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문학상 1회 - 1989

유순하 / 소설 / 생성(生成)

백무산 / 시 / 만국의 노동자여

선정 개요

이산문학상의 첫 수상자의 심사는 우리가 바라는 이 상의 의미를 잘 살려준 것으로 생각된다. 창작 지원금 500만 원이 전달되는 이 상의 수상작들은 우연만이 아니게 모두 현단계 우리 노동 문학의 한 정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현장 노동자인 백무산씨의 처녀 시집인 『만국의 노동자여』는 박노해씨의 『노동의 새벽』 이후,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는, 노동시의 커다란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업체의 중간 간부로 일해온 유순하씨의 『생성』은 바로 그 시각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다 같이 반성적 화해를 이룩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회적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다.

유순하

수상자: 유순하

장르: 소설

작품: 생성(生成)

수상 소감:

이상 실천의 섣부른 몸짓 그 한 끝에 의하여 스무 해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감당한 뒤에 사로잡혀 있게 되었던 치열한 증오가 겸연쩍음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은, 제가 그 동안에, 그렇게 이치에 닿지도 않는 원통한 경우를 당했던 많디많은 사람들을 마냥 편안한 눈길로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데 대한 뉘우침에서였습니다. 저의 작품 가운데도 그런 인물이 몇 있긴 하지만, 제가 실제 체험을 하고 보니까, 그 인물들에 대한 저의 묘사가 얼마나 피상적이고 관념적이었던가 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뉘우쳐져 어디든 얼굴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몸을 바로 세워 세상을 바라보려 했고, 무엇보다도 그 지극한 증오와 고독을 선의 생산을 위한, 또는 적어도 선의 생산이 가능할 수 있는 토양의 마련을 위한 유효한 동력으로 치환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무슨 문학적 성취니 하는 거룩한 목적보다는, 제 목숨의 부지를 위해 차선책이 가능하지 않는 절대의 당위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마치 두들겨패기라도 하듯이 타자기를 쳐대고 있는 전투적 일상에 느닷없이 수상 소식이 전해져왔을 때, 저의 심상에 성큼 다가왔던 것은 진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그러나 매우 고맙고 기쁘게 이 상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상의 무게를 못내 부담스러워하는 문학적 이력을 밟아나가며, 예를 들어, 터무니없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이 시대의 비열성을, 문학적 설득과 감동을 통해 합당하게 치유해나가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유순하는 1943년 일본 경도에서 출생하였으며 1968년 희곡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1980년 중편 「허망의 피안」이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1986년 동화 「시간 은행」이 아동 문예 신인상으로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진출했다. 창작집 『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 『새 무덤 하나 』 『벙어리 누에』 『우물 안 개구리』 『다섯번째 화살』, 장편소설 『하회 사람들』 『생성』 『배반』 『여자는 슬프다』 『91학번』 『산 너머 강』 『아주 먼 길』 등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생성』으로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중편소설 「한 자유주의자의 실종」으로 1991년 제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백무산

수상자: 백무산

장르: 시

작품: 만국의 노동자여

수상 소감:

“본래 살던 번지”를 빼앗긴 성북동 비둘기 같은 노점 상인들이 “평화의 사상까지도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어 떠돌다가 명동성당에 모여 연일 철야 단식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싸워 이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길이 없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속이 끓어오르던 차에 나를 찾아온 소식이 있었다.

“그 사람들 눈이 삔 거 아닌교, 선배님께 그런 상을 줄 리가 있겠능교.”

사실, 여태 문학 강의는 고사하고 강연회 한번 다녀본 기억이 없다. 게다가 글쓰는 일에는 게을러터진 인간이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내게 팔자에 없는 상을 주겠다니 마치 속는 기분이다.

나는 팔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 죽는데 어떠한 궤도가 있다는 팔자, 잘살 팔자, 못살 팔자, 자본가로 살 팔자, 권력을 휘두를 팔자, 땅 파먹고 살 팔자들은 사회 역사가 진전될수록 법칙처럼 적용되어오지 않았는가. 물론 이것은 가진 자들의 조작이요 사기다. 그놈들은 사기가 들통이 날까 봐서 이것을 천륜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자 법칙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계급 집단으로 분화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욱 심화되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계급 투쟁을 통하여 천륜을 누르고 인륜이 차지할 세상을 예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러한 팔자 법칙을 어길 수 없다. 그 법칙 안에서 일과 의식과 세계관을 완성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내 팔자에 없는 상을 받으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리라.

노동자들은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데서 고통이 시작되지만 소유권을 전취함으로써가 아니라 폐지함으로써 계급 해방을 원한다. 문학 또한 노동자 계급이 여타 계급으로부터 소유권을 확대 또는 이전받자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폐지를 원한다. 때문에 문학에 있어서 주체를 가릴 필요는 없다. 다만 올바른 당파성에 입각한 문학이 주체를 불문하고 계급 연합 문학의 중심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올바른 통일전선이란 집단적 의미에서의 계급적 힘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지 개개인의 계급성의 연합을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시기 문학은 노동자 계급이 최소한의 자기 완결 구조를 가지기 위한 투쟁을 지원하고 자각된 인식 수단으로써 자기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통일전선(문학)을 강화하는 길이라 믿는다. 나는 이것을 ‘계급 팔자 연합’으로 조합하면서 팔자에 없는 상을 받을 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구실일 뿐 나는 이미 산만하기 짝이 없는 시집을 내면서부터 벌거벗겨진 듯 부끄러웠다. 게다가 이번 문학상의 심사위원들께서는 나의 팬티까지 내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과연 책임질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작가 소개:

1954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함.
1988년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간행.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0년 두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1996년 세번째 시집 『인간의 시간』 간행함.
1997년 만해문학상 수상.

이산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