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했던 말이 여기에서

글_서효인(시인, 문학과지성사 기획팀)

 

05_포주이야기

김태용의 소설을 읽고 나면 꼭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문장을 만들며 문장은 이내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인류의 오랜 잘못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이런 잘못을 꽤나 오래 지치지도 않고 해왔다. 김태용은 그런 작가이며, 나는 그런 독자이다. 그건 다음 이야기처럼 지질하고 처량한 생각이다. 생각은 결국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죄다. 나는 죄를 짓고 시간에서 도망하는 탈영병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 그는……

*

나는 왕따였다. 뒤늦은 고백을 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왕따 비슷한 걸 당했는데. 아니다. 왕따는 아니고 따돌림이라고 하자. 뒤늦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는데. 아니다. 따돌림은 아니고 배신이라고 하자. 뒤늦은 고백을 하자면, 나는 배신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그거다. 모든 왕따는 배신의 피해자다. 나는 다수의 배신에 홀로 노출된 내가 몹시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나를 부정해야 했다. 그것이 편했다.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왕따였다. 어제까지 기숙사에서 학교까지의 짧은 거리조차 거들먹거리며 함께 다니던 녀석들이 이젠 나를 멀리했다. 그 오늘이 언제 시작한 오늘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어떤 징후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이제부터 너는 나의 친구가 아니며, 그러므로 너를 무시할 것이며, 너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난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나에게 했다. 그들의 눈빛이 음성으로 바뀌어 내 귀에 날렵한 잽처럼 달려들었다. 자꾸 맞으니 아팠다. 아픔으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왕따였다. 이유를 찾아야 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수틀렸는지 알아야 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반에서 십대후반 남자 아이들의 정념을 흔들 줄 아는 녀석이었던 그가 나를 멀리한 건 3월 중순 즈음이었다. 겨울에 우리는 같은 학습지를 신청했고, 매점에서 같은 햄버거를 우적거리며 되지도 않은 농담을 크게 지껄였다. 우리가 말하면 친구들은 웃었고, 우리가 움직이면 친구들이 움직였다. 우리는 잘 구성된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나는 너의 옆에서 강해졌다. 이것이 지상에서 유일한 너의 양식이다,라고 되뇌며 나는 돌덩이를 씹기 시작했다.

나는 왕따였다. 우리는 선배들이 수능을 보고 있는 그 시각, 기숙사에 입소했다.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고 새벽에 잠들었다. 찬 겨울이었지만 방은 절절 끓었다. 졸음이 밀려왔으나 금세 달아났다. 사감의 닦달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때 싫은 소릴 같이 들었고, 쉬는 시간 침대에서 혹은 책상에서 함께 시시덕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혼자서 밥을 우적우적 먹으며 생각했다. 너랑 나랑은 정말로 친했는데 너는 왜 갑자기 나를 구석으로 모는가. 나는 그로기다. 나는 절절 끓었다. 이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면…… 나는 남아 있는 신체를 끌어당겼다.

나는 왕따였다. 나는 끊임없이 기억을 소환하고 소환된 기억을 재생하며 재생된 기억을 부정해야만 했다. 기억은 행동이 아니었다. 내가 지었던 몸짓과 손짓과 발짓은 이미 내 기억에 없었다. 내게 남은 나에 대한 기억은 내가 뱉어낸 ‘말’뿐이었다. 내 목소리가 뇌의 구석구석을 돌아 허공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뇌의 안쪽에서부터 내 음성이 만든 문장들이 완성되어 피어올랐다. 호두처럼 곱창처럼 꼬여버린 내 말들이 수인사를 건넨다. 미리 말해두겠다. 목소리야, 배설물아. 이제 그만 손을 치워라.

나는 왕따였다. 내가 그를 흉봤던가. 내가 그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놨던가. 내가 그에게 천박하게 굴었던가. 내가 하는 말이 사람의 말이었던가. 나는 말을 했던가. 나는 괴물이었던가. 나는 말을 함부로 했다. 나는 말을 똥처럼 했다. 나는 말에게 헤펐다. 나는 네가 녀석의 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의 손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내가 어떤 장면을 확실히 보았는지, 나의 환영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래서 환상은 생겨나는 걸까. 어쩌면 나에겐 또 다른 혁명이, 혹은 환상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나는 왕따였다. 나는 나의 배설을 쫓아다니다가 거의 미쳐버렸다. 그는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원인도 결말도 과정도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발설할 권리가 없었다. 새로운 배설을 하지 못한 나는 지난 기억으로부터 꺼낸 배설을 쳐다보며 그것을 되삼키는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내가 뱉은 문장은 조금 닮고 조금 다른 자신의 형제들과 몸을 결박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서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올챙이가 앞다리와 뒷다리를 갖더니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는 다시 괴물이 되었다. 이야기는 말과 말을 타고 제곱의 제곱으로 몸을 부풀렸다. 이야기의 문장은 끝나지 않고 세계의 끝을 확장시켰다. 세계의 끝에서 넝마주이가 된 나는 이런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시오.

나는 왕따였다. 나는 내 말이 잘못되었다고 통렬히 반성했다. 내가 뱉은 문장과 이야기를 쳐다보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 그것들은 냄새가 되어 소리가 되어 느낌이 되어 바투 붙었다. 나는 나를 부정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그 말도 내게는 사치였다. 입이 없는 자에게 권리는 없다. 시간은 흘렀다. 덩치가 크고 느릿느릿한 대학교로 우리는 진학했다. 녀석과 나는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부질없는 청춘을 보냈을 것이다. 이윽고 아스라한 밤중에 녀석과 나의 눈이 마주쳤을 때 녀석의 작은 동공에서 수만 가지 말이 쏟아지며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는 제 말을 주워 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두려울 것이다. 그의 두려움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다시 입을 여는 일은 나에게 있어 가능하다. 유일하다. 쓰라리다. 이것이 이야기의 고통과 사랑 뒤에 오는 것이다, 라고 나는 알게 되었다.

*

굵은 글씨는 모두 『포주 이야기』에 실린 단편들의 마지막 문장이거나 그 문장의 변형이다. 김태용은 문장들은 다른 이야기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살아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나는 그의 소설을 두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의 한 맺힌 허무함이다, 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군대를 제대로(?) 다녀온 이가 없었기에 발산된 호기였다. 물론 본 글도 호기일 뿐이다. 뭐 어떤가. 우리는 늘 호기롭게 말이라는 걸 뱉고 다니고, 그것은 늘 죄로 수렴되는 행위이다. 김태용과 나와 녀석과 그들과 우리와 당신은 모두 탈영병이고 곧 잡히고, 다시 도망한다. 군법은 우리를 몰아붙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불사하는 말하기로 탈영할 것이다. 김태용의 성마른 손을 꾹 잡고……

김태용 지음
카테고리 중단편소설 | 출간일 2012년 1월 31일
사양 양장 · · 272쪽 | 가격 11,000원 | ISBN 9788932022765

서효인 시인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잘 왔어 우리 딸』이 있다. 2011년 제30회 김수영문학상을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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