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2회

황석영 / 오래된 정원

황석영

수상자: 황석영

작품: 오래된 정원

수상 소감:

이웃간의 오랜 정을 생각하며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광남(김현) 형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이가 나보다 두 살 위였으니 그는 고 3 때였지요. 나는 등산반이었고 그는 문예반이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교지나 교내 신문에 시며 산문이며를 발표하면서도 문예반에 들기는 어쩐지 쑥스러웠고 등산반 선배들을 따라서 산에 가면 자유스러워지는 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나는 당시의 규율과 성적으로 얽매인 고등학교 분위기를 마치 감옥처럼 증오했습니다. 학생들 서클반이 꾀꼬리동산이라고 부르던 숲가에 있었는데 판자로 대충 지은 가건물들이었지요. 등산반은 바로 초입에 있어서 교문 쪽에서 훤히 보였기 때문에 나는 주로 담배를 피우려고 더 안쪽에 깊숙이 들어앉은 문예반 쪽에 찾아가곤 했지요. 연극반은 강당을, 미술반은 미술 선생 화실을, 음악반은 음악 교실을, 수영반과 빙상반은 수영장을, 다른 운동반들은 모두 운동장을, 그리고 여러 특별 활동 반들도 거의 교실을 쓰고 있어서 각 반의 말썽꾸러기들이 문예반실로 모여들게 마련이었죠. 문예반원은 물론이고 주로 분위기가 맞는 연극반이나 미술반이 거기 모여들었는데 등산반이 초입에 있어서 나도 자연히 그리로 가게 된 겁니다.

아무도 없는 문예반실에 가서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척 걸쳐놓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는 중인데 고 3 상급생이 들어왔거든요. 나는 얼른 담배를 뒤로 감추면서 책상에 올린 두 다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급생이 ‘너 담배 있냐?’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요. 어물어물 담배를 내놓았지요. 또다시 ‘불도 있냐?’ 하길래 성냥을 내밀었어요. 그가 내 명찰을 보더니 ‘응 니가 황수영이여?’ 하여서 나도 그의 명찰을 보니 ‘김광남’이었지요. 교지에서 서로 보았다는 얘기죠. 그는 때마침 바로 전에 나온 교내 신문에 「아스파라가스」라는 산문을 발표해서 나도 기억을 했습니다. 그가 사투리를 쓰던 것은 또 의외였습니다. 나는 그의 수필의 첫 문장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랬냐 하면, “아, 아스파라가스, 얼마나 이국적인 이름이냐?”라고 시작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신문을 보고 순 서울내기들이 많게 마련인 연극반이나 미술반 아이들이 ‘촌놈 멋 부리네’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던 것이 기억이 났지요. 그뒤로 비록 한 학기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문예반실에서 광남이 형과 자주 부딪쳤고 처음 인사할 때 너그럽게 터주어서 맞담배도 할 수가 있었던 셈입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데다 기지촌과 슬럼이 둘러싼 당시의 서울에서 자라난 서울내기 아이들은 영악했습니다. 거의 중학생 때에 어른이 다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교양 따위는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는 듯한 위악이 일종의 예의처럼 되어 있었지요.

군에서 제대하던 무렵인가 어느 잡지에 그가 ‘완당 바람’에 대한 글을 발표했고 그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근대와 ‘새것’의 갈등 문제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군요.

시인 김남주가 ‘남민전 사건’으로 서울에서 도피 생활을 시작할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어느 후미진 여인숙에 데려다놓고 그날 볼일이 생겨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동시 상영을 하는 영화관에서 시간 좀 죽이라고 해놓고는, 그를 극장에 들여보내고 시내로 나갔어요. 예정보다 훨씬 늦어져서 돌아오니 늦은 밤인데 남주가 극장 앞에 퍼질러앉아서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왜 여기 있느냐니까 여인숙을 찾지 못하겠더래요. 야, 이 녀석아 요기서 저 골목으로 들어가 시장통을 지나면 그 끝에 아무 여인숙이 있는데 그걸 못 찾겠더냐고 하면서 그를 데리고 갔지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뒤에서 따라오면서 투덜거려요. “서울은 어디가 어딘지 무슨 속인가를 모르겄소. 괘안해라우, 나중에 다 부셔버릴팅게.” 그래서 나도 한마디했어요. “야 이 촌놈아, 혁명을 한다는 놈이 서울을 몰라서 되겠어?”

나는 우연찮게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에 주로 글을 쓰고 책도 내고 광남이 형은 『문학과지성』을 중심으로 여기 김병익·김치수·김주연 형들과 더불어 잡지를 꾸려갔습니다. 생각과 실천의 길에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고 또한 상대적으로 경계가 되었던 점도 있었지요.

나는 ‘이산문학상’의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때, 마침 수백 개에 이르는 우리 문단의 각종 문학상에 대하여 뭔가 한마디하려던 바로 그날이었는데, 그만 순순히 수락을 하고 뭔가 따뜻한 느낌이 가슴에 번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습니다. 아, 우리도 나이를 먹고 청춘도 가고 했지만 ‘문예반’에서 정답게 담배를 나눠 피우며 ‘문학’을 이야기할 시간은 아직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다른 데서는 이미 ‘문학’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감이 되어버렸는데도 말이지요.

인생의 여러 굴곡이 있었으나 우리와 함께 얼룩진 한 시대를 살아왔고, 말년에 힘있는 시편들을 보여준 이산 김광섭 선생님의 삶도 이러한 ‘이웃의 정리’에 꼭 걸맞는 듯합니다.

― 2000년 8월, 德山에서 황석영

작가 소개: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출생. 1962년 『사상계』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1989년 통일 운동의 일환으로 방북한 이후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체류하였음. 1993년 귀국하여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98년 석방되었음.

소설집으로 『객지』(1974),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1975), 『심판의 집』(1977), 『가객』(1978)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장길산』(1984), 『무기의 그늘』(1988), 『오래된 정원』(2000)이 있음. 그리고 희곡집 『장산곶매』(1980)와 광주 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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