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사람은 귀로 읽는 책이다

「네시이십분 라디오」 제작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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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리 김나영


목소리는 무엇일까. 사람의 육성이라는 건 어떤 힘을 가졌을까.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를 들으며 이런 질문을 갖게 됐다. 딱히 어떤 특성을 지닌 목소리도 아니지만, 뭔가에 대해서 진지하고 차분하고 집요하게 말하는 사람의 성격과 태도가 그 소리에 녹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목소리는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 그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 보았다.

김나영(이하 김):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준: 이건 라디오가 아니니 말을 자연스럽게 해도 되겠죠? 짜임새 있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 했어요. (웃음) 저는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이하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만들고 있는 준이라고 합니다.

: 제가 준 씨를 만나기 전에 가장 먼저 찾아본 게 네시이십분 라디오였어요. 라디오 활동에 관련해서 정말 많은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네시이십분 워크숍도 기획하시고, 요즘엔 소설리스트에서 리뷰도 쓰시고요. 또 음악도 종종 만들고, 공연도 하시고요. 블로그에 보니 출간 준비 중인 책도 있는 것 같던데요.
준: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박솔뫼 작가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저는 계간 『문학동네』에 박솔뫼 작가의 ‘작가초상’을 써서 실은 적이 있고요. 김중혁 작가가 그 라디오도 듣고 글도 읽으셨나봐요. 그리고 저에게 ‘소설리스트’를 함께하자고 연락을 주셨죠. ‘소설리스트’ 멤버들이 대개 그런 식으로 만난 것 같아요. (웃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가 작은 우연으로 만나고. 지금도 각자의 방에서 소설을 읽고 인터넷 공간에서 모이는 식이죠.

: 그러면 멤버들끼리는 자주 볼 일이 없는 건가요?
준: 네. 그런데 최근에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격주에 한 번씩 문학에 관련된 행사를 하고 있어요. 늘 모든 멤버가 모이진 않아도 그것 때문에 가끔 만나긴 하죠. 멤버가 모두 열 명인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저는 1월 마지막 주 화요일 행사를 맡아 하는데요, ‘제인 정 트렌카’라는 소설가와 대담을 하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 격주로 행사가 있고 자기가 맡은 주에는 기획부터 출연까지 알아서 하는 걸로?
준: 네, 맞아요. 총괄은 김중혁 작가가 하고 있고요. 김중혁 작가가 제안을 하셨거든요 이런 식으로 행사를 꾸려가자고.

: ‘소설리스트활동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쭤보자면, 주로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만나면 요즘은 주로 어떤 얘기를 하시는지 궁금해요.
준: 그냥 요즘 지내는 이야기 같은 걸해요. 자주 만나지 못하니까요.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임의 방향이라든가…… 정작 만나서는 책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아요. (웃음) ‘소설리스트’의 경우엔 늘 그 주에 출간되는 소설 목록을 멤버 중에 한 명이 ‘소설리스트’ 페이지 안에 리스팅을 하거든요. 그걸 가지고 리뷰어들이 내부에서 투표를 해요. 이 주에 볼만한 책이 뭐가 있는지. 그러면 공통적으로 선택한 책들이 있어요. 그런 책들을 리뷰 대상으로 삼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만 다루는 책도 한 주에 2권씩, 한 달이면 8권, 1년이면 96권이 되는 거잖아요. 엄청난 분량이죠. 처음에는 어느 정도인지 무게감을 못 느끼니까 그냥 하는 것 같은데, 마음속에서 점점 무게가 늘어나고 있어요. (웃음)

: 책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그냥 바로 책으로 대화하는 모임 같네요. 많이 읽고 쓰고. 그럼 그렇게 만들어진 리스트에 오른 책 중에 한두 권 정도에 대한 리뷰는 꼭 써야 되는 거예요?
준: 일단 저희 안에서 룰은 그래요. 한 달에 두 권은 반드시 읽고 쓰자는 게 있는데. 그런데 이게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이해지는 부분이 있죠. 편집장의 역할이 있는데요, 그것도 돌아가며 맡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하여튼 신기한 것 같아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그렇게 모임이 꾸려진다는 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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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진행을 하시면서 청취자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를 종종 만드셨잖아요. ‘소설리스트가 최근에 하는 행사들도 독자들을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왜 청취자나 독자를 직접 만나는 게 좋은 걸까요? 이런 질문과 대답에 이르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그게 궁금해요.
준: ‘소설리스트’에서 하는 행사는 김중혁 작가가 제안한 건데요, 저는 김중혁 작가와 성격은 다르지만 그런 성향은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소설리스트’ 행사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이런 걸 한번 해보자고 하신 편인 것 같고. 저도 팟캐스트 청취자들을 만나는 일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사실 저는 라디오를 이렇게 오래 진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애초에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초기부터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요, 애초에 같이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걸 되게 하고 싶어 했어요. 제가 없으면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도와줄 테니 같이 해보자고 했던 건데요. 제가 살면서 그렇게 하게 된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어쩌다가 하게 됐는데 역시 어쩌다가 끝까지 제가 남게 되는 일이요.

: 그런데 그 친구분은 어떤 이유로 그만두셨나요?
준: 애초에 말수가 되게 별로 없는 친구에요, 아이디어는 되게 좋은데. 자기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빠지는 타입이거든요. (웃음) 학교도 같이 다녔던 동기이자 언니인데요, 처음부터 자기 목소리가 녹음된 걸 듣는 게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좀 무감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좀 예민한 부분은 있지만, 내가 한 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모르는 사람들이 내 말을 인용하고 그런 것들을 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냥 ‘뭐 얼마나 듣겠어? 누가 나한테 크게 뭐라 할 것도 없고.’ 이렇게 생각하면 좀 편안해져요.

: 바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하면 에너지가 되게 많이 들잖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책 한 권을 더 읽고 리뷰나 라디오로 소개를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일까요?
준: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읽고 좋았던 책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서 보라고 부추기는 편이었거든요, 이게 뭐가 좋고 뭐가 좋다고요. 라디오 시작할 때 저에게 그 친구가 ‘네가 우리에게 평소에 해줬던 이야기를 여기서 해주면 사람들도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저는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된 거고요. 그리고 제가 사람을 모아놓고 뭘 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웃음) 학교 다닐 때는 많이 소극적인 학생이었는데 성향이 바뀐 것 같아요. 예술학교 졸업 이후에 작업을 하면서 사는 게 너무나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장을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 은연중에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떤 기회가 별로 많지 않으니까. 라디오 초반에는 청취자 중에 작업자들이 많은 편이었어요. 혼자 그림 그리는 사람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작업을 보여줄 사람으로 저를 선택했고, 저는 그런 사람들의 작업을 낭독회 같은 자리에서 널리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고요.

: 뭔가 가교 역할을 하신 거네요. 골방에 있는 예술가들과 독자들 사이에. (웃음)
준: 사실 저도 비슷한 사람이에요.

: 근데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내향적인 성격이 많은 것 같아요. 혼자 읽고 좋아하고……
준: 저희 라디오 청취자 중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렇게 오래 했지만, 페이스북에 좋아요 수도 되게 적어요. 하지만 낭독회 같은 행사를 한다고 하면 적어도 50명 정도는 오는 것 같아요. 자주하는 건 아니니까. 저도 낭독회에서 다루는 책은 특별히 의미가 있지만 주목을 받지 않은 책에 많이 할애를 해요. 그런 작가는 더더욱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점을 보고 오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 책을 혼자 읽고 혼자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딘가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경험은 다른 일인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네시이십분 라디오소설리스트가 하는 일이 의미 중에 가장 큰 게 그런 독서 체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있는 것 같거든요. 꼭 직접 독자를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도, 두 경우 모두 애초에 이 책이 좋은데 왜 좋은지 이야기를 해볼게’ ‘좋은데 같이 읽어보자하는 태도가 있는 모임이잖아요. 이런 게 책을 많이 읽고 아는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운동처럼 보였어요.
준: ‘소설리스트’는 올해 여름 이후로 좀 바뀐 것 같아요. 행사도 진행하고요. 거기 멤버들도 다 외향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 네시이십분 라디오, 라디오 관련한 워크숍, ‘소설리스트활동 말고 또 주로 하시는 활동이 있나요?
준: 아르바이트요. 돈도 벌어야죠. (웃음) 이전까지는 10대들 가르치는 일을 많이 했었어요. ‘하자센터’라는 곳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거기에 오는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제안이 와서 그런 종류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여태까지는 제안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서 뭔가를 만드는 걸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제가 먼저 제안을 하는 방향으로 방법을 바꾸려고 생각 중이에요. 제안이 들어오는 대로 일을 만들면 굉장히 수동적인 자세가 되더라고요. 내가 워크숍을 진행할 때 가장 적당한 수강생을 내 스스로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를 하면 할수록 매너리즘에 빠져들었어요. 10대 수강생들 같은 경우에는 원하지 않는데 오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도 그런 학생들은 만나고 싶지 않아요. 돈을 버는 일일 수는 있지만. 그래서 차라리 다른 걸 하자고 생각했죠. 최근에 했던 일 중에는 이런 게 있어요. 서울시에서 올해 처음으로 ‘학부모 대학’이란 프로그램을 런칭했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학부모들만 알아요. (웃음) 교육청 사이트에 가면 소개돼 있어요. 아이들 교육에 특별히 관심 있는, 10대 자녀를 둔 어머니나 아버지들이 오셔서 제 워크숍을 듣는 거죠. 저는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같이 무언가를 만드는 걸 하는 편인데요. 그 수업이 10대들 상대로 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나이 많은 분들을 상대로 하는 거라 떨리긴 했지만.

: 동기가 분명하니까?
준: 네. 의지도 있고, 자신의 한계나 고민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분명하고요. 나는 이렇게 했는데 우리 아들은 이렇게 한다, 이런 점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식이죠. 어떤 분은 딸을 이해하려고 직장까지 그만 뒀는데 딸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해요. 그런 고민들을 사연으로 바꿔서 라디오로 만들어보고, 다른 사람이 듣고 해법을 좀 제시해보는 식의 워크숍을 했어요. 즉각적으로 하는 일인데도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편이더라고요. 전문적인 심리치료는 아니지만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거잖아요. 사연을 쓸 때는 다 익명으로 하거든요. 편안하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경험도 하게 되고요. 그런 식의 워크숍을 10대들과도 했는데, 10대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만 재미있어 해요.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요. 그런데 이런 워크숍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있거든요. 이게 잘 안 되니까 저도 매너리즘에 빠지고. (웃음) 크게 혼낼 수도 없어요. 보통은 학교에서 공부 때문에 주눅 들어 온 학생들이니까요. 이 교실에 남을 건지 자발적으로 나갈 건지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 그걸 선택하지 못하는 10대들이 너무 많아요.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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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를 선택하는 건 그걸 견디는 일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요즘 책 읽는 것도 일종의 견디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첫 페이지부터 몰입하게 되는 책은 거의 없잖아요. 읽기에 속도가 좀 붙고 재미도 생겨야지 몰입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활자를 견디고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통해서 많은 활동을 하시는데 달리 힘든 점은 없나요?
준: 사실 저는 책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벗어나서 제가 직접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있어요. 책이 유통되는 방식 같은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모임을 점점 더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예전에 편집자로 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책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용이 아니라…… 한국의 상업 출판에서 책을 만들 때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시스템에서는요. 좋은 텍스트로 거기에 맞는 판형을 고민하고 토론하면 좀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맞는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 간혹 있어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유통되는 방식의 차원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준: 지금 작은 서점이 되게 많이 생겼긴 하지만, 잘 안 되잖아요. 저는 독립출판으로 좋은 서적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서적이 많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서점이 퍼블리셔가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서점에서 직접 책을 내고 그 책을 직접 유통하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 마진율이 훨씬 더 떨어지게 되겠죠. 그리고 그 서점에서 그 책에 관련된 행사와 강의를 하고, 이렇게 독자와 연계되는 방식을 상상해보죠. 지금은 제가 가진 공간이 없기 때문에 남의 걸 빌려서, 상상하는 일의 아주 일부만을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는데요, 만약 누군가 나에게 투자를 해준다면 학교가 되는 서점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굳이 대학원에 안 가고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동시에 나의 소속을 갖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이 갈 곳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저만 해도 그렇고요.

: 책의 일생으로서는 굉장히 이상적인……(웃음)
준: 그쵸. 되게 되게 이상적일 수 있는데. 그냥 뭐, 지금 이런 세상에서 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어차피 전망이 희망적이진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낙관적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웃음)

: 직접 책을 만들어서 걸맞은 독자를 만나게 하는 일에 대해 상상해본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이미 직접 책을 만들어서 나눠주신 적이 있잖아요. 직접 쓰신 시를 묶어서 시집을 만드셨죠?
준: 처음에는 그냥 나눠주다가 나중에는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었죠. 지금은 하진 않아요. 아마 그렇게는 더 할 것 같진 않아요.

: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시집이 되어 버렸네요.
준: 저는 투고를 굉장히 오래했는데 계속 당선되지 않았어요. 최종심에서 되게 많이 떨어졌죠. 제 경우엔 시를 쓰는 친구가 주변에 한 명도 없고, 혼자서 계속 써왔던 거라서 어려움이 컸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시를 썼었는데, 어느 날 밤에 회사에 혼자 남아서 썼던 시를 편집하다가 책을 만들게 된 거예요.

: 시를 오래 쓰고 투고하는 사람들을 보면 곁에 같이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합평도 하고 그러던데요. 혼자 쓰는 게 힘드셨던 건 그런 의미에서였나요, 읽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준: 돌이켜보면 물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독자적인 걸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요. 물론 합평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합평을 하는 수업에서 별로 좋은 인상을 받은 경우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선생님께 따로 편지를 쓰면서 시도 같이 보내고, 그런 식으로 계속 쓰면서 7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죠.

: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실 건가요?
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작년부터 조금 들었었죠. 이렇게 계속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이렇게.

: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가 지금 단 한권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잖아요. 사전에 영향을 많이 받은 책과 좋아하는 책을 따로 말씀해주셨어요.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은 키냐르의 은밀한 생이고, 좋아하는 책은 조용미 시인의 기억의 행성과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구분해서 답하신 이유가 있나요?
준: 처음에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책을 선택해서 답을 드렸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책’이어야 하더라고요. (웃음)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담이 되어서, 좀더 저에게 무게감이 있는 책 순으로 순서를 매겼어요.

: 그럼 키냐르 책이 가장 무게감이 있는?
준: 네. 일단 가장 많이 본 건 맞아요. (웃음)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되게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엄청 많이 좋아하던 친구여서 그 친구가 읽는 것은 거의 다 따라 읽었거든요. 이건 그 친구가 많이 좋아하던 책이었어요. 그 친구의 생각과 많은 걸 이해하고 싶어서 보기 시작했죠. 아마 키냐르를 읽은 사람들은 다들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저도 처음에는 너무 많이 어려웠어요. 10년 전에 본 거였으니까요. 방학 때 한 달 내내 이 책을 보는데 진척이 잘 안 되어서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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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읽은 책,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친구가 좋아한 책은 누구나에게 잊지 못할 책일 것 같아요. 이 책이 내 인생의 어떤 부분에 특별히 영향을 준 게 있다면요?
준: 키냐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이전까지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많이 아팠고,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순간에 ‘단 하나의 육체와 같은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걸 보면서 그게 과연 어떤 걸까 궁금했어요. 그 말 자체도 되게 멋있단 생각이 들었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런 글을 쓰고 싶을 수 있잖아요. 딱히 어떤 건지는 잘 모르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 많이 끌렸고, 이후에는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를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그런 독서의 경험을 이 사람은 사랑의 경험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보게 되는 것. 이해가 되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거 같거든요.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왜 저 사람은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돌아보게 되고 다시 생각하게 하고.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독서와 글쓰기와 사랑의 경험,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죠.

: 몇 번 정도 읽으신 거예요?
준: 글쎄요, 한 다섯 번 이상은 읽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처음 읽을 때 정말 시간을 많이 들여서 읽었는데요, 예전에 장정일 씨 인터뷰에서 자기 스스로 깨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독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모든 독서에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진 않고, 머리가 뽀개질 것 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과 사유구조를 만났을 때,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있다는 건데요. (웃음) 그렇게 한 번 깨지고 난 다음부터는 책이 굉장히 잘 읽히거나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높아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은데, 저에게는 이 책을 읽은 다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워서 내 나름으로 좀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요. 이후에 파스칼 키냐르 책을 읽었을 때 이 사람의 사전을 한번 통과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사람의 사전은 의미가 정확히 기재된 그런 사전이 아니고 외국어를 습득할 때처럼 외국어 자체로만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사전인데, 제가 그 외국어를 습득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후에 이 사람의 언어로 된 다른 글들을 봤을 때 이전처럼 어렵다는 생각이 들진 않더라고요.

: 작가가 원했던 독서를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계속 읽어가면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는…… ‘하나의 육체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는 바람이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말일 것 같아요. 다른 어느 것으로 대체해서 설명할 수 없는. 작가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요. 골라주신 책 중에 모데라토 칸타빌레도 어떻게 보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사랑이라는 주제로 두 권을 엮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준: 일단은 스스로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에 더 많이 끌렸었던 것 같아요. 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뻔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웃음) 『은밀한 생』은 피아노를 가르치는 한 여자가 있고, 한 남자는 남편이 있는 그 여자를 좋아하고.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는 중산층 평범한 여자의 집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그려지고요. (웃음) 굉장히 뻔한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줄거리로는 환원될 수 없는 감정의 어떤 부분이 남는데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 사랑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상투적일 수 있잖아요. 제 질문 자체가 상투적이었네요. 두 권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 (웃음)
준: 정말 미친 듯이 사랑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 준 씨의 인생이 사랑이라는 주제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요.
준: 어떤 줄거리로 표현할 순 없지만, 되게 격렬한 감정의 문제를 글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고른 책들에 물론 세부적인 디테일들은 있지만, 큰 줄기에서의 사건은 몇 없잖아요. 수많은 역사를 갖다 쓰지만, 진짜 자신의 사건은 굉장히 작은 편린 같은 건데요.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고, 그렇지만 사랑하는 그 순간엔 영원이라는 게 있고, 그리고 끝. (웃음) 그런데 평생 반복하게 될 만큼 사로잡혔던, 진실한 신념 같은 그런 순간들이 그들에게 있었고, 그런 순간을 가졌던 사람을 보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마도 스스로 이런 작가들이 전범이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 모데라토 칸타빌레에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준: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일단 얇아서 좋아요. (웃음)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가 그런 부분에서 좋더라고요. 갖고 다니기도 좋고. 사실 이걸 뒤라스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뒤라스 작품 중에는 『히로시마 내 사랑』을 가장 좋아하고 『연인』, 그 다음에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좋아해요. (웃음) 여기 죽음이 발생하는데 그 죽음이라는 게 실제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존적인 죽음이라는 게 되게 인상 깊었었어요.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죽음 같은 거. 사랑하는 사람이 실연을 겪으면 그 사람이 정말 죽은 것일 수 있잖아요. 물론, 그 사람은 이후의 삶을 계속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라스가 그런 삶을 살았잖아요. 정말 죽은 것 같은 느낌을 겪으면서 더 이상의 사랑과 더 이상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도 계속 사랑하고요. (웃음) 그런데 그 소설에 철저히 그런 부분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이야 다르지만, 저는 어렸을 때는 친구도 별로 없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말수도 되게 없었거든요. 20대 초반까지도 그랬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갇혀 있는 한 존재가 외부를 향해서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사랑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고, 특히 뒤라스 소설의 많은 부분이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죠. 어떤 여자가 무료한 삶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정적으로 만들게 하는 어떤 대상을 쫓아서 어딘가로 간다는 이야기. 「네시이십분 라디오」에서 다뤘던 작품 중에 사실 그런 게 많아요. 이야기는 다른데 모티브가 그런 내용인 것들이 많아요. 그것은 아까 말했던 제가 좋아했던, 키냐르를 읽게 했던 그 친구의 성향이자 취향이기도 했거든요.

: 그 친구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거네요.
준: 네, 책장에 꽂혀 있는, 「네시이십분 라디오」에서 다룬 책의 절반 이상은 아마 그 친구가 좋아했거나 좋아할 만한 책이지 않을까.

: 그 친구도 계속 책을 읽는 일을 하고 있나요?
준: 전혀 그렇지 않고,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않아요. (멀리 있지만 그래도 서로 생각한다고는 느끼는 듯해요.) 그 한순간, 정말 딱 스무 살 무렵에만 제가 되게 많이 좋아했어요. 그 사람을 이해해서 좋아했던 건 아닌 거 같고요. 그 사람의 모든 게 좋았는데, 그걸 스스로 설명하긴 어려웠었던 거 같아요.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데 되게 신기한 게, 그 사람의 서가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의 목록도 사실, 그 친구가 좋아하던 다른 친구에게서 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덧붙임이 되면서 이동했겠죠. (웃음) 그런데 그 친구분도 또 이전의 다른 분의 영향으로 그 서가가 만들어진 거라고 하더라고요.

: 저도 책을 좋아하게 된 데는 친구의 영향이 컸어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스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읽고 쭉 책을 좋아하게 됐다는 사람보다는요. 그런 걸 보면 책 읽는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준: 저희 라디오를 듣고 책을 사는 분도 꽤 있거든요. 그런 건 제가 그 친구에게 받았던 영향과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한 거죠. 청취자로 알게 된 어떤 분이 있어요. 부산에 사는 청취자였는데 제가 부산 놀러갔을 때 그분이 대안공간을 하고 있어서 한번 가봤거든요. 갔더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제가 다 추천한 책이어서 신기했어요. (웃음) 그래서 저는 ‘나랑 취향이 되게 비슷하구나’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라디오에서 추천한 책 중에서 골라서 산 거예요. 비싼 건 많이 못 사고 싼 것 위주로. (웃음) 나의 책장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볼 때 전혀 이상한 게 아닐 수 있죠.

준2

: 조용미 시인의 기억의 행성도 내 인생의 책으로 꼽아주셨는데, 이 책은 라디오에서 다룬 시집이기도 하죠. 이 시집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준: 한 10년 전에 어떤 분이 제가 이분이랑 많이 닮았다는 거예요. 외모가 아니라 글이요. 그래서 ‘뭘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분의 시집을 다 읽어봤지만 모르겠는 거예요. (웃음) 그 이후로도 관심은 갖고 있다가, 이 시집이 나와서 이걸 읽으면서 ‘아,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어떤 생각의 방식 같은 게 닮았달까요? 제가 어떤 일이 있으면 대단히 몰두해서 오랫동안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몇 년씩도. 근데 이분이 그런 분이라는 걸 이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짐작하게 된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이분은 몸이 좀 안 좋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온종일 벽이나 천장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고, 그런 사람만이 보게 되는 다른 풍경이 있는 것 같고요. 그 풍경 안에는 다른 색채가 있고요. 초록을 열면 다른 색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을 얻게 되기까지, 그 긴 시간 그것을 봤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 사유의 태도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이 닮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준: 어떤 부분이 닮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제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냥 그림 하나를 걸어두고 계속 생각하는 거, 누워서 그냥 계속 천장 바라보고 색채를 계속 생각하는 것.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데, 그것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게 있고, 그런 식의 발견이 위로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 위로라고 말씀하셨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도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는 태도 자체가 요즘은 더 귀한 태도인 것 같아요. 요즘같이 속도나 자극에 민감한 때일수록.
준: 저는 엄청 고전적인 태도라고 느껴졌어요. 시인이 실제로 고전을 많이 읽으시고, 그런 게 시에 많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고. 집에 ‘매화초옥도’를 걸어두고,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한다든가 갑자기 그림 속 사내를 만나고. 저는 그런 걸 보고 ‘얼마나 집에 혼자 오래 계셨으면……’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웃음) 저 같은 사람은 쓸 수 없는 시인 것 같아요. 이 안에 나름의 여정이 있고, 시집을 읽다 보면 그 여행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죠.

: 얘기를 듣다 보니 점점 궁금해져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하셨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준: 모르겠어요. 편지 쓰기를 워낙 좋아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주고받게 되고. 라디오 하면서 작가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저희 라디오에 출연했던 조해진 소설가가 제가 다녔던 학교에 특강을 갔을 때 후배 중에 누군가가 제가 라디오에서 조해진 작가의 소설 이야기를 했다고 전한 거예요. 그때 되게 신기해하면서 팟캐스트 이름을 적어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공개 방송할 때 초대해서 작품 얘기를 나눴고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그렇게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 그렇게 책을 통해 관계가 새로 생기고 유지가 되는 게 신기하고 재밌네요. 네시이십분 라디오에서 함께 읽는 책들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목록인가요? 그렇다면 결국 준 씨 독서 취향이 맺어준 인연이네요.
준: 80퍼센트 이상이 제 취향이고, 나머지는 독자의 추천을 받는 경우도 있어요. 저한테 뭔가를 읽어 달라고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쪽지를 보낸다거나 메일을 보낸다거나 해서요. 말을 줄이고 낭독을 늘려라, 게스트를 부르지 말고 혼자 이야기를 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도 있고요. (웃음) 그런 걸 다 반영할 순 없지만 오히려 내가 의도하지 못한 부분을 좋게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네시이십분 라디오프로필에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문장이 있어요. 그런 호언장담을 가능하게 한 네시이십분 라디오만의 변별점이 있나요? 팟캐스트로서요.
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요. 솔직하다는 건 반대로 그런 것도 있는 거죠. 누가 이런 책도 해보자고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하죠.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이야기하지 않아요. 저는 나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책에 대한 어떤 솔직한 이야기도 그 책이 매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거고요. 굳이 억지로 말을 지어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책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아요. 장정일 씨 라디오 같은 경우도, 시나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너무 솔직한 부분이 있잖아요. 가령 이 작가는 왜 이렇게 여자 다리를 많이 다루었을까? 같은 걸 묻는다든지. (웃음) 그런 건 평론가들이나 다른 작가들이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그렇다고 농담 따먹기 식이 아니라, 친구와 나눌 만하지만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요. 전경린은 왜 그렇게 계속 떠나는 이야기만 할까? 이런 얘기는 어디서도 솔직하게 잘 안 하니까.

: 지금까지 네시이십분 라디오에 나온 분들 중에 인상적인 게스트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준: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차학경의 『딕테』란 작품이에요. 이 방송 이후, 다른 세계에 있는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됐고, 작품을 해석한 작업을 발표하는 방식의 새로운 낭독회를 만들게 되기도 했죠. 게스트를 생각해본다면, 좀 특이한 방식으로 녹음한 방송이 있어요. 『자살의 전설』이라는 소설을 쓴 ‘데이비드 밴’이라는 소설가가 있어요. 그 작가가 한국에 온 일이 있거든요. 좀 신기했던 게 ‘소설리스트’에서 리뷰를 해야 할 책 중에 하나여서 그 책을 봤었고, 제가 조해진 씨한테 읽어보라고 추천했거든요. 그런데 조해진 씨가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 인터뷰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제 얘기를 한 거예요.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런 친구 때문이었다고요. 그런데 데이비드 밴이 저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만나게 됐어요. 만나서 이야기하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어요. 젊은 작가니까 팟캐스트도 잘 알고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서 파일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질문을 글로 써서 보냈고 그분이 대답을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서 보내줬어요. 그걸 사후 통역을 해가지고 제 말에 붙이는 식으로 만들었어요. 그분도 재밌었나 봐요.

: 정말 재밌겠네요. 꼭 들어볼게요. 준 씨는 목소리만 들어도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인터뷰 전에 네시이십분 라디오로만 준 씨를 아는 사람들은 뭘 궁금해할까 생각해봤는데요, 목소리와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 듣는 이유도 결국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준 씨가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가고 싶어 하는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더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지 다들 궁금해할 것 같아요.
준: 지금 하고 있는 라디오를 잘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라디오를 통해서 한국문학 작가를 많이 발굴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요즘 재밌게 읽은 작품이 별로 없었어요.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리고 이걸 통해서 알게 된 작업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랑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책 만드는 것도 좋고. 저는 각자 읽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 책들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서 경험이 공유되어야 하는 책이라든가, 아니면 소리를 내서 읽고 들어야 될 필요가 있는 책이라든가. 그런 책들은 특별히 다르게 취급을 받아야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정당한 대우를 못 받으면 그냥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책들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차학경 씨 책이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책이고요. 그러면 책 낭독으로 공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죠.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설 무대가 별로 없는데, 이런 공연을 같이 하면 데뷔의 장소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행사를 만든다면, 페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고요.

: 앞으로도 재밌는 활동 기대하고 응원할게요. 저의 두서없는 질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준: 아니에요. 고생 많으셨어요. (웃음)

준 씨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책을 사는(生)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책을 통해서 자신을 마주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책 이야기를 널리 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별로 특별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계속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 스스로 억지스럽다고 느껴지는 말은 꺼내지도 않겠다는 사람, 그런데 몇 번이고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 진행자, 리뷰어 등 여러 가지 굵직한 수식어들이 그 이름 앞에 붙을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중 어느 것도 그 사람을 수식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지금도 계속해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더 밖으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가 매력적인 건 변성의 여지를 품은 여리고 유연한 소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준_프로필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 제작자. ‘소설리스트’ 멤버. 2012년 1월부터 지금까지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제작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 분야의 의미있는 책과 그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라디오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예술과들과 독자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준이 고른 문지의 책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기억의 행성』(조용미)
『모데라토 칸타빌레』(마르그리트 뒤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송의경 옮김
카테고리 외국소설 | 출간일 2001년 7월 12일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84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12636
조용미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11년 7월 26일
사양 신46판 176x248mm · 149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22185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정희경 옮김
카테고리 문지스펙트럼 | 출간일 2001년 4월 25일
사양 · 140쪽 | 가격 7,000원 | ISBN 9788932012377

문지, 단 한 권의 책

각 분야 명사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책에 얽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학과지성사의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인터뷰] 당신의 책을 만나다
뮤지션 김목인×문학평론가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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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회의주의 잡지를 읽는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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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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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은 서로를 열어둔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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