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시사란 무엇인가

곽차섭(부산대 사학과 교수)

 

미크로스토리아(microstoria), 즉 미시사(微視史)는 줌인(zoom-in)의 역사학이다. 멀리 떨어진 대상의 이미지를 눈앞으로 당겨 확대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 기법처럼, 그것은 과거 속에 묻혀 희미해져버린 개인이나 소집단의 생생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미시사적 관점에 따르면 역사에는 구조와 계량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복잡다단하고 종종 불연속적인 리얼리티가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잘 경계 지워진’ 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삶을 적절한 사회문화적 관계망에서 ‘촘촘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전체사적 조망이라는 이름 아래 엄연히 그 주역인 평범한 개인이나 소집단의 모습은 사라져버리는 거대 역사보다는, 특정 지역의 특정 사건을 통해 그것에 대응하는 그곳 사람들의 특정한 전략과 태도 등을 면밀히 탐색하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역사 속에 묻힌 삶의 세절(細切)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역사에 비해 미시사가 종종 더 미묘하고 다층적인 감정과 욕망을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시사에는 그것만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는 ‘실명적 역사’로서, 익명적 거대 집단과 평균적 개인이 아니라 어떤 소집단에 속한 개개인의 이름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둘째는 ‘가능성의 역사’로서, 사료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과대평가해온 종래의 편협하고 권력 중심적인 실증 방식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의미의 입증 방식을 지향한다. 셋째는 ‘이야기로서의 역사’인데, 역사서술을 원인과 결과 관계의 ‘설명’이 아니라 다층적 의미들의 ‘기술’ 혹은 ‘묘사’로 간주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 삶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지향하는 미시사가 그들의 삶을 분석하고 설명하기보다는 그들을 묘사(내러티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미시사는 더 이상 역사적 ‘진실’을 독점하는 전지적(全知的)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역사 속에서 잊혀온 수많은 기억과 목소리와 얼굴들을 드러내고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미시사는 1960년대 말에 시작하여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그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탈리아 좌파 역사가인 카를로 긴즈부르그, 조반니 레비, 에두아르도 그렌디 등이 그 선구자들이다. 긴즈부르그는 『베난단티』(1966), 『치즈와 구더기』(1976), 『밤의 역사』(1989)라는 야심 찬 3부작을 통해 그리스도교 도래 이전의 농경 제의와 이단 가톨릭 신앙 간의 관계를 각각 소집단(베난단티), 개인(메노키오), 민속학(마녀연회)의 관점에서 추적하였다. 레비는 무형의 유산(1985)에서 근대국가와 시장경제라는 거대한 흐름이 평범한 농민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했는지 반문하였다. 그렌디는 ‘이례적 정상(eccezionalmente normale)’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통적인 사료 실증에 내재한 엘리트적 속성을 비판함으로써 미시사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미시사는 프랑스 아날학파 3세대와 교류하면서, 흥미로운 농촌 이단 재판 사건을 다룬 엠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의 『몽타이유』(1967)를 생산하였다. 미국의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는 동명(同名)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마르탱 게르의 귀향』(1982)에서 16세기 프랑스의 한 농촌 여인이 지닌 가치관과 생존 전략을 탐색하였다. 1세대 저작들은 무엇보다 역사 속 민중의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좌파 사회사적 시각에 미시사적 관점을 접목한 것으로 미시사회사 혹은 사회미시사라 부를 수 있겠다.
2세대 미시사는 대략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사회보다는 문화에 더 초점을 맞춘 문화미시사의 경향을 일컫는다. 그 특징은 우선 양적 팽창으로, 최근 2~30년간 엄청난 수의 미시사 저작들이 간행되었다. 연구 시기와 범위도 근대 초 유럽에 집중한 1세대와는 달리 20세기 아시아, 남미, 미국, 이슬람 세계까지로 확장되었다. 연구 주제도 다양해져서, 이례적 사건은 물론 반복적 일상까지도 포괄하면서 젠더, 가족, 몸, 경계인, 소수자,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로 그 관심사를 넓히고 있다. 지방사, 생활사, 여성사, 구술사, 풍속사, 문화사 등도 그 성격상 미시사와 공유하는 점이 많다. 스티븐 오즈먼트의 『막달레나와 발타사르』(1989), 로렐 대처 울리히의 『한 산파의 이야기』(1990), 멜턴 맥로린의 『첼리아』(1991), 에드워드 베렌슨의 『마담 카요의 재판』(1992), 에이미 스레브닉의 『매어리 로저스의 이상한 죽음』(1995), 레오나르드 블뤼세의 『쓰디쓴 결합』(1997), 아이린 브라운과 리처드 브라운의 『이프리엄 휠러 매달기』(2003),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의 『책략가의 여행』(2006), 린다 콜리의 『엘리자베스 마쉬의 시련』(2007) 등은 그 예의 일부일 뿐이다.
미시사는 넓게 보면 68혁명을 필두로 1970년대에 일어난 서구 지성계의 회의주의적 자기 성찰의 한 결과겠지만, 그것이 각별히 이탈리아에서 선구적으로 나타난 데는 좌파적·민중주의적이자 동시에 반교조적·급진적 세속주의자로서, 역사를 ‘실제의 삶에 관한 학문(scienza del vissuto)’으로 규정한 그곳의 지적 풍토도 일조하였다. 그들은 프랑수아 퓌레가 역사의 한계로 지목한 ‘수와 익명성’의 표피에 갇힌 회색의 민중이 아니라 실제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인간으로서의 민중을 원했고, 이것이야말로 미시사의 진정한 출발점이자 지향점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밤의 역사』는 이러한 이탈리아의 미시사적 연구 흐름의 한가운데 놓인 책으로 실존했던 과거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는지, 미시사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지 접하게 해주는 책으로 손색없을 것이다.

카테고리 우리 시대의 고전,인문 | 출간일 2020년 7월 6일
사양 변형판 152x223 · 565쪽 | 가격 33,000원 | ISBN 9788932037493

카를로 긴즈부르그 일반저자

193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소설가인 어머니와 역사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1년 피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레체 대학, 볼로냐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피사 고등사범학교 등에서 가르쳤다. 긴즈부르그는 동시대 가장 자세히 보기

6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