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은 무방비 상태에서 북받친다- 시인 오은이 읽은 <모멸감>

016_ 모멸감_앞

김찬호,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014)

글_오은(시인)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나는 정읍이라는 소도시에 살았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몇몇 아파트를 빼면 4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었다. 어린 나이인 것은 둘째치고라도 백화점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소위 ‘메이커’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정읍에서 가장 큰 옷가게의 이름은 ‘명동의류패숀’이었다. 명동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랐고(정확히 말하자면 지명인지도 몰랐다) 패숀은 발음하기에도 어색한 단어여서 내가 알아들은 건 고작 의류뿐이었다. 그러나 의류라는 단어만으로도 옷을 파는 집임을 가늠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 년에 두세 차례 거기에 가서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어느 날 사촌 누나가 정읍에 놀러 와서 함께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명동의류패숀 앞을 지나가다 사촌 누나가 말했다. “명동? 여기에 왜 명동이 있지?” “명동이 뭔데, 누나?” “너는 그것도 모르니? 서울. 서울에 있어. 패숀은 또 뭐야, 촌스럽게.” 사촌 누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누나는 연지동 알아?” 당시에 내가 살던 곳은 연지동이었다. 사촌 누나가 갑자기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거 짜가네?”(당시에는 짝퉁이라는 말보다 짜가가 널리 쓰였다.) 내 윗옷을 매만지며 사촌 누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팽팽하던 신경전은 싱겁게 끝났다. 내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나는 짜가가 가짜를 가리킨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 누나의 표정과 말투는 사뭇 결정적이어서 한순간에 나를 무너뜨렸다.)
정읍에서의 일화 하나 더. 학교에서 가을 소풍으로 내장산에 갔다. 단풍을 보러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정읍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친구들과 걸어가는데 옆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여기 완전 시골이네. 간만에 바람 쐬고 좋긴 하다. 곳곳에서 사투리도 들리고.”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잠자코 있었으므로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업신여긴다고 느꼈다. 대체 무엇을? 시골을 발음할 때의 빈정대는 말투는 정읍이라는 소도시를, 사투리 얘기를 할 때 주위를 둘러보며 피식 웃었을 때는 정읍에 사는 사람들을. 그러나 그가 나와 내 친구들을 콕 집어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다가가 따지면 당돌하다며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의도가 없었다며, 잘못 알아들은 거라며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있을 터였다.

모욕에는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경멸에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모멸감』67쪽)

모멸감은 쉬 잊히지 않는다. 외려 되새길수록 더욱 생생해지는 이상한 감정이다. 내 기분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지만, 이 기분은 타자에 의해 추동(推動)된 것이다. 모멸감이 더욱 견디기 쉽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향해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를 가운데 두고 내가 견뎌야 하는 감정이다. 부끄러움과 치욕스러움을 포괄하는 감정이자, 스스로가 유발한 것이 아니므로 반성이나 참회가 해결 방식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모멸감은 모멸감을 일으킨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때때로 불분명한 다수일 수도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간 아이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따라서 모멸감을 느꼈을 때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따져야 할지 난감한 경우도 빈번하다. 모멸감을 일으킨 지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모멸감 해소에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모멸감은 어떤 단어 하나, 표정, 말투, 상황, 분위기 등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멸감을 불러일으킨 부분을 찾아내려면 우리는 더욱 섬세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감정을 나만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모멸감』이 빛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품었던 감정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욕감과 수치심, 모멸감과 자존감 등 모멸감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을 구분하고 있다.(이를테면 앞선 나의 일화에서, 사촌 누나로부터 받은 감정은 모욕감에 가깝고 소풍 때 내가 느낀 것은 모멸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분은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각각의 감정에 맞서야 하는지 미리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계획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갈 확률은 낮지만, 실제로 그런 일에 맞닥뜨렸을 때 나는 계획하지 않았을 때보다 덜 당황할 수 있다. 물론 위의 감정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고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는 무르고 또 어떤 지점에서는 단단한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어 이런 섬세함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멸감이 켜켜이 쌓이면 다른 감정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꾹꾹 눌러 담아 형성된 감정이므로 밀도도 높고 파괴력도 굉장하다. 문제는 그 감정이 꼭 모멸감을 제공한 대상을 향해 폭발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모멸감을 제공한 대상은 대부분 내가 섣불리 맞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상사의 말에 모멸감을 받고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여자 친구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콜센터 상담원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내가 받은 모멸감을 내가 대하기 편한 사람, 내가 생각하기에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전가가 아니라 확산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욱 옳을 것이다. 이렇듯 모멸감은 또 다른 모멸감을 낳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고 해서 내가 받은 모멸감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책감까지 더해져 더욱 괴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기 십상이다.
다시 예의 일화로 돌아가자. 사촌 누나와의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여쯤 지나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담담했다. “너만 진짜면 되지. 네가 제일 중요해.” 처음에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진짜인데, 내가 걸치는 것은 짜가여도 된다는 말인가?’나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런 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건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엄마의 말은 나를 돌보라는 말, 스스로가 단단해지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던 듯싶다.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자각하고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채워진다는 말이었던 듯싶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여럿이 만드는 것이면서,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각자의 내면에 있다. 감정의 주인이 되려면 자기를 주의 깊게 보살펴야 한다. 마음은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양생해야 한다.(『모멸감』292쪽)

모멸감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들이닥친다. 스스로가 민감한 사람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누구에게나 깍듯한 사람 또한 모멸감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상황은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 상황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성격, 기분, 취향 등이 결합되어 맥락은 완성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이루어지는 보안 검사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상사의 거침없는 반말에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보안 검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에 시큰둥할 수도 있고 상사와 유대감을 쌓은 사람은 상사의 반말이 외려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정은 이렇게나 어렵다. 같은 말이라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결과는 번번이 다르다.
미국의 영화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은 일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에서 한 가지 후회는 내가 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디 앨런의 말은 유머와 조소를 담고 있는 것이지만, 거기서 나는 모멸감이 닥치던 순간을 떠올린다. 모멸감이 엄습할 때 나는 종종 숨고 싶거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모멸감이 나를 덮칠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멸감은 대부분 무방비 상태에서 북받치게 마련이다.) 내가 갑의 위치였다면, 내가 힘이 셌다면,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근사한 누군가였다면, 내가 잘생긴 사람이었다면, 내 목소리가 조금만 더 근사했다면, 내 운동신경이 조금만 더 탁월했다면, 내가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연일 우울하다. 두 손을 모으고 더없이 간절해졌다가 정부의 대응에 화가 났다가 선장에게 분노했다가 대통령과 총리에게 격노하고 있다. 국가가 두 손을 다 놓아버린 이 상황에서 나는 커다란 모멸감을 느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명이 가장 존귀한 것이라 믿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더없이 괴롭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본의 저울질 때문에 인간의 존재 가치가 격하된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모멸감이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잡거나 다스림으로써 해결될 수 없을 때, 대체 무엇을 딛고 일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이 모멸감을 극복하는 데는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인간이 비로소 존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본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므로.

김찬호 지음 | 유주환 작곡
카테고리 문지푸른책 | 출간일 2014년 3월 21일
사양 변형판 136x209 · 324쪽 | 가격 13,500원 | ISBN 9788932025551

오은 시인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시』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 자세히 보기

김찬호 일반저자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자세히 보기

10 + 8 =

  1. rere
    2014.04.30 오전 9:46

    잘 읽었습니다. 우디 앨런의 말도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