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출간 한유주 작가 인터뷰

 

얼마 전 네번째 소설집 『연대기』 를 출간한 한유주 작가를, 박솔뫼 작가가 만나보았습니다.

 

박솔뫼: 오랜만에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요즘은 어떤 것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한유주: 솔뫼 씨도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손 놓고 있던 원고를 다시 쓰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생각은 대개 생각에서 그치고요, 작업 중인 파일을 열어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들의 고양이들을 뒷바라지하며 보냅니다. 최근 주변에 고양이들이 많이 생겨나서, 이제까지는 개의 언어를 습득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이제부터는 이와 더불어 고양이의 언어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어려운 일입니다. 자발적 캔 따개로 지내고 있는데 행복합니다.

 

솔뫼: 요즘의 일상을 보여주실 수 있는 사진 5장을 한 줄 설명과 함께 보내주셔요.

유주: 죄다 고양이 사진들인데……

 

 

솔뫼: 고양이 사진이 보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부산에서 찍은 고양이 사진 중 하나를 보냅니다. 고양이 사진을 찍은 사진이 되겠네요.

 

 

솔뫼: 이전 출간 텀과 비교하면 오랜만에 책을 출간하셨는데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유주: 한동안 최소한의 일상을 제외하고는 전부 손에서 놓고 있었어요. 길다면 긴 그 시간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마침내, 생각했고요. 원고 정리하는 과정이 좀 어려웠는데 손바닥의 모래처럼 흘러가버린 원고들이 좀 있기도 했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빼버려야 했던 원고들도 있었어요. 아무튼 어떤 시간이 책이라는 형태로 정리된 것 같아서 홀가분합니다.

 

솔뫼: 보통 단편집의 경우 수록 소설에서 따 올 때가 많은데, “연대기”는 새로 지은 제목이더라고요. 제목을 의식하며 읽다 보면 책 전체가 각기 다른 사람이 채워가는 연대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지은 제목인지 궁금합니다.

유주: 실은 책 제목을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짖음, 밝, 멍,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뭐 이런 걸 생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대기”라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자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다짐을 실은 제목입니다.

 

솔뫼: 「그해 여름 우리는」을 읽다 느낀 것인데 작가님 소설 속에서는 시대가 정확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해당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 2010년대를 어떻게 그리게 될 것 같은지 묻고 싶습니다.

유주: 말씀하신 대로 저는 제 소설이 시대상을 정확히 드러낸다기보다는 반영이나 징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탁월한 이야기꾼이 아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2010년대는 관습적으로 행하던 것들을 점검하고 어떤 과거와 작별하는 시기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들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로도 기억될 것이고요. 이런 게 소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기분인데, 쓰고 또 써봐야 글쓰기는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밝혀지는 것이 있겠지요.

 

솔뫼: 저는 소설을 쓰는 것이 괴롭거나 뭔가를 많이 견디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종종 버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있고,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한 해 한 해를 보내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2003년 데뷔 이후 16년가량 시간이 흘렀는데 돌이켜 보면 어떤 시간으로 느껴지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힘이 들 때는 어떤 것을 하며 시간을 흘려버리고 보내버리는지도 궁금합니다.

유주: 다들 어떻게든 살고 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정말이지 어제가 내일 같고 일주일 전 일이 몇 년 전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곤란할 때가 좀 있습니다. 시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기분도 들고요. 올해 초부터 운동을 좀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요. 걸으려고 포켓몬고를 시작해서 얼마 전에 만렙을 찍었습니다. 힘들면 잠을 자고요, 잊으려고 하고요, 밖에 나가서 무작정 걷거나 운전해서 인천공항으로 갑니다.

 

솔뫼: 『불가능한 동화』는 영어로 번역되기도 하였고 작년 National Translation Award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출간 이후 외국 독자들의 반응을 접할 기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인상적이었던 반응이나 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유주: 미국에서는 책이 나오면 꼭 홍보 투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작가들과 책들이 있고 나라가 커서 그런 듯한데 잘은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도 홍보 때문에 미국에 갔습니다. (제 여행 비용이 출판사 수익을 상회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서점에도 들렀는데, 뉴욕의 어느 서점에서 제 책에 직원 추천 카드가 놓여 있는 걸 봤습니다. 책을 거꾸로 꽂아놓고 나오고 싶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솔뫼: 『불가능한 동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한유주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 속 장면 너머 조용히 앉아 있는 어린이가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성인이 된 이후 인사를 잘 안 해서 지적을 받게 될 때가 종종 있지만 어릴 때는 인사를 잘하는 어린이였는데요. 한유주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였을지 궁금합니다.

유주: 저는 수다스러운 어린이였는데 말이 없었던 것 같네요. 명랑했는데 떠들지를 못했고요. 늘 누군가가 말을 하라고 했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곤란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이 딱히 행복하지 않았고, 제 경험에 과도한 형태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제 글이 한 방향으로 규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하기가 또 곤란하지만, 저는 어떤 폭력의 생존자입니다. 잊으려 했고, 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기억이 불시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자꾸만 아이가 소환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아이와 작별해야 어떤 의미에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제가 이해되지 않는 일련의 행위들을 이해하는 쪽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창작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그래야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거라는 강박이 있어요. 소설을 쓰면서 말하는 쪽을 택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꾸 말해야 지난 일들이 점차 의미가 쇠퇴할 거라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솔뫼: 저는 이번 단편집에서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런 사건과 순간을 이렇게 연결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고 나중에 쓸 때 따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편을 고르신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단편집은 수록 순서를 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순서를 정할 때 어떤 것을 고려하여 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유주: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솔뫼 씨가 뭔가 쓰시면 저도 이어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잘 모르겠고, 가장 힘들게 썼던 건 역시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이었고요, 그래도 즐겁게 썼던 건 마지막 단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편집 순서를 두고 저도 이민희 편집자님도 여러 생각들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독자들이 단편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며 읽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솔뫼: 저는 가끔 사람들이 어떤 소설을 쓰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가 난감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혼잣말 하는 내용이다’라고 대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인물들을 주로 걷게 하고 저도 자주 걷고 걸으면서 소설을 진전시키는 경우가 많아 어떤 면에서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연대기』에 실린 소설 몇 편은 제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바꿔 말하면 ‘운전하는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인물에게 운전대를 잡게 하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운전을 하지 않아서인지 그 점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운전을 하면서 소설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유주: 이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운전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차를 사고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찮을뿐더러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게 꺼려져서였는데,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면허를 취득하고 운전에 나서게 된 다음부터는 지속적으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일단 차 안에 있으면 더없이 안전한 기분이 들고요, 무념무상으로 (그러나 준법적으로) 달리다보면 일종의 해방감을 만끽하게 됩니다. 남한이 생각보다 작아서 더 달릴 수 없는 것이 때로 안타깝고요. 여자들이 운전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레이첼 커스크,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런 작가들이 생각나네요. 최단거리 직선 코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못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끝없이 좌표를 바꾸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도로 위에서 돌발 상황이 많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운전은 죽음과 직결된 움직임기도 하고, 나를 이동시키는 행위이기도 해서 좋아합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체력을 비축 중입니다.

 

솔뫼: 최근 3년간 읽었던 책 중 좋았던 것 3권을 추천해주세요. 사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많이 추천해주세요.

유주: 그간 뭘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다만 자주 생각나는 책은 알리 스미스의 『가을』, 하야시 후미코의 『방랑기』,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무중력의 사람들』, 김복희의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입니다. 솔뫼 씨는 어떤 목록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솔뫼: 3년이라고 시간 제한을 두기는 했지만 이전 답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점점 시간 관념이 흐릿해져가는 느낌이 종종 드네요. 정확히 세어보지 않고 대략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책으로 생각해보면 세르주 다네의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의 에피소드들이 떠오를 때가 있고요. 타카노 후미코의 만화들과 유운성의 『유령과 파수꾼들』이 생각나고요. 작가님이 추천사를 쓰기도 하셨던 데버라 리비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은 요즘 읽고 있는데 무척 좋네요. 이전과 변함없이 반복해서 읽는 것은 로베르토 볼라뇨와 도미야마 이치로이고 힘이 없을 때는 하라 료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아요.

 

솔뫼: 앞선 질문과 중복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번역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도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많을수록 좋습니다.

유주: 월리스 스티븐스 선집이 번역되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고요, 레이첼 커스크의 근작들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르모니아 소메르스도요. 또 최근 몇 년간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의 작가들과 교류할 일이 좀 있었는데, 이들의 무시무시하고 굉장한 작품들이 한국어로도 번역되기를 희망합니다.

 

솔뫼: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책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예정된 출간 혹은 연재 계획이나 구상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또 문지 에크리 시리즈 리스트에서도 보았는데 혹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유주: 첫 답변에서 말씀드렸던 소설을 꼭 마무리하고 싶어요. 제목은……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가 될 예정입니다. 『연대기』에 실린 마지막 단편과 연결되는 소설이 될 것 같아요. 그 외에는 간단한 메모로만 남겨둔 것들을 세공하고 조탁하는 이의 마음으로(그럴 수 있다면) 단편으로 써내고 싶습니다. 에크리 시리즈에 포함될 원고는…… 아직…… 멀었습니다…… 책과 동물에 관한 원고가 될 것 같습니다……

 

솔뫼: 감사합니다!

유주: 저도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소설,소설 선집 | 출간일 2019년 8월 6일
사양 변형판 124x189 · 228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35581

한유주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박솔뫼 소설가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를 펴냈다.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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