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힘센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학평론가 ‧ 번역가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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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리 김나영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는 한 대학병원의 병실에서였다. 선생님이 입원하신 병원이 내가 살던 동네에 있기도 했기에, 마치 마실 가는 마음으로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러 갔었다. 선생님이 치료를 받는 동안 선생님이 없는 병실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그때 눈에 들어왔던 건, 침대 주위에 흩어져 쌓여 있던 여러 권의 책이었다. 만화책이 많았고, 시집과 소설책도 있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본 건, 선생님의 자리였다. 침대 위에도, 침대 옆 의자에도 선생님은 없고 있는 건 구겨진 이불과 창밖에서 비춰 들어오던 햇살뿐이었지만, 그 주위에 늘어 놓인 갖가지 책들이 선생님의 부재를 어떤 현존처럼 감각하게 했다. 마치 조약돌로 울타리를 만들면 조약돌 각각이 아니라 그것이 그려내는 가운데의 그림을 보게 되는 것처럼. 선생님은 거기 없었지만 나는 선생님이 없는 그곳에서 선생님을 보았다.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 장소로 가는 길에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가는 모든 길은 그렇게 안도가 되는 것일까.

 

김나영(이하 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얼굴은 굉장히 좋아보이셔요. (웃음)
황현산(이하 황): 겉만 그래요. (웃음) 10월 초에 의사가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의사들은 완치란 말은 안 하고, 이런 병에는 완치가 없나 봐요. 일단 항암주사 맞지 않아도 되니까 지속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고요. 또 예전에 갖고 있던 활기도 돌아오고 있는데, 여전히 예전의 생활 리듬은 회복이 안 돼서 읽고 쓰는 것은 거의 전에 하던 일의 10분의 1도 못 하고 있어요. 차차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하루 스케줄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황: 예전에는 새벽 5시에 잤는데 요즘엔 새벽 5시에 일어납니다. 그 시간부터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잘 안 돼요. 뭘 하려고 하면 금방 피곤해지고. 그러니까 오전은 내내 잡일을 하죠.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컴퓨터에 쌓인 파일들이나 다운받아 둔 영화도 좀 정리하고. 트위터에 들어가서 쓸데없는 소리도 쓰고요. (웃음) 보통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오후에는 책을 좀 읽고 글도 좀 쓰고 그러죠.

: 외부 스케줄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황: 아프고 나니까 만날 사람이 있어도 예전만큼 활발하게는 못 보는 편이에요. 요즘 강연 요청이나 원고 청탁이 좀 있는데 그것도 다 수용하기가 어렵고 그렇죠.

: 삶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게 되신 점이 있나요?
황: 이렇게 아프면 보통 인생의 새로운 깨달음 같은 걸 얻고 세계가 넓어지거나 한다는데, 내 경우에는 별 변화가 없어요. (웃음) 다만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은 절박하게 느끼게 되죠. 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우리 선생님, 강성욱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내내 그 밑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현실주의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보들레르 공부를 해왔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까 선생님이 못했던 일들을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보들레르부터 초현실주의까지의 중요한 문서들이 있는데 그것을 번역하고 주석 다는 일들. 다는 못 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해야 되는데. 보들레르의 『악의 꽃』부터 시작해서, 말라르메 시는 번역했으니까 말라르메 산문을 번역하고 주석도 달고. 또 랭보 전집하고 로트레아몽 전집도 번역해야 되고. 일단 여기까지 하면 일이 좀 마무리될 것 같고요, 시간이 좀 남으면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선언』은 번역했습니다만, 초현실주의에 관련한 중요한 논문들도 번역하고 주석을 달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초현실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까 말한 보들레르와 상징주의에 관한 책은, 지금 문단이나 불문학계나 보면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실력 있는 사람들이야 많겠지만, 그렇게 의욕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어서.

: 말씀하신 대로 해주시면 독자들이나 학생들한테는 정말 행복한 일일 텐데요. 보통 심하게 아프고 나면 건강이 최고야. 일이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는데, 그동안 앞으로의 번역 계획을 세우셨다고 하니까 존경심이 막…… (웃음)
황: 무슨 존경을. 늘 하던 일이니까. (웃음)

: 선생님께는 번역가로서의 나가 있고 한국문학을 읽고 평론하는 나가 있을 텐데요, 둘 중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면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 번역하는 나하고 한국문학, 특히 시를 비평하고 있는 나하고 실은 같은 나인 것 같아요. 번역을 하는 동안에 시에 관한 교양이라든지 전문 지식을 익히면서 시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에 대한 의식이 생겼고, 그게 결국 비평을 할 수 있는 에너지, 원동력 같은 것이 됐어요. 또 한국 시를 읽고 비평하는 동안에 그 과정을 통해서 언어에 대한 어떤 깊이를 체득하고 언어를 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언어에 대한 기교를 익혔고, 그것이 그대로 번역할 때의 자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 일들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거 같고, 번역하는 나와 비평하는 나가 결국은 하나로 되어 있어요. 번역가로서 저를 볼 때 다른 번역가들에 비해 한 가지 내세울 만한 것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번역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국어로 쓰인, 한국어의 정수에 해당하는 글을 나만큼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한 사람은 드물 것 같아요.

2

: 앞서 그런 질문을 드렸던 이유는, 외국어로 쓰인 시와 한국어로 쓰인 시를 읽을 때 각각의 입장이랄까, 읽기 태도 같은 게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요.
황: 제가 학교 다닐 때 국문과 수업을 가끔 들었는데, 소설을 가르치시던 정한숙 선생이 이렇게 하셨죠. 그 수업에 불문과 학생이 저 외에 한 명 정도 더 있고, 영문과 학생들도 좀 있고 그랬는데. 이 외국문학과 학생들을 선생님이 괴롭힙니다. (웃음) “‘아침에 창문으로 쥐꼬리만 하게 들어온 햇살’ 이런 걸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어?” 뭐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외국문학과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말이 안 되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웃음) 불어나 독어로 구태여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 문화적 배경이라든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황: 그렇죠. 보통 시에서 특히, 현대시라고 그러면 외국어로 번역이 가능한 시가 됩니다. 어느 나라 말이나 시라고 하는 것은 운하고 율을 가지고 만든단 말이에요. 어떤 말이 운이 맞고 율이 맞는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우연이죠. 그런데 그게 언어 국경을 넘어서면 전혀 안 되죠. 그러니까 운하고 율을 극복하고 시가 되는 시, 이게 현대시라고 볼 수가 있고 그렇게 언어 국경을 넘어가는 시가 현대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시와 시가 서로 통하는 만국 공통 문법이 있습니다. 그 만국 공통 문법을 체득하면 외국어나 한국어나 거의 같아지죠. 제가 모더니스트가 된 것도 실제는 언어 국경을 넘어서는 시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까 그런 것 같고요. 모더니스트로서는 어느 나라 시든지 차별 없이 읽고 거기에 대한 감성을 가질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마치 자기 지침처럼 번역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혹은 비평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이런 것이 특별히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황: 저는 번역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직역을 하라고 하거든요. 없는 소리 덧붙이지 말고, 또 괜히 왜곡시키지 말고. 그러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요. 직역하려니까 못 하겠다, 직역은 너무 어렵다라는 반응이 하나고, 또 하나는 직역을 한다고 전혀 말도 안 되는 글을 써놓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직역이라고 하지 않고 ‘써져 있는 대로 번역해라’ 이렇게 말합니다. (웃음)

: 직역이라는 말을 번역해주시는 거네요. (웃음)
황: 써져 있는 대로 번역하라. (웃음) 대개 사람들은 성장을 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시에 대한 개념, 또는 문학에 대한 개념 이런 것을 체득하는데, 개인개인에게 연령 대마다 그 연령 대의 주관성이 있습니다. 시란 무엇이라든지, 뭐가 아름답다든지 하는 주관성 말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옛날에 가지고 있던 주관성이 참 유치하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대체로 의역이라고 하는 게 그 유치함을 반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자기의 유치함을 덧붙여놓고 번역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결국은 그걸 벗어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있는 그대로의 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 이것을 파악하라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또 내가 번역할 때도 그렇게 하려고 애썼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도 말해요. ‘번역할 때는 번역자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카리스마가 문장이 어색하게 보여도 또 어색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 힘이다. 이게 번역자에게 매우 중요한 힘이다’라고요.

: 비평가로서도 마찬가지일까요?
황: 마찬가지입니다. 번역을 정확하게 했거나, 어떤 시구나 말에 대해서 비평적인 이해에 딱 도달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맞을 때, ‘아 이건 정말 맞는 거야’라고 하는 자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헛소리 안 한 거다’ 하는 그런 자각인데요. 보통 기계 같은 것을 풀었다가 다시 맞출 때 딱 맞으면 딸그락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번역할 때나 비평적 해석을 할 때 이런 딸그락 소리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 딸그락 소리를 듣는 거,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서 이것은 진정하다, 내가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핵심에 도달했다고 하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할수록 일종의 내공 같은 것도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내가 딸그락 소리를 들으면 그런 건 들고 밖에 나가도 대개는 사람들한테 승인을 받죠. 그러니까 자기가 먼저 승인을 해라. (웃음)

: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데요. 마감에 쫓기다 보면 자기 승인이 안 된 글도 그냥 내보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렇게 악순환이 되더라고요.
황: 제가 늘 실천을 못하는 건데,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기필을 빨리 하라 그래요. 시작을 빨리하라. 글을 쓰기 전까지 생각 못했던 것이 글을 쓰다 보면 그 긴장한 가운데에서 생각이 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정말 게으릅니다. 늦게 기필을 해서 겨우 열이 오르면, ‘아, 한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이 아니라 이틀만이라도 더 있으면 이 생각을 제대로 쓸 텐데’ 하죠. (웃음) 늘 그런 식인데, 기필을 빨리하고 빨리 긴장하는 게 버릇이 돼야죠. 저 같은 경우는 항상 마감 날 지나서 기필을 하니까, 생각을 해놓고도 제대로 못 쓰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 최근에 내신 시화집(우물에서 하늘 보기)에도 보면 그런 고백들이 많던데, ‘예전에 쓴 글에서 미처 못한 말을 여기에 한다이런 문장들이요. (웃음)
황: 글이라고 하는 게, 항상 글이 글을 물고 나오잖아요. 생각이 여기 있는데도 그 생각으로 못 가고. 글이 글을 물고도 쫓기는 경우도 많죠.

: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웃음) 그럼 이 인터뷰가 문학과지성사 40주년 기념 기획인데요, 40세를 맞은 문지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황: ‘문학과지성사’라고 하는 출판사가 설립됐다는 것이 한국문학으로서는 큰 축복이죠. 그런데 지금도 밖에 나가면 문지를 욕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지가 정말로 어떤 차별이 되는 일을 꾸준하게 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 차별이 되는 일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대개 문지 욕을 하지요. 저는 ‘문학과지성사’가 없었더라면, 어떤 깊은 늪에서 한국문학이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문지’ 하면 책등의 빨간 띠와 시선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선생님께는 어떤 게 바로 떠오르시는지? 혹은 문지에 관한 개인적인 일화 같은 게 있다면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황: 우선 제 첫 책과 두번째 책이 문지에서 나왔기에 개인적인 고마움이 있습니다. 『얼굴 없는 희망』이나 『말과 시간의 깊이』 같은 책은 문지가 아니면 출판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쓴 글 중에 많은 글들이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을 대상으로 담아서 쓴 글들이니까 아마 문지가 없었더라면 내가 일할 터전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지금은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만, 문지 편집위원이었던 누군가가 제게 문지와 창비 어느 쪽에서도 배척받지 않는 비평가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내가 별 색깔이 없어서 그렇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늘 문지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관계들이 먼저 생각나요. 또 그 빨간 띠 때문에 책등에서 문지 책이 구별이 되잖아요. 저는 그 글자가 조금 단순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요. 이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문지가 한국문학에서 가장 모던한 책들을 내는 출판사인데, 디자인은 모던한 것 같지 않다는 거죠. (웃음) 저는 문지의 디자인이 좀 모던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

: 지금까지 문지에서 나온 책 중에서 ‘단 한 권의 책’으로,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日記를 고르셨어요. 최승자는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최승자의 여러 시집 가운데 이 시집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황: 최승자 시집, 그중에서도 『즐거운 日記』에 수록된 시들은 한국 여성주의 문학에 있어서 정말 획기적인 단계를 나타낸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한국에서 나온, 여자들이 쓴 시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성적 서정성이라고 이름 붙은 시들. 실제로는 그게 여성적인 게 아닌데, 그렇게 불리는 부류의 시가 있고, 또 하나는 가짜 남성성의 시. 이렇게 두 가지였는데요. 실제로 여자가 자기 현실을 여자의 목소리로, 이렇게 어떤 장식도 없이 곧바로 쏘아낸 것, 발사한 언어는 최승자 시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특히 특징적으로 나타난 시집이 『즐거운 日記』입니다. 한국 현대시의 많은 부분, 특히 여성시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최승자로부터 빚진 것이 굉장히 많다고 봅니다. 최승자가 없었더라도 현재 여성시와 같은,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시가 없진 않았겠지만,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중적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그런 힘을 한꺼번에 증폭시킨 시집이 『즐거운 日記』라고 생각합니다.

: 시집 뒤표지에 최승자 시인이 쓴 오늘날에도 김소월이나 한용운처럼 시를 쓴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에게 그게 재미있고 의미가 있을까이런 문장이 있고, 시집 제목도 즐거운 일기라고 쓰고 있지만 시집에 실린 건 그다지 즐거운 시대의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황: 지극히 비극적인 이야기들이죠.

: 말하자면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놨다고도 하겠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시집에 실린 시들을 묶어내는 즐거운 일기라는 이 말이 의미하는 건 무엇인가요?
황: 이건 80년대 초에 나온 시집이니까요. 유신시대가 끝나고 자유와 해방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좌절된 때가 바로 80년대 초죠. 그때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그런 정신적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감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 그 절망감의 언어를 새로 만들어내고 있죠.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최승자의 시집 『즐거운 日記』 읽으면 그때의 절망감을 지극히 생생하게 다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즐거운 日記」라는 바로 그 시에서도 직접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만, 이건 지극히 아이러니컬한 말이죠. 즐겁다고 하는 말은 실제로는 무사하다고, 무사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 하는데 이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무사했으니까 즐겁고, 바로 그 무사한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일인가를 그 아이러니 뒤에다가 감춰놓고 있는 것이죠.

: 그 시에 나오는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나, 이성복 시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구절도 생각나네요. 선생님께서 시에서 중요하게 보시는 게 기승전결의 과 같은 부분이라고 말씀하신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요. ‘에서 새로운 가능성, 희망 같은 게 발생하는 걸 본다고 하셨는데요, 최승자의 시집에서 의 역할을 하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황: 제가 옛날에 했던 그 말을 약간 수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으로 말하면, 기승전결에서 ‘전’이 제일 중요한 건 사실인데, 글을 써야 할 모든 이유가 다 그 ‘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이 없다면 그 말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게 되죠. 그 말을 해야 할 필요도 전혀 없다는 거죠. 주어진 현실을 이야기하는 게 ‘기, 승’이라면 그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재인식할 것이고, 또 어떻게 그 현실을 다시 이용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전’에 있지요. 그런데 어떤 불행한 상황 속에서는 ‘전’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허위일 경우가 많죠. ‘전’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사실 최승자 시에서도 ‘전’이 불가능합니다. 이 절망의 시대 속에서 ‘전’을 이룰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최승자의 시에 ‘전’이 있습니다. 극도의 어떤 모순을 굉장히 힘찬 아이러니로 극복을 해서 표현하는, 바로 그 부분에서 ‘전’이 일어나죠. 이 비극적인 상태, 이 절망적인 상태를 변화시킬 순 없어도 적어도 이것이 있다는 것, 이것을 향해서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하게 모순과 아이러니를 통해 전달을 하고 있어요. 최승자 시에서는 그 부분이 바로 ‘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말씀을 듣다 보니 요즘 시대와 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다르게 시는 짧아도 읽기 어려운 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시 읽기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황: 시도 말인데, 그러니 소통이 되어야 되는데, 시가 소통이 안 된다고 불평들을 하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상당히 여러 가지 것을 참조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농담들을 잘한단 말이에요. 저 능력이면 시를 읽고도 남을 텐데, 이런 생각을 저는 가끔 합니다. 시가 소통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할 때 이 말이 자주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건데요, 가령 누가 길을 묻고 내가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 거기서는 길의 내용만 있으면 소통이 되죠. 반면에 소통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의사들도 진단을 하고 지금까지 못 본 병이 있으면 처방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병 자체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죠.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사람마다 느끼고 있고 문제로 삼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뭐라고 말을 못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소통은 참 어려워요. 실제로 우리가 시랑 소통을 해야 된다, 그건 소통에 돼야 된다. 누구나 알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소통되는 것을 소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통 안 되던 것들을 소통되게 하는 것이 시의 소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시가 사람들한테 잘 읽히기 위해서, 또 시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안에 소통해야 될 것을 포기하지 마라’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그 부분을 전부 포기해버리니까, 시가 바로 그 부분에서 악을 쓰고 있는데 그 악을 안 들으려고 하다 보니까……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한 소통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최근에 내신 시화집(우물에서 하늘 보기)이 신문에 연재됐던 칼럼 모음집이어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기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자주 다루셨고, 특히나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번 언급을 하셨어요. 우리 사회의 내면화된, 일상화된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우리가 그 폭력에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내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냐는 말씀도 하셨고요. 이처럼 우리 삶 속에서 전에 없던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내주어서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게 문학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쓰셨는데요,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만 번역이 아니라 문학이 하는 일도 일종의 번역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게 글로 먼저 보여주셨지만, 문학이 사회적으로나 어떤 공동의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런 게 아니더라도 문학의 역할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황: 80년대 6·8항쟁 이후에 한국사회가 상당히 자유를 확보했고, 그때부터 한국문학이 거대담론을 개선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이때 거대담론의 측면에서 일부 비평가들이 굉장히 불평을 했어요.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 됐고, 그래서 거대한 문학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그랬었지요. 저는 그런 의견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찌질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문제들을 이야기할 곳은 많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문제들이 실제로는 삶을 찌질하게 만들어놓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찌질한 것을 포함해낼 수 있는 거, 찌질한 것을 하나라도 더 포함할 수 있는 어떤 말들의 체계, 이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칼럼 같은 데에서 주장했지만, 간혹 ‘누가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겠느냐’라든가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말하는 경우를 들을 수 있는데, 사람이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죠. 그리고 그 사정은 실제로는 한 사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건 모든 사람의 사정인데 대부분은 그것을 눌러놓고 있는 거예요. 그 부분들이 살아날 수 있는, 그것을 포함하고 그것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 말의 체계와 사상의 체계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자료를 문학이 만들었지요. 그 일을 하는 것의 최초의 이름을 문학이라고 지었기 때문에 문학은 계속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글에서, 제 생각엔 여기에서 예술을 문학이라고 바꿔 말해도 될 것 같은데,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고 쓰셨어요. 흔히 우리가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고 묘미라고 이야기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사실은 예술이 세상을 낯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들을 위해서 예술이 있는 거라고 하셨지요. 개인적으로 메모를 해놓고 오래 생각을 해보게 하는 문장이었어요.
황: 고맙습니다.

4

: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직접 겪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지고 예민하게 감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황: 한국 사람들이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또 한국은 경쟁이 심한 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대부분 지쳐 있습니다. 지쳐 있는 것, 이것이 한국에서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것이든 늘 귀찮게 여기고, 또 말을 과격하게 해버리면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각도 하게 되고요. 일을 좀 적게 하고 지치지 않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고 그런 건데. 이것을 사람들이 각자 자학을 하고 그러면 피곤하기만 합니다. 다른 것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고 생각해야 하고요, 결국은 누가, 혹은 사회가 해결을 안 해주면 자기 개인들이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든 하면서 그런 자각의 순간을 어떻게든 누리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래야 그다음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하고 서로 대화도 나누게 되고요. 저는 사람들한테 말을 잘 거는 편이에요.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이러지 않습니다. 좀 철이 덜 들어 보이겠지만. (웃음)

: 말 그대로 말이 쏟아지는 SNS에서와는 달리 어디에서나 침묵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네요. 책도 많이 안 읽고……
황: 계속해서 책을 읽어야 되는데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책 읽기가 굉장히 힘들어져요. 읽는 책의 대개가 나보다 젊은 사람이 쓴 것인데, 플라톤 책도 그가 나보다 젊었을 때 썼죠. (웃음) 젊은 애가 뭘 알겠어,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들게 됩니다. 그래도 저보다 역시 더 잘 알죠. 더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 나이의 힘이 떨어지니까, 젊은 사람이 뭘 알겠어, 이렇게 된단 말이죠. 이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게 버릇이고 습관이에요. 게으르지 않으려고 정말 애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서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소비하는 사회입니다. 안 되면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는 여기서는 모든 것이 소비되죠. 일단 소비품이 되지 않으려면 거침없이 내 자신을 갱신하고 새로운 힘을 얻고 이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뭘 안 해줄수록 자기 책임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거니까. 알아서 열심히. 누가 너희들 각자 알아서 열심히 하라고 시키면 말이 안 되지만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을 해야죠.

: ‘너 요즘 무슨 책 읽니이런 질문을 하면 괜히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웃음)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황: 제가 80년대에 그런 말을 했어요. “조금 있으면 요리를 잘하는 것이 예능이 될 것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 그랬는데, 요새 정말 그렇게 됐잖아요. (웃음) 최근에는 「마션」을 이야기하다가, 화성인이라고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왜 ‘마션’이라고 했을까, 조금 더 있으면 ‘마션’이라는 말보다 화성인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는 더 고급하게 들릴 것이라는 말도 했었는데요. 조금 더 있으면 책 읽는 것이 유행이 되고, 명품 찾듯이 책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웃음) 사람들한테 책 읽으라고 해서는 책 안 읽습니다. 사람들은 몹시 지쳐 있는데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 옆에서 책 읽는 사람의 태도, ‘쟤 좀 멋있어’ 하게 하는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하거든요.

: 역시 스스로를 갱신해야지 주변을 바꿀 수 있어요. (웃음)
황: 누가 누구 보고 “저 사람 섹시한테 왜 섹시한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 사람 책 읽어서 그래” 이렇게 말하게 하지요. (웃음)

: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저부터가 자기반성이 부족한 상태로 질문만 많이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쁘신 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인터뷰 이후에 강연을 하셔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된 일이 많은가요?
황: 우선은 역시 번역입니다.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도 『현대시학』에 연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금년 겨울이나 내년 봄에 다 끝날 거예요. 그 번역이 끝나면, 랭보 번역은 다 해놨긴 한데 그걸 다듬는 일을 하고, 또 보들레르의 『악의 꽃』 번역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다음 행보를 기다릴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황: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에도 선생님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얼굴 좀 보자는 친구의 전화, 다음 일정을 묻는 사람들의 전화…… 그 모든 연락들을 선생님은 정성스럽게 받으셨고, 그러느라 끊어진 대화 또한 정성스럽게 다시 이어나가셨다. 고백하건대 사소하지만 내게는 선생님의 그런 태도밖에는 아무것도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간단한 일이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두서없이 늘어놓은 질문들마다에 답을 달아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어떤 곡조처럼 들리기도 했다. 게다가 그것은 음성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문제인 것 같았다. 온 마음을 쏟아서, 그러니까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에는 그렇게 의미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의미가 되는 힘이 깃드나보다. 그것은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간에 조건 없이, 무리 없이 통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황현산 프로필

황현산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로,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지은 책으로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잘 표현된 불행』 『말과 시간의 깊이』 『얼굴 없는 희망』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파스칼 피아의 『아폴리네르』,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등이 있다.

황현산이 고른 문지의 책
『즐거운 日記』(최승자)


최승자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1984년 12월 20일
사양 신46판 176x248mm · 125쪽 | 가격 8,000원 | ISBN 9788932002187

문지, 단 한 권의 책

각 분야 명사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책에 얽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학과지성사의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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