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곱씹어 읽는 법 -『방드르디, 야생의 삶』 속에 ‘숨은 질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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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야생의 삶』(미셸 투르니에 지음, 고봉만 옮김)

글_정수복(작가, 사회학자)

세상의 모든 재난은 사람들이 집에 가만히 머물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일어난다. 집은 우리를 보호하는 안식의 장소다. 그러나 인간은 집 안에서만 살 수 없다. 집과 집 바깥을 오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집 바깥으로 이동하는 거리는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육지의 고정된 궤도를 달리는 기차에 비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비행기’ 조난 사고로 말미암아 불시착한 ‘사막’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면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은 ‘배’가 난파되면서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막과 무인도는 통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장소로서 삶의 원점으로 되돌아가 삶과 세상에 대한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장소로 설정된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변형시켜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한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은 1759년 9월 30일 태평양의 작은 섬에 난파되어 1787년 12월 22일까지 약 28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다. 소설은 구체적 인물이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논문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답하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야기로 쓰여진 소설은 이야기로 읽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질문들이 숨어 있다. 그 질문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숨은 힘이다. 그래서 한 권의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숨은 질문’들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독자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곱씹어 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방드르디, 야생의 삶』을 곱씹으며 찾아낸 숨은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그밖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노동의 의미는 무엇이며 삶의 궁극적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 지배-피지배, 착취-피착취의 관계를 넘어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관계는 가능한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자연을 지배하는 근대문명은 자연 속에 묻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원시문명보다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당연시하는 진보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타당한 것인가? 핵폭탄과 핵발전소를 비롯하여 지구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오늘의 문명사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지금의 위기사회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학자인 나는 『방드르디, 야생의 삶』을 읽으며 저자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를 찾는다. 여기서 위의 문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논의할 생각은 없다. 그러려면 좀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명한 독자라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것이다.

책을 덮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 책이 제기하지 않은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매우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 제외된 그 하나의 질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녀관계다. 이 책에는 남녀 사이의 관계가 나오지 않는다. 남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만 나온다(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도 남남관계 이야기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성욕과 연애의 문제가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아래의 질문들을 던지면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만약에 로빈슨이 목숨을 구해주고 함께 살았던 방드르디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방드르디가 떠나고 그 대신 나타난 소년 선원 디망슈를 여성으로 설정하여 『디망슈, 무인도에서의 사랑』이라는 후속 소설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미셸 투르니에 지음 | 고봉만 옮김
카테고리 문지 푸른 문학 | 출간일 2014년 7월 17일
사양 변형판 124x188 · 212쪽 | 가격 9,000원 | ISBN 9788932026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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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일반저자

정수복은 사회학자이며 작가다. 서울 남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고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에 유학하여 ‘지식인과 사회운동’에 대한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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