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릴레이 리뷰-3] 음악을 닮은 문학, 문학을 닮은 음악

글_금정연(서평가)

알랭 코르노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그다지 야한 영화가 아니다. 마들렌의 “봉오리 같은 젖가슴”이 두어 번 나오고, 투아네트의 “땀으로 번들거리는” 젖가슴이 파인 드레스 아래로 살짝 보이며, 여위고 지친 마들렌의 “엉덩이와 완전히 드러난 음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걸 야하다고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치원과 함께 여자 목욕탕을 졸업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는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그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미 잠든 지 오래일 테니까.

계절이 바뀌던 어느 오후였다. 한 친구가 다가와 ‘죽이는’ 비디오가 있다고 했다. 어쩌면 ‘끝내주는’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건 열세 살 사내아이들을 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키냐르는 『옛날에 대하여』의 어느 장에서 “구두 언어가 말하지 못하는 것, 바로 그런 것이 문학의 주제”라고 썼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쌍의 가슴이지 문학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아이들이 TV 앞에 앉았다. 노란 장판과 자개로 장식된 커다란 장롱이 있는 방이었다. 집안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비디오테이프가 모셔졌고, 우리는 숨을 죽였다. 과장된 침묵 사이로 비디오데크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앞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침묵이란 어떤 것인가? 메아리로 울리는 언어, 자연 언어의 그림자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가발을 뒤집어쓴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주름진 얼굴을. 그건 하얗고 커다란 얼굴이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우리는 이내 잠이 들었고, 그 후에 일어난 사태는 다음과 같다.

고대 일본에서는 성의 차이에 눈뜨는 시기를 신들의 시간이라 불렀다.

욕망(인간의 속성인 갈망)으로 매혹이 해소된다.

만일 욕망이 아연실색을 허사로 만들어버린다면, 한 종(種)에 속하는 다른 구성원들 내부에서 평소에 유지되던 치명적 폭력의 금기 역시 해제될 것이므로, 종 전체를 위해서는 슬픈 일이다. 잔혹성은 인간의 증상(적어도 어린애일 때부터, 즉 내면의 생생한 무엇이 언어에 희생되는 순간부터)이다. (『옛날에 대하여』 228~229쪽)

한마디로, 가련한 친구는 다른 구성원들을 실망시킨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는 말이다.

*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키냐르 식으로 말하자면 “무너져 내린 암석 더미를 애써 외면해온 지가 어언 20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몇 편의 영화를 보았고, 몇 곡의 노래를 들었으며,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몇 쌍의 가슴도 보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코르노의 영화를 졸지도 않고 보았고, 키냐르의 원작을 처음으로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아침』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해야만 하는 오늘, 내가 느끼는 것은 철저한 무력감이다.

어쩌면 나는 늙은 스승의 이야기와 젊은 제자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템포와 지향을, 대선율과 주선율이라는 그럴 듯한 유비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존재했던 자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려면 그들과 우리를 가르고 있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옛날에 대하여』의 구절을 빌려, 늙은 스승이 아내를 기억하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느낀 ‘빠져들어갈 듯한’ 기분과 젊은 제자가 털어놓는 굴욕적인 기억 속에 등정하는 은유(“강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은 피로 얼룩진 상처였다”)를 비교하며 서로 다른 기억의 방향을 지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는 또 어떤가? 과묵한 스승이 “아이 목소리, 여자 목소리, 갈라지고 무거워진 사내 목소리 등 인간의 모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무 악기를 고안해냈고” 그것이 그가 과거와 소통하는 방식이었다면, 망가진 목소리 때문에 성가대에서 쫓겨난 제자가 스승을 찾은 것은 목소리에 복수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우리는 “증오는 과거의 증거이다”라는 키냐르의 말을 통해 그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각각의 태도와 사랑을 대하는 각각의 방식을 통해서도 무언가 할 말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트 콜롱브 부인과 마들렌과 투아네트를 위한 자리는 여기다. 그리하여 그들 각각의 시간 혹은 선형을 넘어서 흐르는, 차라리 맴도는 스승의 시간과 제자의 시간이 기묘하게 어긋나는 순간(제20장에서 스승이 죽은 아내와 나누는 대화의 순서와 제21장에서 제자가 엿들은 대화의 순서를 보라)을 언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 농담을 설명하는 것이 재미없는 일이라면, 음악을 말로써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저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족하다. 늙은 스승은 마지막이자 처음인 수업을 통해 더는 젊지 않은 제자에게 말한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것은 또한 모든 문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키냐르는 그것을 썼다. 음악을 닮은 문학으로. 차라리 문학을 닮은 음악으로.

파스칼 키냐르 지음 | 류재화 옮김
카테고리 외국소설 | 출간일 2013년 8월 27일
사양 양장 · 변형판 132x197 · 156쪽 | 가격 11,000원 | ISBN 9788932024417
파스칼 키냐르 지음 | 송의경 옮김
카테고리 외국소설 | 출간일 2010년 12월 29일
사양 · 384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21775

금정연 일반저자

서평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등이 있다. 후장사실주의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자세히 보기

5 + 4 =

  1. 강승욱
    2013.09.30 오전 3:19

    세상의 모든 아침, 리뷰 연재. 참 좋은 기획이예요.
    덕분에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음미하게 되었답니다.
    세 번의 리뷰, 다 모아두었습니다. 저 같은 분들이 또 계시더라구요.

    과연 문힉과지성사의 명성에 버금갈, 탁월한 독자 리뷰가 답지했을지 궁금하네요.
    이번 주 독자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1. 문학과지성사
      2013.09.30 오전 9:51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에서 기획이 되었는데
      정말 그러했다면 다행이네요^^

      독자 리뷰의 수준이 대단히 높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