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릴레이 리뷰-2] 침묵 혹은 만짐의 음악

글_김태용(소설가)

 

소음만큼 도처에 침묵이 널려 있다. 말라비틀어진 침묵. 포동포동한 침묵. 침묵을 바라보기. 침묵을 듣기. 침묵을 읽기. 침묵을 사유하기. 또 이런 말이 가능하다. 침묵은 정지가 아니라 상태다. 침묵 이전에는 말이, 침묵 이후에도 말이 있다. 그러니 침묵은 말과 말 사이의 말없음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잠재된 말이다.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말하기 싫은, 말로 가득한. 아니다. 침묵을 어떻게 말로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침묵, “그건 언어의 반대말에 불과하네.” 이다.

많은 이야기가 죽음으로 시작한다.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부고와 같은 첫 문장. 이미 죽은 자를 이야기로 끌어오는 것은 소설의 불가능한 윤리다. 첫 문장이 시작되기 전 죽은 자는 이야기 바깥에 떠돌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이야기의 살갗에서 이야기의 살 속으로 들어와 몸을 얻는다. 몸을 가진 자. 몸이 있다면 만져야 하리라. 뒤돌아보면 사라졌던 몸은, 만지면 사라지는 몸으로. 만짐을 계속 실패해야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아플 수 있다. “당신을 만질 수 없어 고통스럽소.” 고통은 내 손으로, 내 샅으로 향한다. 그때 내 손은 나의 손이 아니고 내 샅은 나의 샅이 아닐 수 있을까.

생트 콜롱브가 “훨씬 더 무게감을 실어주고, 훨씬 더 우울한 톤을 만들기 위해 저음의 현을 하나 덧붙였던” 것처럼 우리의 몸에는 애초에 무게와 우울의 현이 있다. “허벅지 사이의 묵직하고 털 난 성기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때 그녀의 엉덩이와 완전히 드러난 음부가 보였다.” 언어의 정지. 불구의 기관이 우리 앞에 도착했을 때 모든 언어가 그 앞에서 소리를 멈추곤 한다. 다시, 우리의 눈이, 손이 닿을 때 그 현은 상승하고 추락하고 끊어진다. 모든 소리를 끌어 모은다. 음악은 식어도 우리의 침대는 식지 않는다. 죽어 나타난 생트 콜롱브 부인이 생트 콜롱브의 연주를 지켜본 것처럼 죽기 직전의 마들렌은 마레의 연주를 본다. 듣는 자는 침묵해야 들을 수 있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연주하는 그의 몸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때 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몸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몸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우리의 몸이 무게와 우울의 현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현은 때로는, 우리의 감정과 감각과 무관하게 움직이면서, 음악 아닌 음악으로 향한다. 음악 아닌 음악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에 가까울 것이다. 자연은 고통도 쾌락도, 고통의 쾌락도 없다. 자연은 침묵도 언어도, 침묵의 언어도 모른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음악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은 우리를 향하지 않는다. 자연이 우리를 핥아주고, 깨물어준다는 헛된 믿음으로 우리는 버틴다. 자연의 몸은 어디 있는가. 자연의 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의 몸에도 자연이 있다. 자연이라고 인지하기 전의 자연. 자연에 가까운. 우리가 그것에 언어의 입김을 불어넣을 때 그것은 이미 자연을 떠나 있다. “으깬 복숭아”는 우리의 먹이이지, 자연의 배설물이 아니다.

우리의 몸에서 자연이 살갗을 드러낼 때는, 얇고 가느다란 현이 음악 아닌 음악으로 떨릴 때는, 이렇다. “투아네트는 작은 비올라 다 감바를 떼고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오면 양다리 사이에 리넨 천을 대었다.” “그들 앞에 한 소년이 바지춤을 내리고 눈 속에 구멍을 내며 오줌을 누고 있었다. 눈 속에 구멍을 뚫는 뜨거운 오줌 소리와 눈 입자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그리고 어떤 기쁨도 슬픔도 없이 “밤이 깊고, 발이 시려서” 침묵은 우리의 몸을 잠시 떠날 뿐이다.


*매주 화요일 리뷰가 이어집니다. 

9월 10일_시인 김소연 / 9월 17일_소설가 김태용 / 9월 24일 서평가 금정연 / 10월 1일(독자 리뷰 공모전 당선작)

파스칼 키냐르 지음 | 류재화 옮김
카테고리 외국소설 | 출간일 2013년 8월 27일
사양 양장 · 변형판 132x197 · 156쪽 | 가격 11,000원 | ISBN 9788932024417

김태용 소설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와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벌거숭이들』이 있다. 2008년 한국일보문학상, 2012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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