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40주년
문지, 단 한 권의 책

단 하나의 삶, 단 하나의 소설

전 『프레시안』 기자 안은별

최근에 나온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소설 『에브리데이』는 매일 아침 다른 모습으로 깨어나는 주인공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공유한다. 과연 신체와 분리된 자아를 상정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긴 해도, 여러 면에서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상상은 유혹적이다. 내게는 하루쯤 지드래곤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지만, 그보다 어제와 어제의 어제, 그 어제들의 어제들에 내가 흩뿌려놓은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리셋 욕구가 이런 망상에 이끌리는 주 원인이다.

산 날이 하루씩 많아질수록, 삶은 어제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거나 어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또 잘못을 저질러버리고는 내일로 밀려나는 경험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진다. 판타지 바깥 현실에선 인간 모두가 이렇게 매일 자신의 고유한 과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쓴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활자로 못 박아 놓는 일인 글쓰기는 상당히 위험한 행위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쓰인 내용에 담긴 지점을 통과했다는 증거로서 다음 순간의 입지를 좁혀버리고, 그렇게 좁아지는 연쇄는 불가역적이다. 때문에 종국엔 자신이 써놓은 것들에 짓눌려버리느냐, 아니면 그것들을 어떻게 지고 나아갈 것이냐는 과제에 봉착한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삶 한 장면 한 장면을, 데뷔 50년을 기해 전체적으로 짚어 내려가는 인터뷰집이다. 베테랑 인터뷰어 오자키 마리코(『요미우리신문』 문예부 기자)의 세심한 진행하에 기획부터 편집까지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그야말로 흐트러짐이라곤 없는 긴 인터뷰를 읽는 동안, 나는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나가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다. 소설가로서 ‘오에 겐자부로를 실현하기로’ 결심하고 22세에 데뷔한 이래,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50여 년간 수십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에세이, 강연, 인터뷰 및 대담을 통해 또 ‘썼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안보 투쟁과 오키나와 문제, 동아시아의 비핵화와 호헌 운동에도 언어로 개입했고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문학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됐다. 이것은 결코 이름 바깥에 은둔할 수 없는 세계적 소설가로서의, 아니 ‘오에 겐자부로’로서의 삶이다.

이렇게 많은, ‘오에 겐자부로’로부터 출발한 언문과 함께 간다는 건 과연 어떤 용기를 요하는 일일까. 이것은 여러 비평에 얼마나 조리 있게 답하는가, 혹은 영향력이 큰 문인으로서 어떻게 언행일치라는 미덕을 지키는가의 문제임에 앞서, 쓰는 것으로 성립하는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지켜나갔는가의 문제이다. 또한 “무엇인가를 언어로 표현해버리면 …… ‘진실’과는 어긋나버리”는 것을 알면서도 “언어를 매개로 어떻게든 진실을 향해 돌진해” 온 자가 그 불가능성을―‘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다루어왔는가의 문제이다.
(*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401쪽 참조. 106문 106답 중 36번째인 “작가의 자살은 괜찮은 것일까요?”라는 질문에 오에 겐자부로가 내놓은 의견이다. “나는 단테의 「지옥편 제13곡」에 나오는 자살자란,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라는 정의에 동의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폭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연보적 사실은 1963년 장남 히카리의 탄생과 『개인적인 체험』의 창작일 것이다. 두개골 이상으로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둔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을 말할 때 너무 자주 부각되어 진부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카리의 존재와 그로 인해 펼쳐진 운명을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 방식인 소설가로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러한 상황을 전제로” 소설을 쓰기로 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창작 윤리로 삼았다는 점이, 이 책을 통틀어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선택이자 문학적 전기였다. 이는 그가 애초에 선을 그었던 일본의 사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혹은 사소설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이것이 이제부터 내 인생”이라고 확인하는 의식으로서의 소설 쓰기의 출발이었다.

『개인적인 체험』 이후에도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인 이타미 주조의 자살이 창작의 계기로 알려진 『체인지링』에 이르기까지, 작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연상시키는 설정은 ‘소설 바깥의 가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그런 반응까지 감안하여 선택했다. 자신과 교차점을 그리고 만 삶의 구체적 상황들에 직접 뛰어들어 맞서는 방식으로서 소설을 쓰기로. 그렇게 쓴 소설은 “현실적으로 나[그]의 과거 속에서 움직이기 힘든, 어떤 분기점 같은 것”이 되어 다시 삶의 구체적 문제 상황이 된다. 그렇게 산 것에 대한 진지한 대응으로서 쓰고, 쓴 것에 대한 진지한 책임으로서 사는 것. 오에 겐자부로의 ‘다음 순간’들은 이런 식으로 펼쳐져 왔을 것이다.

그 순환을 수십 년간 스스로 증명하면서 그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하나의 위대한 텍스트를 완성해왔다. 어쩌면 동일한 적에 대한 대응을 조금씩 달리해가며 ‘어긋남’을 표현해가는 게 자신의 소설 쓰기라 하는 그가 계속 써온 ‘단 하나의 소설’은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그가 인용한 “(시련은) 인간의 문제이기에 어떤 시기를 지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의 기미가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은 말끔한 위로가 아니라 용기의 씨앗으로 읽힌다. 그 희망이 없다면 그는 소설을 쓰는 방식으로 삶에 대응해나가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는 오에 겐자부로 같은 인물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좋아, 지옥엔 내가 간다!” 오에 겐자부로는 유년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크가 친구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며 외치는 이 말을 평생 마음속의 입버릇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힘든 쪽을 선택하고는 후회하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았지요. ‘좋아, 지옥엔 내가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매일 다른 삶을 꿈꾸는 무책임한 절망 속이 아니라, 쓴 것과 산 것의 연쇄에 맞물려 한 발 물러설 곳 없음에도 저 끝엔 희망이 있다고 믿는 단 하나의 삶에 있을 것이다. 온화하지만 처절한 지옥이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에 있다.

 

안은별안은별(전 『프레시안』 기자)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프레시안books」를 만들었고 웹진 『아이즈(IZE)』, 비정기간행물 『도미노(DOMINO)』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현재 프리랜서로 일본어 책을 옮기고, 인터뷰집을 집필하고 있다.

안은별이 고른 문지의 책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오에 겐자부로 지음, 오자키 마리코 진행 · 정리 | 윤상인 · 박이진 옮김)

 


오에 겐자부로|오자키 마리코 진행‧ 정리|윤상인‧박이진 옮김
카테고리 외국문학 | 출간일 2012년 3월 23일
사양 · 444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22826

문지, 단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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