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릴레이 리뷰-1] 음악,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을 마시는 곳

글_김소연(시인)

 

키냐르를 읽고 나면 우리는 회복기 환자처럼 창문 바깥을 내다본다. 잊고 살았던 게 무엇인지를 잊어버리지는 않았구나.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뻔했구나 하면서.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키냐르는 생트 콜롱브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목놓아 부르지. 그래, 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목 놓아 부르고 있는 거네.” 생트 콜롱브가 자기의 연주를 목 놓아 부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사실이다. 김소월의 ‘초혼’처럼 그는 활을 켜고 현을 눌러 죽은 아내를 곁으로 불러내게 된다. 모든 것에 초연한 그이지만, 그의 (죽은) 아내 앞에서 그는 어린아이처럼 보챈다. 왜 매일 오지 않느냐고. “당신을 만질 수 없어 고통스럽소.” “바람 말고는 만질 게 하나도 없어요.” 만질 수 없고 만져지지 않는다는 비애는 음악으로라야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음악으로 ‘왜 더 이상 당신을 만질 수가 없는가’에 대해서 혹은 ‘당신을 만질 수 없다는 고통’에 대해서 표현한다기보다는 ‘결국 바람 말고는 만질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를 표현하게 된다. 그래야 음악이 음악다워진다. 위대함을 좇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키냐르는 우리를 자꾸 떠나온 그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어떤 까마득한 과거로. 지난날들로. 처음으로. 처음으로 되돌려진 우리는 망연해진다. 되돌려진 그 장소에서 비로소 아늑함을 느끼게 될까 봐 조금 겁이 난다. 아내가 떠난 지 오래된 생트 콜롱브의, 아내와 함께 쓰던 침대처럼 그곳엔 알 수 없는 온기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어째서일까. 우리가 살아가며 허물 벗듯 스스로를 벗어두고 떠나온 장소들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 그 처음이라는 장소, 원형이었던 그 장소에만 왜 유독 온기가 남아 있을까. 계속해서 누군가 거주해온 공간 같기만 하다. “우리 침대는 아직도 차갑지가 않소.” 그 따뜻한 장소에 되돌려진 우리는 현재의 장소가 되레 낯설어져서 어지럽다. 마치 떠나왔지만 떠나온 게 아닐지도 모르는 이상한 기억의 장소이다. 키냐르가 제시하는 처음의 장소에서 우리는 그리하여 재회한다. 과거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삶과 나란히 숨쉬어온 세계와 재회를 한다. 마랭 마레가 스승의 연주를 훔쳐 듣기 위해 오두막 아래 숨어서 한숨을 쉬듯, 그 원래의 장소가 우리의 가벼운 삶 아래에 숨어 우리 삶을 엿들으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숨어서 나란히 우리와 함께 숨쉬어온 세계가 아니고서는 내팽개쳐진 그 장소가 이렇게까지 따뜻할 리가 없다.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 눈물은 언어에게까지 버림받은 자들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최후의 장소이다. 음악이 생겨나는 장소이다. 생트 콜롱브의 제자였던 마랭 마레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비로소 회귀했던 그곳. 살아보았으나, 다 소용이 없어서 다시 찾아가는 그곳. 결국 우리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마랭 마레처럼, 찧고 까불며 생을 온통 낭비투성이로 점철하다가 결국 그 처음의 장소로 돌아가게 돼 있다. 키냐르가 미리 뒷걸음질쳐서 돌아가 살던 그 장소. 눈물이 모자라기 때문에 돌아갈 차례가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는, 그 처음의 장소.

 

 


*매주 화요일 리뷰가 이어집니다. 

9월 17일_소설가 김태용 / 9월 24일 서평가 금정연 / 10월 1일(독자 리뷰 공모전 당선작) 

파스칼 키냐르 지음 | 류재화 옮김
카테고리 외국소설 | 출간일 2013년 8월 27일
사양 양장 · 변형판 132x197 · 156쪽 | 가격 11,000원 | ISBN 9788932024417

김소연 시인

시인 김소연은 1993년 『현대시사상』에 「우리는 찬양한다」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와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2010)과 현대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5 + 7 =

  1. teatime
    2013.09.10 오후 5:00

    앗! 키냐르와 김소연 작가! 모두 좋아하는데…

    잘 봤습니다~ 키냐르 작품 두 개밖에 안 읽어 봤지만 쉽지만은 않던데… 다른 분들은 어찌 보셨나 궁금해 기대되네요~^^

    1. 문학과지성사
      2013.09.11 오전 11:28

      다른 분들의 서평이 10월 1일까지, 매주 화요일에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