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미로 앞에서

글_이영훈(소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소설 쓰기는 단 한 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느냐 하면, 마감 날짜를 제대로 맞춘 적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기 일이 쉽지 않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세상에 쉬운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직접 해본 소설 쓰기의 어려움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어떤 이론이나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이들은 목표로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설을 검증하거나 실험을 반복한다.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택했다가, 막히면 돌아와 다른 길로 나가는 일. 그것은 일종의 미로 탐사다. 그런데 소설 쓰기는 그렇지 않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의 경우 대부분은 목표로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안다. 그럼에도 갈림길이 나오면 늘 고민하고, 가면 안 되는 길을 고른다. 필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설의 미로는 아주 크다. 목표에 닿기까지 꼬박 한 달, 혹은 석 달, 때로는 일 년 이상이 걸린다. 몸은 피곤하고 물과 식량은 떨어지고 자꾸 이상한 길로 가게 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출구가 어디인지 빤히 알아도 저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일에 대한 푸념은 이쯤 해두고, 소설 쓰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한다.
백민석을 이야기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반짝이는 희망과 동경을 눈에 담고 절절한 고백을 토해야 하나? 아니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해를 중얼거려야 하나. 어느 쪽이든 가능할 것이다. 처음 백민석의 소설을 읽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백민석에 대해 여러 가지 마음을 품어왔다. 그중에서 나름 흐뭇한 감상을 꺼내어 적으면 이 글은 적절하게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고 싶은 기분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백민석에겐 현명해지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내가 그의 소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에 현명해지기란 어렵다.
이 글의 꼭지 제목은 ‘작가가 기다린 작가’다. 고백하자면 난 백민석을 기다린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백민석을 알지도 못하고 만나본 적도 없다. 그를 둘러싼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그가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다는 것, 딱 그 정도만 안다. 솔직히 그 사연들에도 별로 관심 없다. 살아가는 일은 너무 큰 미로여서, 자리에 주저앉아 징징대지 않기 위해서만도 안간힘을 써야 한다. 내겐 남의 사연에 관심 둘 여력이 없다.
그가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썼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몇 번이고 책꽂이에 꽂혀 있던 ‘『목화밭 엽기전』과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다시 읽었다. 그러는 동안 내게 백민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실존하는 사람이었다. 새 소설을 발표하지 못하는 소설가는 무의미한가?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소설가보다 죽은 소설가가 더 많고,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소설을 읽는다. 새 소설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전의 작품들이 풍화되는 것은 아니다.
백민석의 새로운 작품집에 따라 붙는 몇 개의 수식어들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특히 ‘10년만의 귀환’ 같은 말들. ‘귀환’은 아이들 놀이터에 지뢰가 묻혀 있는 나라에 다녀온 사람에게나 쓰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새 소설을 썼을 뿐이다. 그럼 그걸 읽으면 된다. 그 자연스러운 일에 왜 백민석 개인의 사연을 갖다 붙여야 할까. 그것은 그의 소설에, 그리고 그가 소설을 써온 시간에게 너무 무례하다.
거대한 소설의 미로 속에서 백민석은 언제나 내가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갈림길을 제시했다. 그의 소설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길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새 미로를 지었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백민석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는 오직 그의 소설을 기다렸고, 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가 여전하다면 씨익 웃을 것이고, 변했다면 호기심으로 눈을 굴릴 것이다. 존경과 경이를 담아. 그뿐이다.

이영훈 소설가

1978년에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거대한 기계」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로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고, 장편소설 「체인지킹의 후예」로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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