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무중력 사회에 띄워 보낸 책

유자살롱 공동대표 아키

10 인터뷰 · 정리 김목인


우편으로 책 한 권을 받았다. 『유유자적 피플: 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 표지에는 눈을 감으면 떠오를 듯한 이상적인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두 사람이 킥 판을 붙들고 천천히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세상의 소리들이 잠시 끊긴 듯한 고요. 표지를 들추니 역시 파란 바탕에 저자 아키(이충한)가 쓴 짧은 인사 글이 있었다. “유유자적 부족의 일원이라고 (맘대로) 생각하며 이 책을 보냅니다.”

 

김목인(이하 김): 왜 저를 유유자적 부족의 일원으로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키(이하 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만의 템포를 갖고 있는 분이라고 느꼈어요. 이전에 무중력 상태를 심하게 겪었든 그렇지 않았든, 저희는 현재 자기 템포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유유자적 피플’이라 부르거든요.

: 별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걸요. (웃음) 유유자적 피플: 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에는 자세히 쓰셨지만, 잘 모르시는 독자분들을 위해 무중력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아: 서로를 긍정적으로 당겨주는 힘을 ‘중력’으로 표현해본 거예요.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우주 공간에서는 중력이 희박해서 아주 작은 충격도 큰 위험으로 다가오잖아요. 저는 우리 사회가 그런 무중력 상태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중력 사회’라고 표현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무중력 피플’이라고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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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로 계신 유자살롱을 그런 무중력 피플들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소개해도 될까요?
아: 네. 30대 중반에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을 만났는데, 저의 우울했던 과거가 겹쳐졌어요.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우리 탓이 아니라 무중력 사회의 엄청난 압박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죠. 유자살롱은 잠시 쉬며 자기 템포를 찾아가는 공간이고 ‘유자’도 유유자적이란 뜻이에요.

: 책 속에서 아이들이 말한 구절이 재밌었어요. “그 책 꼭 써야만 된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도 책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된다고……아키 씨뿐 아니라 유자살롱 전체가 이 책을 열망했었나 보죠?
아: 책이라는 게 저희처럼 마음이 여리거나 주체가 약한 사람들은 쓰기 힘들거든요. A4 두세 장은 노력하면 쓸 수 있어도 몇 백 쪽짜리 책은 다르죠. 페이스북의 글처럼 계속 단절됐다 접속됐다 하는 삶을 사니까요. ‘나 같은 사람도 하나의 완결된 생각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시작했는데, 유자살롱까지 운영하며 쓰려니 무척 힘들더라고요. 70~80퍼센트쯤 쓰고 나니 ‘내가 못한 건 다음 사람이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며 행복해졌어요. 무중력 상태를 겪은 사람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과중력에 너무 눌려 있었나 봐요.

: 아이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 워낙 좋다, 나쁘다 말하는 편이 아니에요. 다만 한 아이가 며칠 만에 다 읽었다며, 그런 건 처음이라 그러더라고요. 이 친구들에게 어쩌면 책이라는 세계가 꽤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완독 못한 아이들도 꽤 있고요. (웃음)

6: 유자살롱은 밴드 합주라던가 주로 친근한 매개체로 음악을 활용하시잖아요. 책이나 독서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아: 음악이 심장에 가깝다면 책은 좀더 머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물론 ‘유유자적’ 부족 안에서 살아가는데 음악은 굉장히 좋은 도구에요. 하지만 결국 부족 밖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곧 계속 살아야 할 곳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 것이나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느껴요. 물론 요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많지만, 저희가 얘기하는 무중력 사회 이전의 세상을 상정하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이들이 A4 반쪽이 넘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고 삶 자체가 파편화되어 있는데 ‘너의 주체를 가지고 이 책에 다가가 봐’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어렵고 힘든 문제죠.

: ‘단 한 권의 책으로 피로사회를 고르셨어요. 유유자적 피플을 쓰는 데도 도움을 얻으셨나요?
아: 사실 『피로사회』는 아주 최근에 봤어요. 많은 위안을 받았죠. ‘아 내가 헛소리를 한 건 아니구나’ 싶었거든요. 이 책을 고른 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어떤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그 틀이 100퍼센트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생각에 유용한 단초들을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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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지 않다는 건 어떤 부분이었죠?
아: 글쎄요. 가령 이 책에서는 ‘~해서는 안 된다’가 지배적이었던 강압적 노동의 시대와 ‘넌 잘할 수 있어’가 지배적인 오늘날의 자율적 노동의 시대를 비교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사회가 단계적으로 변화할 때의 얘기죠. 한국은 그 두 가지가 계속 모순적으로 붙어 공존하는 나라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요즘 ‘노답이다’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 ‘답이 없다는 의미의 노답말씀이시죠?
아: 네, ‘우리 부장님 노답이야’라고 할 때 그건 사실 ‘부장님의 리더십이 틀렸어’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오답’이라고 했겠죠. 노답은 ‘오지선다(五枝選多)’ 중에 답이 아예 안 들어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이야긴가 하면, 안 써도 틀리고 써도 틀린다는 거예요.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건 안 돼.’ 이게 우리의 현실인 거죠. (웃음) 이렇게 얘기할 때야 ‘하하하’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게 정말 나한테 닥쳐 엄청난 모멸감을 주며 생업의 기반을 흔들 때는 심각한 거죠.

: 어디로 끌려가야 할지 모르는 복잡한 힘들에 뒤엉켜 있는 거군요.
아: 네.『피로사회』에서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자기 착취’라고 표현하고 있잖아요. ‘아, 나는 이거 하고 싶어’라는 긍정적인 중력 없이 떠미는 척력과 지나친 과중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거죠. 요즘 평범한 사람들을 봐도 그게 보여요. 지나친 자기 긍정과 부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100퍼센트 전능한 자신을 향해 가다 그러지 못하면 바로 0퍼센트로 떨어져 우울해하고요. 사회 시스템도 0퍼센트처럼 느끼게 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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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중력의 개념이 실감 나요. 인력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아: 그렇죠. 인력. 저는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당겨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인력보다는 척력을 이용해 뭘 하는 경우가 더 많죠. ‘와 이거 되게 좋아 보여. 해봐야지’ 하며 일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사치가 되어버린 거예요. ‘너 이거 해야지!’라는 척력에 의해 여기저기 등 떠밀려 나아가는 거죠.

: 새로운 세대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아키는 저희 세대와는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어떠세요? 그 세대에게 좀더 많은 중력이 필요한 걸까요? 혹시 우리가 무중력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아: 굉장히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책을 예로 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책을 읽는 주체가 형성되어 있는 분들은 이북(e-book)을 봐도 돼요. 그때의 이북이란 ‘편리한 책’이니까요. 하지만 주체를 형성해가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북이 그냥 웹인 거예요. 긴 분량의 웹. 그러니 이전 세대와 기준이 같을 수는 없죠. 전 좀 보수적인 편인데, 기본적인 비타민이 부족한 사람에게 비타민을 공급해주듯 청소년들에게 책과 음반의 중력을 더 가까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전’이 그렇잖아요. 고리타분하게 들리지만 생각해보면 정당성, 우월성, 잘한다, 못한다,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가치죠. 다만 책을 권할 때 ‘수천 년 인류 문명의 보고(寶庫)니 읽어야 해!’ 그런 척력 말고 책이 지닌 매력들, 즉 인력을 통해 소개했으면 좋겠어요.

: 아키 씨가 청소년기에 읽으셨던 책들이 궁금하네요.
아: 열아홉 살 때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이 떠오르네요. 굉장히 지적인 허영심이 있었구나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지적 허영 맞고요. (웃음) 그런 식의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세상이 일직선이 아니고 굉장히 일그러져 있고 단절적이라는 데 꽤 공감이 갔어요. 많은 분들처럼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도 떠오르고요. 어떤 친구가 저보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와타나베)과 약간 비슷하다 그래서 읽었는데, 상업적인 작품을 읽는다고 선배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그 책에서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의 연인 ‘나오코’를 보며 단순히 외로움이라고 볼 수는 없는, 어떤 사회적인 충격과 내면의 어려움이 엮인 사람들이 저기에도 있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90년대 중반을 살고 있던 제가 일본의 70년대를 살았던 ‘나오코’라는 주인공에게서 같은 부족의 느낌을 받은 거죠. 이제 2010년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서 같은 부족의 느낌을 받고 있는 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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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요유유자적 피플출간 뒤 무중력 사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거나 그런 변화들이 있었나요?
아: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2쇄를 못 찍었으니까요. (웃음) 하지만 책이라는 게 살아 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해요. 북콘서트를 하며 병에 담긴 책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배경사진으로 썼는데 책을 출간한다는 게 망망대해에서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원하는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책을 받았다고 다시 병에 편지를 넣어서 보내주시는 분들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메시지를 전해 받은 분들은 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 그럴 거예요. 마지막으로, 따님이 태어나신지 몇 달 안 됐다고 들었어요. (웃음) 아키 씨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던데,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이가 저를 닮았는데, 성격은 너무 밝아서 처음에 이상했어요.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그동안 왜 난 그렇게 우울했던 거지?’ 생각해보니 결국 저희 부모님이 우울하셔서 저에게도 전이되었던 것 같더라고요. 내가 앞으로 이 아이에게 정말 잘못하는 게 있다면 그건 내가 계속 우울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죠. 사실 ‘유자살롱’에 오는 아이들의 우울함도 우리 선배 세대로부터 전이되었을 거라는 의심이 들어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다며 행복하지 않은 선택들을 했고, 그 부모들의 우울함이 전이된 거죠. 다들 ‘행복’이라고 하면 너무 크게 생각하는데, 저는 ‘우울해지지 말자’는 목표 하나가 굉장히 뚜렷해졌어요.

 

유자살롱의 창밖으로 보이는 흐린 하늘이 여기가 그 무중력 공간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키는 유자살롱의 멤버들이 결핍된 대상을 돕는다기보다 과거의 나를 돕는다는 느낌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소박한 마음이 이 피로한 시대에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어졌다. 이 인터뷰가 병에 담겨 온 책을 고맙게 잘 읽었다는 답장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피로사회』 28쪽.

 

DSC_0196아키(이충한)
유자살롱 공동대표. 유자살롱은 ‘유유자적 살롱’의 줄임말로, 인디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자퇴 후 여러가지 이유로 고립된 채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밴드 ‘유자사운드’ 멤버이자, 드라마 「연개소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등에서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다. 『유유자적 피플: 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를 썼다.

아키가 고른 문지의 책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김태환 옮김 | 한병철 지음
카테고리 교양인문서 | 출간일 2012년 3월 5일
사양 · 128쪽 | 가격 10,000원 | ISBN 9788932022888

문지, 단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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