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12회 - 2012

윤민우 / 소설 / 보이스카우트

장수진 / 시 / 이란청년 외

백은선 / 시 / 어려운 일들 외

선정 개요

신인상은 ‘문학상’이 아니라, ‘문학상’ 이전의 어떤 것이거나, ‘문학상’ 너머의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12회를 맞이한 ‘문학과사회’ 신인상은 완성된 문학적 성과물에 주어지는 제도적 보상이 아니라, 현재의 문학제도에 오작동을 일으키고 파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에 대한 발견의 과정이었다. 그 발견의 과정으로서의 열두 해는 짧거나 길었던, 혹은 빠르거나 느렸던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문학제도 안에서 ‘다른 시간’을 불러들이는 시간이었다. 그 ‘다른 시간’의 가능성으로 호출되었던 그동안의 수상자들이 한국문학에 어떤 창조적인 균열을 만들어내었는가는 눈 밝고 예민한 독자들의 평가에 맡겨둔다. 그동안 문학시장의 근본적인 침체와 양극화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문지’와 ‘문사’로 상징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문학공동체’의 입주민들이 끊이지 않고 생성되고 있다는 것은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다. 그 경이로움 때문에, ‘문사 신인상’의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올해의 신인상에도 적지 않은 응모작들이 도착했으며, 문제는 그 투고 작의 숫자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문학적 에너지의 열도였다. 아직 더 많은 독서와 글쓰기가 요구되는 개성을 확보하지 못한 평균적인 투고작들과, 다른 한편에서는 ‘문지 공동체’의 미학적 잣대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일군의 작품들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의 우리들의 고민은 ‘문지’와 ‘문사’의 정체성에 대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문학 지망생들의 문제였다. ‘문지’와 ‘문사’가 한국문학의 전위적인 미학적 시도들을 옹호해왔던 전통은 존중되어야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문학을 다른 언어의 차원으로 진입시킨 작가들을 길러낼 수 있었지만, ‘문지’와 ‘문사’의 문학적 미래는 기존의 ‘문지적인’ 작가들의 글쓰기 스타일에 한정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문지문학’의 억압적인 동일성은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전혀 다른 작가들의 출현에 목마르다.
다행스럽게도 거시적인 맥락에서 ‘문지’적이면서, 기존의 ‘문지스러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는 세 명의 빛나는 신인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특히 시부문의 경우, 예년의 수준을 능가하는 투고작들의 폭발적인 수준 때문에, 오히려 그 완성도를 넘어서는 어떤 다른 시적 가능성에 주목해야하는가를 둘러싼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공동수상이라는 예외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혹적인 파탄의 징조로 들끓는 이단의 몸을 드러낸 장수진의 시와 선연한 이미지에 서늘한 리듬을 부여한 백은선의 시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소설 부문에서 문지적인 서사미학의 다른 장소를 예감하게 만든 윤민우의 소설은, 이 시대의 은폐된 폭력성을 독특하고 속도감 있는 소설적 화법으로 보여주었다. 올해도 비평부문의 투고작이 저조했다는 아쉬움은 세 명의 작가들을 만난 기쁨이 상쇄시켜 주었다. ‘문지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일원인 투고자들과, 문사 신인상의 심사에 참여해서 문지 스펙트럼의 경계를 넓혀준 시인, 작가분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평

_‘시인’으로 호명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시인’은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지금까지 나에 대한 호명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지금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다. 적응이 되지 않아 자꾸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라는 첫 호명을 기다리는 이들의 시를 읽는 시간은 그 어떤 때보다도 두렵고 두근거린다.
이번 시 부문 신인상에는 368명의 작품이 도착했다. 전반적으로 완성도 높은 수준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짧지 않은 뒤척임 끝에 15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려졌다. 좋은 시에 대한 기준은 관점에 따라 여러 방향이 있을 수 있다. 작품을 투고하는 이들도, 심사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도 그 점을 모르지 않는다. 기성의 시에 대한 반동에서 새로운 시는 탄생한다. 그러므로 신인의 시에는 기성 시인의 흔적이 어느 정도까지는 발견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성 시인의 흔적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뛰어오르는 힘이 보이는가, 즉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까지가 보이는가이다. 무조건 벗어나 있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김수영, 「달나라의 장난」)는 “팽이”처럼, 공통(기성 시의 흔적)에 속하면서도 나만의 새로운 문장을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공통 속에서 뛰어오르는 힘, 그리하여 공통과 공통 너머가 다 보이게 하는 것, 그곳이 새로운 시의 자리일 것이다. 그곳을 시 속에서 시에 저항하는 자리, 시 속에서 시를 발명하는 자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응모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작품을 읽으면서 눈에 띈 점은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진술로 이루어진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진술이 주조를 이루게 되면 유연하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이미지를 적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의 충돌을 통해 만들어나가는 제3의 언어 지점이다. a도 b도 아닌 a와 b가 만나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c의 자리에서 존재는 비로소 제 안을 열어 보인다는 것을, 언어는 자주 갱신된다는 점을 응모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길 바란다. 결코 이미지가 우세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가 전체를 만들어가는 행위 이전에 한 줄을 발명하는 장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미지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정된 시간에서 벗어난 눈이나 꽃을 보는 기쁨, 그것을 시라고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시는 4월에 내리는 눈처럼, 4월에 피어나는 라일락처럼 느닷없이 온다. 느닷없이 오는 것이 시라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도 좋겠다. 이것은 첫 호명을 기다리는 미래의 시인들과 시인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응원일 것이므로._이원(시인)

_한 사람의 시인이 신인을 뽑는다는 건 일종의 월권행위……
예심에 임하며 부지불식 마음속에서 들끓던 상념의 일부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시인은 가지고 있는 권리 또는 권력이란 게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절대적으로 부당(하여야 만)한 존재들이다. 김수영은 (정확한 인용은 아니나) “좋은 시인을 알아보는 것 말고 시인으로 하여금 다른 책무를 면하게 하라”는 투의 말을 했지만, 나는 이 말을 시인이 자신의 불편부당한 안목으로 모종의 시적 계보를 조직하거나 정치적 합목적성을 바탕으로 한 인적 자원을 재창출하는 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는 자조와 자탄, 또는 자성의 일성이라, 고의로 오독한다. 기백명의 작품을 두루 훑고 그것에 대해 논하려는 처지에서 이러한 고백이 물론 당착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더욱이 이것은 김수영이 일갈한 문장의 표면적 맥락과도 상치되는 판단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심사에 임하며 눈에 띄는 작품의 공명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난감한 오독에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느 시인의 순간적 몽매에 의해 판단지워지는 시적 우열이나 성취도가 과연 얼마나 적합하고 온당한 기준에 의해 운용되는지에 대한 우매한 재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탓이다. 투고작들의 평균 수준이 여느 해보다 우수하다는 자체 진단이 공론화될수록 이러한 고민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작품은 걸러지고, 선택되어지고, 판정은 끝나야 한다. 어떤 작품들은 훌륭하고, 어떤 작품들은 어딘가 매무새가 떨어지며, 또 어떤 작품들은 그 어떤 매혹의 여지도 없다고 기술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일견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의적 기준들을 무색케 하는, 그야말로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미지의 빛나는 시에 대한 기대가 그로 인해 더 강화되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또 무슨 배배 꼬인 심사(心思)의 심사(審査) 원칙이었던가.
공교로운 인연인지, 적합한 운인지 모르는 상태로 내 손으로 본심에 올린 건 박수지, 양안다, 유재숙, 이소연, 한그린 제씨의 작품들이었다. 다섯 분 공히 만만치 않은 시적 공력과 노력이 드러나고, 언어를 매만지는 솜씨와 나름의 독특한 시각을 겸비하고 있었으되, 정작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그 초면의 잠재적 시인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얼굴과 입김이었다. 모든 착오와 부당한 분별의 오류 속에서 일방적으로 검증하는 것이긴 하되, 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언어 너머, 그리고 소소한 판단과 작의 너머에서 쓴 자도 읽는 자도 본능적으로 반추할 수밖에 없는 지난한 실패의 흔적들인지 모른다. 완성된 자의 매끈한 얼굴보다 결단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게임 앞에서도 오로지 제 힘으로 웃고 우는 자의 혼몽과 자활의 자취들. 선택된 자든, 누락된 자든, 부디 자신만의 밀도로 표정 가꾸는 일을 중단하지 말았으면 싶다._강정(시인)

_총 368명이 응모한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상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100여 명 정도 수가 줄어 기대할 만한 작품이 적지 않을까라는 우려 속에 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비웃듯 심사위원들을 긴장시키고 설레게 만드는 수작(秀作)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예심을 통과한 이들의 수가 15명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이름을 전부 부기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수준과 완성도가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 구현우, 김복희, 김선미, 박수지, 백은선, 송민규, 안희연, 양안다, 유재숙, 이소연, 이진기, 장수진, 정재우, 주완식, 한그린 등은 곧 다른 지면을 통해서라도 만나볼 이름들이다.
15명의 작품 중 누구를 본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부터 행복한 고심거리였다. 올해의 경우, 심사를 진행하기 전에 심사위원들이 중요한 규준으로 의견을 모은 것은 기성의 틀을 벗어난, 이해를 거부하는 과감한 ‘파격’으로 보일 지라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적 발화를 선보이는 진정한 ‘신인(新人)’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2000년대 한국시가 보여준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적 ‘폭력’—폭력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쓰는 까닭은 슈클로프스키가 강조했던 저 유명한 명제, ‘시적 언어의 본질은 기성의 언어에 폭력을 가하는 낯설게 하기에 있다’는 전언에서의 ‘폭력’이 지닌 미적 긍정성을 되새겨봄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올해의 응모작들이 예시하기 때문이다―이 세련된 매너리즘의 양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응모된 작품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문학 계간지들의 신인상에 대한 심사평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바이다. 지난 10년의 한국시가 보여준 생생한 날 것으로서의 고통과 절망, 우울과 좌절, 생기발랄한 쿨함과 카니발적인 퇴폐가 어우러진 미학화된 자의식적 ‘폭력’이 정제된 시 문법과 세련된 기술로 안착되어 심지어 생경한 비문(非文)이 유발하는 인지적 충격조차 갈고 닦은 언어적 조탁(彫琢)으로 승화시키는 훈련된 기교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은 한 시절의 풍부한 예술적 독창성이 이제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유사한 매너리즘이 되어간다는 진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문학과사회 신인상이 갖는 미학적 전위의 위상을 생각할 때, 이러한 현상을 내파(內破)하는 이들의 출현이 지금 한국 시단에 또다시 필요하게 되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십분 동의하였다. 이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선별한 작품 중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김선미, 백은선, 안희연, 이진기, 장수진, 정재우, 주완식의 시편들이었다. 김선미의 시는 사물을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과 이를 미니멀한 감각으로 풀어내는 기량이 돋보였고, 안희연의 시는 침묵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행간의 깊은 여백과 스스로의 말을 다시 지워가는 시적 기교가 탁월했으며, 이진기의 시는 특유의 감성과 감상을 서정시의 전통을 완전히 벗어난 형식 속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구사를 통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들 시의 가장 큰 아쉬움은 새로운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신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시편이 이미 충분히 각자의 방식으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의 시작(詩作)을 염두에 둘 때, 이들의 시가 보여줄 수 있는 변화의 최대치에 이들이 벌써 도달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반면, 정재우, 주완식의 시는 오직 ‘나만의 것’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시 면면에 팽팽히 고양되어 있고, 그러한 신인다운 패기와 도전이 그에 어울리는 적합한 어조와 기술에 힘입어 새로운 시의 형태화를 이룰 수 있는 긍정적 기미를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시편은 기성의 시를 닮았거나 아직 습작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주어 편차가 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논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백은선과 장수진의 시였다. 그런데 그간의 심사 동안에는 없었던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대체로 기분 좋은 양보와 흔쾌한 동의를 통해 당선작이 정해졌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누구도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급기야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제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시 부분의 공동 수상을 진지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백은선과 장수진 중 그 누구의 시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백은선의 시는 장황한 말의 집적으로 시를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길게 만드는 요즘의 경향과 비교할 때, 선명한 이미지의 제시와 긴 호흡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유려한 리듬을 통해 한국시에서 장시의 새로운 미학을 일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로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선연한 상처의 흔적과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부정적 대결의식은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움 또한 숨기고 있다. 로르카의 민요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각적 리듬감은 그가 계속 견지해야 할 큰 장점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장수진의 시는 자신이 창출한 형식을 스스로 그 내부에서 산산조각 내려는 강력한 자기 파괴적 힘을 발하는 요설로 시종일관한다. 흡사 접신의 경지에 이른 무당의 굿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말의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독백조의 발화는 단정하고 우아한 정제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의 시에 내재된 요설의 형식과 거친 리듬은 시대를 조롱하며 비극적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자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며, 그러한 목소리가 갖기 마련인 강한 마력으로 독자를 자기 세계로 이끄는 형용키 어려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자기 내면에 도사린 퇴폐와 파멸의 징후를 거침없이 발산하는 그의 시는 한국 시에 또 다른 ‘마녀’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기성의 시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독자적 개성이 빛을 발하는 이들 중 한 사람만을 당선작으로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심사위원들은 단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을 과감히 포기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두 명의 새로운 시인을 문학과사회 신인상을 통해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 수준 높은 기량의 시편들을 함께 투고해준 응모자 분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한국시의 미래는 고맙게도, 감히, 여전히, 밝다._이광호・강계숙(문학평론가)

_1차 심사: 이원, 강정, 강계숙 2차 심사: 이광호, 강계숙

_「물로, 물론(勿論)」은 알레고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소설이었다. 「보이스카우트」는 「립 밴 윙클」과 코헨 형제의 영화가 연상되었다. 얼른 심사하라는 잔소리 속에서도 「그레이하운드의 기원」은 재미있어 두 번이나 읽었다. 「행간의 숨은 뜻」은 어쩐지 잘 될 것 같아 원고에 몇 군데 교정까지 보았다. 지적 잠꼬대 같은 소설도 있었고 북한의 김정일이 떠오르는 소설도 있었다. 어떤 소설은 관심받기 위해 길거리에 침을 뱉는 피아제의 꼬마가 생각났고,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는 만두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평균적으로 서사가 다소 약화된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는 벌써 너무 많은 것들이 말하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우리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소설은 당대를 보완적으로 반영한다. 예컨대 대형사건과 급격한 변화가 난무하는 시대는 묘사가 많고 지연적이며 성찰적인 소설을 낳는다. 굳이 소설마저 다이내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한편으로, 다이내믹함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현실이 너무 우세한 탓이다. 이러한 경향은 별다른 탈출구 없이 자의식의 강화로 연결되었으며,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도착」이라는 작품이었다. 이번 예심에 있어 또 하나의 특징을 꼽으라면 언어와 문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문학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관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중 특히 「미로의 목소리」를 정독하면서 나는 잠시 게슈탈트 붕괴를 겪었다.
심사를 하다보면 눈앞의 모든 응모작들이 한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상상에 때때로 빠지곤 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 뿐 아니라 통과하지 못한 작품들까지 모두 동일한 가계를 지닌 형제고, 다만 여물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이며, 그래서 각각의 소설은 이미 태어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소설의 명백한 알리바이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활자화된 이상 어떠한 소설도 외따로 떨어진 고아가 아니다. 저마다의 세계가 빈틈없이 겹쳐질 때 비로소 순일한 산문정신이 구축된다. 이번에 만난 수백 편의 응모작 중에서 단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나머지는 전부 가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심사했다._박형서(소설가)

_응모 편수에 비해 좋은 작품은 고르는 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소설이라는 한정된 분량의 형식만 갖출 뿐 수준 미달의 작품이 많았다. 감정 과잉의 가족서사와 엽기적 행각의 스릴러물, 현실을 망각한 대체 역사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짜깁기한 성의 없는 글들은 눈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또한 도입부의 도발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후지부지 끝나는 작품들은 소설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루함을 즐길 수 없다면 소설의 끝도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특히 중편소설들에서 두드렸는데, 왜 단편이 아닌 좀더 긴 호흡의 글 속에 이야기를 담아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타당성과 필연성이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재현된 현실을 재현하는 나선형 구조의 소설들도 눈에 띄었는데 소설로 소설의 세계와 맞서보려는 고투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꼰 문장의 반복과 단순한 나열은 작품의 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소설에 대한 흥분과 낯선 감지를 확인시켜준 작품들은 글무덤 속에서 발견한 피로한 기쁨이었다. 현실의 축소판인 주차장에서 일하는 주차관리인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카프카의 세계를 엿보게 해준 양귀헌의 「생각하는 말뚝」, 외부의 소음과 내부의 목소리, 이중의 소리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기억과 꿈의 불안 심리를 발화의 문제로 집요하게 끌고 가고 있는 김선의 「미로의 목소리」, 현실에서 막 튀어나온 인물들이 펼치는 세상에 대한 야유와 모멸을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 질서에서 혼돈 속으로 흥미롭게 빨려 들어가는 윤민우의 「보이스카우트」, 해저의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의 가공된 이야기를 해적의 언어라는 설화와 교차시키며 혀의 언어, 물의 언어를 독특한 표현으로 펼치는 문정민의 「물로, 물론(勿論)」, 요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별다른 사건 없이도 인물의 시선과 움직임이 물결을 이루며 심리적 진동을 일으키는 윤다혜의 「망설임」, 등의 작품들은 각 작품이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끌었다. 본심후보작들을 살펴보니 여전히 서사와 반서사와 싸움 같아 보였다. 소설로 싸울 것이 과연 서사 밖에 없는지 의문이다. 좋은 소설은 서사도, 반서사도 무화시키며 단단한 현실을 자신의 문법으로 뚫고나가려는 우습고 슬픈 싸움이다,라는 생각이 든다._김태용(소설가)

_2012년 제1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응모자는 총 442명이었으며, 예심을 거쳐 김교형, 김선, 남현정, 문정민, 박현주, 오용석, 양귀헌, 윤다혜, 윤민우, 정한주 등 총 10명의 응모작이 본심에 올랐다. 그중 본심에서 주목한 작품은 김선의 「미로의 목소리」 외 1편, 문정민의 「물로, 물론(勿論)」 외 1편, 양귀헌의 「생각하는 말뚝」 외 4편, 윤민우의 「보이스카우트」 외 1편이었다. 논의의 대상을 좁히고 보니 공교롭게도 앞의 두 작품 「미로의 목소리」와 「물로, 물론」은 언어 자체의 타자성에 대한 날카로운 자의식을 기반으로 씌어졌으며, 뒤의 두 작품 「생각하는 말뚝」과 「보이스카우트」는 문명화된 도시의 이면에 은폐된 폭력성 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그 경향을 묶을 수 있었다. 이러한 두 경향으로 수렴된 것은 한편으로는 우연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유력한 좌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선의 「미로의 목소리」는 재개발이 진행 중인 철거촌을 무대로 제목이 암시하는 바 목표를 상실하고 그 자체로 물질화된 목소리를 촘촘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문정민의 「물로, 물론」은 해저언어 연구라는 가상의 영역을 통해 언어의 사고 실험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로의 목소리」에서는 철거촌 골목이 목소리의 미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물로, 물론」은 물(바다)와 국경, 언어와 존재 등의 항들이 형성하는 의미망이 다소 모호해 보였다. 양귀헌의 「생각하는 말뚝」은 쇼핑몰 지하의 거대한 주차장을 통해 도시의 어둡고 소외된 공간을 조명하고 있는데, 서사의 후반부를 주도하는 알레고리가 관습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최종 후보에 오른 분들께 아쉬움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번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의 당선자는 윤민우로 결정되었다. 모의 면접을 위해 만난 취업준비생 D, L, S, H가 등장하는 「보이스카우트」는 네 남녀가 노숙자 폭행에 빠져들거나 여자인 S를 둘러싸고 세 남자들이 숨겨뒀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장면 등이 간명하고 속도감 있게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폐차장에서 벌어지는 후반부의 환상적인 장면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본심 석상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인천’이라는 고유명사가 밝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적이 불분명한 도시 외곽에 은폐된 장소를 만들어낸 상상력을 높이 사기로 했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소설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_김형중・이수형(문학평론가)

_1차 심사: 박형서, 김태용, 김형중, 이수형 2차 심사: 우찬제, 김형중, 이수형

_몇 년째 평론 부문 당선자를 내지 못한 까닭에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 평론상에 응모한 작품에 거는 기대는 어느 해 보다 달랐다. 하지만 14편의 응모작 편수가 말해주듯, 평론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비평적 글쓰기가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를 전제로 하는 탓에 기존의 아카데미 안에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이들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더 많이 주목을 하는 장르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아카데미즘의 체계가 요구하는 실적 위주의 글쓰기가 중시되면서 상대적으로 그러한 체계의 바깥에 놓인 평론에 들이는 품과 노력은 점점 미흡해져가는 실정이다. 그만큼 우수한 재능을 지닌 비평가가 양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비평계의 현실이다. 너도나도 ‘비평가’임을 부지불식간에 자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깊이 있는 성찰과 수준 높은 지적 탐색이 요구되는 비평 분야의 우수한 동량을 찾기 힘들어지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평쓰기와 논문쓰기가 이분되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기이한 질서의 압박(?)에서 불구하고, 동시대 문학에 대한 비평적 평가와 해석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어쩌면 더 간곡하고 절실한 바람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비록 소수일지라도 역으로 양질의 작품을 기대해봄직 할 터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해 평론 부문의 응모작 중에서 그러한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응모자들의 실망이 클 터이지만, 역량 있는 신진 비평가의 출현을 고대하는 편의 아쉬움은 그 못지않게 크다. 심사자들은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상 평론 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나타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나누었고, 개별적인 평가 이전에 이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비평 대상으로 택한 텍스트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한때는 흔히 대가(大家)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를 택해 그의 작품세계를 비평하는 글들만 응모되어 문제적이라고 지적된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응모되는 평론들은 그와는 정반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들, 텍스트의 특징과 가치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공통된 논의조차 부재하는 경우들이 분석의 대상으로 택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자기 세계를 형성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텍스트의 선택이 글 쓰는 사람의 취향과 기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비평이 비평가의 주관적 취향과 개인적 기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늘 논쟁의 여지가 많은 화제이지만, 비평가가 어떤 텍스트를 ‘택한다’고 할 때, 그 선택 속에는 이미 가치평가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평가의 내용을 직접 기술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을 ‘택했다’는 그 실천 속에 비평가의 텍스트에 대한 가치부여는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다수의 응모작이 텍스트 선택 시 본인의 취향에 의존하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는 분석을 위해 동원된 이론적 맥락과 배경지식이 독해의 틀로서 유효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했고, 그 때문에 텍스트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과장 ․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흥미롭게 읽은 작품을 자신이 좋아하는 이론이나 최근 공부했던 지식과 연관시켜 단선적으로, 마치 공식에 대입하듯 단순하게 적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레비나스, 블랑쇼, 아감벤, 랑시에르 등 근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적 흥미 탓인지 몰라도, 이들의 논의를 이론적 바탕에 두지 않으면 최신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글쓰기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다수의 응모작이 이들 철학자들의 몇 가지 테마와 개념들에 근거하여 텍스트 분석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텍스트의 실제와 이론의 참조틀이 서로 어울리지 않거나, 왜 굳이 이 텍스트를 택한 것인지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니, 내가 아는 지식으로 이것을 설명하자’는 식의 태도는 비평의 기본과는 거리가 멀다. 빼어난 수사와 문장력, 탄탄한 이론적 습득, 수준 높은 논리 구사가 비평가를 더 좋은 비평가로 만들기는 하지만, 비평가의 첫 번째 조건은 작품에 대한 감식안, 즉 좋은 작품을 판별할 수 있는 안목과 그러한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 뒤에 나머지 조건들이 부수된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 선택에서부터 선뜻 동의되지 않는 글들을 앞에 두고 심사자들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여 비평은 인문적 사유의 정수(精髓),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의 글쓰기를 지향해야 한다. 비평이 끊임없는 성찰과 사유를 요구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비평가가 이상적으로 지녀야할 직업윤리에 가깝다. 그만큼 텍스트와 경쟁하면서 마치 전투를 치르듯 스스로의 사유를 개진하려는 정신의 고투가 영광의 상처처럼 글 가운데 배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최신 이론에 기대어 텍스트를 그 속에 무반성적으로 이입하는 태도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비평적 글쓰기는 글쓰기 주체의 지금까지의 모든 지적 사유와 학문의 습득, 자기 성찰적인 의식의 궤적을 응축하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하는 셈이다. 이를 만족시키는 평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심사자들에겐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평론 부문에서 좋은 신인을 발굴하지 못하는 까닭을 고민하면서 다다른 이러한 결론 외에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텍스트 선택에서 미흡함이 나타나는 이유 중엔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작품을 실제 찾아 읽는 부지런한 독서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한국문학의 최근작이 갖는 역사적 위치와 가치, 위상에 대한 감각은 문학사적 조망을 동시에 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가치 평가는 바로 이러한 조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동시대 한국문학을 비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국문학사 전체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러니 평론을 쓰는 일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당부하고 싶다. 한국문학에서 고전(canon)에 해당하는 작품을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찾아 읽어야 한다. 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들도 읽지 않고 비평을 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터무니없는 직무유기이며, 속된 말로 도둑놈 심보에 가깝다. 동시대 문학에 대한 비평적 판단과 해석은 당대 문학에 대한 감수만이 아니라 언제나 문학사 전체를 동시에 읽는 행위를 전제할 때 현재를 넘어서는, ‘미래로부터 되돌아보는’ 시선이 될 수 있다. 응모작 중 비평의 기본을 견지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글이 몇 편 있기는 했지만, 물망에 올릴 만큼의 작품을 골라낼 수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히며, 심사자들 또한 아쉽고도 괴로운 심경으로 비평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뼈아프게 검토하고 반성하면서 응모작들의 공통된 문제라고 여긴 몇 가지 점들을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으로 심사평을 대신하고자 한다._김형중・강계숙(문학평론가)

_1차 심사: 김형중, 강계숙

윤민우

수상자: 윤민우

장르: 소설

작품: 보이스카우트

수상 소감:

예비군 훈련장에서 소식을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때 군복차림이었다. 더구나 내 군복엔 모의 시가전 때 얻어맞은 붉은 페인트 탄마저 불길하게 번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가짜 피를 흘리며 부대원을 몽땅 잃은 무전병처럼 멍하게 전화기를 붙들고 서 있었다. 나는 수시로 헬기가 이동하던 봄하늘을, 멋진 컬을 뽐내는 윤형철조망을, 죽은 듯이 쭈그려 앉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메시지를 들으면서.
이제 네 차례야.
내게 내려진 특전이자 지령.
그러니 기뻐하라구.

나에게 잠재력을 주신 아버지.
나의 수호천사 고모.
잃어버린 희우형.
또 다른 피붙이 신월의 벗들.
추계의 친애하는 아웃사이더들.

만약 내가 기뻐했다면,
이들에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기회를 주신 문학과 지성사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작가 소개:

1982년 서울 출생. 2010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제1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데뷔

장수진

수상자: 장수진

장르: 시

작품: 이란청년 외

수상 소감:

나는 떠나고 게이가 돌아온다 달로 가는 활을 본다 먼 데를 떠돌던 개들의 샅이 내 밑에 와 있다 컴컴한 그을음 문신처럼 조용히 찬란하다 나는 이유가 없다 불에 탄다 허벅지를 떠낸다 시가 고인다 나는 소문이 된다…… 산 것은 죽은 샅에 바람으로 삽입된다지 하체가 뜬다지 영원해진다지 샅을 잃은 개들은 여자의 둔부를 뒤진다지 여자는 운다지 밑을 본다지 개를 꺼낸다지 쳐다본다지 씹는다지 삼킨다지 나온다지 멈춰, 시다 고기다 익는다 뭉뚝한 물을 포함한다지 다리가 무너진다지 몸이 푹 꺼진다지 얼굴이 내려앉는다지 개들이 짖는다지 “이름을 말하라” 샅이 꽉 찬 여자의 입이 열린다지 나는 너다 개다 나는 네 샅 분홍의 갯 짖 줏
그 이름 이빨 사이에 들러붙어 불러보지도 못한 몸의 성명 그냥 개를 먹다 치우다 짖다 나를 여자를 잊기로 했다지

몸 떠난 개들의 샅은 어디로 모이는가

나의 시는 몸이다 육성이다 뒤로 묶인 팔이다 파탄이다 돌아온다 그들이 기대하는 처음이나 끝이 기어코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싼다 원만하지 못하다 몸의 반절이거나 약간 죽은 몸의 부글거림이다 나는 위험하다

남해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기별은 빛이나 물의 버블과는 어울리지 않더군요. 여행지에서 돌아오니 앞집은 무너져 있고 저는 여기, 현장에서 이 글을 씁니다. 떠난 것들의 폐허의 자리, 떠나온 것들의 근처에서 저는 자주 서성이며 제 몸을 견딥니다. 이런 제 사소한 습관을 발견해준 문학과 지성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결핍의 능력을 주신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선생님께도 안부를 전합니다. 봄날의 희미한 예언처럼 말하자면, 사라질 때, 쓰면서 몸을 지우는 시인이 있을 것입니다.

작가 소개:

1981년 서울 출생. 2008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연기 전공) 졸업. 제1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데뷔

백은선

수상자: 백은선

장르: 시

작품: 어려운 일들 외

수상 소감:

뒤척일수록 길어지는 꼬리처럼, 부를 수 없는 이름들.
스스로 손목을 자르고 두 눈을 파내 눈 속에 묻고 돌아섰던 마른 어깨.
혹은 우리들에게.

침묵은 초전도일까. 대장장이는 붉게 달아오른 쇠막대를 망치로 내리친다. 금속의 내부로 피를 흘려보낸다. 나는 그의 튀어나온 힘줄과 단단한 근육을 질투한다. 쇠들이 가졌던 빨강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목격한 찰나들, 끓어오르던 쇳물과 증기는.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묻혀있던 손목, 파랗게 얼어붙은 가는 손가락은 잊혀졌다. 두 눈도 어둠을 가득 담은 채 꼭꼭 감겼다. 이젠 아무도 그곳을 찾을 수 없기를.

단련된 쇠뭉치는 소란을 가장하며 조용해진다. 침묵과 침묵의 그림자, 입 없는 사물들처럼 범람하고 싶다.

가르침을 주신 모든 선생님들, 부끄러운 내력을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선후배 동기들, 나의 가족 은미언니,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 목요일의 원소들. 늘 내 시를 읽어주는 너에게, 캄캄한 포옹을.

작가 소개: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가능세계』는 백은선의 첫 시집이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