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꺼이 빈손으로

한수희 (에세이스트)

 

나는 언제나 내가 중독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원래 의심이 많고 몸을 사리는 사람이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법이다. 나는 의심이 많고 몸을 사리는 반면, 일단 마음을 주면 머리끝까지 빠져 허우적댄다. 사기나 포교, 조련 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한때 나는 매일 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들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알코올 중독이었다. 매일 밤 술을 마셔야 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잊어버리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언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남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술잔을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서 맥주나 와인을 잔에 따랐다. 한 잔을 마시고 부족하면 한 잔을 더 마셨다. 취하면 모든 것이 공기 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고 그렇게 모든 것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 후에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이 별로 세지 않다는 점과 숙취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 그리고 몇 개월 만에 잊고 싶었던 것을 그럭저럭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알코올중독에 빠졌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술을 끊었다. 『리커버링』에는 바로 그 시간들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집요하고 성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젊고 똑똑한 백인 여성이, 유전자나 성장환경을 탈탈 털어도 알코올중독자가 될 이유를 찾기에는 어쩐지 부족한 한 여성이 매일 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신다. 여기에는 딱히 인과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과관계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술이 거기 있었고, 마실 수 있으니 마신 것이다.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자기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해하는 일이. 자신을 해하는 것으로 사실은 제대로 살고 싶다고 외치는 그런 일이.

나는 술에 취할 때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마시는지 말할 수 있었다. 그 답이 똑같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의 자의식이라는 짐으로부터,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내면의 독백과 자기평가로부터 벗어날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마셨다. 그게 아니면 과도한 기능으로 포장된 나의 핵심에는 어둡고 부서진 무언가가 있고, 술에 취해야만 그것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셨다. 음주는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따라 자기탈출이기도 했고 자기대면이기도 했다. (p. 156)

결핍, 그리고 위안. 중독자들은 자기 안에 뚫린 도넛의 구멍 같은 결핍 때문에 매순간 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같은 추위를 느낀다.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시급하게. 그들은 핫초코를 홀짝거리거나 따뜻하게 데운 코냑을 삼키는 것처럼 위안이 될 것을 찾아 헤맨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것으로는 이 추위를 해결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들이부어야 한다. 결핍을 잊고, 아픔을 잊고,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릴 수 있도록 많이 마셔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홀로 방에 틀어박혀 마신다. 다음 날이면 멀쩡한 척하며 걷지만 마음은 숙취에 비틀거린다.
레슬리 제이미슨이 이 회복의 이야기를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 AA에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들이었다. 같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서로 공명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의 핵심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위안이 있는 곳은 바로 이 실패한 사람들의 겸손한 공동체 안이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위안 삼을 방식이 없이 하루를 지내는 방법에 관해 수다를 떨었는데, 그 안에 위안이 있었다. 세상의 날을 무디게 해줄 어떤 것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단순한 행위가 그 사람에게도 지랄 맞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들 안에 위안이 있었다. (p. 272)

깨끗한 아파트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 먹고 창 너머 초록과 연두 빛의 나뭇잎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감상하고 어두운 빨래와 흰 빨래를 분류하면서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사정없이 망가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너무 망가져서 도무지 재조립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은 거의 매일 찾아온다.
나는 내 피를 타고 흐르는 단명한 술꾼들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실패자들의 존재를 느낀다. 세상살이의 예측 불가능성에 얼어붙은 겁쟁이들과,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 비참해 하는 외톨이들,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며 징징대는 응석받이들도 거기에 있다. 이 꼴사나운 나르시시스트들의 존재를 단번에 잊게 해줄 무언가를 찾아 나는 또 두리번거린다.

그 가을, 교외의 어느 단주자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한 여자가 손을 채울 무언가가 나타날 때까지 기꺼이 빈손으로 서 있고 싶은 마음에 관해 말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만큼 용감하고 싶었고, 한동안 내 손을 비워두고 싶었다. (p. 556)

나는 이 두꺼운 책에서 발굴한 이 문장을 내 마음에 담아둔다. 손을 채울 무언가가 나타날 때까지 기꺼이 빈손으로 서 있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어두워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홀로 씩씩하게 걷는 발걸음에 대해 생각한다.


 

카테고리 인문 | 출간일 2021년 3월 31일
사양 변형판 140x222 · 684쪽 | 가격 22,000원 | ISBN 9788932038391

6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