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서점이 아니라 책방

풀무질 지기 은종복

은종복 1 인터뷰 · 정리 김나영


올 여름에 서울 근교의 소도시로 이사를 온 후에 알게 된 동네 책방이 생겼고, 그 이후로는 책을 그곳에서 사게 되었다. 그곳은 카페를 겸하는 아주 작은 서점이지만 웬만한 신간은 구비되어 있고, 없는 책도 주문하면 하루나 이틀 만에 받아볼 수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서점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하루의 절반을 보낸다. 동네 책방이 문을 닫지 않고 오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도 그곳에서 산다. 그렇게 책과 더불어 산다는 게 뭔지를 조금 알게 됐다. 은종복 씨는 인터뷰 내내 서점이라는 말 대신 책방이라는 말을 쓰셨다. 책이 삶에 스미는 건 그곳에 책방이 있기 때문이다.

김나영(): 문지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으신가요?
은종복(): 제가 책방을 운영한 지 23년째거든요. 제가 스물여덟 살부터 책방을 해서 지금 쉰한 살이에요. 지금 이 자리 대각선 방향에 새로 생긴 빵집 자리에서 시작했어요. 그땐 1층과 2층 모두 썼어요. 한 층이 4.5평 정도로 좁았고. 지금 이쪽으로 옮긴 건 8년 됐고요. 예전부터 문학과지성사는 우리 책방 직접 거래처였어요. 그보다 문지에 관해 더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 아침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분이 와서 책을 보다가 나갔어요. 그런데 한 15분 정도 후에 한 남학생이 시집을 하나 가져왔더라고요. 좀 전에 여기서 가져간 거라고. 그게 문지 시집이었어요. 그 여자분 옆모습을 제가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몇 달 뒤부터는 쭉 오더라고요. 나는 모르는 척했죠.

: 그 여자분이 몰래 가져간 걸 다른 남자분이 대신 돌려드린 거죠?
: 네. 그 기억은 아직도 또렷해요. 한 20년 됐네요. 이건 다른 얘긴데 제가 대학 다닐 때 문학 동아리에 있었거든요. 데모를 하러 나가도 꼭 시집을 들고 나갔어요.

: 왜 그러셨어요? (웃음)
: 시집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잖아요. 그래서 늘 갖고 다녔던 것 같아요. 버스에서도 읽고 데모를 하다가도 한쪽에 가서 보고.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체게바라가 그랬듯이 뜻은 높게, 정서는 낭만. 낭만적인 혁명 같은 걸 꿈꿨던 거죠.

: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라 할 만할 때에 문지가 늘 시집으로 함께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스물여덟 살에 서점을 열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젊은 나이에 왜 하필이면 서점 운영을 하기로 하셨나요?
: 제가 학교를 겨우 마쳤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나, 안 다니고 싶더라고요. 돈에 눈먼 세상,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세상, 이런 데서 대학이란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어요. 학점도 안 좋았고, 학사경고도 받고 그랬었는데, 저는 몸이 아파서 군대도 못 갔거든요.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동기들하고 같이 졸업했어요. 학교를 오래 다녔죠. 아무튼 우리 때는 취직이 잘 됐어요. 대기업도 원서만 내면 거의 들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저는 기업체에 원서를 한 번도 안 넣어봤어요. 학교 마친 후에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그러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네에서 신문배달부를 모집한다고 해서 가봤죠. 거기서 일하면서 장안동 ‘일하는주민회’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책방 운영하는 일이 나왔다고 해서 지원을 했죠. 그때 저 말고 지원자가 두 사람 더 있었다고 해요. 그때만 해도 책이 잘 팔렸어요. 성균관대만 해도 공부하는 동아리가 50개는 넘었을 걸요? 『껍데기를 벗고서』 같은 책은 3권까지 있는데, 그런 책을 한 동아리에서 열 권씩만 사도…. 그땐 한 달에 100권씩 나가는 책이 10종이 넘었어요.

: 그땐 거의 인문사회과학 서적들로 서점 운영이 되었겠네요.
: 당시에 알튀세르 책 같은 게 번역되어 나오고 그랬는데, 그 어려운 책이 ‘풀무질’에서만 한 달에 300권이 팔렸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팔렸죠. 처음에 어머니가 7천만 원을 빌려주셨는데, 매달 이자로 130만 원 정도를 드렸거든요. 그래도 저한테 200만 원 정도는 남았던 것 같아요. 그땐 저축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 안 가더라고요. 그랬던 게 5년도 채 안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 이후로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아주 빠른 속도로 생겼어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이론서 읽고 공부하는 동아리가 없어지기 시작했고요. 아주 가파른 속도로 책방이 힘들어졌죠. 책방 시작할 때 10년만 하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 내가 그만두면 할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아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한 게 지금 23년째고 이제는 빚 때문에 문도 못 닫아요. (웃음)

: 그렇게 오랫동안 성대에 지성의 공급처 역할을 해왔던 곳일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역사를 함께 해온 곳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임대료 때문에 이곳 지하로 옮기실 때, 성대 학생들이 와서 이삿짐도 나르고 그랬었다고 들었어요.
: 네.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매출의 7~80퍼센트를 차지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금은 사법시험이나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용 책, 그리고 3월과 9월에 학교 수업 교재가 제일 잘 나가죠. 대학생들이 보는 학습지가 매출의 반을 넘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인문사회과학 책방한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거죠. 책방 시작할 때부터 ‘생태 평화 인권 나눔’ 이런 데에 조금씩 돈을 냈었는데요, 그런 자격지심이 생기니까 지금은 그렇게 돈을 내는 곳이 30군데가 넘는 것 같아요.

: 책을 통해서 하시려 했던 역할이 잘 안되니까 그런 곳에 기부를 조금씩 더 하셨다는 말씀이죠?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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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요즘은 모든 동네 서점이 어렵잖아요.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워낙 경쟁력이 세니까요. 작은 책방을 23년째 운영하시면서 서점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셨을 텐데, 현재 제일 어려운 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가요?
: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 보면 책을 많이 못 팔고 돈을 못 번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 같아 보이지만, 그건 아니에요. 사실 제일 어려운 건 사람 관계예요. 운영이 어려워도 책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맑고 밝은 뜻을 갖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나고요, 그 힘은 결국 책 매출로도 이어져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취업 관련한 공부를 하더라고요. 우리 때는 대학생이라면 입학하고 최소 2~3년 정도는 꿈을 갖고 교양 공부도 많이 했었거든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보는 그런 동아리나 학회도 많았고.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어요. 이게 우리가 만든 세상이죠.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는 책도 외상으로 가져가고, 돈도 빌려가고, 술값도 달라고 하고 그랬어요.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여기서 단지 책만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가 있었어요. 지금은 단지 책만 사고파는 그런 만남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제가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어요. 오래된 모임은 10년이 넘었고, 철학, 고전, 소설, 시, 그리고 『녹색평론』 읽는 모임까지 꽤 많아요. 사실 그것도 성대 학생들이 먼저 하자고 해서 만든 건데 정작 학생들이 열심히 안 해요. (웃음) 모임 때만 되면 아프다, 시험기간이다, 일이 많아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 여기 드나드는 단골들이 주는 힘 같은 게 사라져서 힘이 빠진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는 말씀이죠?
: 지지난해에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걸 하면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 바로 옆 공간이거든요. 아이들이 와서 옛날 이야기도 듣고, 그림책도 보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런 공간이에요. 요즘은 아이들도 바빠서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오시기도 해요.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임이 형성되었어요. 다같이 빵도 만들고 바느질도 하고 천연비누 같은 것도 만들고. 이번에는 종로구청에서 2~300만 원 정도 도움을 받았어요. 보통 쓰는 돈이 아니라 ‘대안 화폐’라고 하는 게 있는데요, 그걸로 이 동네 살림살이를 해요. 여기가 은행이에요.

: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서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졌잖아요. 표지 사진이나 책 소개만 보고 인터넷에서 구입하거나 대형 서점에 가서도 원하는 책이 꽂힌 위치를 검색한 다음에 그것만 딱 사오기도 하고요. 이런 와중에 선생님은 좀 전에 말씀하신 그런 활동을 통해서 예전 서점을 부활시키려고 하시는 건가요. 서점이라는 공간을 친숙한 곳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의 새로운 가치를 찾고 만들고.
: 그렇죠. 전에는 그게 자연스럽게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잘 안 되니까 이렇게라도 해보려는 거죠. 제가 지금 『윤상원 평전』을 읽고 있는데, 거기 보니 5·18 광주항쟁 때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게 광주 ‘녹두서점’이라는 곳이더라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리고 어떤 대학마다, 예를 들어 고대는 ‘장백서원’, 연대는 ‘오늘의 책’ 같은 그런 서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런 서점들에서는 단지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공유하는, 자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학생들이 김수영을 찾으면 신동엽도 같이 이야기해줄 수 있고요. 책방은 책 가게가 아니잖아요. 최근에는 한강 소설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한강이 시집 낸 거 알아요?” 하고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책방 모임 소개도 하고 그랬죠. 책을 통해서 지성과 감성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역할을 직접적으로는 책방에서 했었어요. 저는 그런 걸 다시 좀 부활시키고 싶어요. 지금 하고 있는 협동조합 일을 잘해서 다른 대학에 사라지고 없는 인문학 책방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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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작은 서점들이 정작 수입 문제로 문을 닫잖아요. 운영 자체가 안 되니까. 도서정가제도 시행되고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작은 서점들은 공급률 같은 게 다르니까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고요.
: 다르죠. 이번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100만 원어치 납품 의뢰가 왔어요. 그걸 다 라벨 작업까지 해서 보내야 되는데, 거기다가 10퍼센트 할인에 5퍼센트는 도서상품권으로 달라는 요구를 하더라고요. 라벨비도 공짜로 해달라고요. 저희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결국 라벨비를 천 원씩 받아서 했는데 결국 10퍼센트밖에 안 남았어요. 우리도 그렇고 대부분 작은 서점 마진이 25~30퍼센트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은 적게는 35~40퍼센트고 많게는 50퍼센트나 되는 곳도 있대요. 제 조카가 라벨 작업을 도우러 오는데요, 그 조카가 대형 서점에서 1년 정도 일했거든요. 그래서 거기랑 여기랑 비교하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출판사에서 그렇게 주는 이유가 대형 서점에서 잘 팔려야 집계가 되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베스트셀러라고 또 사게 되고, 그런 거죠. 동네 책방이 없어질수록 인터넷 창에 광고가 떠야지 무슨 책이 나오고 잘 팔리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좋은 책이 광고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도 돈이에요. 인터넷 창에 광고 띄우는 것도 다 돈이고, 대형 서점에 서 좋은 자리에 진열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게 어떤 관행처럼 되어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프랑스는 온라인 서점하고 동네 서점을 다르게 대우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네 서점이 유리하게 공급률을 매겨서요. 예전에 제가 글로도 쓴 적이 있는데요, 뮌헨에서 대학을 다니던 한 학생이 어느 날 서점에 갔는데 찾는 책이 없더래요. 바로 그 책을 읽어야 해서 그냥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려고 봤더니 주문 자체가 안 된다고, 그 지역에는 이러이러한 동네 서점이 있으니 거기 가서 사라고 안내가 딱 뜨더래요. 그래서 다시 서점에 가서 주문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왔다고요. 웬만하면 동네 서점에 주문하면 하루 만에 다 구할 수가 있대요.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는 게 있지만 정가로 팔고 배송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니까 당연히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게 되겠죠. 거기는 학교 앞에 서점이 대여섯 개, 헌책방도 대여섯 개는 있대요. 서점도 분야별로 분화돼 있고요. 그에 반해 우리나라 서점은 종합 백화점이잖아요. (웃음) 서점에 가면 이런저런 볼일을 다 볼 수가 있으니, 사람들에겐 그게 편할 수는 있지만 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에요.

: 교육청이라든가 지자체가 동네 서점 살리기 정책을 내놓잖아요. 예를 들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구입할 때, 천만 원 미만이면 무조건 동네 서점에서 사야하는 제도라든가. 동네 서점을 살리려는 여러 제도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런 게 피부에 와 닿는지, 좀 달라진 게 있는지?
: 조금 도움은 됐는데요, 무조건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서울시하고 서울시교육청에서 그 관내의 초중고, 그리고 도서관에서 천만 원 미만의 도서를 구입할 때는 동네 책방을 쓰라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도 여러 문제가 있어요. 일단은 동네 책방 자체가 없어요. 그리고 도서관 책에는 청구기호 같은 게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동네 책방은 라벨 작업 같은 걸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그걸 하느라 되게 고생하죠. 게다가 할인을 요구해요. 아까 말했지만 몇 퍼센트 할인하고 몇 퍼센트는 도서상품권으로 달라고요. 결국은 품만 많이 들고 남는 건 별로 없어요.

: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 그렇죠. 그래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이번에 정독도서관에서 주문이 와서 100만 원 정도 벌었어요. 다행히 라벨 작업은 요구하지 않았는데, 일주일 정도 그 일에만 매달려 있었죠. 역시 제일 좋은 건 자연 판매예요. 손님들이 와서 구경하고 사 가고, 팔린 건 다시 들여놓고. 그래야 동네 책방도 더 늘어날 거 아니에요?

: 제 주변에도 책을 읽고 싶지만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크게 광고하는 책들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골라서 보게 되고요.
: 광고 보고 사서 읽고 나서는 그게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보다는 ‘내가 읽었던 거니까 너도 한번 읽어 봐’ 하면서 권해주고 하잖아요. 그럼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책은 그냥 둬도 계속 팔리고, 어떤 책은 아무리 좋아도 1쇄도 안 팔리고요.

: 동네 서점이 살아야 사람들도 책을 늘 가까이 두고 자기 취향도 만들어가면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동네 서점을 하셔야 하겠는데요. 여기는 빚이 많아서 인수하라고는 못하겠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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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권의 책’으로 문지에서 지난 40년 동안 출간한 책 중에서 정영문의 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뽑으셨어요. 그리고 문지의 책은 아니지만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고르셨고요. 왜 이 책들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책방에 있는 책이 5만 권이 넘어요. 날마다 들어오는 새 책도 10종이 넘고요. 제가 책을 주문하는 방법부터 얘기하자면, 문지, 창비, 동녘, 실천문학 같은 데서 나오는 웬만한 인문학 책들은 다 주문해요. 또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책들 중에서 우리 책방 성격에 맞는 걸 주문하고요. 그리고 책방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책들도 어떻게든 사다 놓고요. 그렇게 주문받은 건 일부러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여기에 꽂아놓는 거죠. 그런 식으로 서가를 맞춰놓는데요, 그러면서도 책을 많이 못 읽어요 요즘은. 그래서 문지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을 때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으로 고른 거예요.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었군요. (웃음)
: 사실 올해 힘들게 읽은 책은 따로 있는데요, 그건 문지 책은 아니고요. 제가 뽑은 책은 모두 지난해에 읽은 거예요.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는 처음에는 읽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저랑 뜻이 딱 맞더라고요. 여기 ‘호보’라는 게 있잖아요. ‘hobo’라는 게 넝마주이 같은 건데, 일할 만큼만 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일을 안 하는 사람을 말하죠. 말하자면 자발적 가난뱅이 같은 거. 이걸 정확히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들어서 호보라고 썼나본데, 그런 삶이 남들이 볼 때는 사회가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필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쓰잖아요.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맞서서 살려고 하고요. 호보가 공원에 가서 벌레들이 기어가는 거 보면서 자기 삶을 반추하잖아요.

: 이 책은 작가가 창작지원금을 받아서 미국에 가서 쓴 일종의 체류기라고도 하는데요, 작가가 글쓰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안 하고, 그걸 책으로 묶어내는 것으로 호보와 같은 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죠. 이 책을 골라주셔서 이런 삶의 태도가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어서 저도 좋았어요. 『헤테로토피아』는 푸코의 다른 사유들과 연관이 있어서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와 구별되는, 현실에 있지만 마치 현실 바깥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공간을 의미하죠. 저는 이곳 풀무질같은 동네 서점이 이런 공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 왔어요.
: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이 안 계시면 부모님이 주무셨던 이불 속에 들어가본다든가, 다락방에 올라간다든가 했잖아요. 그렇게 아이들은 어둡고 음습한 데에 가잖아요. 숨으려고 하고. 커서도 사람들에게 그런 공간이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게 헤테로토피아라고 생각해요. ‘현실 속의 유토피아’라는 거죠. 유토피아라는 게 저 땅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유토피아가 헤테로토피아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했던 호보 같은 사람에게는 공원도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고, 이런 작은 책방도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또 헤테로토피아는 내가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고, 남들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했을 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장소잖아요. 소박하면서도 자기가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곳. 문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강제로 만들잖아요. 학교에 모아놓고 여기서 행복을 느끼라고 하고, 감옥을 만들어놓고 좋은 사람으로 교정시켜준다고 하고. 그런 억압적 방식의 헤테로토피아가 국가 폭력인 거죠. 그런 걸 깨달았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헤테로토피아를 찾을 수 있는 거란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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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책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어요. 문지에서 나온 책이 아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아니, 꼭 그렇지 않고요. 제가 문지에서 인터뷰 의뢰를 받을 때 문지 책만 골라야 하냐고 여쭤봤더니 문지 책하고 다른 출판사 책을 같이 골라도 괜찮다고 답해주셨어요. 사실은 책이라는 게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안 좋고, 이렇게 따지는 게 참 웃긴 일이잖아요. 어머니한테 “엄마는 왜 형보다 나를 더 안 챙겨주는 거야?” 그러면 어머니는 손가락을 내밀면서 “깨물어 봐. 여기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 길고 짧은 건 있어도.” 이렇게 답하시죠. 똑같은 거예요. 아까 제가 이곳에 책이 5만 권 정도 있다고 그랬는데요. 이 책들이 저한테는 다 중요하죠. 또 ‘책의 감동은 읽은 시간에 비례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토지』 20권까지 읽고 나서 “이거 재미없는 책이야!” 그러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요? 그러니까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정이 가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얘기한 두 권처럼 『우리들의 하느님』도 의미가 있는 책이지 뭐가 더 가치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은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쓰신 글인데, 돌아가신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엮어서 낸 거죠. 이 책에 따르면 교회에 목사가 하나가 아니라, 그 교회에 다니는 모두가 목사예요. 6~70년대에는 교회에 가서 목사의 설교만 듣는 게 아니라 땔감이나 보리쌀도 갖다 주고, 김장도 해주고 그랬어요. 교회가 이웃공동체였다는 거죠. 이 책 제목 때문에 읽기 전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기 하느님 이야기는 5분의 1도 채 안 돼요.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도 요즘 교회에서와는 다르게 바로 네 옆에 있는 이웃이 하느님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이웃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쓰이는 이름이고요. 실제로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 책 인세가 10억이 넘게 통장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이 몰랐다잖아요. 늘 동네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이랑 더불어 지내고, 항상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에 반찬은 한두 개로 먹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힘든 작가들을 위해서 익명으로 뭉텅이 돈을 보낸 적은 숱하게 많데요. 인세가 생기면 북한 아이들이 밥 먹을 수 있게 하고, 돈이 좀 남으면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이 살 수 있게 돕는 데 쓰라고 하셨고요. 그런 선생님의 뜻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에요.

: 책을 세 권이나 꼽으셔서 대화가 길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서로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가 일맥상통하네요.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삶이랄까요?
: 좀 편협되죠? (웃음)

: 분명한 거죠. (웃음) 서점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니까 좋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 읽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현실은 여전히 쓸쓸하네요. 서점을 오래 꾸려오셨기 때문에 선생님의 삶 속에는 책이 말 그대로 녹아들어 있을 텐데요, 그런 입장에서 책의 의미나 가치를 어떻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는 동안(인터뷰는 ‘풀무질’에서 진행되었다) 한 명도 안 왔어요. 이야기 시작할 때 오셨던 그분도 아까 나가셔서. (웃음) 사실 저는 책방 하는 일꾼이지만 사람들이 책을 꼭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라고 하면 활자로 적힌 것만 얘기하잖아요. 근데 저는 플라톤이 말한, 사람들이 모사하는 자연물도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이 먼저 되어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더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속에 있더라도 자기 자신과 얘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죠. 요즘 SNS를 통해서 말을 많이 하지만 사람들 간에 대화는 더 안 되잖아요. 생각도 말도 그냥 짧게 짧게 하다 보니. 옛날에 손편지를 써서 주고받을 때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어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생각하는 힘은 책을 통해서 기를 수 있는데, 고독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할 때에도 생기는 것 같아요.
고병권 씨가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내셨는데요,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따라쟁이이거나, 습관대로 산다’고요. 니체의 예를 들면서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니체는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고 강조하죠. 니체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네 이웃들은 사랑하게 된다는 거예요. 끼리끼리. 그런데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다보면 먼 이웃을 해치게 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라크 아이들을 죽일 수 있는 군대를 보내고 돈을 보태기도 하게 되고요. 물론 예수가 말한 ‘네 이웃’이라는 게 가까운 거리만 가리킨 건 아닐 거예요. 니체는 그렇게 딴지를 거는 것이죠. 무작정 다수를 따르지 않고 옳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이 발휘될 때야 말로 생각하는 것이고 철학이 생기는 것이라고 그 책에서는 말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결국에는 책을 읽어야 이런 것도 알 수 있는 거네요. (웃음) 스스로 알기는 힘들어요,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이 맑아야 한다는 거예요. 안경이 뿌여면 다 뿌옇게 보이잖아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풀무질’에 온 손님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마저도 딱히 살 책이 있어서 온 건 아닌 듯이 책방을 한 바퀴 가볍게 훑고는 다시 오겠다며 인사를 하고 빈손으로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풀무질’에 자주 들르는 단골 중 하나였다. 인터뷰 때문에 귀한 단골손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내드려서 어쩌냐고 했더니 “또 오실 텐데요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책방이 책을 팔기 위해서만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아니지 않나요’ 하고 내게 되묻는 것 같았다.


은종복 프로필2은종복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1993년부터 책방지기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등을 썼다.

은종복이 고른 문지의 책
『어떤 작위의 세계』(정영문)
『헤테로토피아』(미셸 푸코 지음, 이상길 옮김)


정영문 지음
카테고리 장편소설 | 출간일 2011년 9월 1일
사양 변형판 144x216 · 294쪽 | 가격 11,000원 | ISBN 9788932022253
수상/추천 한무숙문학상 외 2건
미셸 푸코 지음 | 이상길 옮김
카테고리 교양인문서 | 출간일 2014년 6월 9일
사양 변형판 126x200 · 142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32026244

문지, 단 한 권의 책

각 분야 명사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책에 얽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학과지성사의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인터뷰] 당신의 책을 만나다
뮤지션 김목인×문학평론가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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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회의주의 잡지를 읽는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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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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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은 서로를 열어둔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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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체질이 상처인 시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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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상의 작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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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룸 공동대표 김형진
[인터뷰] 사람은 귀로 읽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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