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문학리뷰] 사랑이 열어놓는 악에 대하여

미제레레

김안 시집, 『미제레레』(문예중앙, 2014)

글_장은정(문학평론가)

사랑만이 가능케 하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도록 조건 지어진 인간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를 갖게 된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의 본질적인 이기적 속성을 극복해내면서 최대한의 선함을 발현시키는 일만을 해내는 것은 아니다. 낮의 반대편에 언제나 밤이 있는 것처럼, 사랑은 그 선함과 대척점에 있는 악의 세계 역시 동시에 열어놓는다. 물론 이때의 악이란 이미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던 평범한 세계다.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상황에 맞는 말을 점잖게 골라내던 낮의 사람이 희열에 가득 차 누군가를 찌르는 꿈을 꾸며 침을 흘리는 밤의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러한 밤의 세계가 환한 낮의 영역으로 침투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검은 눈동자가 흰자위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 사랑과 함께 시작되는 믿음의 근원에는 증오가, 다정한 속삭임의 근원에는 비명이, 사랑받는 기분의 근원에는 모멸감이 있다. 김안의 『미제레레』를 읽고 있노라면,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집요하게 모른 척하고 싶은 이 밤의 세계가 단숨에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이란 그저 불룩한 주머니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주머니에는 “비겁함, 두려움, 공포, 증오, 모멸감……”(「식육의 밤」)이 가득 담겨 있다. 축 처진 주머니의 끝에서는 “양수와 피와 오줌과 땀과 침이 비명에” 뒤섞인(「시취」) 끈적거리는 액체가 똑, 똑, 떨어진다. 사랑이 아름다움과 선함의 세계라면, 글쎄, 인간이란 사랑에 정말 어울리는 존재일까? “의미가 멈추면 광기가 시작된다. 사랑을 나누던 모습 또한 그러했다. 사람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었을까?”(「사랑의 역사」)
잔인하고 두려운 질문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그저 화려하게 병든 자들에 불과한 것일까(“봐, 우리가 얼마나 화려하게 병들었는지”, 「동백」). 아직 시집을 읽지 않고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이 시집이 손쉬운 냉소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토록 서늘한 질문들이 시 곳곳에 꽂혀 있음에도 시집이 전혀 차갑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감상적 슬픔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이 시들은 뜨거운 참혹으로 가득하다. “용서와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囊」)라고 되물을 때, 여기에는 풀썩 주저앉고 마는 자가 지닌,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실려 있다.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인간에 대한 노래가 어째서 이토록 뜨거운 것인가.
그 역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숨겨져 있던 악의 세계를 열어놓는다고 썼다. 어쩌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에 의해서만 그 악의 세계가 낱낱이 인지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보다 누군가를 더 아끼게 된다는 것, 그것이 진실 된 것일수록 우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요구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우리 내부의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내부에 “안락하고 무한한 지옥”의 세계(「기억 후의 삶」)가 있다면, 사랑은 그 어둠의 세계에 잔인한 빛을 구석구석 비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일까”(「우리의 물이 가까스로 투명에 가까워졌을 때」)와 같은 질문은 스스로를 남김없이 목격한 자의 질문이며, “당신은 사랑합니까, 나를, 이 살덩어리만큼”(「육식의 날들」)은 피상적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있던 낭만적이고 위선적인 사랑이 깨어졌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들은 정확히 우리의 끔찍한 심연을 겨냥하고, 그리하여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잔인한 진실을 쓴 시를 읽고도 ‘이 시, 참 좋다’고 말하게 되는 것일까.

장은정 평론가

1984년 출생,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자세히 보기

김안 시인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집으로 『오빠생각』이 있다. 2014년 현재 《현대시》 편집장이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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