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 미니 리뷰 선정작-10 “네모”

글쓴이_독자 ID 소녀N
리뷰 도서_이준규 시집 『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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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제나 비(非)시적이다. 시는 시적이지 않음을 그 존재 이유로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세 권의 시집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제 존재를 드러낸다. 나희덕은 은유로써 시적진술을 드러내고 김경주는 환유에 가까우며, 이준규는 지시만할 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침묵이 말하지 않음이 아니듯이, 침묵은 침묵만으로도 이미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다는 영어로 ‘I don’t speak’ 인데 여기에는 이미 ‘I speak’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다. ‘시적이지 않다’라는 말에도 ‘시적이다’, 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시집은 읽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읽을 수밖에 없다. 현대시가 난해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읽히지 않아서 시집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안 히는 시집을 읽는 편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삶과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굳이 오이디푸스를 운운하지 않아도 삶은 볼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 결코 완전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비가시적이고 비가역적인 삶. 현대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알 수 없는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성과 과학의 빛으로 오롯이 잡을 수 없는 지점, 그 깊은 곳까지 탐사해 나아가는 시인들이, 그래서 나는 부럽다. 시는 언제나 시가 아니기를! 그래서 시가 언제나 ‘네모’난 액자처럼, 텅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그리하여 더없이 불가능한 것으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이 아름다운 오독을 즐기겠다.


불가능한 것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나 오독을 즐기는 독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오늘날 누군가 시를 쓰고 누군가 시를 읽는 주요한 이유겠지요. 언제까지 이 아름다운 관계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상반기 결산 문지 리뷰 이벤트>를 마칩니다. 10편의 리뷰를 따라 읽으며 남은 2014년을 가늠해보았습니다. 늘 좋은 책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선정된 10분의 독자께는 “문지 에디터 추천 여름 도서 5종”을 선물로 드립니다! 참여하고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전합니다. 리뷰 이벤트는 올해 하반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이준규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14년 2월 26일
사양 변형판 130x205 · 108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26077

이준규 시인

1970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자폐」 외 3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흑백』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이 있다. 제12회 박인환문학상(2011)을 수상하였으며 루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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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녀N
    2014.08.04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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