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의 재건축 현장 일지

류승경 (번역자)

2009년 초판 (좌), 2020년 개정판 (중), 2021년 영문판 (우)

한국 문학을 영어로 옮길 때 나는 텍스트 자체와의 깊은 교감 다음으로 저자와 직접 소통하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은 반대 방향으로 작업하는 영한 문학번역가에게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 특권이기도 하다. 『타워』 번역을 스무 쪽 정도 작업했을 무렵부터 나는 일찌감치 배명훈 작가님의 메일 주소를 전달받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러나 눈치껏) 물어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여기에는 연작소설 『타워』에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 캐릭터 각각의 성별이 뭔지 캐물을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작가님과 주고받은 대화는 그 자체로 내게 귀한 선물이고 또 배움이었다. 번역할 당시 나는 빈스토크 타워의 기둥과 보를 설치하고 자재의 색과 질감을 고르느라 설계도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님이 나를 전망대로 이끌어 빈스토크를 쓱 가리키고 나서야 비로소 그 뒤에,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였다. 바로 빈스토크를 둘러싼 도시,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명명되지 않는 ‘주변국’의 미스테리한 수도. 2009년 『타워』의 첫 출간 불과 몇 달 전, 어느 재개발 구역에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철거민들을 경찰이 폭력 진압했던 도시. 최루탄과 물대포와 명박산성과 같은 바리케이드가 난무하는, 그럼에도 행진과 촛불시위가 멈추지 않는 도시, 서울.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저자는 공권력이 작동하는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또렷이 조감하고 있었다. 무감한 행정관료와 하청 외국인 노동자부터 공권력과 결탁하는 재계며 언론이며 지식인층을 거쳐 마침내 일반 시민까지, 하나의 거대한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 하나하나를. 기계가 때려 부수고 으스러뜨릴 수 있도록 공모한 부품의 책임을. 바로 이런 한낱 부품들이 『타워』 전체를 서술한다는 점, 그리고 엔지니어는 단 한 번도 귀하신 행차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 눈이 간다. (소설 속에서 뭐라도 액션을 취하는 유일한 ‘높은 양반’은 영화배우 P 정도?) 시민들이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마저 빈스토크의 지도자들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들은 각자 그리고 함께, 들고 일어선다. 머릿수에는 힘이 있으므로.
편집자님들과 일하면서 나의 전망대가 또 한 번 바뀌었다. 빈스토크의 거리가 깨끗이 비질되었고 유리창이 말끔히 닦였으며 표지판이 여럿 추가되었다. 이중 꽤 커다란 표지판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원문에서는 특정 인물들이 인류애와 단결력, 온기가 사라진 악의 도시라는 뜻으로 빈스토크를 바벨에 빗대는데 이는 그 유명한 성경 이야기에서 ‘결말 부분의 바벨’을 가리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어권 독자는 ‘바벨’ 하면 제 스스로를 무너뜨린 인간의 ‘오만’을 연상할 것이라는 게 편집자님들의 의견이었고 배명훈 작가님과 나는 수긍했다. 그래서 나는 바벨이 언급되는 모든 대목들을 조금씩 비틀어 빈스토크적 오만에 방점이 찍히도록 했다.
가장 대대적인 편집을 거친 작품은 아마도 「샤리아에 부합하는」일 것이다. 화자 중 한 명인 셰흐리반은 “구소련 계통의 무장세력” 코스모마피아를 위해 빈스토크에서 첩보 임무를 수행 중인 무슬림 여성이다. 편집자님들은 영국과 한국 내 이슬람 담론이 다르기에 셰흐리반의 일부 행동과 동기를 두 나라 독자가 굉장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가님과 나는 편집자 판단을 믿었고 관련된 삭제와 수정 작업을 편집부에 맡겼다.
배명훈 작가님 스스로도 2020년 개정판을 위해 2009년 초판을 대폭 수정했다. 모든 수정사항은 내 번역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타워 개념어 사전」 「신판 작가의 말」 등은 일정상 또는 편집상의 이유로 영문판에 실리지 않았다.
이렇듯 편집 과정은 편집자, 작가, 번역가 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혼포드 스타에서 교정지를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순진하게도 교정 내용을 일일이 작가님과 함께 검토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럴 목적으로 우리는 서울 남부의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장장 네 시간에 걸쳐 원고를 검토했으나 4분의 1밖에 보지 못했다. 이때 작가님이 내게 나머지 교정 작업에 대한 전권을 주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편집자님들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시였기에 너무나 감사했다. (중요한 수정 사항은 결국 작가님 의견을 구했지만.) 이날 또 배명훈 작가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회의가 너무 길어지는 데 대한 미안함 반, 모호함을 못 견디는 영어에 길들여진 편견 반으로 내가 “그래도 텍스트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 같다”고 하자, 작가님은 영문판 『타워』가 한국판 『타워』보다 완성도가 높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것이 될 것이라고 부드럽게 지적했다. 맞다. 우리가 건설한 것은 쌍둥이 빌딩이지만, 이란성 쌍둥이니까. 각자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평등하게 태어난 쌍둥이.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우뚝 솟아 있지 않다.
만약 내게 제4의 『타워』를 지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 어떤 방은 잠긴 채로, 어떤 길은 비포장인 채로 놔두어 보면 어떨까. 독자에게 빈스토크 안을 헤매고 다닐 기회를, 자기만의 길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지만 다음 건축가가 꼭 나일 필요는 없다. 각각의 번역가는 고유한 타워를 올릴 것이다.** 어느 신성한 오후 흰곰이 그랬듯이, 유일한 눈송이를 빚을 것이다. 서로 비슷비슷해 보여도 그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눈송이를. 프랙털의 무늬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힘이 있는. 나는 『타워』의 2021년 영문판 번역가로서 빈스토크의 이야기를 비롯한 배명훈 작가님의 반짝이는 작품들에 소망한다. 계속해서 펑펑 내려주길!

[원문 https://sungryu.asuscomm.com/category/translation/]


* 인칭대명사를 생략해도 되는 한국어의 특성상 원문에는 비중이 작은 등장인물의 성별을 명시할 필요가 없다. 영문에는 그만한 모호함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는 작가님께 성별들을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작가님의 답은 내가 초벌 번역할 때 상상했던 캐릭터들의 성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는데, 딱 두 군데만 달랐다. 나는 소설 앞부분에서 열반에 드는 동물을 수컷으로 한 번 정하셨으니 「곰신의 오후」에서는 흰곰을 암컷으로 바꿔 균형을 맞추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곰신의 경우 성을 특정하지 않는 단수형 ‘They’에 신격을 나타내는 대문자로 표기해 논바이너리 신으로 표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작가님은 두 가지에 다 동의해주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원문에서 성별이 드러나지 않은 캐릭터 일체를 단수형 ‘they’로 지칭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그들의 젠더를 독자의 상상이나 심지어 무관심에 맡겨뒀으면 어땠을까. 원문의 독자도 누리는 자유니까.

** 번역의 복수성plurality에 관한 이 생각들은 한 편의 한국 시와 다양한 영역본을 소개하는 계간 웹진 〈초과〉의 포용적 작업들과 윤성우, 이향 공저의 논문 “Applying Arendt to Translation Discourse”에서 영향을 받았다.

배명훈 지음
카테고리 소설,장편소설 | 출간일 2020년 2월 20일
사양 변형판 128x188 · 316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36014

배명훈 소설가

배명훈은 2005년 「스마트 D」로 SF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작소설 『타워』,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 『총통각하』 『예술과 중력가속도』, 중편소설 『청혼』 『가마틀 스타일』, 장편소설 『신의 궤도』 『은닉』 『맛집 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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