조남현

성석제의 장편역사소설 『인간의 힘』은 주인공을 정사(正史)의 맥락으로 끌어들이려는 의욕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머지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서술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성석제는 작가가 어떤 소설 유형에서든지 자기 능력을 마음껏 구사하기는 어려운 법임을 일깨워주었다. 김유택의 장편소설 『보라색 커튼』은 상호텍스트성의 모범적 사례라고 할 정도로 힘들여 쓴 흔적이 역력했지만, 작가가 기대한 만큼의 공감을 사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화자와 주인공의 미분화가 이런 결과를 빚어낸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윤흥길은 『낙원? 천사?』의 모든 수록 작품에서 주인공을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는 작가적 습성을 드러내고 있다. 냉정한 통찰력을 찾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수록 작품들은 윤흥길의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차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하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설 양식은 독자들이 호기심과 긴장감을 갖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야 감동의 지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초시대적인 이치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요즈음 소설에서는 내용의 무게와 관계없이 하회(下回)에 궁금증을 갖게 하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종 매체가 이야기를 쏟아내는 현실에서 독자들을 계속 호기심으로 몰아넣는 소설을 쓰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는 작가의 초기 소설들에 비해 코믹 터치나 몸의 기호학에 덜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아직은 작가나 화자가 직접 나서서 작중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정색을 하고 비판하거나 의미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작가 자신은 희극적 인물이나 상황을 제시하면서도 독자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수상의 근거가 된 ‘개성과 설득력의 겸비’가 앞으로도 계속 작가 김영하를 떠받쳐주길 바란다. _문학평론가

「신세대 소설의 윤리성」_홍정선

문학에서 세대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산문학상을 심사하면서 이 질문을 내내 머릿속에 떠올렸다. 1930년대에 기성세대인 유진오와 신세대인 김동리 사이에서 소위 ‘언어불통설’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에 몇 차례의 크고 작은 불화와 대립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정이현의 소설과, 김영하의 소설과 불화와 대립을 겪고 있는 것일까? 정이현의 소설은, 김영하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소설에는 전 세대 작가들이 지녔던 튼튼한 서사성과 윤리 의식이 흐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소설을 흥미 있게 읽으면서도, 내면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이산문학상의 심사는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에 대한 객관적 검토의 과정인 동시에 나 자신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소설은 독자들에게 결정된 정치적 행위나 윤리적 가치를 드러내놓고 설교하면 안 된다. 그것은 소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소설은, 채만식의 뛰어난 작품들처럼, 그것들이 은밀하게 함축된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가운데 독자들이 자연스레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심사를 통해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그 점을 새로이 발견했다. 그야말로 시종일관 막돼먹은 인간들이 펼치는 막돼먹은 행동에서 건강한 집안을 만들기 위한 의식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단번에 만장일치로 수상자가 된 김영하에게 축하를 보낸다. _문학평론가

예심평

지난 2년 동안 발간된 소설집과 장편소설 가운데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산문학상’이 ‘작품’에 대해 주어지는 영예라는 점을 고려했다. ‘세대’를 포함하여 작품들의 다양한 제도적 ‘소속’의 문제를 괄호 치고, 작품 자체의 문학적 성취도와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선별하려고 노력했다. 검토할 만한 대상이 된 소설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고, 그 안에서 우리 소설 문단의 생산성과 그 다양한 문학적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차례의 논의를 거쳐 마련된 소설 목록들은 최근 한국 문학의 의미 있는 성취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목록이 지난 2년간의 한국 문학을 전적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안에는 한국 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할 수 있는 여러 문학적 요인들이 숨쉬고 있다. 몇 년간의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예심 위원들은 한국 소설이 지나치게 자신의 장르적인 전통에 고립되어 있고 그 문법적 획일성을 고수하고 있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런 측면이 한국 소설을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주목한 것은 한국 소설의 문법적 획일성을 돌파할 수 있는 화법들의 다양한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소설적 기획들은 단순히 소설 언어를 새롭게 한다는 측면을 넘어서, 소설이 새로운 문화적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소설 장르의 문화적 위치를 제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문학상은 문학의 과거에 부여되는 영예가 아니라 문학의 미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예심 위원들은 우리의 선정 작업이 가지는 문학적 의미를 스스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 목록이 한국 소설의 가능성을 예감하는 의미 있는 자료의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본심 대상작으로 추천된 소설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고종석_『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
김경욱_『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문학과지성사)
김연수_『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문학동네)
김영하_『오빠가 돌아왔다』(창비)
김원우_『객수산록』(문학동네)
김유택_『보라색 커튼』(문학과지성사)
박상륭_『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문학동네)
방현석_『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성석제_『인간의 힘』(문학과지성사)
신경숙_『종소리』(문학동네)
윤대녕_『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
윤흥길_『낙원? 천사?』(민음사)
은희경_『상속』(문학과지성사)
이윤기_『내 시대의 초상』(문학과지성사)
이혜경_『꽃그늘 아래』(창비)
정이현_『낭만적 사랑과 사회』(문학과지성사)
정 찬_『베니스에서 죽다』(문학과지성사)
최 윤_『마네킹』(열림원)
최인석_『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창비)

김영하

수상자: 김영하

작품: 오빠가 돌아왔다

수상 소감: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마침 새로운 장편에 착수하여 꽤 들뜬 상태였다.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처음으로 입을 떼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던 참이었다. 아직 그 세계에 푹 빠지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낯을 익혀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순간에 수상의 소식을 들으니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오래전에 소원해진 형제의 출세 소식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횡재의 소식 같기도 했다. 이미 여러 달 전에 내놓은 책이고 또 그 책은 여러 해 동안 쓴 소설들을 묶은 책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시간이 좀 흐르자 가슴속에선 따뜻한 기운이 뭉클거리며 올라왔다. 책을 꺼내 다시 더듬어보았다. 남들이야 뭐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세번째 소설집이 되는 이 『오빠가 돌아왔다』를 은밀히, 내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삼고 있었다. 사교에 빠진 이단자들이나 별 인기 없는 가수를 연모하는 어린 팬처럼, 내 편애의 근거는 희박하나, 그러나 그렇기에 더 완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설픈 완강함에 이제 균열이 생긴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이런 말을 남겼다. “Xn+Yn=Zn: n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훗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게 될 이 글 때문에 수백 년간 수학자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너무도 간단한 정리에 대한 너무도 길고 지난한 증명. 과정은 다르지만 나는 가끔 문학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도 간단한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발을 들여놓지만 평생이 걸려도 그 ‘간단한 그 무엇’의 실체도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문학에는 나름의 ‘증명’을 최종적으로 추인할 그 누구도 없다. 그렇지만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류 보편의 문제일 그 어떤 것과 씨름한다는 점에서 나는 세계의 수학자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뉴욕의 한 지하철역에는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한다. “Xn+Yn=Zn: n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탈 지하철이 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 적을 만한 시간이 없다.” 수학에서는 이런 ‘뻥’이 통하지 않을지 모르나 문학에서는 허용된다. 모든 작가들의 마음속에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미 증명한 정리들이 있을 것이고 아직 그것을 적을 시간이 없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말할 배짱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배짱으로 기쁘게 이 상을 받는다. 미처 추인이 끝나지 않은 증명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신 심사위원들께, 그리고 자기만의 골방에서 평생의 과제와 대결하고 있을 내 문학적 동료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작가 소개:

1995년,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첫 장편으로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수상하였고 새로운 감수성과 열린 시각, 분방한 상상력, 그리고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1999년에는 단편 <당신의 나무>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국내 주요 출판사 편집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21세기 한국 문학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작가’로 가장 많이 손꼽힌 바 있다. 그는 현재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현대문학>>과 문학 웹진 <<컬티즌>>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 프랑스어판, 1998)<<호출>>(1997)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1999), 영화 산문 <<굴비 낚시>>(200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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