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탄식』 출간 기념 마종기-이병률 서면 인터뷰

 

이병률: 새 시집 『천사의 탄식』 내신 것 축하합니다. 그리고 시집 내주셔서 (뜨겁게)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먼 곳에서 어쩌면 이렇게 나란히 관통하고 있지만 어느덧 여기는 가을바람이 선뜻선뜻 우리를 맞아줍니다. 그곳, 새로 옮긴 마을은 아직 더운 기운이 많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그곳 아침의 풍경은 어떤지요. 또 가을에 방문하실 계획이 미뤄졌는데 오셔서 하고 싶은 계획들은 뭐였을지요?

마종기: 나란히 관통하고 있다는 말이 고맙고 정이 갑니다. 한데 지난 몇 해 나는 그런 느낌이 많이 줄어버렸어요.
아무래도 나는 나 혼자인 것 같다는 느낌. 아마도 코로나 그리고 나이 때문인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고국과 고국의 친구와 함께인 듯 살아온 그 믿음이 자꾸 죽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몇 해 전에 발표한 시 「마지막/시차 적응」에서처럼 요즈음은 그 시차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인사를 받았는데 그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거든요. 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 정말 내가 너무 오래, 아주 멀리에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에 힘들 때가 갑작스레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기는 아직 많이 덥고요, 꽃이 많고 새도 많은데 사람은 적어요. 아내를 빼고 하루에 두 사람을 보면 평균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람이나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분도 못 보고 지나가지요.
귀국해서의 계획이 무엇이었냐고요? 병률 시인도 잘 알다시피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귀국하지 않아요. 시집을 출간하고 귀국할 때라면 관련된 할 일이 있기도 하지만 내 귀국은 거의 언제나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억지로 생각을 해본다면 아마도 병률 시인을 만나 소주 한 병에 감자탕을 같이 먹는 것, 칼국수를 같이 먹는 것 정도지요. 언젠가 심심해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십대 후반에 고국을 떠난 후 태평양을 건넌 적이 백 번이 훨씬 넘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에 나오고 5년만이었던 그 첫번째 귀국,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겠다고 나선 그 한 번의 계획된 귀국 말고는 귀국에 계획이 붙은 적은 없었지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병률 시인같이 여행가도 아니고 무슨 사업을 크게 해서 사업차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항공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고국과 고국의 친구가 그리워서 태평양을 오락가락했으니…… 병률 시인은 나를 바보로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병률: 이제 저는 선생님 하시는 말씀 가운데 어떤 일화나 쓰신 시들 중에 제가 선생님 옆에 있었구나 싶어서 참 좋습니다. 몇 해 전 서울의 신설동 밤길(「신설동 밤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그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아끼셨던 것 같습니다. 어둠을 좋아하시기보다는 그 오래전 서울의 조도가 생각나서였을 텐데요. 세상을 살면서 밝은 것만 좇으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마음은 어떠세요?

마종기: 정말 그렇네요. 「신설동 밤길」도 그렇고 「안동행 일지」도 그렇고요. 그 신설동 밤길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길은 넓은 편이었는데 왜 그렇게 어두웠던지요. 우리는 전철에서 내려서 한 15분 정도 걸어서 그 술집을 찾았지요?  어둡구나, 생각하면서 안온한 기분도 들어 기분이 공연히 좋았는데 동행 중 한 분이(정끝별 시인인가 나희덕 시인이었죠?) 어두워서 겁이 난다고 했어요. 물론 나는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답을 하고 있었지요. 아니 이 따듯한 기분은 어쩌라고, 하면서 내가 중얼거린 그 답이 바로 시가 되었네요. 누가 나보고 어두움에 더 익숙한 것 같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런 어두움에서 내 몸의 짐을 내려놓는 듯한 가벼움과 그래서 기대고 싶은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병률: 『천사의 탄식』에 수록된 시에서 어머니 이야기(무용가의 초상)가 나옵니다. 무용가로 활동하셨던 어머니 고 박외선 여사께서 ‘새로운 첫번째만이 예술’의 자격이 된다고 엄격하게 말씀하셨는데 동시에 자신을 길어 올리는 일을 하는 행위가 예술일 것입니다.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견인하려면 새로움을 배양해야 하는 몫이 남아 있는데요. 선생님은 그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의식하시는지요.

마종기: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자신의 실체를 찾아보는 일은 나같이 주위에 아무도 없이 늘 혼자 시 쓰기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쉬운 과제여야겠지요. 무엇보다 다른 선택의 조건이 없으니까요. 새로움이라는 명제도 같은 선상에서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어느 시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단지 혼자서 오래 살아온 내 시여서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가끔 방향이 선명치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주위의 시 쓰는 친구와 시에 대한 대화를 나누거나 조언이나 충고를 들을 조건도 되지 못하고 문학에 대한 강연이나 토론을 듣거나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남들이 보면 내 시가 아마도 야생의 막 자란 시, 좋은 비료나 도움의 손맛을 보지 못한 거칠고 못난 시로 보이게 되는 적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남들을 따라 모두 산문시를 쓴다든가 여기저기에서 외국어 단어의 시 제목이 남발하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나 여러 글씨체를 써서 의미가 다양하다고 하니 그걸 또 따르는, 그런 겉핥기식 새로움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기도 하지요.

이병률: 마침내 우리는 기도가 필요한 시대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기도의 방식 중에 기도를 하면서 살지 못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다면요.

마종기: 내가 존경하는 어느 수도자의 말에 의하면 기도의 절정은 절대자와의 대화라고 하더군요. 나의 절대자가 되려면 나보다 나은 자가 되어야겠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상대를 나보다 나은 자로 인정하려면 내가 우선 겸손해져야겠지요. 진정한 기도의 절대 조건은 그래서 겸손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내가 정말 완전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어지간한 새보다 훨씬 못한 시력, 개보다도 못한 취각, 야수들보다 못한 힘, 뭇 짐승들보다 지능만 조금 앞선 우리의 불완전한 몸이 부끄러울 정도지요. 그런 상태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나보다 나은 그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기도라고 한답니다. 나는 그 수도자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차 있던 것을 털어놓듯이 그분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위가 다 편안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병률: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하니까 기다려주어요”(「다시 만나야 하니까」)라는 시 한 줄이 시집을 덮고도 내내 마음을 적십니다. 그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어느 때, 어느 장소였으면 좋으시겠어요?

마종기: 「다시 만나야 하니까」에서는 시에서 드러나듯 세상을 떠난 가족을 우선 지목하고 있습니다. 시기는 특별할 것이 없겠지만 장소는 우리가 같이 살던 집이겠지요. 그리고 또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당연히 나와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겠고 여기서부터는 내가 죽고 살고와는 관계가 없겠지요. 내가 간절히 만나고 싶은 몇 분들이 다 해당이 되니까요. 특별한 장소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요.

이병률: 이번 시집에도 선생님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뭘 해야 할지, 뭘 붙들어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한 청춘들은 어떡해야 좋을까요?

마종기: 어쩌다 이 나이에 까지 나는 별것 아닌 내 시를 붙잡고, 아니 내 몸에 칭칭 감고 살아왔지요. 내가 만약에 문학을 붙잡고 살지 않았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볼품없는 삶을 살다가 벌써 끝을 냈을 것입니다.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이고 신경질적이고 몸도 건강체가 아니고 무엇보다 어처구니없이 길어진 외국생활에서 오는 불만과 외로움, 사고와 행동의 제약은 정말 힘든 것이지요. 단지 이런 환경에서도 다행스럽게 내가 악착같이 문학을 붙잡고 살아온 덕택에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그 생사여부를 떠나 부단히 변합니다. 그러니 그런 것에 나를 맡기거나 나를 의탁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온전히 맡기려면 적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우선 찾아야겠지요. 그중의 드문 하나가 예술이 가지고 있는 지고한 정신과 힘, 그리고 내가 유추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신앙이 주는 구원의 약속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알기로 변하지 않는, 그래서 가장 확실한 우리들 삶의 기둥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것들을 떠나 나와 완전히 일체가 되어주는 그런 기둥을 하나 단단히 감아쥐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면으로 온몸을 던져 상대하는 모든 예술이 그 기둥이 되어줄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빛이 나를 강하게 잡아주고 지켜주는 이상한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마종기 지음
카테고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 출간일 2020년 9월 9일
사양 변형판 128x205 · 149쪽 | 가격 9,000원 | ISBN 9788932037677

마종기 시인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조용한 개선』(1960),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자세히 보기

이병률 시인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이 있다. 자세히 보기

3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