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회의주의 잡지를 읽는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 에세이스트 정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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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리 김목인

인터뷰 직전까지, 갓 나온 가을방학 3집 <세 번째 계절>을 듣고 바비 씨의 에세이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다시 읽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가질 대화의 자리를 너무 ‘소설이나 노래의 한 장면’으로 그려보았던 것 같다. 두 음악가가 엉뚱하게 출판계에서 만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첫 질문을 그만 평서형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마, 바비 씨가 너무도 덤덤하게 “잘 지내셨죠?”라고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김목인(이하 김): 참 신기한 게, 저희가 음악하면서는 별로 뵐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책, 더군다나 문학과지성사 40주년 자리에서 만났네요.
정바비(이하 정): 네. 그렇네요. (잠시 어색한 침묵) 문학과 지성이라니 저와는 좀. (웃음)

김: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골랐는데, 그 이유부터 들어볼까요?
: 좋아하기도 하고, 자극을 많이 받은 시집들이에요. 일단, 문지 시선 고유의 일러스트가 있잖아요. 제가 알기로 심보선 시인은 자체적으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위트도 재미있고, 또 이분이 시인이자 사회학자잖아요. 시인이 물론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사회학자는 정말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집회 현장에서 자기 시를 낭송하는 활동가로서의 면모라든지, 우리가 옛날에 알고 있던 시인과는 좀 다르다, 전형적이지 않다 싶은 느낌을 받았어요.

김: 저도 심보선 시인과 같은 무대에 설 일이 있었는데, 시가 아닌 자살론강의로 시간을 채우셔서 놀랐어요.
: 맞아요. 일과 시를 연결시킬 줄도 알고, 또 두 분야 모두 기막히게 잘하신다 이거죠.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안주해 있지 말고 뭔가를 해보라는 듯한 느낌. 제가 6학년 1반인데 6학년 3반 1등 같은 느낌? (웃음) 등단하신 게 1994년인데 첫 시집이 2008년에 나와요. 14년 동안 모았으니 좋은 건가보다 생각했는데, 몇 년 안 되어 나온 두번째 시집도 되게 좋더라고요. 그런 점이 또 자극이 됐죠. 저도 손 놓고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시라는 필드에는 이런 분이 있구나 싶었죠.

김: 바비 씨도 여러 가지를 잘 해내고 계시잖아요.
: 저 스스로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가끔 음악하며 만나는 사람 중에는 이 사람은 진짜 음악하려고 태어난 것 같다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신윤철 형 같은, 그런 뮤지션십이 엄청난 사람이 있다면 저는 좀 경계선에 있는 거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마침 음악이 좋아서 음악으로 표현하게 되었고, 다른 걸 만났으면 다른 걸 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김: 전 예전에 심보선 시인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었어요. 젊은 층에게 인기 많은 미남 시인 중 한 분인가 했죠. 그런데 나중에 작품을 읽고 되게 좋은 분이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파블로 네루다 같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태도랄까, 시라는 것이 우리 일상 속에 항상 구체적으로 함께 있다는 걸 보여준 달까요.
: 네. 그런 가치관이 좋아요. 희망버스 때였나? <헤이 주드> 가사를 번안해서 낭송했는데, 그런 것도 신선하잖아요, 팝송을 번안해 낭송한다는 것. 또 시 한 편이 ‘올해의 좋은 시’ 상을 받았었어요. 「인중을 긁적거리며」였는데…… 나중에 한 계간지에 그와 관련된 시를 또 한 편 쓰셨더라고요. 하루에 전화 두 통이 왔는데, 하나는 당신 시가 ‘오늘의 좋은 시’에 뽑혔으니 수상소감을 써서 오늘 중으로 보내달라는 연락이었고, 또 하나는 대중 강연용으로는 너무 어려우니 좀더 쉬운 시를 써달라는 연락이었던 거죠. 그런 경험을 또 한 편의 시로 쓴 것 자체가 이 분의 평소 자세나 시각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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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가 있으세요?
: 연시(戀詩)들이 좋더라고요. 직접 자기와 살을 맞댔던,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시들, 왜냐하면, 음…… 아무튼 이분은 좀 성적 매력이 있어요.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인기 없던 남자가 어떤 재능을 연마해서 성적 매력을 얻게 된 경우가 있잖아요. 반면, 원래 성적 매력이 있는 남자가 재능이 있어 그 매력과 재능이 그냥 같이 가는 경우가 있어요. 심보선 시인은,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재능’이 유혹의 유일한 도구인 사람들에게선 어딘가 쫓기는 느낌이 들거든요. 뭔가 좀 보여줘야 된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가끔 불편하기도 하죠. 저도 그런 축에 들지 모르고. (웃음) 반면 심보선 시인의 시는 되게 여유가 있고, 심지어 어떤 시들은 좀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자연스러우니 그냥 두셨네, 싶은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어요. 뭐라 꼭 집어서 말씀 못 드리겠지만 아무튼 그래요.

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순수한 얘기를 할 때 정말 그만큼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분은 원래 능수능란한 사람인데 갑자기 순수한 이야기도 하는 느낌? 바비 씨도 그런 능수능란함을 성적 매력이라 표현하신 것 같은데.
: 맞아요. 가진 자의 여유? (웃음) 굳이 시로 꼬실 필요가 없는 사람인 거죠.

김: 성적 매력과 여유, 재미있는 포인트네요. 평소에도 시집 많이 보세요?
: 제가 나름 국문과 졸업생이어서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웃음). 오히려 요즘은 논픽션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교양서 같은 것들이 재밌더라고요. 한동안 진화론 쪽 책들이 재미있어서 많이 읽었고요. 확실히 훌륭한 문필가들은 굳이 운문이나 서사라는 형식을 띄지 않아도 좋은 문장을 쓰는 것 같아요.

김: 최근에 어떤 책들을 읽고 있나요?
: 『꿀꺽, 한입의 과학』이라고 ‘소화’에 대한 얘긴데 되게 재미있어요. 또 김중혁 작가님 새 책 읽어보려고 하고 있고, 갓 나온 계피의 에세이집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읽기 시작했고. 『스켑틱』이라고, 과학 관련 잡지인데 그거 받아 보고 있어요.

김: 구독해서 보시는 건가요?
: 네. 『뉴튼』 같은 과학 잡지는 아니고 약간 반(反)지성주의 있잖아요? 종교나 오컬트, 대체의학 그런 것 반박하는 내용이에요. 마이클 셔머라는 국제 ‘회의주의’ 회장이 펴내는 것인데, 올해 한국판이 나왔어요. 내용도 궁금하지만 응원하는 의미에서 받아보고 있죠.

김: 꾸준히 그런 쪽의 책을 읽어오셨나요?
: 사실 대학 때까지는 거의 소설 위주로 읽었고, 시 조금 읽었고, 대학교 졸업하니 서서히……. 예전에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이런 책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책도 많이 보고 논픽션 에세이들도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김: 논픽션 하나 권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뭐가 있을까? 최근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봤어요. 소설가 지망생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정말 빡센 직업을 전전하거든요. 서해안 가서 꽃게잡이도 하고 충남 당진의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돼지 사육장에서 똥 치우는 일도 하고 그런 충격 르포를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전 되게 재미있었어요. 난 그냥 음악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죠. (웃음) 『방언정담』이라는 책도 있는데, 학자가 지방이나 연변 같은 곳 다니면서 방언을 조사하는 내용이에요. 글이 좋아서 읽었어요. 어때요? 목인 씨도 사투리로 가사 한 번 써 보시죠? 제가 부산 사투리 할 테니까, 목인 씨가 충청도 사투리를. (웃음)

김: 좋아하는 책 얘기 나온 김에 책과 관련된 독특한 경험이 있으시다면? 예를 들어 좋아하는 책을 훔쳤다든가 하는?
: 훔친 책이라고 하니 생각이 나는데, 서점은 아니고 도서관에서 훔친 적은 있어요. 제가 대학 졸업할 때 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채플을 네 학기 들어야 했는데, 한 학기가 모자라 돈 내고 수업을 들었거든요. 거기에 반성문 쓰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감상문 쓰고, 분노가 하늘을 찔렀죠. 학교에 복수해야겠다는 앙심을 품고 도서관에서 몇 권 훔쳤어요. 같은 책이 여러 권 있어서 한 권 정도는 줄어도 괜찮을 거 같았죠. 음대 도서관 책이었는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책이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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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다른 인터뷰를 보니, 음악가의 에세이집을 넘어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야심이 있다고 하셨더라고요. 한국어를 잘 살린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도 하셨고요. 따로 청탁이 없어도 계속해서 쓰시는 편이신지?
: 꾸준히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요즘도 쓰고 있고. 제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가장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만한 형식을 찾은 뒤, 한 편의 글로 똑 떨어지게 쓰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한국 에세이 시장에서 말하는 에세이는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하지만 예쁜 문장으로 쓰는, 그런 걸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진로에 대해 생각이 좀 많아지긴 했어요. 너무 확대해서 얘기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보통 에세이라고 하면, 주로 젊은 여성 독자들이 마음이 조금 헛헛할 때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이렇게 슥 본 다음,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느낌 있는 책을 사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읽어보는 책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서정적이어야 되고 아무래도 남의 삶을 엿보는 쾌감도 좀 줘야 하고. 제가 쓰려는 글은 그것과 맥락이 좀 다른 글인데 말이죠.

김: 그럼 바비 씨 에세이집도 편집부와의 긴장 상태에서 쓰신 건가요?
: 출판사에서는 자기 얘기를 좀더 많이 써달라고 했었죠. 저는 제 얘기를 쓸 생각은 별로 없었거든요. 제 ‘아이디어’를 쓸 생각이 있었던 거지. 제가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어떻게 당했고, 내가 어떻게 했고, 이 얘기에 누가 관심이 있겠어요. (웃음)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에세이를 보니까 와, 되게 솔직하구나. 심지어 여행하면서 잠자리를 함께했던 이성들 얘기라든가. 사실 저는 좀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 잘 못 보겠어요. 육아 웹툰이라든지 결혼기라든지, 허구로 재구성한 게 아닌 사생활을 보는 게 저로서는 좀 불편한 것 같아요.
저는 에세이라고 하면, 거의 소논문이라고 생각하고 쓰거든요. 실험이라든지 조사를 기반으로 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논리를 갖추어 내가 생각한 걸 짜임새 있게 보여주는 그런 의미의 에세이, 모르겠어요. 용어란 건 항상 복잡하니까.

김: 모범으로 삼는 에세이 작가가 있다면?
: 글쎄, 누가 있을까요? 도킨스가 정말 잘 쓰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좀 어렵긴 해도 원서로 한 번 읽어볼 만해요. 글이 정말 미쳤어요. 너무 세련되고 어휘력도 장난이 아니고.

김: 에세이에서 여름이 되면 항상 읽는 책으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꼽아주셨는데, 가을에 읽는 책도 있으세요? 좀 뻔한 질문이지만, 가을방학멤버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 (웃음) 가을과 겨울 묶어서 체호프 아닐까요? 체호프 단편소설 같은 데 되게 쓸쓸한 내용들이 많아서요. 조금 윗세대인 이반 부닌 작품도 좋고요.

김: 러시아 문학도 공부하셨다던데, 마지막으로 일반 독자들께 체호프 작품을 좀 추천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훌륭한 단편 작품을 보면 항상 체호프의 후계자다이런 평이 많이 붙더라고요. 바비 씨가 보는 체호프의 훌륭한 점은 무엇인가요?
: 체호프 단편집은 다 좋죠. 번역은 요즘 웬만하면 좋으니, 너무 무겁지 않고 표지 예쁜 것? (웃음) 체호프는 엄청난 당분이나 열량을 바로 주지는 않지만 읽어두면 좋은 것 같아요. 살다가 뜨악해지는 순간이 오잖아요. 친한 사람한테 실망한다든지 자기 자신이 작아 보인다던지. 그런 순간에 정말 도움이 되죠.
훌륭한 점이라면, 단편은 이야기를 끝내는 방식이 정말 중요한데, 체호프는 기가 막히게 끝내죠.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느냐가 그 이야기 너머의 더 많은 이야기를 결정하는 거잖아요. 음악 마스터링 할 때도 그렇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기타 솔로가 있으면 적절한 순간에 페이드아웃을 시켜야 되는데, 체호프는 그런 타이밍의 감각이 뛰어난 거죠. 아, 체호프가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차리셨어야 했는데.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한동안 ‘이런 걸 더 물어보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무래도 대화의 페이드아웃을 적절히 하지 못한 탓은 아니었을까. 정바비 씨는 얼핏 느슨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대답들을 통해 내 독서욕을 꽤 많이 자극해주었다. 며칠 뒤 서점에서 난 『스켑틱』과 『인간의 조건』을 뒤적여 보았다.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중 하나만 보여주마.”
_심보선, 「말들」 『눈앞에 없는 사람』, 11쪽.

 

정바비
싱어송라이터, 에세이스트.
가을방학, 바비빌, 줄리아하트의 멤버이자, 산문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썼다.

정바비가 고른 문지의 책
『눈앞에 없는 사람』(심보선, 2011년)
『슬픔이 없는 십오 초』(심보선, 2008년)


심보선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11년 8월 9일
사양 신46판 176x248mm · 148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22291
심보선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08년 4월 18일
사양 · 176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18508

문지, 단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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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얽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학과지성사의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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