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6회 - 2006

김대산 / 비평 / 돈 키호테─햄릿─둘시네아─오필리어-되기」 :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박혜상 / 소설 / 새들이 서 있다

선정 개요

『문학과사회』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 문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공모하여, 소설가 정이현·한유주, 시인 하재연·최하연, 비평가 이수형·허윤진 등 뛰어난 신인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한국 문학의 지평을 전복적으로 심화 확대하며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이 상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응모해주신 예비 문인들의 음덕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제6회 신인 문학상 공모에도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응모자의 수도 많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응모작들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어떤 분들은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해도 될 정도의 분량을 보내오기도 했다.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에 대한 관심과 열성에 경의를 표하며 『문학과사회』 동인들은 2차에 걸쳐 심사 독회를 열었다. 1월 17일 문학과지성사 회의실에서 열린 1차 독회에서는 각 부문별로 응모작들을 모두 읽고 우수작들을 가려냈다. 1차 독회에서 선별된 15명의 45편 소설, 20명의 200편 시, 7명의 14편 비평을 대상으로 1월 20일 같은 장소에서 2차 독회를 열었다. 2차 독회에서 부문별로 작품을 재선별하고, 바로 이어 3차 독회를 통해 수상작을 결정했다.

시 부문에서는 새로운 발상법과 창작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들이 여러 편 눈에 띄긴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최종 후보자들의 응모작들을 대상으로 오직 하나뿐인 당선작을 고르는 데는 실패했다. 응모작들 사이에 편차가 심하거나 설익은 포즈에 그치거나 하는 등등 일정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아쉽게도 시 부문의 당선작을 내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3차 독회에서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숙고한 다음 만장일치로 박혜상씨의 「새들이 서 있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비평 부문에서도 전원 합의를 통해 「돈 키호테─햄릿─둘시네아─오필리어-되기: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를 쓴 김대산씨를 새로운 비평가로 초대하기로 했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두 분께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다시 한 번 신인 문학상에 관심을 가져준 투고자분들과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평

■ 소설

지상에 유폐된 알바트로스의 풍경과 운명
―박혜상의 「새들이 서 있다」 읽기

흔히 알바트로스는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신천옹(信天翁)이라 불리기도 하는 알바트로스는 그야말로 창천의 왕자로 칭송된다. 그런데 보들레르가 본 알바트로스는 창천을 장엄하게 비상하는 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추락하여 갑판 위에 널브러진 알바트로스, 그 지상에 유배된 창천의 왕자를 보면서 보들레르는 저주받은 시인의 운명을 떠올렸다. 그의 시 「알바트로스」에는 그런 보들레르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모름지기 새는 비상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날지 않고 서 있는 새가 있다. “왜가리는 날개를 접고 강 한복판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신기한 것은 매일 같은 자리에 그 녀석이 서 있다는 것이다. [……] 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새는 날지 않고 같은 자리에 붙박인 채 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새를 누가 보고 있으며 왜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소설 「새들이 서 있다」는 함축하고 있다.

소설에서 그 새를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 나(유리)와 그녀의 친구 돌대가리 및 한수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다.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은 그들은 명랑만화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이다. 명랑한 꿈에 젖어 있지도 않고 희망을 가꾸지도 않는다. 희망을 꿈꾸기도 전에 절망을 앓아버린 자들의 초상처럼 보인다. 날지 못하고 서 있는 새와 그들의 영혼은 거의 등가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단지 고3 수험생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주인공 유리는 열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속절없이 성추행을 당한 인물이다. 이것은 결코 ‘불순한 상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가해진 물리적·심리적 외상이었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강제적으로 재갈 물리듯 입 안 가득 채워졌던 아버지의 팔루스로 인해 딸은 구강기적 결핍기로 퇴행한다. 퇴행은 피해자에게만 오지 않는다. 가해자인 아버지 역시 구안와사로 인해 악어의 형상이 된다. 악어가 된 채 음식을 입에 대기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진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딸은 “연민도 고소도 아닌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공포의 심리는 전경화되지 않고 위악적인 행동 뒤로 배경화될 따름이다. 그럼에도 딸은 분노와 적의를 삼켜야 했듯이, 예의 공포도 견디어야 한다. 견디는 방법으로 일탈 행동 이외에 다른 출구를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리는 또래들과 함께 ‘서 있는 새’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겨울의 차가운 물살을 거슬러 다가선다. “햇빛에 반짝이던 흰 몸통은 검푸른 빛깔로 얼룩져 있고 강 끝 어딘가를 향한 눈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놀랍게도 새의 두 다리와 몸통에는 철사 줄이 뒤엉켜 있었다. 새는 쓰러질 수도 날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창천을 날지 못하고 철사 줄에 뒤엉킨 채 유폐된 새의 운명은 곧 깨질 것만 같은 유리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새를 화장하지만 활활 타오르지도 못해 재가 되어 하늘을 날지도 못한다. 죽어서도 지상에 유폐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새의 장례를 치르면서 더욱 기분이 나빠진 유리는 노래방 장면에서 파격적인 일탈 행동을 벌인다.

악어-아비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견디기 위해, 구강기적 결핍과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악어-아비의 팔루스를 견기기 위해, 유리는 또래의 다른 팔루스로의 전이를 시도한다. 이 그로테스크한 또는 엽기적인 전이는 어처구니없이 포획되어 서 있다가 죽어간 새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포개어 은유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엽기적인 사건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유리에게 가해진 세계의 폭력, 악어-아비의 주된 폭력에 보태어 담임 교사의 부수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은 새를 옭아맨 철사 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그로테스크한 전이는 성공적인가. 대답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이처럼 작가 박혜상의 서사적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박혜상의 「새들이 서 있다」는 오이디푸스적인 외상을 추문화하면서 세계의 폭력을 상징적으로 증거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상에 유폐된 알바트로스를 애도하는 서사이면서 치유나 부활의 가능성마저 소진된 것 같은 위험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다. 속절없음만큼 절박하고 위험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재의 강렬함을 떠받치는 구성 능력 또한 어지간하다. 간혹 듬성듬성해 보이는 묘사나 덜 치밀한 진술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보다는 이 작가가 지닌 서사적 잠재력에 더 눈길을 보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상에 유폐된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딛고 일어서 활달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꾼으로 창천을 비상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비평

존재와 소멸, 그리고 생성 ‘사이’

김대산의 「돈 키호테-햄릿-둘시네아-오필리어-되기」는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를 교양소설의 견지에서 접근하고 있는 독창적인 글이다. 평자는 한 대학생의 회의와 방황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나’ ‘너’ ‘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헤쳐 나아간다. 김대산의 이 글은 좋은 비평문이 갖고 있는 면밀하고 꼼꼼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에 접근해가는 이론적, 철학적 가능성의 또 다른 면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겠다.

김대산은 『낯선 시간 속으로』 전체에 걸쳐 주인공을 사로잡고 있는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의 꿈’과 결부시켜 분석하고 이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생성의 가능성을 ‘나’ ‘너’ ‘그’의 의식적·무의식적 성장 과정의 추적을 통해 밝혀나간다. 그가 텍스트의 원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회의하는 자’에 대한 탐구심에 기인한다. 특히 ‘주어진 것’의 의미를 외부적인 조건이란 의미로 단순화시키지 않으면서 삶 속에서 배움을 얻고 자신을 형성하며 성숙해가는 인물의 여정과 결부시키고, 이를 ‘받아내기’와 ‘되기의 과정’이라는 독특한 해석의 지평 속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현이 “인식의 주체가 바로 인식의 대상”이며 “전체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낯선 시간 속으로』 해설 중에서)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한 의미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먼저 김대산은 「길, 한 이십 년」에 등장하는 ‘회의하는 자’를 햄릿과 돈 키호테의 원형에서 찾아낸다. 햄릿이 그림자의 영역에서 활동의 영역으로 나오기 위해 행한 정신적 여정에 빗대어 ‘그’의 실체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학생-돈 키호테가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인물로 거듭나는가를 추론해나간다. 평자는 그 추론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작가의 의식이 변하고 있는가를 추상적인 원론이 아니라 텍스트를 매개로 집요하게 묻고 해답을 구한다. 나아가 학생(신분)-햄릿이 돈 키호테가 되기 위해서는 ‘회의하는 자’로서의 믿음이 있었음을 밝혀냄으로써 햄릿-죽기를 거쳐 돈 키호테-되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생성의 논리, 힘의 논리의 이면을 탐색한다.

그 결과 ‘나’에게 주어진 것이란 돌이킬 수 없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의 과거라고 보고 연극을 매개로 하여 만난 ‘그’의 의미를 찾아낸 것은 분석적 읽기의 본보기랄 수 있다. 연극의 진행 과정에서 돈 키호테-햄릿이라는 새로운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부분을 극중극의 형식 속에서 끄집어내고, 이에 기반한 작가의 거리 두기가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이는 학생-돈 키호테의 삶을 규정해주던 ‘너’의 의미를 분석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죽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생성의 순환 체계는 ‘너’가 어떻게 둘시네아의 그림자 존재인 오필리어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사랑한 여성인 ‘너’가 현실적인 여성이면서 또한 그의 무의식 속의 여성이기도 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식의 주체 안에 서로 녹아 섞여 있는 ‘구리의 의식’(이인성식으로 말하면)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이들 모두를 매개해주었던 ‘그’의 의미를 수락하는 존재로 해석함으로써 『낯선 시간 속으로』 전체의 얼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힘이기도 하다.

‘되기’의 과정을 통해서 발생하는 시간과 ‘받아내기’의 시간을 거대한 생성의 운동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글쓰기의 형태로 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소설적 언어와 어떻게 길항하고 있는가를 밝혀낸 김대산의 평문은 철학적 질문과 텍스트의 구체적인 서사가 잘 어우러진 보기 드문 미학적 글이다.

예심평

__시 부문 투고작들 가운데 고른 수준의 시적 기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 원고들은 「일상」 외, 「집」 외, 「이색광고가 있어요」 외, 「냉장고는 태교 중」 외, 「접속사를 잃어버린 몽상」 외, 「절규」 외, 「첨단세탁전문점 세탁반장」 외 등을 비롯, 대략 9명 가량이었다. 추려내진 투고작은 대체로 상당 기간 동안의 습작을 거쳤음을 짐작케 하는 나름대로의 숙련된 시적 구성력을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성의 시 어법에서 벗어나려는 도발적이고 재기발랄한 언어를 구사하거나, 자기만의 차별화된 시적 발성을 모색하려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시들 또한 꽤 여러 편 눈에 띄었다.

그러나 추려진 원고들은 유사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 그만큼 또 유사한 단점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려진 원고들에서 엿보이는 신선하고 도발적인 시적 발상과 독특한 언어적 표현이 지속적인 긴장과 밀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상투화된 표현이나 발상들과 뒤섞이고 만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현상은 시와 시 사이에서, 혹은 한 편의 시 안에도 발견되었다. 또한 의욕적 발상이 그에 걸맞은 언어적 육체를 얻지 못한 채 경직된 관념의 언저리를 배회하다 머물러버린 시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세계와 언어와의 싸움에서 보다 치열한 정신의 긴장이 요구되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처럼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들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이 각 투고자들의 원고 전반에서 충분히 신뢰할 만큼의 고른 수준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이 중 어느 한 사람을 선뜻 당선자로 선정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결국 올해의 투고자들이 보여준 일정한 가능성이 보다 치열한 시적 개성으로 단련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올해에도 시 부문 당선자를 내지 못한 안타까움을 대신하기로 했다.

__소설 부문에도 역시 많은 예비 작가들이 수준 높은 작품들을 보내주었다. 그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수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는 꼼꼼하게 작품을 읽었다.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전복적 패기와 전위적 열정, 실험적 스타일, 의미심장한 서사 능력 등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1차로 열다섯 명의 투고작을 골랐다. 다시 2차 독회를 통해 김규(「낙원 수족관」 외), 박진규(「도덕의 붕괴」 외), 박혜상(「새들이 서 있다」 외), 이산(「M의 죽음을 둘러싼 몇 가지 의혹」 외), 최미경(「이라크 이발사」 외) 등 다섯 명의 작품들을 가려 뽑고 3차 독회에 올려 정독했다.

김규의 「낙원 수족관」은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 구체적이고 섬세할 뿐더러 문체도 비교적 안정적인 작품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한 사내가 수족관을 운영하면서 화상으로 인해 그로테스크한 몸을 지니게 된 여성 고객과 접촉하게 되는 이야기와, 자신과 아내의 관계 및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다발을 각각 날줄과 씨줄로 하여 삶의 모럴을 새삼 되짚어보려 한 소설이다. 문장 수련은 어지간한 편이지만, 구성이 다소 어설프고 특히 설명적인 결론 제시 방식이 눈에 거슬렸다. 박진규의 「도덕의 붕괴」는 경쾌한 유머를 통해 타락한 기성 세계를 비판한다. 남자 중학생을 서술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학교와 교회의 부조리한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동시대의 성 풍속에 대한 희화화 정도도 웬만하다. 문장도 속도감 있게 잘 읽히는 편이다. 어른들만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 자신도 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이미 있어온 비슷한 소설 경향을 넘어서 새로운 소설의 방향을 예고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산의 「M의 죽음을 둘러싼 몇 가지 의혹」은 표제 그대로 M이라는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을 시종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려 한 소설이다. 한 인간의 죽음 소식 앞에서 주변 인물들은 결코 애도의 정조에 젖지 않는다. 그렇게 된 사정은 그 누구도 M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통렬한 풍자의 형식이 아닐 수 없겠다. 속도감 있는 입담은 빠른 이야기 진행에는 유용하지만, 소설의 구성과 묘사의 핍진성 제고에는 덜 유용한 편이다. 최미경의 「이라크 이발사」는 시사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사회학적 상상력의 현대적 풍경을 점묘한 소설이다.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소규모 프로덕션을 무대로 하여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척박한 생존의 드라마를 그렸다. 기획 단계에서 이라크 전쟁 등 시사적인 소재들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표제부터 흥미를 끌었으나, 표제인 ‘이라크 이발사’를 비롯한 몇몇 흥미로운 제재들이 단순한 배경막으로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사회 문화적 탐문의 깊이가 아쉬웠다. 그 결과 현대의 조직 사회에서의 생존 경쟁이라는 흔한 이야기와 유사해진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주제 제시 방식도 필요 이상으로 설명적이다.

박혜상의 「새들이 서 있다」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버지에 의해 어린 딸에게 가해진 오이디푸스적인 외상을 안티 오이디푸스적인 심리 전략으로 넘어서려 한 설정부터 인상적이거니와, 아버지의 팔루스를 악어의 형상으로 추문화하면서 아버지의 팔루스에서 동년배 사내 아이들의 팔루스로의 그로테스크한 전이를 탄력적으로 단행한다거나 하는 상상적 전략도 눈길을 끌었다. 철사 줄에 포획되어 죽은 새를 애도하는 삽입 서사도 억압된 여성 영혼의 운명과 관련하여 효과적인 상징 기제로 읽힌다. 다만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의 삼각관계가 좀더 주밀하게 형상화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함께 출품한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도 흥미를 자아냈다. 동물원 코끼리 탈주사건을 바탕으로 없는 코끼리가 환상과 풍문에 의해 실재하는 코끼리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썩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뒷부분에 가서 설명적인 결말 방식을 취했다. 작가로서는 조급한 마음의 소산이었을 터이나 독자들에게는 과잉 친절로 비쳐질 공산이 커 보였다.

이런저런 장점과 단점들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박혜상의 「새들이 서 있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비교적 쉽게 합의했다. 제재나 스타일, 서사적 문제 제기 능력이나 전복적 에너지 등 여러 측면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한 작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박혜상씨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는 인상적인 전위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 아울러 아쉽게도 이번에 기회를 갖지 못한 다른 네 분들에게도 다시 한 번 경의와 격려의 인사를 보낸다. 머잖아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번 심사 독자들의 어두운 눈을 밝게 깨우쳐주리라 믿는다.

__이번 비평 부문 투고작들에서 두드러진 점은 예전과 달리 정신분석학에 기댄 정밀한 텍스트 분석의 글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루고 있는 작가들의 연령층도 다양했으며, 대상 작품의 발표 시점 역시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들이 너스레로 느껴질 만큼 ‘지금’ 한국 문학의 증상들을 훑고 있는 시선은 더욱 치밀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송효정의 「미성년의 출현, 가식의 사회학」은 배수아, 듀나, 편혜영 소설을 중심으로 미성년의 등장이 갖는 의미와 징후들을 면밀하게 고찰하고 있는 글이다. 미성년에 대한 사회적 해석의 가능성을 ‘빈곤의 사회학’을 통해 타진하면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증상들을 가장 구체적인 일상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를 통해 해석의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미성년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징후들을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조롱과 냉소라는 보편적인 결론으로 이끌어가면서, 정작 중요한 미성년의 정치적 함의를 단순화시켜버렸다는 것이 약점으로 다가왔다. 배수아, 듀나, 편혜영 소설에서의 미성년이 갖는 각각의 ‘의지적 지향’과 드러나지 않은 텍스트 무의식이 무엇인가를 먼저 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통적인 주제에 접근했더라면 더욱 풍성한 글이 되었을 것이다.

김나영의 「틈을 바라보는 시선」은 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 현실과 꿈의 괴리감, 혹은 틈의 인식에 대한 발상을 중심으로 디지털 시대 의사소통을 꿈꾸는 작가의 욕망을 따라가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의욕적인 시작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줄거리에 의존함으로써 비평적 감식안이 현저하게 안으로 숨어버린 형국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기대고 있는 라캉 이론이 완전하게 소화되지 못한 채 겉돌면서, 피상적인 차원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광진의 「배수아네 문지방」은 은둔하는 주체의 의미를 통해 배수아 소설의 상징적 리비도가 작동하는 방식과 시간을 가로지르는 배수아식의 노마드를 꼼꼼하게 읽고 있는 드문 글이다. 배수아의 소설 언어가 거울 단계에서 교환되는 시선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그리고 배수아식의 상징계가 아버지의 은유나 이름이 아니라 “대왕의 이름으로 지불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당나귀들』을 중심으로 면밀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배수아 소설에서 드러난 글쓰기의 욕망이 표상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평가가 구체화되지 못한 채 마무리가 되었다. 결론에서 돌출하고 있는 유물론적 전략이란 부분이 오히려 언어의 존재론보다 더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김용하의 「구비적 코드와 로그인」은 디지털 시대 문화적 콘텐츠를 구비적 세계라고 보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박민규 소설에 나타난 구비문화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은 박민규 소설이 전설과 신화, 민담의 세계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매체의 속성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디지털 시대 구비문화적 요소가 왜 새로운 키워드로 등장했는가에 대한 인식론적 성찰과 사회학적 통찰이 결여되어 있어, 텍스트 해석에서 사용되고 있는 구비적 세계 자체가 다소 추상적인 의미망으로 수렴되고 만 자승자박의 길을 걷고 말았다.

이상의 투고작들을 검토하고, 여러 번의 논의를 거친 끝에 김대산의 「돈 키호테─햄릿─둘시네아─오필리어-되기」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글과 관련해서는 따로 지면이 마련되어 있음으로 참조하기 바란다.

김대산

수상자: 김대산

장르: 비평

작품: 돈 키호테─햄릿─둘시네아─오필리어-되기」 :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수상 소감:

오래전에, 우연히 「베티 블루」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묘한 불쾌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아니, 불쾌감을 넘어서 슬며시 울화가 치밀기까지 했었다. 몇 년 전에는, 역시 우연히, 로버트 버턴의 『우울의 해부』라는 책을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읽었던 적이 있다. 내가 왜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우울’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마 뒤에, 나는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이라는 책을,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다가, 거기서 다시 한 번 ‘우울’이라는 테마와 만났다. ─“‘모든 창작적인 행동은 다 침울함 속에서 존재한다,’ 물론 이 말은 ‘침울한 것이면 어떠한 것이든 다 창작적이다’라는 것을 일컫고 있지 않다. 창작성과 우울증 사이의 이러한 연관에 대해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다음과 같이 물음을 제기할 적에 이미 알고 있었다. 즉 “철학에서든, 정치학에서든, 시문 또는 조형예술에서든,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우울증 환자라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때 명시적으로 이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엠페도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흠칫 놀랐다. 창작성과 우울증 사이의 연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플라톤, 저 초월적인 ‘좋음의 이데아’의 철학자 플라톤이 우울증 환자라고? 정말로? 정말이라면, 이유가 뭘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플라톤주의 철학자 피치노가 쓴 섭생에 관한 글을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내가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한 이상한 대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피치노에 의하면, 자신과 플라톤은 ‘토성’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태어나 우울증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답은 나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은 더욱 증폭되기만 했다. 여전히 지금도. 가령, 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왜 세르반테스는 산초 판사로 하여금 ‘유쾌하신’ 라 만차의 돈 키호테를 ‘슬픈 얼굴의 기사’라고 부르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또, 왜 나는 『낯선 시간 속으로』를 생각하면, 뜬금없이 키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신비」가 생각나거나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2번」(특히, 3악장)과 「피아노협주곡 24번」(특히, 2악장)이 생각나는가? 그냥 나의 자의적인 연상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는 맥락도 이상한 이런 식의 글을 ‘당선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쓰고 있는 것일까?─(관용과 자비를!)

올해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다. 몇 년 동안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빠져들다가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으며 위안 받고 삶을 살아갈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나는 ‘아름다움’이 뭔지나 알고 지금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몰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조차도 모르니까(그런데, 이 말투는 『낯선 시간 속으로』를 쓴 작가의 말투가 아닌가?).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게 깜깜하다. 이 깜깜함 속에서 도망치듯 ‘길’ 위에서 서성이다가 지금에 이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지금 내가 말한 ‘길’은 무슨 심오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길’이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도로’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뿐이다. 여러 선생님들, 선후배님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뒤늦은 대학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작가 소개:

1974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박혜상

수상자: 박혜상

장르: 소설

작품: 새들이 서 있다

수상 소감:

폭설도 멈췄고 송년회도 해맞이도 끝났다. 나는 다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 곳곳은 폭설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노면이 고르지 않아 차체가 자주 덜컹거렸다. 지난해 내내 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내 차 안에서 웅웅대고 있었다. 문득 그 노래들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낡은 노래들을 비닐봉투에 담아 트렁크에 넣었다. 역시 진짜는 지겨워지게 마련이었다. 나는 트렁크 문을 닫으며 손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서둘러 출구를 찾았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 한 문장을 입력했다. 오랜 응시 끝에 내가 쳐 넣은 것은 ‘생활계획표’였다. 지루할 정도로 한참 동안 커다란 원을 그리고 적당히 나누었다. 먹고 자고 읽고 쓰기. 너무 단순했다. 조각을 더 분할해서 산책과 장보기를 추가했다. 조각을 들여다보다 치즈케익이 먹고 싶어져 마트에 다녀왔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던 연락이 왔다. 내 생활계획표는 다시 흐트러졌다. 휴우, 이제 살았다.

소설 쓰기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으로 십 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면의 축복에 감사하던 날들이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깨어 있었다. 잠이 들면 꿈을 꾸고 깨고 나면 불분명한 꿈의 조각들을 엮어 엄한 기억들을 불러내곤 했다. 어느 날은 무언가를 무지막지하게 토하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서도 비위가 상할 정도로 기억이 선명했다. 요즘 너무 먹나 보다라고 반성하고 있었는데, 그게 좋은 꿈이었나 보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문학과지성사에 감사드리고 여러 선생님들과 문우들, 격려를 보내준 가족과 직장 동료들, 梨文사람들, 소설에 투항하라던 수현과 힘을 준 성아 언니, 성실한 독자였던 나의 소중한 Y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나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영전에 이 설렘을 바친다.

작가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제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