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문학리뷰] 무의미의 입자, 가장 차분한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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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니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문학과지성사, 2014)

글_장은정(문학평론가)

 

돌멩이를 들어 올려 고요한 수면 위에서 놓아버리는 일. 돌멩이가 물을 찢으며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을 몸을 기울여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 시를 읽고 쓰는 일이 이와 같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은 빛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수면에서 평평하게 빛난다. 손끝으로 섬세하게 수면을 쓸어보지만 빛과 소리는 흩어질 뿐이어서 우리는 단 하나의 돌멩이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일까. 이 조용하고 어두운 돌멩이에 시를 비유하도록 하자. 홀로 침묵하며 서서히 가라앉는 돌멩이가 마침내 닿게 되는 것이 여럿이 소란스럽게 있다가 홀로 되었을 때의 어떤 적막은 아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더욱 아래, 고독조차 시끄럽게 여겨질 만큼 더욱 고요한 곳, 그리하여 우리가 사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시는 시작한다.
이제니의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 대해서라면, 가장 차분한 이 아래의 장소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다. 햇빛이 가닿을 수 없을 만큼 깊어서 가장 차갑고 어두운 물속을 상상해보자. 여기엔 지나가버린 것,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잊혀버린 것들이 있다. 이를 과거와 실패, 고통과 죽음의 장소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명명은 이 장소의 눈이 멀어버릴 만큼의 절대적 어둠과 귀먹어버릴 만큼의 압도적 고요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이곳은 의지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 삶의 영역이다. 하지만 어떤 의지도 개입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이라면, 그것은 죽음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이 장소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잿빛에서 잿빛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나선의 감각」 시편에는 무한히 낙하하고 있는 구슬이 등장한다. 시는 “서서히 눈멀어가는 개의” 동공인 이 구슬의 내부를, 죽음의 중핵으로 돌진하는 구슬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은 죽음이 꽃처럼 자라나 서서히 만개하는 것을 본다. 구슬이 “수천수만으로 분열되어 빛의 분수처럼 터져나가며 다시 최초의 어둠으로 태어”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속에서 빛이 식어가면서 구슬이 구멍이 되어가는 과정을 본다. 따라 읽다가 놀라게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기쁨 때문이다. “희망의 여지 없음을 생의 헌사로 받아들”이고, “그는 견딘다. 기쁘게 견딘다”. 삶은 “폭죽처럼 터지며 빛의 속도로 어둠으로 되돌아가”는데, 이 시는 바로 이 “손쓸 도리 없는 순간”을 기쁘게 받아쓰고자 한다.
구슬은 마침내 잿빛 속으로 사라지고, 시인은 이 순간을 이렇게 쓰고 있다. “잿빛 속으로. 잿빛을 향해. 울면서. 속으로 울면서. 뛰어들고 있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죽음임을 아는 것. 삶과 죽음이 결코 임의적으로도 분리되지 않음을 잊지 않는 존재에게 죽음이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음 그 자체일 것이다. 그때 죽음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게 해준다. 존재는 자기 자신에게로 정확하게 되돌아가므로 기뻐하며 자신을 되찾는 순간 완전히 파괴되므로 슬퍼한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속이며 살아 있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 시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서 가장 중요한 시로 이해하자. 존재를 가장 순수한 형태인 죽음으로 되돌려놓기 때문에. 그곳은 시간적으로 가장 최초의 과거이며 동시에 가장 최후의 미래가 현재에 응축되는 순간이다.
이 글은 단 하나의 돌멩이에서 시작했다. 「나선의 감각」 연작은 수면의 빛과 소리를 찢으며 깊이 가라앉는 돌멩이와 같다. 빛도 소리도 없기에 가장 무겁고, 그저 가라앉음으로써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연작들을 정확히 이해한 후에야 다른 시들이 그려내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가령 「꽃과 재」를 보자. “꽃은 그림자들의 재/재는 그림자들의 꽃”과 같은 구절. 시인은 수면의 꽃에게서 심연의 재를 보고, 재에게서 가장 높은 꽃을 본다. 꽃과 재는 하나의 본질의 두 가지 표현이라는 점에서 가장 가깝고 그것이 서로에게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가장 멀다. 이제니 시에게 있어 꽃과 재는 어느 쪽이든 존재의 본질의 한 측면을 드러낸다. 수면은 심연을 암시하기에 본질적이고, 심연은 수면을 응축하고 있기에 본질적이다. 그리고 그 암시된 내부는 어느 쪽이든 “뜻 없는” 무의미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가지 위에 가지런히 두 발을 얹고서” 부르는 “아무 뜻 없는 노래”일 것이다(「가지와 앵무」). 무의미야말로 삶과 죽음의 핵심이며 그것을 용인한 자만이 ‘뜻 없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제니의 시는 이 무의미를 호흡하면서 말하지 않은 것이 전달되는 놀라운 순간을 포착한다.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눈을 감아야만 보이고 귀가 먹어야만 들리는 그것. “빛이 난반사되는 어두움”(「검은 것 속의 검은 것」), 모든 면이 막혀 있으나 햇빛이 드나드는 상자와 같은 일이다. 이제니의 시는 시시각각 반짝거리는 존재의 활기 속에서 무의미의 입자를 본다. 그 입자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일으키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깊숙하게 가라앉아 있던 기쁨과 슬픔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를 두렵게 하지는 않으니, 시의 자유일 것이다.

이제니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14년 11월 1일
사양 변형판 128x205 · 228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26701

이제니 시인

시인 이제니는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페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가 있다. 제21회 편운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장은정 평론가

1984년 출생,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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