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분더카머와 카메라 옵스큐라, 방에 대한 두 개의 메타포

 

영화비평가 유운성

『분더카머』는 은신처이자 보호소이다. 무엇을 위한? 아마도, 카메라 옵스큐라가 몰아낸 모든 것들을 위한. 방에 대한 두 개의 메타포, 분더카머와 카메라 옵스큐라는 끝내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 온갖 경이로운 사물들로 가득한 방과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컴컴한 방, 안에 있는 것이 볼거리인 방과 바깥에 있는 것을 보려고 만든 방.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방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방. 윤경희의 분더카머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느덧 고대적으로까지 여겨지는, 하지만 분명 근대의 아름다운 고안물인, 예술과 내면성을 위한 은신처이자 보호소다. 그런데 윤경희가 예술과 내면성을 구실 삼아 돌보려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언어다.

언어의 자의성이란 상식에 속한다. 어떤 말의 소리와 그것이 가리키는 뜻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윤경희에게 이는 삶을 끊임없이 요동치게 하는 제일의 문제다. 때로 어떤 말의 울림은 소리 감식가인 그에게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하게 들려서 그 뜻이 찾아오는 순간을 거절하고픈 심정이 들 정도다. 한편, 분열된 여러 다른 말들 사이를 옮겨 다니면서도 결코 어떤 말에도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 강렬하고 절대적인 의미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분열된 채로 공존하는 말들이 있기에 메타포라는 강력한 문학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분열된 말과 말을 하나의 언어 안에서 잇는 이를 시인이라 부르고,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서 그리하는 이를 번역가라 부른다. 그러니 시인이자 번역가인 횔덜린 같은 이는 윤경희에게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분더카머』는 결코 완결된 책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책이다. 이는 분더카머가 결코 완결된 방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그러하다. 도무지 계통이라는 것이 없는 주인의 정신을 닮아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운 주인의 성벽을 닮아 품목과 배치가 자꾸만 바뀌는 방. 정말이지 놀라운 것은 심지어 이 방이 어떤 매개도 없이 주인의 내면과 곧장 맞닿아 있는 얼굴로까지 여겨진다는 점이다. 얼굴이 곧 내면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면 느끼게 될 당혹스러움이란 이런 것일까. 마침표나 쉼표나 말줄임표처럼 예사로운 문장 부호들도 에돌다가 여울지고 고이기도 하는 마음의 흐름을 따르는 것 같고, 윤경희 자신이 자기 글의 독자가 되어 내뱉은 듯한 영탄의 표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분명 초대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이따금 겸연쩍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이 방에 계속 머무를 자격이 내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카메라 옵스큐라의 가장 천박한 후예인 영화는 윤경희가 안내하는 분더카머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문학과 미술과 음악은 이 방의 곳곳에 떳떳이 자리하고 있지만, 영화는 그러한 예술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다른 이가 쓴 영화 이야기를 인용할 때나 호명될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이 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분더카머』는 뜬금없고 실없는 영화 이야기로 조용히 책을 덮게 만드는 그런 범상한 에세이가 아니다. 기꺼이 낭만주의자이기를 자처하며 고대적인 것들의 무덤 곁에 있기를 꺼리지 않는 그와 같은 문지기가 있기에, 나는 안심하고 허풍선이들과 거짓말쟁이들과 사기꾼들과 욕쟁이들과 주정꾼들과 고리대금업자들과 투기꾼들과 도둑들과 이런 이들을 소리 높여 상찬하는 매문가들로 어수선한 영화의 장터로 돌아갈 수 있다.

윤경희 지음
카테고리 산문,인문 | 출간일 2021년 5월 31일
사양 국판 148x210mm · 300쪽 | 가격 15,000원 | ISBN 9788932038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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