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그곳에는 그럴듯한 게 있다

워크룸 공동대표 김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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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리 김나영


손으로 쓴 편지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지우개로 지운 흔적과 그 위에 덮어 쓴 침착한 글씨, 머뭇거리다 조금 번진 잉크 자국,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조심스러운 여백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 적힌 글자의 의미와 모양은 그런 것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좀더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상투적인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 장소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그보다 더 그럴듯한 말과 이미지 시간과 사람이 있었다.

김나영():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발치에서 늘 궁금했던 분인데, 이렇게 만나게 될지는 몰랐네요. (웃음) 요즘 집중해서 하시는 일은 어떤 건가요?
김형진(형): 아무래도 연말이니까 여기저기 일이 많긴 해요. 워크룸 책으로는 연말에 ‘제안들’ 13권이 나올 거고요. 임근준 선생님의 단행본이 하나 나올 게 있고요. 그리고 내년 초에 베케트 선집 출간을 시작하는데, 지금 본문 조판하고 제본 방식 테스트해보고 있어요.

: 무척 바쁘실 것 같은데,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형: 따로 하는 건 없고요, 유흥을 안 하는 거죠.

: 유흥이라고 하면 술자리 같은 건가요?
형: 네, 술자리는 거의 안 가요. 애 보고 일하고 애 보고 일하고, 그렇습니다.

: 혹시 강제에 의해서 못하시는 건 아니에요? (웃음)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도 있을 것 같고요.
형: 자의 반 타의 반인 것 같아요. 원래 유흥을 썩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워크룸 하면서는 못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성향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취한 상태를 별로 안 좋아해요. 사람들은 많이 만나긴 하는데, 주로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편이고요. 그쪽에서 술 먹자고 하면 최대한 미루고. (웃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형진 3

: 사실 개인적으로 각 분야의 명사에게 가장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시간 관리나 자기 관리 같은 걸 어떻게 하시는지. 저는 그게 잘 안 돼서요.
형: 한국 중년 남성들은 유흥만 안 해도 충분히 할 일 다 하면서 지낼 수 있어요.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할 때 있어요. ‘내가 이렇게 바쁜데 사람들이 다 알 만한 사람들은 얼마나 바쁠까? 도대체 그게 삶이 유지가 되나? 일은 어떻게 하지? 그럼 다들 비서가 있나?’ 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죠. 저도 힘든데 그나마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제 룰이 있으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주말엔 절대 일 안 한다, 밤샘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룰을 정해놓으니까.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디자인 일도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거든요. 만약에 그 룰이 없었으면 애초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 디자인도 그렇고 글 쓰는 일도 그렇고 마감이라는 게 있어서 시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막판에 밤을 새고 자기를 좀 혹사시켜야 하잖아요. 그렇게 안 하기 위해서 평소에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뭔가 잘해내시는 분들을 보면 본격 작업보다 그 이전의 과정을 잘 꾸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저는 일을 굉장히 빨리하는 편이에요. 한 가지 일을 빨리빨리 하려고 연습을 했어요.

: 어떻게 연습하셨어요?
형: 제가 그림을 못 그려요. 보통 디자이너들은 시안을 잡을 때 스케치를 하죠. 스케치를 한 다음에 컴퓨터 화면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데, 저는 손으로 연습하는 걸 익히지 못해서 그걸 잘 못해요. 그러다 보니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걸 컴퓨터 화면으로 바로 옮기는 식으로 작업을 해요. 머리로 작업을 다 끝내놓고 컴퓨터에서는 그걸 실행만 하는 식인 거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보다 일을 좀 빨리하는 것 같아요.

: 일단 시작하면 금방 끝낸다는 거죠?
형: 네 10분, 20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 남들이 보기에는 천재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형: 아니에요. 디자이너들 책상에는 노트패드가 있거든요, 연필하고. 그런데 제가 손으로 그림 그리는 게 안 되니까 궁여지책으로 익힌 방법이에요.

: 글 쓰는 사람들 중에도 머리로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구상을 다 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정말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니터를 대면하고 쓰고 지우고, 그렇게 작업하는 게 대부분이고요. 또 쓰다 보면 애초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형: 한 번에 쭉 하는 게 지옥에 안 빠지는 길이에요.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한 번 지우기 시작하면 그건…… 딜리트(delete) 키가 곧 지옥으로 가는 배 같은 거라서요.

: 완전 공감되네요. ‘지우는 건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진행을 하는 게 중요하죠. (웃음) ‘워크룸을 둘러싼 또 다른 이름들이 여러 가지가 있죠. ‘워크룸프레스도 그중에 하나고, ‘작업실유령이나 가가린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형: 워크룸하고 워크룸프레스는 같은 거예요. 저희가 2006년에 워크룸을 시작할 때 출판사 등록을 같이 했거든요. 공동대표가 세 명인데, 디자이너 두 명에 편집자 한 명이예요. 저희만 한 규모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편집자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둔거죠. 그런데 출판을 하려면 뭔가 여력이라고 하는 게 있어야 되잖아요. 초반엔 여력이 없다 보니까, 물론 간간히 한두 권씩 내기는 했는데, 거의 제대로 못했죠. ‘아, 이러다가 진짜 못 하겠다’ 싶어서 2011년에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했다고 보시면 돼요. 그렇지만 디자인이나 미술계에 종사하는 분들 말고 일반 독자분들이 저희를 알게 된 건 ‘제안들’ 때문일 거예요. ‘제안들’을 담당하고 계신 김뉘연 씨는 2013년에 합류했어요. 그래서 편집자가 두 분이 됐죠. 디자이너는 저 포함해서 다섯 명이고요. ‘가가린’에 대한 얘기는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자세히 말씀드릴 건 없어요. 어쨌든 망했고, 그렇지만 별로 미련은 없어요. 그냥 시효를 다 해서 망한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인터뷰 하고 있는 여기 ‘더북소사이어티’나 ‘유어마인드’ 같은 공간이 나오면서 ‘가가린’의 고유한 기능 같은 건 사라지고 서촌의 관광지 같은 역할을 계속 하고 있었죠. 그러다 우리가 처음에 만든 기분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문을 닫아야 하는 어떤 계기가 있었고요. 그 계기란 게 나쁘지 않다 싶어서 그냥 닫자, 해서 닫게 된 거예요. ‘작업실유령’은, ‘슬기와민’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스펙터프레스’와 ‘워크룸프레스’가 공동으로 만든 임프린트인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펙터에서 내기도 뭐하고 워크룸에서 내기도 뭐한, 사이 공간에 맞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실유령’을 처음 만들 땐 안 그랬는데 지금은 워크룸하고 슬기와민이 같은 건물을 쓰고 있거든요. 각각 2층과 3층을 쓰고 있는데, ‘작업실유령’의 책은 2층과 3층 어느 사이 지점에서 나오는 거죠.

북소사이어티

: 말씀을 듣다 보니 워크룸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궁금해요.
형: 워크룸은 잘못 지은 이름이에요. 이름 때문에 항상 일만 하고 있으니까. 건조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어떤 이름을 붙여도 거기에 딸린 감성이란 게 자꾸 보이는 거예요. 이 감성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으니 가능한 습도 0퍼센트의 이름을 짓자, 그러다가 다들 지쳐서 그냥 작업실이니까 워크룸, 그렇게 됐어요. 그때 박활성 씨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아마 그때 편집하던 책에 나오는 문구였을 텐데, 이름이라고 하는 건 신발 같은 거라서 지을 때는 되게 신경이 쓰이지만 그걸 지어서 몇 달 신고 쓰면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그런 거고, 만약에 그때 가서도 신경이 쓰이면 그건 잘못 지은 거지만, 그건 지금 알 수 없지 않나, 그러니 그냥 하자. 그렇게 해서 지었어요, 워크룸이라고.

: 워크룸 창단 멤버들이 모여서 이런 걸 한번 해보자 하고 뭔가 작당했던 계기가 특별히 있었던 건가요?
형: 저희는 『Design DB』라는 잡지를 같이 만들었던 멤버예요. 그때 박활성 씨가 편집장이었고, 이경수 씨가 디자인을 했었고, 지금 워크룸 멤버에는 없지만 박정훈 씨라는 분이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저는 기자로 글을 썼고요. 격월간지였는데, 두 달에 한 번 모여서 그러는 게 재밌었어요. 그러다 헤어져서 각자 일을 했죠. 박활성 씨는 민음사 세미콜론으로 갔고, 이경수 씨는 안그라픽스 디자이너로 있었고, 박정훈 씨는 자기 스튜디오를 차려서 사진을 찍고. 저는 그때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무작정 안그라픽스에 들어간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너무 재미가 없었나 봐요. 더 이상 이렇게 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 된 거죠.

: 그때가 2000년대 초중반?
형: 2006년이요. 그때 다들 회사 그만두고 바로 차렸어요.

: 어디에 속해서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재미는 없고 힘만 들고, 그래서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도 막상 시작하기엔 용기가 안 나는 때가 30대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걸 극복할 수 있었던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형: 그때 저희는 딱 2천만 원 가지고 시작했어요. 각자 500만 원씩 내서 공간도 얻고. 한때는 스튜디오 차리는 일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왔었는데 그때 늘 해준 말이 계산하고 예측하지 말라고, 그러면 못 차린다는 거였어요. 차려야 하는 이유는 한 서너 가지 되는데, 차리면 안 되는 이유는 한 백 가지쯤 되거든요. 만약에 이게 다른 영역이었으면 모르겠지만, 그래픽디자인 쪽은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요. 돈이 좀더 있으면 프린터도 있으면 좋고, 에어컨도 있으면 더 좋고 그렇겠지만, 일단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일을 할 수는 있거든요. 그러니까 망해도 크게 안 망하니까 한번 해보라는 말밖엔 해줄 말이 없어요. 망할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을 거덜 낼 정도는 아니니까.

: 워크룸에 대한 대표적인 수식어 중에 하나가 실험’인데요, ‘실험적 스튜디오’, ‘실험적 모임이런 식으로 많이 호명되는데, 선생님도 실험이라는 것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있으신가요?
: 아뇨, 없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워크룸이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실험에도 여러 가지 맥락이 있죠. 그 조직 자체가 실험일 수도 있고, 디자인 형식이 실험적일 수도 있고. 워크룸이라는 조직이 실험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어요. 그때는 소규모 스튜디오라는 게 거의 없었고, 큰 디자인 에이전시만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어쨌든 2006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잖아요. 그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저희는 다분히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보수적이란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니까. 워크룸은 디자인 형식적으로 봐도 보수적이에요. 지금까지 만들어낸 우리 작업이 결코 실험적이라고 볼 수 없어요. 굉장히 안정적이고 불편하게 하지 않는 디자인을 해요. 만약에 클라이언트가 워크룸을 택한다면 어느 정도는 그것 때문일 거예요. 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디자이너에게는 칭찬일 수 없는 거죠. 워크룸이 그나마 아직까지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문학 출판을 한다는 점일 거예요. 디자인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출판이라는 것도 그중에 하나고요. 출판은 다른 디자인 회사에서도 하는 활동이거든요. 안그라픽스에서도 하고 있고 홍디자인이라는 데서도 적게나마 하고 있고. 그래픽디자인 하시는 분들은 책 만드는 걸 다들 너무 잘하고 또 원하죠. 저희가 하고 있는 문학 출판이란 걸 실험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그게 아마도 긴장을 유지하는 어떤 부분임에는 틀림없어요.

형진 2

: 예술 부문에서는 전위에 있는 어떤 집단이나 작품 형식의 경우 대체로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는 낯선 것일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워크룸은 그 반대쪽에 있으면서, 말하자면 보수적인 디자인을 하면서 그런 태도를 지속하려는 모임이라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오히려 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모임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출판에 있어서는 단순히 물리적인 사물로서의 책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어떤 텍스트가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따져 물어야 하고 같이 생각해봐야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필요하잖아요. 한 명의 편집자와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만나서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게 사실 좀 놀라웠던 것 같아요.
형: 문학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던 건 워크룸을 차리게 된 이유와 비슷해요. 이거 재미없는데 우리가 원하는 걸 해볼까, 그런 이야기인거죠. 디자인 출판, 미술 출판은 저희에게 ‘해야 되는 일’이었는데, 이것만 하다 보니까 좀 지루한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내가 디자인 책이라는 걸 읽었나? 하고 돌이켜보니 그런 적이 없는 거예요. 박활성 씨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럼 우리 무슨 책을 읽었지? 하다가 주로 문학책을 읽었지, 책은 문학책이지, 했죠. 사실 이것도 보수적인 생각이죠. 그런데 우리는 문학 편집과 출판 경험이 없으니 누구와 할까, 고민하다 김뉘연 씨에게 그 제안을 한 거고요. 지금까지를 자평하자면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마도 김뉘연 씨가 그 부분에 대해서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요. 얼마 전에 뉘연 씨가 ‘셀린 선집’을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생각해봤죠. ‘제안들’ 하고 있고, 1년에 한 권 정도씩 나올 거지만 ‘사드 전집’도 하고 있고, ‘베케트 선집’도 내년 초에 시작할 건데, ‘셀린 전집’까지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정도 규모의 인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뉘연 씨가 더 고민을 하셨을 거고, 여력이라는 점도 더 생각을 하셨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제안하는 거니까 맞겠지, 하는 결론을 내리고 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한 사람에게 전권을 주니까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제안들

: 책을 만든다는 건 표지나 내지의 활자, 색깔, 종이의 질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과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제안들의 경우에는 문고판과 양장본의 장점을 함께 갖고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기에 예쁜 책이라는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는데요. 이 책을 처음 기획하고 디자인하실 때부터 출간하기로 한 텍스트의 목록과의 어떤 유기성을 함께 고민하신 건가요? 다 읽어보시기도 어려웠을 것 같고요.
형: 편집하면서는 읽어보죠. 하지만 그것을 저는 읽는다고 생각 안 하고요, 차라리 (눈으로) ‘스캔한다’고 얘기해요. 그래픽디자인, 북 디자인 쪽에서 교과서적으로 다뤄지는 여러 책에선 다들 ‘디자인하기 전에 읽어봐야 된다’라고 얘기하는데 제가 몇 년 동안 작업을 해보니까 실제로 읽고 나서 디자인할 수가 없는 거예요.

: 왜일까요?
형: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자음과모음에서 나오고 있는 하이브리드총서 경우를 보자면 많은 경우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 의뢰가 와요. 서문 정도만 읽고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원고가 나와 있어도 발간 일정 때문에 미리 읽을 시간이 없어서 조판하면서 읽어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그때 보는 원고는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스캔’하는 거예요. 스캔할 때도 양상이 좀 달라요. 저는 먼저 어떤 언어, 어떤 기호가 많냐는 식으로 봐요. 예를 들어 숫자가 많은 단행본의 경우에는 숫자가 좋은 글꼴을 고르고 문장부호가 많으면 문장부호가 좋은 글꼴을 골라요. 대화가 중요한 책이면 대화를 표현할 때 중요한 따옴표가 잘 만들어진 글꼴을 고르고요. 그런데 아까 얘기한 그 경구가 항상 뒷머리를 잡아당기죠. 내가 태만한 게 아닌가, 이해도 안 한 상태에서 이렇게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요.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적어도 나한테는 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그들도 스캔하는 걸 읽는다고 표현했을 뿐인 거라고 생각했죠. 총서 같은 경우는 또 달라요. 책마다의 성격을 뽑아내는 것보다 총서 전체의 포맷팅이 우선이니까요. 예를 들어 ‘제안들’을 시작할 때 열 권 정도의 목록이 나와 있었어요. 이게 원래 37권까지 기획된 총서인데 당시에는 그중 열권만 알고 있는 상태였고, 그나마 그중 원고가 나와 있는 건 세 권이었어요. 그러니 다 읽고 그 결을 살린다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제가 가진 태도는 ‘나는 그럴듯한 디자인을 한다’라는 거였어요. 글 쓴 사람이 보기에도 좀 그럴듯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이 보기에도 좀 그럴듯한 것. 뭔가 맞아떨어지기는 하는 것 같다는 정도의 힌트만 주는거죠. 굉장히 무책임한 말로 보일 수 있지만, 저한테는 나름 최선의 입장이에요. 아까 말했던 그런 한계도 분명 있고요.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대학에 다니면서 이미지와 글이 절대 등치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 세상의 모든 말을 다 갖다 붙여도 그림 한 장이 될 수 없다는 거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텍스트와 닮은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 ‘제안들총서 같은 경우에는 각각의 색깔이 매력적인데요, 그런 건 어떻게 고려하시나요?
형: 색깔을 정할 때는 저와 편집부와 번역자의 의견을 적절히 반영해요. 번역자 선생님께서 무슨 색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런 의견이 없는 경우에는 편집부의 의견이 우선되고요. 편집부에서 어떤 컬러가 좋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그걸 듣고 조율하는 편이에요. 앞의 책이 무슨 색이었는지, 다음에 나올 책은 무슨 색일 것 같은지도 살펴보면서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어요. 원하는 색이라고 다 쓸 수는 없거든요.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색지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예쁜 색은 거의 다 썼어요. 그래서 따로 수입을 좀 해와야 하나, 고민 중이예요.

: 그러면 또 비용이 더 많이……
형: 그래도 뭐 할 수 없죠. 꼼수를 쓰다 망한 경우가 있거든요. 8권 곰브로비치 책인데, 원하는 채도의 핑크 색지가 한국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냥 백색 종이에 인쇄를 하게 되면, 표지 안쪽에 재단한 면이 하얗게 드러나거든요. 그건 너무 싫고, 그래서 옅은 핑크 색지에다 진한 핑크를 다시 인쇄를 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저 책을 열심히 읽은 분이 이거 왜 이래 하면서 보여주시는데, 색이 벗겨지니까 옅은 핑크가 나오더라고요. 역시 꼼수를 쓰면 안 된다 싶었어요.

: 그런 얘길 들으니 8권은 꼭 소장해야 되겠다 싶은데요, 다시 없을 책이니. (웃음)
형: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저렇게 한 건. 실패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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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문지 책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문지 시선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디자인이 똑같잖아요. 틀만 바뀌고요.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 전 보수적인 디자이너라서 좋아해요. 이런 판형으로 시집을 만드는 게 다른 나라에는 없다고, 한국의 고유한 판형이라고 들었어요. 문학동네에서 큰 시집 나오기 전까지 시집은 모두 이런 판형이었잖아요.

: 디자인은 사회적인 취향 같은 걸 반영하잖아요.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판형과 편집 디자인을 내보였을 때 호오가 갈리는 걸 보고 느꼈어요. 그걸 나쁘게 보는 쪽은 기존의 시집 판형과 글자체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기존 시집의 디자인이 시집으로서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서가 아니라 익숙해서 좋아 보이는 걸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디자인하시면서 그런 요소들도 고려하게 되나요?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
형: 문지 시선과 창비 시선을 비교해 보면, 창비는 시선집 디자인을 한두 번 바꿨는데 그 시도가 좋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것은 좀 다른 맥락인 것 같아요. 좋은 디자인을 해야 된다는 것과 아이코닉한 것을 건드리려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죠. 아마 저더러 문지 디자이너로 들어가라고 하면 저도 그럴 거고. 그걸 억누르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맥락에서 문지 시인선이 좋은데, 물론 아쉬운 점도 있죠. 활판 인쇄에서 벗어나서 디지털 타이포로 넘어가면서 글자는 더 또렷해졌을 수 있는데 조판의 질이라고 하는 것은 더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자간이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활판은 금속활자니까 더 줄일 수는 없거든요, 물건이 딱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런데 디지털에서는 마음대로 줄일 수 있으니까 줄이게 되는 건데, 이 부분이 전보다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 표지디자인 이야기할 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놓고 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디지털 타이포 시대가 되어서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는데 안하고 이전의 태도를 갖고 가는 것도 일종의 태도로서 디자인이 아닐까요?
형: 사람들이 외국 서점에 가면 책등만 봐도 어느 출판사인지 알겠다고 말하잖아요. 한국에서는 책등만 보고 알 수 있는 데가 문지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저는 그 유산을 가져가는 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유산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디자인 조판 매뉴얼을 만들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문지 안에서. 한국에서 성문화된 조판 매뉴얼을 갖고 있는 데가 ‘열린책들’ 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그건 꼭 있어야 된다고 봐요.

: 좀 다른 얘긴데, 시를 써서 투고하는 사람들이 문지 시집의 글자체와 행간과 자간을 흉내내서 인쇄하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출력해 보면 같은 시도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요. 말하자면, 그럴 듯하게 보인다는 거겠죠.
: 그게 일종의 활자의 마법 같은 것인데, 지금 편집디자인을 하시는 분들 중 많은 수가 그런 것에 대한 페티시 때문에 시작한 게 있을 거예요.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리포트를 모두 다 손으로 써냈어요. 그런데 군대에 갔다 오니까 도서관에서 책도 컴퓨터로 검색하고, 리포트도 컴퓨터로 써서 내는 식으로 바뀌었더라고요.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써서 출력을 해 놓고 보면 내가 쓴 글인데 내가 안 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마술을 한번 겪고 그것에 심하게 매혹된 사람들의 일부는 편집디자이너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만든 건데 제가 안 만든 것처럼 하는 게 한때의 굉장히 큰 목적 중의 하나였거든요. 나도,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안 만든 것 같은 것, 껌 종이 같은 걸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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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단 한 권의 책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황인숙 시인의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를 고르신 이유를 듣고 싶어요.
형: 제 인생의 책 중에 한 권 같은 건데, 이 책을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겨울에 샀어요. 숙명여대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샀는데, 그때 어떻게 읽었는지는 분명히 기억이 안 나요. 얼핏 기억나는 건 휴일에 아파서 낮잠이 들었는데 일어나고 보니 아직 낮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거예요. 고3 어느 때인가 무척 힘들었는데 그때 무작정 황인숙 시인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절실했어요. (웃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안 만나면 죽을 것 같았어요. 이 사람한테 어떤 말이라도 들어야 내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문지에 전화도 했었을 거예요, 연락처를 물었지만 안 가르쳐줬을 거고. 인터넷도 없었을 때니까 뭐든 힘들게 뒤져서 이분이 해방촌에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비 오는 날이었는데, 그때 해방촌에 처음 가봤어요. 동네 입구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오렌지주스를 하나 샀어요. 그리고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밑도 끝도 없이 황인숙 시인이 어디에 사냐고 물어봤어요. 당연히 모르죠, 어떻게 알아요. 그러다 보니 해가 지고 밤이 되고 비는 쫄딱 맞았고 오렌지주스는 손에 덜렁덜렁 있고, 그런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어요. 결국 못 만났지만 그것 때문에 이건 저한테 되게 중요한 책이에요. 필자를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책은 그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어요. 좋아하기로 따지면 배수아 작가를 훨씬 더 좋아했고 하일지 작가도 좋아했는데 그분들은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이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뭔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웃음)

: 이후에도 한 번도 못 만나셨나요?
형: 2000년에 제가 아트선재센터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분을 뵈었어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그때 지하에 극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신세틱플레져(Synthetic Pleasure)」라고 하는 영화에 자막을 띄우는 일을 했어요. 자막 파일이 싱크가 안 맞아서 제가 수동으로 맞추는 일을 한 달 하느라, 하루에 네 번씩 120번을 봤어요. (웃음) 제가 다음 회차 상영 전에 잠깐 나와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걸어오시더라고요. 사진으로만 봤기 때문에 헷갈렸을 법도 한데, 보는 순간에 바로 알았어요. 다가가서 ‘황인숙 시인이시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렸는데 그분도 ‘안녕하세요.’ 하고 그냥 헤어졌어요. 그러고 나니까 내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 3 때 이 시집을 샀다고 했는데, 그전에도 시집을 즐겨 읽던 편이었나요?
형: 그때 제일 열심히 읽었던 시인은 김수영이었어요. 『거대한 뿌리』, 민음사에서 나온 빨간 책도 열심히 읽었어요. 사실 문지 시집은 이걸 처음 산 걸 거예요. 그러고 나서 황인숙 시인의 스승이 오규원 선생이라 해서 오규원 시인 책도 다 사서 읽었어요.

: 문지와의 인연은 황인숙 시인의 이 시집으로 시작된 거네요. 이 시집 말고도 권성우 선생님의 『비평의 매혹』도 함께 골라주셨는데요, 이 책에는 또 어떤 사연이 있나요?
형: 대학 다닐 때 내가 본 것을 말로 풀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나름 되게 심각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비평의 매혹』이란 책을 보게 됐어요.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읽고 났을 때 이 사람이 글을 보는 방식이 너무 좋았던 기억은 있어요. 이분은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걸 최대한 감추고 비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좋으니까 칭찬하고, 싫으니까 욕하는게 아니고 좋은데 어쩔 수 없이 비판은 해야겠다, 뭐 그런거. 물론 제가 오독한 걸 수도 있어요. 그전까지 저는 욕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썼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제가 뭔가 써야 할 때 그 입장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 감춰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거니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서 쓰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에 선생님이 학교 인문대에서 중앙도서관 가는 길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어요. 허름한 양복에 넥타이를 조금 풀고 앉아서 빵하고 우유를 드시더라고요. 저렇게 순하게 생기셔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독한 말을 하려면 되게 힘들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앞을 지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땐 저 사람의 전체적인 느낌과 함께 퍼스널리티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형진 5

: 책이라는 걸 들여다보면 한글이 디자인하기에 좋은 문자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요.
형: 그건 우문이라는 거 아시면서 하신 거죠? 그것에 대한 준비된 답들은 항상 있어요. 한글은 우리가 그걸 너무 잘 아니까 그렇고, 그에 비해 다른 나라 언어는 이미지로 보이니까 그렇다. 그것도 부분적으로는 맞아요.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라는 것도 있죠. 알파벳에 비해서 폰트 하나 만들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냥 낱글자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형으로 만들어야 되니까. 그러다 보니 좋은 폰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한글 폰트가 다른 나라 폰트에 비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 건 맞아요. 근데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반복해서 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모든 글자는 자신의 위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 위엄을 살리도록 디자인해라.’ 예를 들어서 A라고 하는 폰트는 12포인트 정도를 쓰면 가장 아름다워요. B라는 폰트는 8포인트로 쓰면 가장 아름답고요. 또 어떤 자간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게 각각의 폰트마다 있단 말이에요. 그것에 맞게 사용을 하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런데 나쁜 습관들이 있죠. 글자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게 아주 작게 쓰고. 그건 글이 아니고 이미지가 되어버리니까 그럴 듯해 보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글자의 위엄은 다 사라져버리는 거거든요. 제가 다른 적절한 용어를 못 찾겠는데, 그 글자가 가장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건 그냥 위엄을 살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글자는 알아서 자기가 자기의 공간을 확보하고 멋지게 보여요. 사람들은 흔히 글자를 의사소통의 도구라고만 생각해요. ‘내가 아침에 밥을 먹었습니다’라는 문장을 ‘내가 아침에 밥을 먹었습니다’라는 의미만 통하면 된다는 식으로. 한글 디자인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게, 저는 옷하고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가 옷을 따뜻하려고만 입는 게 아니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아무거나 걸치고 그냥 평생 옷 몇 벌이면 되죠. 근데 철마다 색깔 맞춰서 티셔츠 사고 재킷 사고 이런 건 옷이 단순히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우리가 알기 때문이잖아요. 글자도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하면 사실 정말 아무렇게나 조판해도 돼요. 어떻게 조판해도 재밌는 글은 다 읽게 돼 있어요. 사람들이 좋은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이 가독성이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어요. 언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일 수 있지만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의사소통이 아니에요. 옷의 유일한 목적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근데 사람들이 옷과 심미성이라고 하는 것을 연결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죄책감을 못 느끼는데, 글자과 심미성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거리끼는 태도가 있어요. 언어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판단 같은 것 때문에. 그래서 타이포그래퍼들이 자꾸 가독성이다, 판독성이다 책을 부드럽게 읽게 하기 위한 도구다, 이렇게 자꾸 포장하곤 하죠.

: 요즘 책의 상황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미리 알고 필요에 의해서 사기도 하지만 책을 사러 서점에 가서 눈에 들어오는, 마음에 드는 책을 사는 경우도 많잖아요. 다른 데서 일단 갖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도 봤는데요,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사람들이 갖고 싶어할 만한 책을 만드는 게 책이 안 팔리는 이런 사회적인 상황의 한 돌파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 책이 안 팔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책이 잘 팔리는 상황에서 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희는 선배들이 겪었다는 그 어떤 시기를 못 겪었잖아요. 이를테면 문지나 창비나 민음사나 다 시작하자마자 낸 책들이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막 10만 부, 20만 부 팔리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때하고 지금은 전혀 다르죠. 저도 그때가 궁금해서 그 시기를 공부해본 적이 있어요. 70년대 중반 관철동이라고 하는 데가 도대체 어떤 동네였나 궁금해서. 읽어보니까 말도 안 되는 시기인 거죠.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된 30대 초중반 사람들이 글 쓰는 친구의 단행본을 내주면 10만 부, 20만 부 팔리고. 저는 그런 시기를 겪어보질 않아서 책이 안 팔린다고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은 없어요. 지금은 우리 모두 이게 사양산업이란 걸 알고 들어온 세대잖아요. 어쩌면 영원한 사양산업일 텐데.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책 같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갖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데, 그것의 전제는 편집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책을 고르고 최선을 다해서 편집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얘기에요. 근데 아무래도 편집자분과 저의 입장이 다를 텐데, 저는 제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분들이 완벽한 편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분은 또 자기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 제가 최선을 다해서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겠죠. 사고 싶은 책이라게 단지 디자인만을 얘기하는 거라고 친다면 다이어리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내가 저걸 사서 전혀 안 읽는다고 쳐도 저기에 굉장히 무거운 텍스트가 들어있고, 글자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여서 편집한 책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사고 싶은 거죠. 그때 디자인은 마지막 역할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로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텍스트라는 자부심이 넘친 나머지 아무렇게나 장정을 만들어서 내는 데에는 심각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냥 원고 덩어리예요. 책이 아니죠.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그 말을 했던 건 아마 디자인 잡지랑 인터뷰했을 때인 것 같은데, 책에 대해서 너무 엄숙하게 바라보는 게 너무 싫어서 ‘제게 책은 유니클로 티셔츠 같은 거예요’라고 얘기하면서 했던 말이었어요. 책은 별 생각 없이 그저 사고 싶어서 사서 꽂아놓고 죽을 때까지 안 읽어도 상관없어요, 그냥 그렇게 얘기했던 건데요. 그 아래 깔린 전제는 누군가가 너무나 열심히 편집한 텍스트가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 ‘이라는 한글을 바탕체로 적어놨을 때와 돋움체로 적어놨을 때 완전히 다르게 보이잖아요.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사각형의 공간이 보이고 손잡이가 보이고 틈이 보이고. 이런 어떤 의미가 반영되는 이미지에 대한 판단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있어서 갖고 싶다는 마음을 자극하는 부분도 달라질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이 디자인이 이 글자의 위엄을 지켜주는 거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웃음) 책 만드실 때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요?
형: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디자인을 언제까지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웃음) 이게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몇 년 있으면 촌스러워 보일까? 그런 생각은 잘 안 해요. 알 수 없는 거니까. 돌이켜보면 제가 작업한 거라고 해도 갖다 버리고 싶은 게 더 많죠. 한 10개 만들었으면 예닐곱 개가 그렇고 한 3.5개 정도는 그래도 봐줄만 한가 싶고, 나머지 0.5개 정도가 아직도 괜찮다 싶어요. 그것을 목표로 하진 않지만 앞으로 촌스러워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방식은 있을 텐데요. 존 러스킨이 쓴 『건축의 일곱 등불』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당시 건축에 대해 개탄하면서 쓴 글들이 있는데 요지는 가짜 재료를 쓰지 말아야 된다는 거예요. 기둥인 척하는데 기둥은 아니고, 대리석인 척하는데 대리석이 아닌 것들이 있잖아요. 그 책도 제가 편집하면서 스캔하듯 본 것 중에 하나였는데, 이게 되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띠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쇄라든가, 일부러 근사해 보이려고 하는 무광코팅 같은 것. 그런 건 안 하려 고 하죠. 쌩한 느낌은 쌩하게 놔두려고 하고요. 아까 말한 색지 같은 것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컬러를 내고 싶으면 색지를 써야지 컬러 인쇄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거예요.

: 더 들어보고 싶지만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게 아쉽네요. 요즘 출판계가 점점 이북(e-book)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잖아요. 종이 책이라는 게 양적으로 줄어드는 추세 같기도 하고요. 책 디자인과 출판을 하시는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형: 이북의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2007~2008년에만 해도 우리 세대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이건 여전히 문지나 민음사에 물어봐야 되는 질문인 것 같아요. 저희는 역량이 안돼서 앞으로 이북 낼 계획이 없거든요. 이를테면 글자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하면 최적으로 보일까, 그런 고민을 할 여력이 없어요. 이왕 이북을 내려면 잘 내고 싶잖아요. 스크린에서 보이는 글자와 인쇄되는 글자는 달라요. 개발도 다르게 해야 돼요. 근데 최근에 출시되는 몇몇 서체들은 스크린 전용으로 만들어져서 인쇄용으로 쓰기에 굉장히 곤란해요. 출시하는 쪽에서는 다 범용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를 깎고 어디를 부풀리고 이런 게 다르기 때문에요. 얼마 전에 파주에서 있었던 ‘에디터스쿨’에서 어떤 분이 이북 표지에 관한 질문을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이북 표지라는 건 되게 이상한 물건이에요. 책 표지는 원래는 내지를 보호하기 위한 건데 이북에서는 필요가 없잖아요. 아무튼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자니 너무 갑갑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종이책이 안 팔린다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70년대 중반에 단행본 시장이 열린 이후로 너무 심각한 호황을 겪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어요. 솔직히 누구 집에든 책이 몇 백 권씩 꽂혀 있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저는 지금이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은 원래 잘 안 팔리는 물건일지도 몰라요. 워크룸은 공공연하게 ‘우리 앞에는 딱 2천 명이 있어’라고 얘기하거든요. 2천 명의 취향은 우리한테 중요하지만 그밖의 다른 사람들의 취향은 저희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그분들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안들’을 한국 사람 몇 천 명이 읽는 것도 제가 봤을 땐 되게 이상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오히려 저는 지금이 정상적이라고 봐요.

나영 형진

: 아쉽지만 시간상 이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네요. 다시 워크룸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워크룸이 하게 될 일, 혹은 기획 중인 재미있는 작업이 있다면 살짝 엿듣고 싶어요.
형: 아마 2018년 정도까지 ‘제안들’이 완간될 거고요, ‘사드 전집’은 2020 몇 년 정도까지 나오겠죠? (웃음) ‘베케트 선집’은 내년에 시작하면 3년 정도 안에 완간될 것 같아요. ‘셀린 선집’도 2017년 정도에 시작해서 2~3년 내에 끝낼 것 같고요. 디자인이나 미술 쪽으로는 내년부터는 방향을 좀 바꿔볼까 생각중이예요. 그동안에는 사람들의 눈치를 좀 봤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재미없고 사람들도 별로 안 읽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정말 재미없고 읽으면서 고통스러운 텍스트북만 내자고 얘기됐어요. 디자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보수성을 좀 덜어낼까, 그게 몇 년째 고민이에요. 그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제가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다 보니까 그게 물 건너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계속 고민만 하고 있어요.

: 저는 워크룸의 그 보수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고민만 하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긴 시간 동안 제 우문을 현답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감사합니다.

인터뷰 이후에 오래 그럴듯한 것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럴 듯도 한 것은 유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따로 내세우지 않아도 돋보이는 게 있고, 그런 것은 그럴듯한 것을 그리는 사람만이 볼 수 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런 사람은 세심하다. 세심하게 보고 듣고 말한다. 두서없는 말 속에서도 질문의 갈피를 읽어내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답해주던 김형진 대표의 모습에서 어떤 사람의 깊이를 보았다. 그 깊숙한 곳에 그럴 듯함이 있다. 그와의 대화에서 그럴듯한 것은 미사여구로는 가닿을 수 없는 정직한 고민과 실천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


프로필_김형진김형진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SADI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2006년부터 워크룸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펭귄 북디자인 1935~2005』 등이 있다.

김형진이 고른 문지의 책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황인숙)
『비평의 매혹』(권성우)


황인숙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1988년 4월 30일
사양 신46판 176x248mm · 149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03481
권성우 지음
카테고리 문학 비평서 | 출간일 1993년 11월 15일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08쪽 | 가격 7,000원 | ISBN 9788932006383

문지, 단 한 권의 책

각 분야 명사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책에 얽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학과지성사의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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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 ·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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