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3회 - 2001

김명인 / 길의 침묵

선정 개요

예심위원들은 이산문학상 심사 요강에 따라 1999년 6월 이후부터 2001년 5월 말일까지 출간된 시집들만을 검토한 후, 그 중 14종의 시집을 예심 통과작으로 결정하여 6월 11일 오후 12시 본심 회의의 첫 모임에서 그 결과를 본심위원들에게 보고했습니다. 예심위원들은, 작년에는 소설 부문에서 수상작을 뽑았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올해에는 시집 부문에서 수상작을 가려내기로 합의하고 지난 2년 동안에 발간된 시집들만을 예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본심위원들은 14종의 예심 통과 시집 가운데서 6종을 가려낸 다음, 나머지 8종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17일 간의 개별 심의 기간을 거쳐, 6월 28일 오후 4시에 연 결심 회의에서 본심위원들은 이견 없이 김명인 시집 『길의 침묵』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습니다.

이산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은밀한 파장, 몸과 마음의 감각들의섬세한 결을 관찰하고 조형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재적인 것들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형상화해내는, 세상과 세상 바깥의 경계에 머물며 허무의 아우라를 두르고 있는 김명인의 시집 『길의 침묵』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승인했습니다.

심사평

「시인의 네 싸움터」(황동규)

허수경은, 언젠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을 들으며 CD에 딸린 책자의 초상화를 들여다보다가 그가 왼쪽 귀에 귀고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느낀 것 같은, 섬뜩함을 주는 시인이다. 사실 상상력은 섬뜩함이 들어 있어 상상력인 것이다. 그네는 자신을 모두 던지는 것같이 시를 쓴다. 이번에는 나이테가 많은 다른 시인들의 ‘경륜’에 가려졌으나 언젠가 그네의 섬뜩한 절규가 우리의 마음의 고막을 찢어놓기를 기대한다.

문인수는 지난 이삼 년 전 오십이 넘어 과거의 시 비슷한 시들을 청산하고 ‘진짜’ 시인이 된 시인이다. 오랜 피나는 정진 끝에 도달한 득음(得音)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득음 없이 어떻게 “지리산 앉고,/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채와 북 사이, 동백꽃 진다」) 같은 유장한 창(唱)을 낳겠는가? 그러나 그 창이 얼마나 제 소리를 유지할지는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허만하도 놀라움을 준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과거의 시인으로 생각했다. 그가 첫 시집을 상재한 후 30년 만인 2년 전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냈을 때 나는 그것을 경이로 받아들였다. 경이는 심사를 위해 이 두터운 시집을 종일 걸려 정독했을 때 가장 큰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정독했을 때 그 경이는 많이 엷어져 있었다. 이 기회에 내가 신인이 아닌 시인을 평가하는 틀을 밝힌다면, 문제의 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전통과 어떻게 싸웠는가, 타인(사회)하고는 어떻게 싸웠는가, 자기 자신하고는 어떻게 싸웠는가, 언어하고는 어떻게 싸웠는가이다.

앞에 실린 시 대부분이 미국 체류 중 쓴 것인 듯 스케일이 커졌지만, 그의 전통은 삼십여 년 전 ‘현대시’의 전통이다(다른 동인들은 변했는데 덜 변해서 신선하다). 그리고 타인이나 자기, 즉 삶과 싸운 기록이 적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조용히 쓰러지던/고독한 정신의 높은 수위였다”(「깃털의 冠」), “모래 바람에 묻힌 사랑”(「카이로 일기」), “단 한 번의 순수를 위하여/진흙의 일부로 썩어가는 눈”(「백목련」) 같은 감상적인 멋진 생각의 조각들이 들어가 찬란히 제작된 그의 언어가 겉돌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즐겨 시의 소재로 쓰는 랭보, 고흐, 두보, 카프카, 릴케, 파스테르나크, 베토벤, 포, 던, 박수근 들을 보는 시선도 너무 높은 각도로 고정된 것 같다. 이제 그들 대부분이 세상을 뜬 나이보다 그가 훨씬 더 연륜이 쌓인 삶을 살았으니 그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에겐 정열이 있어서 그 나이에도 앞으로 계속 주목받을 시인이다.

김명인은 한 번 읽고 나서 두번째 읽을 때 제대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타인과 싸운 『동두천』의 ‘쉬움’에서 오랜 세월 후에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어려움’ 속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두 싸움이 섞여 있어, 흔히 그렇듯이 한 줄의 아포리즘을 낳지 않고, 생각의 뭉치들을 낳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은 필경 그런 것이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그 속에서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밖에서도 분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길은 이미 지워졌지만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침묵」의 끝부분

이런 생각의 뭉치들을 가지고 그는 ‘삶의 덧없음’ ‘삶의 삶다움’을 머리나 감각이 아닌 척추로 노래하고 있다. 그 노래는 타인 혹은 자신과의 싸움만을 하는 전통 속에서 그가 개척한 길이며, 동시에 오늘날 자꾸 가벼워지는 언어에 무게를 주는 작업이다. 나는 그가 가벼움도 동시에 가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그가 반드시 져야 할 몫은 아니다. 그가 아포리즘 비슷하게 앞에 한 줄 띄고 단 한 줄로 맺은 「우리도 저 산 가까이 갈 수 있을까」의 끝 행 “모든 얼룩은 이미 제 속으로 결이 환하다”도 뭉치이다. 축하한다.

「고통에서 겸손을 들여다보는 시선」(최하림)

1차 심사를 거친 여덟 권의 시집 가운데서 마지막까지 남은 시집은 허만하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와 김명인의 『길의 침묵』이었다. 나는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이틀에 걸쳐 읽고 사흘째 되던 날 『길의 침묵』을 읽었다. 우리 시도 이에 이르렀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좋은 시들은 읽는 이에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리고 시 자신은 자라처럼 목을 내밀고 은연중에 뽐낸다. 한 시인의 시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개성을 지녀야 하는 법이고, 그 개성을 성취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므로, 뽐낼 만도 한 일이다. 이와 같은 면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에서 여실히 보인다.

허만하 시인은 전란이 일어났던 50년대에 시적 출발을 한 뒤로 부산에 거주해왔다. 그러므로 그는 반세기에 걸쳐 시작을 영위했으되, 주류 시단에서는 저만큼 비켜선 채 홀로 그의 성(城)을 축성했다. ‘허만하류’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층」이나 「바위의 적의」 「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의 시들은 매머드의 울음이 스민 홍적기의 지층에서 은허대(殷墟代), 천산산맥에서 코네티컷 강에까지 뻗친다. 우리 근현대 시사에서는 유례를 볼 수 없이 넓은 공간과 긴 시간을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 시간과 공간, 빛과 색과 소리가 넘치는 언어로 허만하의 시들은 지난해부터 시간을 아연 긴장시켰다.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허만하 시인만큼 광맥의 끝까지 시의 연장을 내리친 시인이 어디 있겠는가.

『길의 침묵』은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와는 다른 길에서 우리 시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이 시집은 구체성의 획득이라는 면에서 한껏 빛난다. 시의 숨결도 보폭도 고르고, 삶이 고통스러운 것, 고통이 허무와 잇닿아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는 사실은, 시들을 씹어 읽을수록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내 안의 생이 까닭 없이 겸손해질 때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겸손과 겸허를 말하고 느낀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가 고통의 역사에서 허무를 보고 있다면, 『길의 침묵』은 고통에서 겸손과 겸허를 본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의 역사에서 허무를 본다는 것과 고통 속에서 겸손과 겸허를 본다는 것은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가까운 것도 아니다. 그 둘은 빛과 색이 다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 또한 책형에 속한다. 나는 책형의 고통 속에서 『길의 침묵』의 책형을 택했다. 책형이 ‘책형’을 택한 셈이다.

「무겁지 않은 ‘길의 침묵’을 위하여」(오생근)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수상작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은 일정한 높이 위에 있으면서도 성격이 다른 두 시집, 허만하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와 김명인의 『길의 침묵』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만하의 시집은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깊이 있는 치열한 탐구력을 동반하면서 어느 구석에도 소홀함이 없는 긴장된 시적 풍경을 형상화한다. 시인은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도 보통의 여행시가 그렇듯이 풍경의 외관에 감탄하거나 직관적인 느낌을 토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풍경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사유와 고민을 정제하고 단련시키는 엄정성을 보여준다. 외국의 시인과 화가에 대한 성찰도 대체로 그와 같은 방법의 과정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실존적 삶에서 빚어진 갈등과 극복의 모습이 시집 속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명인은 『동두천』에서 출발하여 『푸른 강아지와 놀다』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른 시인이다. 그는 『동두천』에서부터 줄곧 자신의 실존적 삶과 이웃의 삶을 관련시켜 사유하면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세계는 현실의 구체성과 일상의 세목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오면서도 그러한 모습 뒤에 감춰진 사물의 본질과 삶의 감춰진 진실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균형 감각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는 섬세한 감각과 완강한 의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균형은 나이가 들수록 흔들리고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버릴 위험이 있다. 가벼운 것은 덜 가벼워지고 무거운 것은 더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에 아직은 건재해 있는 가벼움과 유희성이 소홀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한마디로 신뢰할 수 있는 시인인 것이다.

예심평

지난 2년 간 발간된 시집들을 검토하면서, 우리 시의 상황을 다시 점검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 시는, 최근 몇 년 간 잠행과 위축, 그리고 피로와 권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시장의 각광은 물론 저널리즘의 화려한 조명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는 음지 식물처럼 우리 시가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새로운 전위의 모습이 시에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우울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시에 관한 풍문들로 어지럽혀진 귀를 씻고, 눈 비비고 시 작품 자체를 꼼꼼하고 깊게 읽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우리 시를 읽으면, 시는 어둡고 습기 찬 곳에서 그렇게 안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좋은 시인들이 자기 언어의 정체성을 성실하게 탐구해 나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문학적 성과들이 산출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 성과물들은 다채로운 미학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지만, 대체로 서정시의 문법적인 전통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작업은 우리 시의 미학적 자기 점검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안타까움을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시가 이 변화된 문화적 지형 안에서의 자기 형식의 개방을 좀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방에 참여하는 낯선 시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시에 관한 어두운 풍문들과 그 풍문이 조장하는 권태를 걷어내는 것은 시의 대중성 회복 따위의 구호가 아니라, 시 자체의 창조적 위반의 에너지를 갱신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이산문학상의 심사 과정을 통해 그 시적 에너지의 건재와 가능성을 다시 점검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다음은 본심에 올린 시집들이다.

김명리__『적멸의 즐거움』(문학동네)
김명인__『길의 침묵』(문학과지성사)
김정환__『해가 뜨다』(문학과지성사)
김혜순__『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문학과지성사)
나희덕__『어두워진다는 것』(창작과비평사)
문인수__『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박용하__『영혼의 북쪽』(문학과지성사)
송찬호__『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유 하__『천일馬화』(문학과지성사)
이윤학__『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문학과지성사)
이하석__『녹』(세계사)
정진규__『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
허만하__『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솔출판사)
허수경__『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작과비평사)

김명인

수상자: 김명인

작품: 길의 침묵

수상 소감:

시가 펼치는 감동의 생생한 자리
뜻밖의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한동안 멍해 있다가 시골에 내려가 계신 어머님께 전화부터 올렸습니다. 요즘 들어 즐거운 일이 별로 없으신 어머님과 잠시나마 기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머님은 여름에는 시골집에 내려가 계시다가 겨울이 되면 서울의 제 집으로 올라오십니다. 젊어서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오랫동안 한 집안의 가계를 책임지신 가장의 역할로, 사람 사는 일에 늘 골몰하셨던 어머니. 그러나 지금은 슬하를 다 물리시고 시골집에서 홀로 노년의 외로움을 견디고 계십니다. 한동안 저는 삶의 근원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적막이나 쓸쓸함 따위가 무엇보다 시의 큰 자산이 아닐까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타고난 외로움에 기댄 채 시의 호젓함을 즐기거나, 애써 격절(隔絶)을 자초함으로써 시를 제 고립 가까이 잡아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판단해보면,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시의 맛을 떫게 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제가 기댄 것은 윤곽뿐인 시의 형체여서, 삶의 구체와 거칠게 접촉하면서 드러나는 시적 감동의 참모습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너는 너의 네가 되라”(슈타이너)는 말을 시에도 되돌린다면, 살아가는 구체와 직접 접촉하는 과정 속에서 낚아채는 자기만의 미끈거리는 생을 실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감동은 현실의 대지에서 자라고 그것을 경작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겠지요. 그러나 사실 실존의 외로움에 깊이 침윤된 사람일수록 더욱 쉽게 사람살이의 감동에 빠져듭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전히 시란 감염되기도 하는 외로움처럼, 살아가는 이의 실체적 감동을 확산시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의 감동은 계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체의 드라마를 거느린 실재이며 논리를 뛰어넘어 마침내 폐부를 깊숙이 찔러오는 어떤 개입과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는 어떤 진실과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전율스러운 배합이 확인됩니다.

저는 살아가는 현실의 구체성이 시의 전경에서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시를 사람 사는 일과 분리시켜 그 자체의 테두리 속에 가두려는 여하한 시도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세계를 진정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시의 진로라면, 지금보다 더 확연하게 시는 현실의 중심을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막막하고 서늘한 감동에 이끌려 스스로 시를 써보려고 결심했던 시점에서 서른 해도 더 멀리 흘러왔습니다. 시의 감동이 제 삶에 필연처럼 다가왔을 때, 저는 맹목으로 거기에 투신했습니다. 필생을 던져 돌파하고 싶은 감동의 자리라면 누군들 그것을 쉽사리 회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시가 아니고서는 펼칠 수 없는 감동의 생생한 자리가 지금도 여전하다고 믿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에게 오늘 이 상이 주어지는 것도 현실을 사는 감동의 국면들을 시로써 더욱 넓혀가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마침 이산(怡山) 선생님의 시 한 편이 읽을 때마다 저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가는 사람이 내게서 간다”(「生의 感覺」)보잘것없는 저의 시를 천거해 소중한 상을 받게 해주신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그리고 ‘이산문학상’을 주관하시는 문학과지성사 여러분께 거듭 고마움을 전해 올립니다.

작가 소개:

김명인은 1946년 경북 울진군에서 태어나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東豆川』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꽃차례』와 시선집 『따뜻한 적막』 『아버지의 고기잡이』, 산문집 『소금바다로 가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산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