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던 일들이 진짜 소설 속으로

글_김덕희(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스를 통해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는 양쪽 팔꿈치를 벅벅 쓰다듬을 때가 있다. 재작년 말에 보도된, 한 남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 안방에 방치한 채 지내던 동안 수능시험까지 치른 사건은 차라리 소설이어야 했다. 소설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설’이란 말을 그렇게 빌려 쓰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고 언론들은 추가로 조사된 정황에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해 사건을 거듭거듭 재구성했다. 고통스러운 ‘소설’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듬해에 우리는 국회의원들과 대통령을 뽑는 판을 잇달아 벌였다.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 했으므로, 고함도 좀 질러야 했으므로,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지겹다고 짜증내야 했으므로 무척 바빴다. 무척 바빠 정신이 없었으므로 학생의 사건은 잊었다. 어디 잊은 게 이 사건뿐이었나? 재개발지역 철거 과정에서 누가 불타 죽었는데도 잊었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가 굴뚝 위에서 수개월 동안 하소연하고 있는데도 안 들었고, 어느 청년이 전쟁을 배울 순 없으니 입대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잡혀가도 남의 일이었다.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다시 말을 꺼내기엔 누구나 다 아는 얘기가 돼버렸고 더한 일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잊고 산 건 선거 탓이 아니라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그래왔듯이, 누나와 형이 그래왔듯이……

그런데 이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간은 운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덮치지 않으면 그 형태를 알지 못한다._「음유시인의 갈대 펜」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금수회의록」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그것을 보고 분낼 줄 모르고 도리어 웃고 구경만 하니, 그 부인의 오늘날 당하는 욕이 내일 제 어미나 제 아내에게 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는가?_『추월색』(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0)

소설 같다고 생각했던 일이 진짜 소설이 되어 돌아왔다. 앞의 ‘소설’은 황당하고 믿기 힘든 사실에 붙이는 말이고 뒤의 ‘소설’은 사실보다 값지고 진지한 사색을 이끄는 허구에 붙이는 말이다. 신문 지면과 뉴스 화면에서 접했던 희대의 사건과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다. 절대 되풀이돼서는 안 될 역사의 어느 장면도 있다. 위에서 말했듯 언론의 보도와 책 속 기록이 전부라 믿었고 나완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게 이런 식으로 내 이야기가 되는 줄은 몰랐다. 끊임없이 더 나은 성적과 성과를 강요당하고 내 터전을 언제 빼앗길지 몰라 불안해하며 직장을 잃으면 당장 내일이 막막해지는 바로 우리 이야기다.

문학 편집자로서 30년 가까이 자기만의 소설 세계를 만들어온 작가의 소설집을 맡는 일은 큰 영광임과 동시에 무거운 부담이었다. 진지하고 선 굵은 작품에 매료된 채 진행하면서 수록작의 배치를 의논하고 제목을 조정하자고 건의했다. 메일을 쓸 때마다 졸아드는 마음을 달래느라 혼났다. 그러나 편집자의 열정이라 우기기로 하고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선생께서는 늘 경청해주셨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이 책 어느 곳에 담긴 내 수고가 기특하다.

안국선 지음, 이해조 지음, 최찬식 지음, 권영민 책임 지음
카테고리 한국문학전집 | 출간일 2007년 4월 20일
사양 변형판 135x207 · 342쪽 | 가격 9,500원 | ISBN 9788932017761
정찬 지음
카테고리 중단편소설 | 출간일 2013년 2월 4일
사양 양장 · 변형판 140x210 · 276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32023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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