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의 기척 ―허수경 선생님께

 

 

 

 

 

 

 

 

 

 

 

 

 

 

 

 

 

 

 

 

기별의 기척
―허수경 선생님께

선생님, 근혜예요. 지난 10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뵙고 돌아와 이렇다 할 안부를 전하지 못한 채 해가 바뀌고 겨울이 깊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던 만 하루의 시간이 살갑기만 해서 곱씹는 기억마다 먹먹해집니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흘렀네요.
예정에 없던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표를 끊고 불쑥 선생님과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 내심 이런 생각을 했던 듯싶습니다. 여덟 시간 시차를 둔 지구 건너편 도시에서 25년 넘게 살고 있는 한 사람, 이른 아침 눈을 뜨는 그가 커피를 끓이고 책을 읽고 시를 고민하다가 내다보는 창문 밖 거리, 그가 손수 씨를 뿌리고 일구는 마당과 텃밭, 그곳에 머물다 가는 바람 소리와 수선화, 야생 모과꽃, 벚꽃, 단호박꽃, 산딸기 넝쿨들, 오가는 계절과 날씨의 이름들…… 그리고 국경과 국경을 넘어 독일로 오는 사람들의 수상하고도 무거운 공기까지. 그 모든 안부를 담은 메일들 말미마다 우체국 소인처럼 따라오곤 했던 “잘 보내자”, “잘 지내자”는 한마디가 부추긴 결심이었습니다. 때로 사람을 질리게 하는 사무실 책상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그 무렵, 마침 메일 속 선생님의 안부가 또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이기에, 시집을 들고 직접 기별을 건네고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는 “좋다, 네가 온다니……”로, 다시 10월 말, “내일 봬요”로 가까워졌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
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다

종소리는 공중에서 유리 조각으로 흩어지고
잠이 덜 깬 잘 아는 얼굴은 황망히 도시를 떠난다
가방을 끄는 소리도 시끄러웠지

누군가 끌고 가는 바퀴가 달린 가방만큼
어릿하게 슬픈 세계는 없었다

-「카프카 날씨 1」 부분

지난 세기 전쟁의 폭격과 화마 속에 부서지고 복구되기를 반복하며 사람과 물자를 분주하게 실어 날랐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여전히 크고 낡고 소란스러웠습니다. 지상으로 지하로 독일 전역에 뻗어 있다는 복잡한 레일과 플랫폼 들 사이에서, 이른 아침 뮌스터를 출발해 급행열차에 오른 선생님을 과연 때맞춰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직 실감하지 못한 시차가 불러온 긴장이었을까요. 공연한 기우였습니다. 넘쳐나는 사람들 틈에서 작은 여행 가방 손잡이를 옆에 둔 선생님을 단박에 알아봤습니다. 칭칭 둘러맨 머플러 속에 작고 맑은, 얼핏 소년의 표정도 스쳐가는 바로 그 얼굴이었으니까요.
한낮인데도 중앙역 인근은 스산하고 불량한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저 같은 이방인에겐 제복 차림의 역무원이나 경찰들 역시 넝마를 걸친 노숙자들이나 무리 지어 있는 스킨헤드족, 매서운 눈으로 서성이는 루마니아 출신 집시 여인들 못지않게 경계의 대상이었을 테지요.

비는 오고
나는 여자의 욕설을 맞네
여자의 욕을 알아들을 수 없네
루마니아어로 하는 욕은 비만큼 낯설어
칠십 년 전 이 광장에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만큼 낯설어
그 와중에 죽은 시인을 떠올리는 나도 낯설어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낯선 역사적인 존재들

-「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부분

 

 

 

 

 

 

 

 

 

 

 

 

 

 

 

 

 

 

 

 

따로 예약한 호텔을 구글맵 하나 없이 찾아 나선 제 무모함은 광장을 지나 사방으로 얽힌 거리 표지판 아래서 급격히 소심해졌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길을 가던 아랍계 젊은 커플에게 호텔 바우처를 보이며 위치를 묻던 선생님의 나직한 독일어 억양과, 유모차에 누운 아기를 내려다보던 선생님의 눈길과 옅은 미소가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자그마치 25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독일 땅을 처음 밟았던 그때, 뮌스터로 향하기 전 잠시 머물렀던 이 도시의 화려한 홍등가 풍경을 소환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우수 어린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왜소한 체격의 젊은 동양인 여성에게 현란한 조명과 넘실대는 붉은 욕망 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흥미로웠다고 하셨나요. 어쩌면, 아주 오래전 진주 도심 골목에서 선생님이 마주했던 그 불빛들처럼……. 모퉁이를 돌 때마다 목적지에서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고, 보도블록 위로 가방의 바퀴가 덜그럭댈 때마다 입술이 바싹 말랐는데, 그때마다 주변 건물과 행인들로 화제를 바꾸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묘하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도착한 호텔의 로비는 꽤 깔끔하고 아늑해 보였습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선생님 손에 들린 녹색 여권을 사방에서 들리는 독일어만큼이나 낯설게 혹은 멋대로 뭉클해져서 바라봤던 것도 같습니다. 여섯 번째 새 시집을 받아 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시집이 나왔구나…… 표지 빛깔 참 좋다…….” 오래도록 시집이라는 형식에 대한 고민으로,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가 거슬려 붙잡고 있다는 기별의 메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곳만큼이나 서울 역시 더디게 봄이 오던 지난해 3월 말, 드디어 시집 원고를 받았고 제목을 정한 직후부터 내내 제 마음에 두었던 색깔, 좋다 하셔서 저 또한 기뻤습니다.

도둑질을 하듯 몰래 살았다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꽉 차오를 때 가지로만 입속에 머물던 빛, 그 빛의 혀를 지금 내가 적는다면

가지라는 불투명한 평화
보랏빛이라는 폭력
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투명해진 날개

-「가짓빛 추억, 고아」 부분

 

 

 

 

 

 

 

 

 

 

 

 

유난히 해가 짧은 하루였습니다. 트라클의 시와 카프카의 전기에 대한 이야기로 자일 거리를 통과하고 하우프트바헤 역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커피를 앞에 두고, 불쑥 연결한 서울 전화와 잠시 아득하게 젖은 목소리와 물 한 잔을 비우도록 멈추지 않던 선생님의 기침 가운데 무엇이 먼저였을까. 카페 벽면을 차지한 흑백 기록사진들을 하나하나 더듬던 눈길과 예전 선생님이 발굴하러 다니셨다던 폐허가 된 옛 도시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던 걸까. 늦은 저녁식사를 해결했던 슈바이처 광장의 한 식당에서 유리잔 속 투명한 아펠바인과 함께 일렁이던 선생님의 눈동자는 어디쯤을 걷고 있었던 걸까. 선생님 모습을 담은 제 휴대폰 속 사진을 넘기며 더듬더듬 시간을 꿰어보는 중입니다.
이 도시의 여행객이면 누구나 한 번은 들를 법한 뢰머 광장 분수대 앞에서 허허로운 눈빛으로 피워 올리던 선생님의 담배 연기도 쉬이 잊히지 않습니다. 마인 강변 안쪽 열 지어 선 선물가게들 사이에서 알록달록한 호두까기인형들을 발견하고 쇼윈도 앞에 멈춰 눈빛을 반짝이던 선생님의 모습 또한 그렇습니다. 언젠가 안개가 걷히지 않은 어둑한 새벽, 지나가는 차들이 보라고 목에 램프를 달고 달리는 개와 그 뒤를 따르는 개 주인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지요. 어둠 속 빛을 달고 달리는 개 한 마리를 지켜보는 동안 즐거웠다고. 메일에 가득했던 선생님의 온기와 명랑함을 그날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 앞에서 마치 제 것인 양 떠올렸습니다. 그 모두가 선생님이셨을 테니.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이국의 호텔」 부분

 

 

 

 

 

 

 

 

 

 

 

 

 

 

 

 

 

 

 

 

다음 날 아침 중앙역, 이번에도 선생님은 먼저 도착해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기차역 카페 테이블에서 선생님의 새 시집에 서명을 받았습니다. “2016. 10.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에서.” 서울을 떠나올 때만 해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시인의 말)을 낭송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갈 작정이었는데, 막상 뵙고 나니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도심 골목 이곳저곳을 함께 걸으며 이미 본 듯도, 들은 듯도 하였기에. 아니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라고 하셨기에.

어느 기차역, 노숙자는 낡은 시집을 읽으며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면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집 제목을 훔쳐보았다.

《불가능에게로》

기차는 철로에 앉은 비둘기들을 몰아내며 들어왔고 비둘기들은 도시의 눅눅한 하늘로 흩어졌으며 나는 기차를 탔다. 차창 너머로 보랏빛 시집 제목이 보였다. 내 목적지인 것 같았다.

-뒤표지 글에서

 

 

 

 

 

 

 

 

 

 

 

 

 

 

 

 

 

 

 

 

뮌스터행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서 선생님과 헤어졌습니다. 집까지 닿으려면 차를 두어 번 더 갈아타셔야 한다고 했지요. 여행 가방을 끌면서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동그랗게 작았습니다. 뒤돌아서 오는 길이 춥지도, 허기지지도 않았는데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인천 공항에 닿아서야 아끼던 머플러가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그 도시를 떠나기 전 꼭 한번 들러보라 하셨던 슈타델 미술관 보관함에 두고 온 모양이에요.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온기 그리고 시간과 함께.
“네가 온다니 참, 가을이다……” 하셨지요. 선생님, 당신을 뵈었던 그 시간이 제게도 참, 가을이었습니다. ■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부분

◇이 글은 『21세기문학』 2017년 봄호[21세기의 작가_허수경_작가초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인용된 시와 산문은 모두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2016년 9월 발행)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글․사진_이근혜(문학과지성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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