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4회 - 2002

서정인 / 용병대장

선정 개요

예심 위원들은 이산문학상 심사 요강에 따라 2000년 6월 이후부터 2002년 5월 말일까지 출간된 소설들을 검토한 결과, 그 가운데 19권의 장편소설 및 중단편 소설집들을 예심 통과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작년에 시 부문에서 수상자를 뽑았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올해에는 소설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지난 2년 동안 발간된 창작집들을 예심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예심 결과는 6월 17일 오후 12시에 열린 본심 회의의 첫 모임에서 본심 위원들에게 보고되었습니다.

본심 위원들은 19권의 예심 통과작들 가운데서 1차 심사 대상작으로 4권을 가려낸 다음 개별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개별 심사 기간을 거쳐, 7월 15일 오후 12시에 열린 결심 회의에서 본심 위원들은 서정인의 『용병대장』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습니다.

이산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서정인의 『용병대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온 꾸준한 실험 정신의 연장선 위에서 씌어진 매우 독특한 형식의 역사소설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역사적 소재를 취했으면서도 역사소설의 장르적 관습에 도전하면서 역사라는 지식 체계가 지닌 인위적이고 매개적인 본질과 그 본질의 은폐 과정을 재현해내고 있는 작품의 탁월한 성과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에 본 위원회는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심사평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김원일)

젊은 작가들의 제 주장 분명한 색깔 고운 소설들을 읽다 오랜만에 우리 작단의 기둥에 합당한 중진 작가 네 분의 소설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은 현란한 수사로 언어를 재미있게 다루지만 변별성이 잘 감지되지 않는 데 비해, 네 분의 작품은 이름을 가리더라도 누구 글인지 금방 알 만한 나름대로의 개성미가 드러나 흐뭇했다. 체험의 공간이든 형식적 실험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진부한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진지한 문학성과 성실한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용병대장』은 독서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난해한 작품이다. 근대로 들어서는 서구 문화의 부흥기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무대로 용병의 활약상을 그린 특이한 소재의 실험적인 역사소설이다. 권력의 음모와 부패, 타락한 교계 지도층, 그 사이에서 줄 대기에 여념 없는 기회주의적인 지식인과 수사, 성주와 교계 사이에서 아첨하는 예술가들, 비굴하고 교활한 민중, 또 한 무리의 냉정한 현실주의자적인 용병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누비며 활약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평화와 풍요 속에 문화와 예술이 꽃핀 시대라는 상식적인 견해를 뒤엎는 이 소설은 절대적 권력과 현세의 부를 좇는 부나방들의 명예와 몰락, 타락과 음해 과정을 독특한 서술 방법으로 재현시켰다. 시대가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 만큼 서술 또한 요약한 연대기식에서 요긴한 대목만을 압축적인 대화로 재현시켜 장면을 이끌어간다. 작중인물들의 경구적인 대화를 통해 어느 시대나 있을 법한 ‘꿈꾸는 이상보다 실리를 챙기는 현실의 냉혹함’을 읽을 수 있었다.

판매고로 대중을 추수하는 문학이 있다면, 감식안에 훈련된 소수의 독자들에게마저 세심한 독해력을 요구하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에 대해서는 상의 영예로 이를 보답함이 마땅하다 하겠다. 문학적 연치와 관계없이, 『용병대장』은 오늘의 한국 소설을 가늠하는 한 정상으로 읽었다.

「철저한 실험 정신, 탁월한 역사 의식」(김치수)

금년도 이산문학상 심사 대상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예년의 심사 기준과 관례에 맞는 작품을 고르다 보니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4권의 단편집 혹은 장편소설이었다. 더위 속에서 4권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작가들이 기울인 노고를 생각하면 소설 읽기 자체가 고통스런 즐거움이었다.

서정인의 『용병대장』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읽기 힘든 작품이다. 서양의 역사에서 문예부흥이라 번역하고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용병대장들의 시대로 바꿔 읽고 있는 이 작품은 문학 예술가들이 이룩한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면에 있던 용병대장과 군인들, 귀족들과 종교인들, 권력자와 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 투쟁과 전쟁, 음모와 침략, 부패와 타락, 전사와 순교의 현장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당대에 실존했던 무수한 인물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이름만으로 등장시키면서도 개개의 인물의 개성과 사회적 위치와 역사적 역할을 재구성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철저한 실험 정신과 역사를 꿰뚫고 있는 탁월한 역사 의식과 그것을 연작으로 엮을 수 있는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드물게 보는 역작이다. 돈과 권력으로 이탈리아를 빛내고자 하는 용병대장들과 거기에 상응하는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교회, 그 두 지배 세력 밑에서 종교적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수사들과 권력에 물든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을 대담한 생략과 풍자적 문체로 독특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집은 작가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탐구 정신의 결정으로 보인다.

줄거리 중심의 쉬운 소설이 상업주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문학이, 특히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고자 하는 이 작품집은 작가가 평생 동안 지속해온 노력의 한 산물이라고 보인다. 이 작품은 힘든 읽기에 기울인 노력만큼 읽고 난 다음에는 겉으로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에 가려진 역사의 이면을 알게 하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금년도 이산문학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평가되었다. 이 작품집이 그 전편에 해당하는 『말뚝』과 함께 묶이지 않은 것과, 「불타는 집」 「대화」 같은 작품들이 함께 묶여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작품집으로서는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으나 그것이 이 작품집의 문학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상을 축하한다.

「난세에 던진 문학적 물음」(최원식)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 목록에서 심사 위원회는 이제하(李祭夏)의 단편집 『독충』, 서정인(徐廷仁)의 연작소설집 『용병대장』, 김성동(金聖東)의 장편 『꿈』, 그리고 복거일(卜鉅一)의 장편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복거일의 소설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독후(讀後)의 느낌은 조금 허망했다. SF풍을 비롯한 다양한 의장을 도입했음에도 그 근본 메시지는 뜻밖에 통속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불륜은 불륜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모두 옹호하는 이 소설을 읽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난 것은 웬일일까?

육순(六旬)의 소설가 이제하는 아직도 젊다. 작가는, 사람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오래지만 여전히 중요한 주제를 사실주의 문법을 넘어서 일종의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실험적 기법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실험은 미완이다. 나는 오히려 이 단편집에서 실험적 기법에서 가장 먼 표제작 「독충」이 인상적이었다. 해방에서 6.25에 이르는 격렬한 이데올로기의 계절에 애인과 아비를 잃은 두 여성의 굴절된 삶을 착잡한 시각에서 그려낸 이 단편에서 나는 이제하의 숨은 일면을 발견하였다.

김성동은, 해방 직후 조신몽(調信夢)을 다시 쓴 이광수(李光洙)의 『꿈』을, 새 세기의 입구에서 또다시 쓰고 있다. 악몽을 기록함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염원하는 이 ‘다시 쓰기’를 통해 작가가 오랜 슬럼프에서 해방된 것을 나는 진실로 기뻐한다. 그런데 작품으로서는 손색이 있다. 특히 우리 작가들의 취약처, 연애를 그리는 데 있어 이 작품도 센치하다. 창작으로 복귀하는 재입사식(再入社式)을 훌륭하게 치러낸 김성동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는 마음 크다.

소설 읽기가 얼마나 고역일 수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서정인의 『용병대장』은 아주 특이한 연작소설집이다. 그는 여기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뒤집어 보여준다. 근대의 새벽을 연 위대한 예술적 천재들의 시대로 찬미되던 르네상스 대신, 권력에의 의지와 부(富)의 추구가 노골적으로 결합하면서 현출된 마키아벨리적 난세(亂世)가 마치 지옥의 묵시록으로 펼쳐진다. 그는 왜 새삼 지금 르네상스 시대로 소급하는가? “세상이란 예나 이제나 어차피 장삿속”이란 언급에서 보이듯이, 작가는 자본주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이 ‘지옥’ 속에서 문학과 예술을 한다는 일의 의미를 근본적 차원에서 묻고 있다. 르네상스와 오늘의 한국을 연결하려는 의도가 너무 센 첫 두 편이 뱀다리에 가깝고, 전반적인 환멸의 취향이 이산(怡山)이 만년에 도달한 큰 긍정의 정신에 비할 때 약간 염려스럽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집이 최근 한국 소설이 거둔 최량의 성과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결코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용병대장』의 수상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예심평

먼저 지난 2년 동안 발간된 소설 창작집들을 검토하는 일이 예심 위원들에게 다소 버거운 일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소설의 위기 운운하는 말들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발간된 책들의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작품들을 검토하는 예심의 버거운 과정은 곧 소설에 대한 작가들의 의욕과 왕성한 필력을 확인하는 즐거운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본선 심사작으로는 다소 많은 양인 19권의 창작집을 추천하게 된 것은 예심의 대상이 된 작품들의 고른 수준을 반영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가 시작된 후 최근까지 발간된 소설 창작집들의 거의 대부분을 심사 대상으로 삼게 된 이번의 예심 과정은, 새로운 연대 초입에 나타난 소설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조감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문단 안팎에서 끈질기게 떠돌았던 문학의 위기와 죽음이라는 망령은 많은 사람에게 소설이 짊어지게 될 미래의 운명에 대한 불안한 예감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예심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소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위기일 뿐 적어도 소설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진 작가들이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있고, 중진 작가들은 꾸준히 자기 문학의 영토와 역량을 갱신해나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전 우리 문단의 풍토에 비추어 보면 조로(早老)에 해당하는 연배의 작가들이 지속적이고도 두터운 작품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의 경향 또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같이 개별 작가의 작품들을 특정 시대의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문학 경향으로 아우르는 일정 유형의 범주화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주류적인 가치 체계의 혼란 상태를 반영하는 현상이면서, 동시에 개체화된 실존의 바탕 위에서, 세계의 허위를 진단하고 그 속에서의 진정한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작가들의 문학적 행보가 그만큼 자유롭고 풍요로워졌음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산문학상 예심의 자리는 우리에게 우리 소설의 건재를 확인하는 의미있는 자리였음을 밝힌다. 본심 대상작으로 추천된 창작집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김성동_ 『꿈』(창작과비평사)
김영하_ 『아랑은 왜』(문학과지성사)
박범신_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창작과비평사)
박성원_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배수아_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이룸)
백민석_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문학동네)
복거일_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문학과지성사)
서정인_ 『용병대장』(문학과지성사)
성석제_ 『순정』(문학동네)
신경숙_ 『바이올렛』(문학동네)
윤후명_ 『가장 멀리 있는 나』(문학과지성사)
이승우_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이제하_ 『독충』(세계사)
정영문_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문학동네)
조경란_ 『코끼리를 찾아서』(문학과지성사)
천운영_ 『바늘』(창작과비평사)
최수철_ 『매미』(문학과지성사)
하성란_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창작과비평사)
한강_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서정인

수상자: 서정인

작품: 용병대장

수상 소감:

덕분에 변명 가능한 ‘제멋’
이산 선생의 시를 고등학교 때 배웠다. 선생을 기리는 상을 타게 되어서 기쁘다. 나는 그 상이 시와 소설을 번갈아, 매년 시상되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우리나라에 문학상들이 몇 개나 되고 그것들이 대개 어떻게 누구에게 수여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주로 3, 40대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진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재능을 발굴하고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은 모든 상의 중요한 기능일 것이다. 젊어서 못 탔으면 말지 굳이 늙어서 타는 것은 발견보다는 위로 같아서 상의 본질이 퇴색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재주가 일찍 꽃피면 스물다섯에 요절하고도 불후의 작품을 남길 수도 있고, 늦되면 예순에 쓰기 시작해서 중요 시인이 되는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호메로스를 좋아해서, 정년 퇴직을 한 다음 원어로 그것을 읽으려고 희랍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옛날 한 철학자가, 그때는 다 그랬겠지만, 라틴어와 희랍어에 어렸을 때부터 능통했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속상하고 창피했지만, 어떤 시인은 쉰인가 예순 넘어서 고대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기분으로 산다.

사람이 제멋대로 세상을 살면 우스꽝스러울 수가 있을 것이다. 남 보기에 어리석은 것은 괜찮은데, 사실이 터무니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 개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공해가 될 것이다. 이번에 상을 탄 작품은 종이 값은 떨어뜨렸지만, 약간은 공론이 있었다. 물론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어렵다고 그것을 안 읽어버리는 수도 있겠지만, 5, 6백 년 전, 수륙 몇만 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만큼 쉽게 소리 나지 않는다고 해서 어렵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심리와 인물과 경치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해설이 없어서 오히려 쉽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 어려움은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이 시상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졸작을 선정해주신 심사 위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탁월한 문학적 업적을 남기신 이산 선생의 이름에 누가 가지 않도록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이 문학상을 제정 운영하시는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한다.

작가 소개:

1936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털삭 대학교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1962년 『사상계』에 단편 「후송」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소설집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 『철쭉제』 『붕어』 등과 장편소설 『달궁』(전3권), 『봄꽃 가을 열매』를 상자했다. 한국문학작가상(1976), 월탄문학상(1983), 한국문학창작상(1986)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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