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문학리뷰] 대책 없이, 모르는 날씨에게

043_히스테리아_앞

김이듬 시집,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

글_박성준(시인, 문학평론가)

실패한 사랑이나 열렬히 사랑했던 실패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사람 대신 히스테릭한 기후를 떠올렸을까? 언제 어디서나 눈에 잘 띄던 사람, 어떤 동요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존재만으로 고요를 깨고, 아무런 채무나 책무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늘 빚진 자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던 사람, 복어 요리에 아릿하게 남겨놓은 적당량의 독처럼 매혹적이나 위험하고, 잡스러운 우연들과 동거하며 동조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비애감과 그저 우정을 쌓던 사람, 의견보다 의문이 많았던 그 사람이 있다. 몇 날 며칠 찾아와서 말썽을 부리다가도 또 긴 시간 곁에서 떠나가고, 도무지 내가 모르는 상처를 받고는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완결된 실패’ 앞에 나는 가만히 쓰러져본다. 얼마나 많은 미지의 울렁임들이 범람하고 난 이후의 기후일까.“안 그린 공간에 그녀”(「예술품」)를 만진다. 나도 “실수로 쏟은 향수에 정신을 잃”(「장물아비」)어본 것 같은 사랑이 있었다고 나쁘게 말해본다. 어쨌든 그 사람은 오래 나를 떠났다. 변심하는 날씨 같은 시집 한 권을 손에 쥔다.
김이듬의 네번째 시집 『히스테리아』에서는 사랑 이후의 권태를 갚아내고 있는 흐림이 느껴진다. 일상은 막 쏟아질 것 같은 비가 아니라 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오갈 데 없는 ‘습(濕)’을 내재하고 있다. 줄곧 기이하게 절충된 우연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기울어진다. 중국집에서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 종업원에게 불만을 요구하기를 머뭇거리는 정황(「사과 없어요」)이라든가 중고 카메라 대신 벽돌이 배달되었을 때 경찰서로 가야 할지 송장 주소지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불안(「빈티지 소울」)마저도 마찬가지다. 이 시편들의 주체는 사람을 배려하고 믿었을 뿐 어떤 가학이나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주체 바깥의 타자를 향하는 마음에도 ‘습’이 많아서, 종종 오해와 굴종의 일대기를 번복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자신의 영혼이 “약을 쳐야 기어 나오는 벌레 같아서 마치 없는 것처럼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것”(「빈티지 소울」)이라는 고백록을 읊는 것이다. 그러니까 뿌리 내릴 중심은 없고 흩어질 저변들만 가득해서 내/외상을 같이 들추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주체가 저지른 감정의 붕괴들로 이곳은 폭주와 진압을 오가며 서늘해진다.
그렇다면 실패로 매듭지을 사랑을 왜 시작했을까.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은 실체와 다르게 굴절될 각각의 상상력이듯, 이 시집의 시적 주체들은 그 꾸며진 허구를 발판 삼아 자신과 바깥의 질서들에게 처절히도 야유를 보낸다. 이것은 전복을 하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어쩌면 전복이 꼭 필요하다는 욕구라서 더 참혹하게 반짝거린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본다”(「너는 우연히 연두」) 한들, 온전히 타자로 열릴 수 없는 자기 연민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질 때마다 장갑을 선물하는 경향”(「장갑의 밤」)에 대해서도 한쪽을 잃어버리기 쉬운 하찮음 때문이라고 방어하듯이 갈무리한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폭력성을 내재한 외부의 정념들이 주체를 늘상 관통해오더라도, 실패를 이미 예감하고 또다시 벌어질 실패에 대해 담대하고 의연해지는 것이다. 자주 사랑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실패 자체를 사랑했던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어버린다. 그러나 그런 전복의 쓰린 결과 표면에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질 때와 같은 심정”(「어른」)과 아집이 있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혹은 상처를 가중시키려는) ‘인생 고백’(「변신」)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찰나마다 미동을 일으키는 “슈퍼문”(「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과 “야하게 꾸며 나가고 싶은”(「변신」) 밤의 기후가 치명적이게도 주체를 매일매일 따라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심장이 빨리 뛰는 과도한 몸의 직관 때문에 그토록 가혹한 질서를 마주해야 했던 주체는 자발적으로 예민하고 우발적으로 고유하게 마냥 아파보려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정념의 실체는 이 시집에서 손꼽히게 아픈 절창인 「시골 창녀」에 와서 조금 더 명징하게 스스로를 건넌다.
김이듬의 오랜 창작론이자 그가 현실을 응전하는 방식이기도 한 「시골 창녀」에서는 주체를 둘러싼 쓰린 시선과 회복 의지, 그리고 그 통증의 현상학까지 읽힌다. 간헐적으로 시편들에 등장했던 ‘시 쓰기 메타 사유’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며 자신의 피의 내력을 이곳에 푼다. 아무리 집안 내력을 살펴봐도 조상들 중에는 멸시와 천대를 받은 사람이 없었는데 오직 시적 주체만이 “마음의 기생”을 키우고 있다. 대체 그 마음의 기생이란 어디서 온 것인가. “나무로 만든 성냥 하나가 나무와 온 숲을 불태우는 데 모자람이 없”(「밀렵」)다고 했거니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펜을 들고 시를 쓴다고 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세계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모멘트가 고작 글쓰기뿐이고 제 몸을 태우는 일뿐이라니! 억압을 응전하는 그 방식마저도 비틀어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지금 이곳의 세계이지 않은가. 그곳에서 시적 주체는 마음의 기생과 동거하며 스스로를 지탱한다. 그러면서 “해칠 의도가 없는”(「데드볼」) 공이 작정하듯 누군가의 몸에 맞는 것처럼, 죽이고 싶은 진심 없이도 곧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실 사태들의 종합이 시인의 시인됨의 자리를 확보해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자리는 “감정 갈보”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쏟아지는 감정들의 응축을 ‘갈보’ 말고 또 무엇이라 명명해볼 것인가.
훌렁 옷을 벗고 침대에 엎드려 김이듬을 읽는다. 나 또한 나를/내가 버린 타자들의 입장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대책 없이 말을 갚는 마음의 각오를 엿들었다 한들, 나는 여전히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들이 나를 버려줬으면 좋겠다고 아무리 다짐하고 마음을 만져 봐도 아픈 부위가 명확하지 않다. 그렇게도 수많은 당신들을 사랑했다. 당신들은 나의 날씨를 기억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끔 그곳의 날씨가 궁금해서 맑은 날 우산을 들고 외출을 해본 적이 있다. 히스테리아. 히스테리아. 다시 히스테리아. 하고 읊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 걸까. 잡스러워도 괜찮아. 그래 괜찮아. 주섬주섬 옷을 입고 괜히 부끄러워진다. 언제든 내릴지 모르는 비 때문이라도 오늘 나는 당신의 우산을 준비해야겠다. “그냥 믿고 싶어서”(「독수리 시간」), 다시 실패를 사랑하려고.

김이듬 시인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계간 『포에지』 가을호에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으며, 시집으로 『별 모양의 자세히 보기

박성준 시인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 『몰아 쓴 일기』가 있다. 2015년 시 「뜨거운 곡선」으로 제16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는’ 동인으로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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