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칼럼] 늙은 어린이가 될 수 있다면

 

마해송의 글은 대학 시절 이후 에세이와 회상기로 많이 읽었다. <떡배단배>, <편편상>과 <아름다운 새벽>을 이은 그 단아한 문체 속에서 한 작가의 청년기와 교우기를 보았었다. 뒤늦게 그분의 동화가 생각나면서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다시 읽었다. ‘1923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화’로 알려진 이 작품의 편자 주석에 의하면 “1923년 5월1일 제2회 어린이날 처음 행사에서 구연되고 1926년에 <어린이> 1월호에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이 동화는 정확히 100년 전에 발표되었고 3년 후 활자화되어 우리 문학 최초의 아동문학 작품으로 편입된 것이다. ‘어린이’란 새말을 만든 방정환은 서양 동화를 번안한 <사랑의 선물>(그 이야기들이 참 슬프고 아름답다)을 발표했고 1923년 개벽사를 통해 잡지 <어린이>를 발행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첫 근대 잡지 <소년>에 발표된 지 15년, 김동인의 첫 현대소설 ‘약한 자의 슬픔’이 첫 문학동인지 <창조>에 게재된 지 4년 후에, 방정환의 어린이 잡지가 창간되고 세해 후 마해송의 작품이 우리 아동문학사의 첫 창작동화로 발표된 것이다. 우리 아동문학은 짐작보다 이르게 열렸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세기가 된 이제, 그 작품들은 그걸 읽는 내 감상을 기묘하게 이끌었다. 나의 소년기는 해방에서 1950년 한국전쟁을 거쳐 지나왔기에 방정환과 마해송이 살던 세상과 그때 쓰던 말들이 내 어린 시절의 눈과 귀에 익어 있었고 주석 없이도 이해되는 글발들이었다. 편집자가 각주로 ‘듬직하다’로 설명한 ‘끌끌하다’나 ‘부대’(부디) 같은 말은 어릴 적의 익숙한 말로 들려왔고 소년 시절 신문에서 본 마해송의 ‘사사오입’ 정치비판 발언도 바로 기억되었다. 1930년대 초 조선어학회가 표준어를 사정했지만 나는 그보다 10년 전의 방정환·마해송 작품들을 오히려 다정한 소년기에 익은 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써본 글자는 입학 직전 익힌, 한자의 내 일본어 이름이었지만 한학기 후 해방을 맞으며 새로 만든 한글 교과서로 학교 공부를 새로 해야 했다. 참 혼란스러운 문자 교육 과정이었다.

김병익 문학평론가/한겨레

 

✔ 칼럼 전문 : [김병익 칼럼] 늙은 어린이가 될 수 있다면

마해송 지음
카테고리 마해송 전집 | 출간일 2013년 6월 26일
사양 변형판 152x213 · 356쪽 | 가격 15,000원 | ISBN 9788932024134
마해송 지음
카테고리 마해송 전집 | 출간일 2015년 5월 15일
사양 변형판 152x212 | 가격 144,000원 | ISBN 97889320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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