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노트] 지구인 배명훈을 만나다

「첫숨」 연재 20회 만에 작가 배명훈을 만났다. 1년간의 뉴욕 생활과 2개월 동안의 유럽여행을 마친 직후인 그는 아직 시차 적응도 미처 못 한 상태였다. 8월 13일 오후 1시, 잠기운을 어렵게 털고 나왔을 배명훈 작가는 내가 보내준 지도를 보고 상수에 가 있었고, 나는 합정역 근처 음식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글맵에게 화풀이하고 싶지만 내 잘못이다. 쿨하게 괜찮다고 말해준 배명훈 작가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한다.) 배명훈 작가와 메일을 주고받은 지 5개월이 됐지만, 왠지 펜팔 친구를 실제로 만나려 하면 어색한 마음이 들듯, 작가가 급히 합정으로 오고 있다는 5분 동안 왠지 손발이 오글오글하고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첫숨’이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시선들이 겹쳐져 재미있었다. 각설하고, 배명훈과 그의 연재 소설 「첫숨」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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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 서울을 떠나 있다가 스페이스콜로니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 여름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소설 창작에도 영향을 주는지, 일부러 더 많이 그런 시간을 보내시는 건지 궁금하다.

여행을 실제로 좋아하진 않지만 다녀오면 도움이 많이 된다. 『미스테리아』에 발표한 「배신하는 별」의 경우에는 칠레 여행에서의 기억에서 직접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를 구상하고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 뉴욕에 살 때 영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수업하는 곳 맞은편에 공사하는 데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처음으로 핵분열 실험을 한 데라더라. 거기는 동네에서 한 일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로컬한 걸 하는데 동시에 글로벌하다. 그게 공간 자체의 층위가 생기는 지점인데 이런 연결이 재밌다. 이번에 다닌 터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한때나마 세계를 제패했던 경험이 있는 나라다. 옛날에 있던 세계 구도의 층위가 흔적으로 남아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영어를 못할지언정 도망은 안 간다. 자기네 말로 하고.

 

소설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스페이스콜로니의 형태나 위치 등 과학적인 면에서부터, 스페이스콜로니 안의 권력 구조와 재생산 시스템, 우주 사회 내의 권력관계 등 사회적인 측면까지 굉장히 세밀하게 그려진 배경 위에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준비하기 전에 어떤 밑그림을 그려보는지 궁금하다.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앞서 말한 세계의 층위 같은 걸 자연스럽게 묘사하려고 한다. 국제관계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국제를 넘어선 어떤 관계들에 영향을 받게 되는 세계. 그렇지만 그게 이루어지는 공간 자체는 사람 사는 공간이다. 로컬한 것과 글로벌한 것.

이번에는 정치적인 권력보다는 사회계층에 더 주목했다. 특히 화성인들이 주도하는 사회의 화성인 문화, 습관, 관습 같은 것. 구체적으로 걸음걸이가 있다. 원래 거기서 태어나지 않으면 알 수 없거나, 따라하려 해도 그게 아니라고 제지당하거나 평가받기 쉬운 관습들이 문화권력으로 작동하는 지점에 집중했다.

결국 세계 전체를 객관적으로 볼 순 없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고 해도 현실은 결국 추출되는 것이다. 나는 권력을 중심으로 추려내는 편이다. 어차피 세계 전체는 너무 다양해서, 결국 어떤 관점에 따라 보냐에 따라 다른 세계가 구성된다. 매개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으니까.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 세계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 또한 몇 층에 뭐가 있는지까지 세세한 정보를 구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 원리를 보여주고, 작동하는 예시를 제시하면, 독자들이 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구동되는지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내적인 정확성, 리얼리티를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SF에서 추구하는 리얼리티는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인들의 지도를 보면 지중해처럼 태평양도 육지에 갇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믿는 사실을 가지고 조합해야 진짜 그 세계가 되지 않나.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그 사람들의 세계관을 전제로 해야 리얼리티가 있는 거다. 그 시대 사람들의 주관적인 관념들이 결국 그 시대의 객관을 구성하니까. SF가 현실적일 수 있는 부분도 그 지점에 있다. 소설 속에서 세계는 작동하는 원리와 이것이 추출된 관점에 따라 구성된다. 그 관점 자체는 동시대 사람들이 가진 관점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들어낸 관념일 수도 있다. 내가 소설에서 드러난다면 그 부분일 것이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첫숨」을 읽으면서 낯선 ‘세계’의 현재와는 다른 과학기술적인 면면과 그 안에서의 정치사회적 구조, 그리고 ‘인물’의 내적인 욕망과 갈등 사이의 균형감을 잘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어떤 세계관이나, 인간상, 이런 게 있나?

사실 실제로 그런 균형감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아니다. 근데 세계 따로 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맞춰지는 것도 같다. 아무래도 인물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동네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과 지구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건 다르니까. 지구인의 정체성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지구인에 대한 정체성이 즉각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글로벌한 인간과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이 어떻게 하나로 존재할 수 있나. 그런 문제다. 그럴 수 있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물음표를 많이 달곤 한다. 그래서 내 작업은 그런 사람은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내 소설의 목적은 아니지만 그 전제가 해결이 되어야 스토리를 전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달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가 달에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걸 보는 사람은 달 출신들의 성취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인간의 성취? 환경이 변하면 예술의 가치도 변하게 되는데, 그런 변하는 환경에서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이 과연 무엇으로 자신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나 하는 것이 작품의 작은 주제 중의 하나다. 큰 주제는 첫숨이겠지. 생명. 이 생명이라는 것이 생활, 존재 양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고. 비어 있을 것 같고, 채워진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지구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과 실제 인간이 어떻게 한 몸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쓰는 것이다. 독자가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이야기가 된 거고, 공감이 안 된다면 아직 비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번 소설은 화자인 최신학이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스로를 자꾸 억제하려 하면서도 결국 한묵희의 뒤를 밟고야 만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렇게 호기심이 많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작가님 본인도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그렇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이유라고 할까. 처음 「첫숨」을 쓸 때 생각했던 것은 인간 내면에 대해 모두 파헤쳐야지 좋은 표현이 나온다는 주류적인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문’에 관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기능적인 인물에 관한. 어떤 역할만 하고 사라지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들? 그런데 실제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나. 여행 다니면서 또 민감하게 했던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나를 안 쳐다보는 문화권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익숙해져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살려면 쳐다보지 않고, 더 궁금해하지 않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데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최신학도 결국 이 태도를 유지하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빠져드는데 그 대상의 수는 적은 거다. 모두에게 그러는 것은 아니고. 모든 인물에 문이 열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다. 모든 인물의 내면이 다 나오는 그런 세계가……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 세계에서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첫숨에서 그냥 지나다니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가볍게 인사하고, 웃음을 짓고 하는 모습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첫숨의 문화를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뉴욕이나 유럽은 계속 서로를 확인을 한다. 공동체라는 느낌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있다. 눈인사하고 길지는 않지만 짧게 대화도 오고가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오늘 날씨 좋지 않니?” 뭐 이렇게.

 

그럼 첫숨도 그런 공동체성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나.

첫숨에서는 인물들이 승객이라는 정체성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시라는 느낌 보다는 배를 함께 타고 있다는…… 그런 느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는 다르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깊은 관심은 없지만……

 

나모린의 벽에 걸린 「첫 숨」이라는 그림과 그 묘사를 보고 구글링하다가 Wyland라는 화가이자 돌고래보호활동가가 그린 「First Breath」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근데 실제로 배명훈 작가는 이 그림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방송을 본 적은 있다. 고래 관련한 영상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작품이 그 제목으로 있을 줄은…… 좀 실망했다. 나름 좋은 포인트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제목은 몇 년 전부터 갖고 있던 거다. 고래들의 죽음 이런 걸 보고, ‘첫숨’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화로 써볼까 싶기도 했고. 제목은 갖고 있다가 이 작품을 쓰면서 여기에 딱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넣었는데……

 

너무 복잡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간단하게 단어로 답하는 질문을 해보겠다. 단어로만 답을 해주면 된다. 첫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중심인물은 한묵희지만 사실 어머 여사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 가장 신나게 썼던 거 같다. 잔소리하는 연습도 하면서 어머 여사 흉내도 많이 냈다.

 

이번 여름 다녀온 곳 중 가장 마음에 든 곳을 꼽자면?

자그레브. 거기에 가로등에 가스등을 아직 쓰고 있다. 해 질 때가 되면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가스등을 켠다. 대기하고 있다가 아저씨가 지나가길래 따라다녔다. 계속 따라다녔더니 아저씨가 한 번 해보라고 줬다. 자그레브는 딱 좋은 게, 나를 너무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옛 도시의 모습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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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날, 연휴의 시작을 기념하여 영화 「암살」을 봤다.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들의 격앙된 얼굴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역사적인 맥락과 정서를 공유하는 사회에서, ‘지구인’이라는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만큼 지구인 정체성을 역설하는 작가의 열의에 공감하는 바도 큰 하루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층위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고 이런 불균형으로부터의 해방은, 어디에서 무엇으로 올까.

(에디터 생강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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